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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22.05.19 조회 56,447 추천 1,180


 아포칼립스의 요새 상속자 1화
 
 
 
 
 
 
 “지긋지긋한 것들, 이제야 움직이는구먼.”
 
 20년 무사고 경력, 택시 기사 최봉팔 씨가 낡은 쌍안경을 내게 내밀었다.
 
 마침 고속도로 위 감염체들은 2시간째 점거를 끝내고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야, 올해 들어 제일 큰 무리인디? 저짝 서울로 지나가면 참 볼만하겄어.”
 
 작게는 수백, 크게는 수천 마리씩 몰려다니는 감염체다 보니 도시 함락은 순식간이다.
 
 농담을 해도 참 좆같이 한다는 생각에 나는 그냥 짐만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갑시다. 갈 길도 먼데.”
 
 “젊은 양반이 성질이 급하네.”
 
 썩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은 최봉팔 씨는 능숙하게 차량 시동을 걸었다.
 
 나는 짐이 잔뜩 실린 좌석 대신 구멍이 뚫린 차량 지붕 위로 올라갔다.
 
 부우우우우웅 - - - -!!
 
 주인이랑 연식이 비슷한 고물 택시는 겉모양과 어울리게 참 느리게도 달린다.
 
 그나마 다행히 반도에서 제일 멀쩡한 영동고속도로답게 길에는 막힘이 없었다.
 
 “그나저나 젊은 양반이 강릉까지는 무슨 일로 간댜? 거긴 도시도 없는데 말이야.”
 
 “할아버지가 유산을 남기셔서요.”
 
 “어이구야, 겨우 유산 하나 받으려고 이 위험한 길을 가? 참 별난 사람이네.”
 
 하긴 유산 하나 받으려고 전 재산을 콜택시 부르는데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인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기에 나는 그냥 입 다물고 주변 풍경이나 살폈다.
 
 마침 택시가 달리는 고속도로 옆으로는 폐허가 된 도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인간과 문명이 사라진 콘크리트 폐허.
 
 이미 멸망한 시대의 산물을 내려다보는 건 그리 썩 유쾌한 취미는 아니었다.
 
 끼이이이익 - - -!!!!!!
 
 “어, 어! 젊은 양반! 나 좀 잠깐 도와줘야겠는디? 거기 서랍 보이지! 총 좀 꺼내 봐!”
 
 감상은 거기까지다.
 
 짧은 틈조차 주지 않는 택시 기사는 다급히 조수석 서랍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예예, 도와드려야죠.
 
 유연하게 몸을 돌려 서랍 속에 손을 넣자 묵직한 무언가가 딸려 나왔다.
 
 그 물건은 다름 아닌 택시 기사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38구경 리볼버였다.
 
 끼기기기긱! 끼기긱!
 끼에에에엑! 끽!
 
 그래, 폐허 근처를 지나가고 있는데 이른 환영 인사가 없으면 섭섭하지.
 
 지붕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나는 리볼버 실린더를 촤르르 돌렸다.
 
 “몇 발 있어요?”
 
 “2발 뿐이여!”
 
 2발이면 이 택시 바퀴 2개를 새로 가져다 끼워도 될 텐데 참 배포가 크다.
 
 나는 참 어지간히도 흔들리는 승차감에 혀를 차며 택시 뒤편으로 총구를 겨눴다.
 
 그곳에는 인간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쓴 감염체가 침을 흘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끼에에엑! 끽! 끼기기긱!
 
 얼굴 가죽이 촉촉한 걸 보니 오늘 하루 신선한 생존자를 잡은 모양이구나.
 
 거리는 40M, 나는 침착하게 숨을 몰아쉰 뒤 조준점이 내려올 때를 맞춰 멈췄다.
 
 발로 걷어차여 가며 배운 사격인데 빗나가면 죽은 중대장이 조금 곤란해진다.
 
 탕!
 
 한 발은 가슴팍에 맞췄다.
 놈이 멈추지 않는다.
 
 탕!
 
 또 한 발은 머리 정중앙을 관통했다.
 
