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다 때려잡는 천재 회계사

1화 다짐

2022.05.25 조회 20,549 추천 350


 "아이고~ 정회계사님! 재무제표 나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서류를 건네는 대창상사의 김부장.
 하지만 입꼬리가 한쪽만 살짝 올라간 표정은 멘트와 전혀 매치가 안 됐다.
 마치 지금이라도 주는 걸 감지덕지하라는 식이다.
 감사인인 회계법인과 피감사인인 회사와의 관계는 얼핏 보면 감사인인 회계법인이 갑인 것 같지만, 회사가 회계법인을 골라서 감사 계약을 체결하는 게 현실이므로 을이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 갑을 관계가 수시로 전복된다.
 깨끗한 회사여서 털어봐야 나올 게 없다면 회사가 갑이고, 지저분한 회사여서 숨기는 게 많다면 회계법인이 갑이다.
 
 대창상사에 감사를 나온 지 벌써 나흘째.
 결산이 아직 안 끝났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철수하기 하루 전인 오늘에서야 비로소 재무제표를 던져줬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
 정말 할 일은 많은데 핵심 인력은 퇴사하는 바람에 결산이 정말 늦었거나
 아니면 여기저기 숨기고 짱박느라고 늦은 거다.
 물론 이 회사는 후자다.
 아니나 다를까 서류를 펼치자마자
 '지지지직' 하는 소음과 함께 흔들리는 숫자들.
 마치 오리가 물 위를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물감이라도 떨어뜨린 것인 양 온통 빨갛고 파란색으로 물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재무제표의 숫자가 틀렸다는 얘기다.
 어떻게 된 게 한 줄도 제대로 맞는 게 없었다.
 가까스로 와꾸만 맞춰 놓은 듯.
 서류뭉치를 테이블 위로 내던지며.
 "잘못됐네요."
 "네? 잘못됐다뇨? 어디가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다요."
 손바닥으로 서류 전체를 가리키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아니, 보시지도 않고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지죠? 회계사님?"
 "봤는데요?"
 "그거야 재무제표만 본거지 장부까진 아직 안 보셨잖습니까?"
 "부장님! 배 아프다고 하면 의사들이 배 갈라서 들여다봅니까? 청진기 한번 대보면 딱 진단 나오는 거죠.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네?"
 경외심 반, 의구심 반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와
 '이렇게 엉터리로 해놓았으니 누가 모르겠냐?'
 이 둘 중의 어디쯤일 것이다.
 "그럼 어디 배 갈라서 한번 봐볼까요?"
 "네. 그러시든지요."
 김부장이 자신만만한 듯 웃어 보였다.
 이 많은 거래에서 어떻게 찾겠냐?
 해 볼 테면 얼마든지 해 봐라다.
 장부를 열어 숫자가 흔들려 보이는 걸 가리켰다.
 "이거 증빙 좀 갖다주시죠."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
 '어떻게 알았지'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숫자에 밝았다.
 단순히 셈을 잘한다거나 빠르다는 게 아니라(물론 그런 것도 뛰어나긴 했지만).
 틀린 숫자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좀 이상하다 정도였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틀린 숫자에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초등학교 2학년.
 엄마 심부름으로 집 근처 동네 슈퍼에 갔을 때였다.
 두부랑 콩나물, 소주 세 병을 집었다.
 "옛다. 영수증."
 슈퍼집 아줌마가 영수증과 함께 백 원짜리 몇 개를 거스름돈으로 건네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영수증을 보자.
 갑자기 '지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숫자가 흐릿하게 보였다.
 "아줌마. 이거 틀렸어요.
 "응? 뭐가?"
 너무나 태연스러운 반응에 설마 내가 잘못 봤나 했다.
 "이거 틀린 거 같은데요?"
 수기 영수증에 적어놓은 흔들리는 숫자를 가리켰다.
 소주 가격이었다.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손뼉을 치며.
 "에구머니나! 내 정신 좀 봐. 600원짜리를 900원으로 적었네."
 "네."
 "미안해 얘야. 600원 더 거실러 줘야겠구만. 여기."
 또 틀렸다.
 300원에 3병은 900원이다.
 "900원인데요. 아줌마."
