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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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1회 국제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는... ]
검정색 건물의 벽과 주황빛 조명. 어두우면서도 밝은 듯한 내부의 분위기.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사실상 대상이지.”
“으음. 내가 아까 살짝 들었는데, 피아노 부문 대상은 만장일치라고 하더구만.”
“그래? 하긴. 관객들 반응도...”
대회가 열린 뉴욕의 아메리카 오페라 센터.
이미 바이올린 부문의 대상 수상자는 발표가 된 상황에서, 콩쿠르는 마지막 주인공인 피아노 대상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관객석에 앉아있는 기자들.
본디 관심이 주목되는 국제 대회이긴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아시아계, 한국 기자들의 인원수가 많아 보였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 대상자의 호명에서 밝혀졌다.
[ 김민재입니다! 부디 단상 위로 올라오세요! ]
“역시!”
“짝짝짝!”
“와아아아!!”
차기 업계를 이끌 한국의 스타.
유소년기부터 주목받아온 김민재의 첫 국제 콩쿠르 데뷔전이자, 관객과 심사위원들에게서 놀라운 반응을 끌어낸 1등이었기 때문이다.
“KIM의 연주,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민재가 시상자의 손을 맞잡으며 웃었다.
“민재 군, 1등 축하해요!”
“하하, 감사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기자님들 인터뷰는 내일 부탁드릴게요. 오늘은 좀 쉬고 싶거든요.”
그의 주변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린다.
모든 시상이 일단락지어지고, 김민재가 친분이 있는 기자들의 축하 인사를 흘려내며 밖으로 나섰다.
“후우...”
호텔에 도착해 피곤한 한숨을 내쉬며 목 끝까지 올려 매고 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다.
풀썩-.
침대에 대(大)자로 몸을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민재.
숨을 쉬는 그의 가슴이 일정하게 오르내리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앞에 앉았다.
“31회... 국제 콩쿨...”
노트북에 방금 자신이 마친 대회의 이름을 쳐보았다.
클래식 음악의 인기의 한계를 증명하듯 기사가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물론 자신의 이름은 다른 이들에 비해 많이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그가 이걸 검색한 건 그런 에고서칭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정수호... 정수호...’
김민재가 기사들 사이에서, 자신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찾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정수호라는 이름은 이전에 자신이 했던 인터뷰 내용이 마지막이었다.
[ 김민재 군, 아니 이젠 당당한 피아니스트가 되신 민재 씨는 이번으로 출전한 대회 12연속 1등 기록을 달성하고 있어요.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인데요. ]
[ 하하, 1등 하면 좋죠. 하지만 콩쿠르에선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
[ 역시 ‘예술가’라는 말이 어울리시네요. 음~, 그래도 아쉬운 건 있지 않으세요? 마지막으로 1등을 놓쳤던 건 5년 전, 중등부 콩쿨 때... 그것만 아니었다면 지금껏 모든 대회에서 1등을 하신 셈인데요. ]
김민재는 아직도 이때의 인터뷰가 기억이 났다.
[ 전혀 아쉽지 않습니다, 아니 절대 아쉽지 않아요. 저는 그때 1등을 놓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
피아니스트인 아버지, 어머니의 아래에서 기억도 나지 않을 때부터 연주를 해왔고 1등만을 해오던 김민재.
그리고, 그때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제치고 1등을 했던 녀석.
정수호.
‘피아노 시작한 지 2년...이라고 했었나.’
세상은 자신을 천재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천재일까?
김민재는 그날 이후,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단순히 ‘첫 패배’에서 겪은 깨달음이 아닌,
정수호의 연주에서 느껴졌던 ‘완벽함’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콩쿨을 치렀던 당일.
김민재는 충격과 놀라움으로 정수호와 교류를 하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어차피 정수호의 실력이면 계속 만날 거로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김민재의 착각이었다.
정수호는 단 한 번의 콩쿨 이후.
마치 신기루처럼 모습을 감췄다.
혹시나 이전 대회의 출전 기록이 있는지, 혹은 이후에 자신이 놓친 대회가 있는지 꾸준히 수소문을 했지만.
어느 정도 위치가 올라온 지금에도 그는 ‘정수호’라는 이름을 들을 수 없었다.
그날 하루의 만남. 그것뿐.
“...”
탁!
김민재가 노트북을 소리나게 덮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5년 전의 중등부 콩쿨에서 정수호가 건넸던, 그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한마디의 말.
[ 너 잘 치더라. ]
1등이 2등에게 한다기엔 무례할지도 모르는 말이지만, 정수호이기에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던 말...
이불 속에 파묻혀서, 상아색 천장을 바라보던 김민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수호 대체 너 뭐 하고 살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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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저벅.
회색빛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자취방들이 모여있는 서울 한 외곽의 거리.
한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투덜대며 걸음을 옮기고 있다.