 그제야 놈은 검은색 피를 주룩주룩 흘리며 맥이 끊긴 짐승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됐다.
 
 더 이상 좇아오는 놈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얌전히 리볼버를 반납했다.
 
 탄환 두 발과 목숨 두 개를 맞바꿨으니 제법 싼 가격에 셈을 치른 셈이다.
 
 “젊은 양반이 총 좀 쏘네? 어디서 군 생활이라도 하다가 왔나 봐?”
 
 “예, 예. 당연히 만기 전역이죠.”
 
 국적, 나이, 성별 구분 없이 군대로 안 끌려본 생존자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또, 재미없는 농담이네.
 
 택시 기사는 또 한 번 썩은 이빨을 히 드러내며 웃더니 곧 고속도로를 가로질렀다.
 
 유일한 서비스직인 건 이해하겠는데 너무 환히 웃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 * *
 
 
 
 까악! 까악!
 
 지나가는 변종 까마귀가 전선이 끊긴 가로등 위에서 기분 나쁘게 운다.
 
 마침 시간은 밤이 되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 유일한 불은 서치라이트뿐이다.
 
 “여기가 맞긴혀? 영 사람 사는 곳 같지는 않은데. 뭐 나는 가라면 가니까.”
 
 “길 따라 쭉 가보세요.”
 
 그나마 작동되는 서치라이트가 있어서 다행이지 원래는 무척 위험한 도박이다.
 
 이제 슬슬 쫄리기 시작한 나는 지도 위 경로를 그대로 지시하며 침을 삼켰다.
 
 음산한 거리, 어슬렁거리는 감염체들.
 
 그렇게 오르막길을 얼마나 더 올라갔을까, 드디어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희망 아파트’
 
 산 바로 아래, 10개가 넘는 아파트 동이 벽을 높게 쌓아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 자태는 한눈에 보아도 가히 생존자 요새라는 이름을 붙여도 아깝지 않았다.
 
 “지키고 서 있는 사람이 없는디?”
 
 하지만 밤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요새는 참 어둡고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생존자가 남아있는 거 맞긴 한 거야?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를 떠올린 나는 일단 떨떠름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고생하셨어요.”
 
 택시 기사와의 계약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것으로 완전히 끝이 났다.
 
 서울로 돌아가려 해도 땡전 한 푼 남은 게 없으니 여기서 이별이었다.
 
 “버틸 배터리는 있어, 젊은 양반?”
 
 “예, 뭐. 이틀은 버티겠죠.”
 
 그나마 다행인 건 남은 돈을 털어 산 배터리가 아직은 넉넉하다는 걸까.
 
 일단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요새 근처에 생존자가 없는지 둘러볼 생각이다.
 
 작게 투덜거린 나는 서울에서 한가득 챙겨온 짐을 좌석에서 내리려고 했다.
 
 철컥!
 
 하지만 그 순간 하필 등지고 있던 뒤통수로 누군가 차가운 총구를 들이밀었다.
 
 38구경 리볼버.
 나를 여기까지 태워다 준 택시 기사다.
 
 “작별 인사가 거치시네요?”
 
 “흐, 그러게 왜 등을 보여줘.”
 
 먼 거리를 이동하는 콜택시가 간혹 강도로 변한다는 소리는 익히 들어봤는데.
 
 설마 생에 처음으로 이용해본 현금 강탈 서비스를 내가 당하 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일단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들어 올려 저항할 의지가 없다는 걸 밝혔다.
 
 “2발뿐이라면서요?”
 
 “한 발 더 있었는데 잘 모르더라고~. 아, 거기서 느꼈지. 이 새끼 존나 호구네.”
 
 하긴 직접 만져본 총에 2발이 들었는지 3발이 들었는지 모르면 호구 맞다.
 
 아니, 처음부터 생판 모르는 남과 강릉까지 달려온 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할아버지 유산이 뭐야?”
 
 “아! 그게 목적이셨구나.”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늙으니까 변하나 봐. 이 좆같은 택시 일도 이젠 지긋지긋하고······. 이번 기회에 그만두려고.”
 