 "아이고. 또 틀릴 뻔했네."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정말 실수로 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 어리숙한 꼬마 아이 등쳐 먹을라고 영수증에 일부러 금액을 다르게 적었다는 것을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비단 이 가게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디에서도 적은 금액이 나오게 실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600원 거슬러주려 한 것도 고의였을 거다.
 요놈 아직 뺄셈이랑 곱셈 안 배웠겠지, 하면서.
 슈퍼 아줌마의 겸연쩍어하는 표정 뒤에 살짝 이를 악무는 그 찰나가 아직까지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있다.
 거스름돈을 꽉 쥔 채 집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대문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얼음처럼 굳어졌다.
 어떤 이상한 아저씨들이 구둣발로 문지방을 넘나들며 세간살이를 다 헤져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아~."
 무서운 마음에 엄마를 불러보았지만 안보였다.
 한참 뒤 거실 옆에 쪼그리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 이 아저씨들 누구야?"
 "아들 왔어?"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두 뺨에는 흘러내린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엄마. 무서워."
 "괜찮아 아들. 무서워하지 마."
 아들 앞이라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인지 애써 눈물을 꾹 눌러 참았다.
 엄마는 나를 향해 팔을 활짝 벌렸다.
 내가 가슴팍으로 들어가 안기자 엄마는 애정 가득한 얼굴로 등을 톡톡 토닥여줬다.
 "별일 아니야. 아들. 뭐 좀 찾는다고 하니깐 금방 끝날 거야."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별일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저녁 드시러 오셨어야 할 아빠도 안 계셨다.
 사실, 그날 아침이 아빠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안방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반장님! 여기요! 나왔습니다."
 웅성웅성하는 소리.
 여러 명이 구둣발로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반장인 듯한 남자가 번쩍번쩍 빛나는 금괴들을 두 손에 쥐고 흔들며 엄마를 향해 조소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하여간 도둑놈 새끼들 꼭 멍청하게 장롱 같은데다 숨긴다니깐."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저희 게 아니에요. 저흰 전혀 모르는 일이라구요."
 "여기 이렇게 증거가 떡하니 나왔는데도 발뺌할 거야?"
 "정말이에요.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단 말이에요. 게다가 저희 남편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구요."
 "아줌마. 세상에 절대 안 그런 사람은 없어. 상황이 그렇게 만들 뿐이지."
 엄마는 억울한 듯 울며불며 절규했다.
 "아니라니깐······요."
 "아줌씨. 빨리 남편한테 자수하라고 해. 어차피 잡히게 돼 있으니깐 형량이라도 줄일라면 하루라도 빨리 자수하라고 설득 좀 해 봐."
 "우리 남편은······."
 엄마는 울음을 삼키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다.
 아빠가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그저 성실하고 착실한 회사원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빠는 나라를 들썩이게 한 국내 최대 규모의 악질 횡령범이었다.
 수십 년 동안 한 직장에서 뼈를 묻을 듯 직장생활 하던 아빠.
 성실하고 꼼꼼한데다 숫자에 능해 관리직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래서 회사의 자금까지 맡아서 관리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수백억을 들고 튀었다는 소식과 함께 연락이 뚝 하고 끊겼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마지막 인사도 채 나누질 못했다.
 