주변에 대학교가 있어 드문드문 20대 초반의 사람들이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니곤 했는데 여자 역시 그들과 크게 나이 차이가 나 보이진 않았다.
“하아... 5년이지.”
여자, 정나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몇 년 만에 동생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갑작스럽게 자퇴를 선언하시고,
무려 5년 동안 방에만 틀어박혀 스님마냥 세상과 단절을 하고 계신 동생 놈을.
놈이 방에 틀어박힌 이후 몇 번인가 찾아오긴 했는데.
그것도 1년, 2년 흐르면서 점점 발길이 뜸해졌었다.
자취방에 도착한 그녀가 입구에 서서 잠시 호흡을 고른다.
똑똑.
잠시 입구에 서서 예전 생각을 하던 그녀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부터 금방 덜컹하고 문이 열렸다.
“어?”
“금방 왔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보인 동생의 모습에, 정나은은 입을 벙끗거렸다.
“정수호, 너야?”
폐인 같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보이는 건 생각보단 깔끔했다.
물론 눈을 덮을 만큼 치렁치렁 더벅머리를 기르고 있어 거지꼴처럼 보이긴 한데...
“대충 치워뒀는데 방이 더럽네.”
놀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방 안에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종이들.
“너, 니가 그림도 그렸었나?”
“그동안 이것저것 했지.”
그리고 대충 봐도, 그 종이들엔 모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정나은은 손을 뻗어 한 장 짚어들고 바라봤다.
‘...잘 그린다.’
채색이 되어 있지 않은 그림.
이런 걸 소묘라고 하던가...?
그녀가 미술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었지만 딱 봐도 감탄이 나올 그림이었다.
그녀가 힐끔 동생을 보니, 정수호는 그림에는 별 다른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정나은이 그제야 대충 널부러진 종이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래서. 그동안 혼자 이것저것 하면서 지내다가 오늘 나는 왜 부른 거야?”
“누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묻고 싶은 거?”
“그림은 누나 전공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누나가 잘 아는 것도 있잖아.”
그래서 그림을 보던 말던 신경도 안 썼던 거였냐?
나은이 허탈하게 웃다가, 그가 하는 말을 깨닫고 설마 하는 표정으로 정수호를 바라봤다.
“누나 아직도 음악 해?”
수호에게서 나온 질문에, 정나은의 시선이 그제야 정수호가 보고 있는 모니터 화면으로 향했다.
그가 앉아있는 테이블, 그리고 주변에 있는 것들.
그제야 그림에 신경을 빼앗겨,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마스터 키보드와 전자식 악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너 설마...”
포기하지 않았던 거야?
동생은 유명했다.
그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영재, 천재라느니 좋은 소리는 모두 다 들었고, 대학 교수에게서 키워보고 싶다고 연락받거나 외국 유명 가수로부터 콜라보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동생이 갑자기 모든 인연을 끊고 방에 틀어박혀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난 5년.
이제 정나은은 스스로 실망하지 않기 위해 애써 흐린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 아직 음악 하냐니까?”
“어어. 음악... 여전히 하고 있지.”
“그럼 내가 만든 곡 한번 들어보고 평가해 줄래? 어떤지.”
5년.
천재가 평범해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나은은 동생이 '음악'을 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정나은이 그의 말을 이해하는 사이,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던 정수호가 헤드셋을 내밀어왔다.
딸칵, 딸칵-.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더없이 크게 들려왔다. 정나은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꾹 참고 헤드셋을 받아 머리에 썼다.
“제목은 「 Thanks 」야.”
헤드셋 너머 목소리와 함께, 음악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 Can you hear, my melody... 」
조용하고 단조로운 첫 선율.
하지만 이어서 뒤엉키는 악기들은 점점 풍부한 하모니로 세상을 채웠고, 그 음악은 귓가를 넘어 마음 안쪽에 복잡미묘한 감정을 만들어냈다.
정나은은...
알 수 없었다.
동생은 이 좁은 자취방 공간에서 대체 무엇을 봤던 걸까?
정수호가 만들어낸 노래는 넓고도 거대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섬세한 노래. 노래를 모두 들은 정나은은 잠시 눈을 감은 채 여운을 즐겼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쉬웠다. 이런 천재성을 지닌 동생의 노래를 자신만 들어야 한다는 것에.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 노래?”
“...어?”
그러던 그때 그녀의 귀에 정수호의 말이 들려왔다.
정나은이 멍청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여전히 속마음을 알 수 없는 표정의 정수호가 정나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그녀는 말을 끝맺지도 않고, 불명확하게 말했지만,
두 사람은 같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끄덕-.
그녀의 질문에 흔들리던 정수호의 눈동자가 천천히 멎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답했다.
“이제 더 이상 동굴에 틀어박혀 있는 건 그만두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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