 안다. 평범한 생존자가 살기 위해 강도가 되고 살인자가 되는 이 좆같은 세상을.
 
 모든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인 나는 괜한 악다구니와 욕설로 체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러자 택시 기사는 또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검지 안 방아쇠를 천천히 당겼다.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자고.”
 
 여기까지가 할아버지 유산을 받기 위해 떠난 첫 번째 이야기의 끝이다.
 
 
 
 
 달칵.
 
 리볼버 공이가 돌아간 실린더를 때렸다.
 
 하지만 분명 한 발 남아있어야 했는데 리볼버 총알은 발사되지 않고 침묵했다.
 
 “이런 시발······!!”
 
 나는 빈 방아쇠 소리가 들려온 즉시 코트 사이에 꽂아둔 나이프를 꺼내 휘둘렀다.
 
 서걱!
 
 몸을 180도로 돌려 횡으로 지른다.
 
 “- - - - - -!!”
 
 택시 기사는 무언가를 해 볼 겨를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칼날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목 아래에서 꾸물꾸물 새어 나오는 피를 발견한다.
 
 “끄르륵, 끅.”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을 보아하니 어떻게? 라고 묻고 싶은 게 훤히 보인다.
 
 나는 팔오금 안으로 나이프를 닦은 뒤 천천히 택시 기사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내 코트 안쪽을 뒤져 사라진 세 번째 총알을 꺼내 눈앞에 보여주었다.
 
 “이거 찾습니까?”
 
 택시 기사가 피거품과 함께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온몸을 사방으로 비튼다.
 
 정말 미안하지만, 세 번째 총알은 이미 서랍 안에 넣기 전 빼돌린 지 오래였다.
 
 “4발이라고 하셨어야죠.”
 
 그럼 총알이 더 있는 줄 알고 속았을 텐데.
 
 나는 착잡한 심정을 애써 숨기며 고통스러워하는 택시 기사 목으로 칼을 가져갔다.
 
 뚝.
 
 목숨을 끊는 감상이 사냥한 동물의 숨통을 끊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나는 그가 들고 있던 리볼버를 뺏어 챙기고 자연스럽게 택시를 향해 걸어갔다.
 
 덜컹!
 
 운전석에 올라타니 마침 계기판 위에 잘 보이도록 올려둔 가족사진이 눈에 띈다.
 
 아들이랑 아내가 기다린다고 그리 자랑하시더니 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
 
 나는 제각기 이유로 불행해져 버린 가족사진을 뒤집은 뒤 힘껏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릉 - -!
 
 오르막길을 오른다.
 기분이 더욱 더러워진다.
 
 희망이 없는 희망 아파트가 점점 가까워지며 이내 정문까지 올 수 있었다.
 
 아까 택시 기사가 내게 물어봤었지.
 
 도대체 할아버지의 유산이 뭐길래 이 먼 거리를 달려 강릉까지 왔냐고 말이야.
 
 차에서 내린 나는 서치라이트를 위로 올려 희망 아파트를 환하게 비춰보았다.
 
 저곳이다.
 
 바로 내가 유산으로 받은 콘크리트 요새가.

댓글(58)

아일페사스    
익숙한 맛..쿼카 좀비물..
2022.05.21 23:17
as******    
헐....작가님?!
2022.05.22 21:52
k3************    
헉 그 분이 오셨다
2022.05.22 22:44
Necessita    
마법사 잘보고 있었는데...
2022.05.23 04:07
제대로산나    
마법사.. ㅠㅠ
2022.05.23 23:01
제프루아    
와 쿼카님 좀비물 기다렸으요!
2022.05.24 01:04
잠수준비    
쿼카님의 좀비물? 못참지
2022.05.24 02:39
방패병사    
기..기다렸습니다!
2022.05.24 22:33
등골휜다    
쿼카님 신작!!
2022.05.25 05:41
원투쓰리..    
멸망한 세상의 택시기사라니 멋디다
2022.05.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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