 그리고 그날.
 안방의 장롱 깊숙한 곳에서 금괴가 발견되면서 9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시가총액 10위인 천하제일 주식의 거래가 오늘 오후 갑자기 정지됐습니다. 회사는 내부직원이 회삿돈 600억 원을 횡령해 고소했다고 공시했기 때문입니다. 상장사 직원 횡령으로는 역사상 최대규모입니다. 횡령 혐의로 고소된 직원은 자금담당 정모씨. ~~ 정씨는 오늘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나간 이후 곧바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정씨의 거주지에서 금괴 수 개를 압수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정씨의 아내에 대해서도 공모 여부를 수사 중입니다."
 
 '국내 최대규모의 횡령범'
 '천하에 나쁜 도둑놈'
 '주인을 물은 개'
 그날 이후 아빠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척들까지도 얼굴 들고 살기 힘들다며 비난에 가세하여 매몰차게 몰아세웠다.
 안방에서 금괴까지 나왔으니 엄마는 피의자로 전환되어 큰 고초를 겪었다.
 물론 결국엔 무혐의로 판명되었지만 이미 언론을 통해 공모자로 낙인이 찍힌 이후였다.
 명예 회복에 대한 조치?
 이딴 건 우리나라 언론에 있을 수 없다.
 
 며칠 후.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통해 아빠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며칠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600억 원의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천하제일의 자금담당 정모씨가 경기도 성남시 모처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머리맡에는 약봉지가 놓인 것으로 보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금괴 몇 덩이를 제외한 나머지 횡령금의 행방은 어디에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아빠는 우리를 보러 한번 와보지도 않은 채 세상을 등졌다.
 하지만 죽음으로도 부족했는지 도둑놈의 말로는 저렇다며 세상의 손가락질은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빼돌렸다는 수백억이 발견되지 않는 바람에 의심은 고스란히 우리 모자에게로 향했다.
 
 "땅 한번 파봐. 혹시 알아? 직한이 아빠가 몰래 묻어놨을지?"
 평상시 언니 동생 하며 살갑게 대해주던 옆집 아주머니가 엄마한테 내뱉은 말이었다.
 면전에서도 이럴 진데 뒤에서는 더욱 심했다.
 
 "저 꼴을 당하고도 이사 안 가는 거 보니깐 정말인가 보네. 땅에 묻어놨나 봐."
 "에이 독한 년. 저러니까 서방 잡아먹지."
 "도둑놈 아들 이름이 정직한이 뭐야? 정발장이면 몰라도."
 
 엄마는 이런 수모와 멸시를 견뎌 가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형편 때문에 이사를 할 수도 없었겠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마 생각은 달랐다.
 이사를 하는 순간 아빠의 죄를 인정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 수모를 당하면서도 꿋꿋이 버틴 것이었다.
 
 "직한아. 아빠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야."
 내가 사리 분별을 할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아빠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하게 물어봤을 때 엄마가 내게 해준 답이었다.
 "뭐가 아니야? 다들 그러는데."
 "다들 모르고 하는 얘기야."
 "엄마. 사람들이 나한테 뭐라고 하는지 알아?"
 엄마는 되묻질 않았다.
 무슨 얘기일지 대충 짐작했기 때문이다.
 "나보고 절대 정씨가 아니래. 부씨 아니면 안 씨래."
 "······."
 "부정직한, 안정직한 이라고."
 지금은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올 법도 하지만 그땐 아니었다.
 나름 무지하게 심각했다.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정말 아무도 하지 않는 허드렛일.
 허드렛일 중에서도 고된 일만 줄곧 엄마 몫이었다.
 아빠가 빼돌린 수백억의 1%라도 우리한테 남겼다면 우리가 이렇게 궁핍한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빠가 지은 죄도 물론 미웠지만 우리한테 땡전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만만치 않게 미웠다.
 집안이 이렇게 풍비박산이 된 것.
 그리고 곱디곱던 엄마.
 손등은 트고 손바닥은 거북이 등 껍데기인 양 딱딱하고 갈라진 엄마의 손.
 그리고 나이보다 십 년은 더 들어 보임직한 그늘진 엄마의 얼굴은 모두 아빠 때문이다.
 남은 우리야 어떻게 살든 말든 상관도 안 하고 자기 혼자만 편하겠다고 세상을 등진 아빠의 이기심 때문이다.
 난 다짐했다.
 절대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난 내 이름처럼 정직하게 살 거라고······.

댓글(14)

도롭도롭    
뭇 audit팀 회계사들의 소망..와꾸 안 보고도 틀린거 잡아낼 수 있으면..
2022.06.03 12:44
비온후에    
왠지 아빠 누명 썼을 듯..
2022.06.07 16:43
fate3045    
이거 좋네 소재. 틀린곳이 보이는 힘이라니 현대 금융사회의 꽃 아님?
2022.06.10 10:07
세비허    
잘 보고 갑니다 건필 하세요
2022.06.11 15:26
식용인간    
토사구팽당햇구나
2022.06.11 17:56
흑돌이    
잘 보고 갑니다.
2022.06.14 16:08
란마아부지    
굳이 거기서 사셨어야 했나? .....
2022.06.19 15:29
사이버블랙    
이름을 꼭 정직한이라고 해야했나요? 다른 스포츠물에서도 키크다고 전보대. 라고. 하는등등.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평범한. 이름 안되나요. 소재는 좋네요
2022.06.20 14:05
잡수르    
윗대가리에게 당했구만
2022.07.06 22:16
난책이좋아    
?소재가 네이버웹툰이랑 비슷하네요
2022.07.08 11:49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