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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하

2015.03.11 조회 3,650 추천 71


 -브리더-
 
 선진국에서는 개나 고양이를 교배해서
 더 좋은 품종을 만들고
 건강하고 예쁜 새끼를 잘 키워서 각종 쇼에 출품하며
 중성화를 하여 펫타입으로 분양하는 사람들을
 브리더라 한다.
 
 이들이
 운영하는 농장은 캐터리라고 칭하며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들을 싸잡아
 업자
 라고 부른다.
 
 
 
 
 
 
 
 
 
 
 
 
 
 
 
 
 
 
 
 
 
 
 
 
 
 
 
 1. 도도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대대로 우리 집안이 살던 동네다. 6.25이후 할아버지께서 자리를 잡으신지 어언 50년. 약 2만평에 달하는 작은 산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이어져 내려왔다.
  약간의 논과 800평 정도의 밭. 그리고 소와 개를 키우시던 할아버지의 가업을 아버지가 그대로 물려받으셨고 그 때문에 나 역시 어려서부터 농사일은 달인 수준이었다.
  외동아들로 태어나 큰 욕심 없이 살았다.
  언젠가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리라,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오시던 길에 부모님 두 분이 교통사고를 당하신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부모님도 우리 산에 모셨다.
  4개의 봉분과 24평 크기의 집. 80평의 하우스식 축사와 논과 밭이 이 산에 있는 전부였다.
  헌데 논과 밭은 더 이상 경작을 하지 않으니 그렇다 쳐도 소 11마리와 식용으로 키우시던 개 62마리가 문제였다. 혼자 그 모든 가축을 돌보려니 잠잘 시간도 부족하고 하루하루가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다 보니 된다. 피곤에 쩔어서 좀비처럼 기계적으로 흐느적거리던 내가 점차 예전의 아버지처럼 규칙적이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홀로 남겨진 지 2개월.
  나는 이제 이 산의 어른이 되었다.
 
  나 같은 시골남도 취미는 있다. 아무리 이 동네가 50년 전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해도 21세기에 문명의 혜택을 이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tv, 컴퓨터, 게임 등등 집에서 혼자 놀기에 무궁무진한 것들이 있다.
  28살.
  남들은 취업이다 뭐다 사회적으로 시끄러울 나이도 내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고 지나갔다. 외진 촌구석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점차 학창시절의 친구들도 멀어져갔고, 동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났다. 여자는 얼굴을 볼 기회조차 없었다.
  덕분에 아주 많은 여인들이 모니터 속에서 내 여자 친구가 되어주었다.
  오덕? 찌질이? 폐인?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나는 내 생활에 만족했으니까.
  내 인생을 큰 토막으로 정리해보자면..
  개, 소, 밭일, 게임. 이게 다다.
  살이 찐 후에는 여자 친구 사귀어 본적도 없고 냉정하게 말해서 내가 여자라도 좋아할 리가 없었다.
  불쌍하다고?
  그럴 필요 없다. 나는 동정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그런 건 아꼈다가 소년소녀가장이나 노숙자들에게 해줘라.
  여자들이 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들이 필요 없어서 노력을 안 하는 거니까.
  말은 안했지만 나는 사회적으로 보면 가난하지 않다. 건강한 소도 11마리나 있다고 했고 개도 62마리나 있다고 이미 얘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산이 다 내꺼다. 충남이라고 하지만 아산의 바로 옆이다. 산 아래 마을 쪽 밭은 평당 30만원이 넘어간다. 전원주택을 지으면 아주 그만인 명당이다. 그게 800평이나 있다.
  이제 대충 감이 오는가?
  나는 여자들에게 인기 없는 시골남이지만 부자다.
  살이야 필요하면 나중에 빡세게 빼면 될 일이고, 좋은 차 한 대 사서 끌고 다니면 그 어떤 여자가 마다하리오?
  나는 애니매이션 오타쿠도 아니고, 지극히 현실적인 남자다.
  그냥 음.. 약간 통통하고 귀여운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돌급 미인들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양심이 있다.
  외모는 그냥, 운동하는 여자들.. 그.. 아!
  김연재 정도만 되면 오케이다.
  뭐, 지금은 그냥 아직 때가 아닐 뿐?
  크리스마스나 할로윈, 발렌타이 데이나 그런 각종 시답잖은 기념일이 외롭지 않느냐고?
  걱정마라 그런 날일수록 tv에서 더 재미있는 프로가 많이 한다. 영화도..
  지금 우는 거 아니냐고?
  그럴 리가! 피곤해서 그런 거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누차 말하지만 내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살고 있었다.
 
  오늘도 작업용 고무장화를 신고 일과를 시작했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하는 내 하루는 소와 개들을 돌보고 축사를 청소한다. 그러다보면 10시쯤 되는데 그때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후후.. 그래 브런치다. 나는 이렇듯 당장이라도 서울에 가서 적응할 수 있는 남자다.
  나는 사회적인 눈으로 보면 140kg이나 나가니까, 돼지가 맞다. 하지만 그건 운동부족과 내 생활습관이 만들어 낸 것이지 내가 아무거나 무작정 처먹어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나는 의외로 미식가였으며 한식을 좋아했고, 중학생 때부터 스스로 혼자 요리를 해서 먹었다. 남들이 중2병에 걸려 방황하고 있을 때, 나는 요리프로를 보며 래시피를 적어뒀다 만들어보았고 부모님이 맛있다고 칭찬해주시는 게 그렇게 좋았다.
  갈비찜부터 간단한 고추장삼겹살까지 내 요리는 주로 고기류가 많았고 항상 넉넉하게 했는데 남은 걸 죄다 내가 처리했기에 살이 찐 거다.
  정말이라니까?
  게다가 그 습관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너무 많이 하는 버릇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보니 최근 2달 사이에 15kg이 더 찐 거다.
  걱정 마라. 마음만 먹으면 금방 뺄 수 있을 거다. TV에서 다이어트 프로그램 같은 걸 보면 6개월도 안 돼서 반쪽이 되는 걸 봤으니까.
  다이어트 따위가 어려웠다면 이미 세상은 돼지들로 가득할 거다.
  여하튼 그렇게 오늘도 가볍게 삼겹살과 된장국으로 브런치를 끝내고 슬슬 낮잠이나 두어 시간 때리려는데 저 아래에서 검은 중형차가 한 대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 길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우리 집이 전부였기에 택배기사나 가끔 오시는 이장님 말고는 진입하는 사람이 없었다.
  에쿠스.
  내가 아무리 시골에 살아도 저 차가 뭔지는 안다. 미끈한 바디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저런 차는 얼마나 하려나?
  나는 우리집 주차공간에 있는 경운기를 슬쩍 돌아보다가 웃었다. 다 허영이다. 내가 차가 왜 필요한가?
  마트조차 갈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인터넷만 있으면 모든 것들을 구입할 수 있다. 초여름에 개들을 가지러 오는 아저씨도 직접 온다. 소들은 때가되면 이장님이 처리해 주신다.
  이렇게 편리한 세상에서 귀찮게 운전은 왜 해야 하지?
  아.. 물론 내가 면허가 없어서 삐뚤어진 건 아니다. 분명 이 검은색 에쿠스는 아주 멋져서 계속 보게 만들었으니까.
  턱!
  4명의 남자들이 차에서 내렸다. 멋진 양복을 입은 말쑥한 남자 하나와, 운동선수 같은 건장한 남자 셋.
 “안녕하세요? 도도하씹니까?”
  평생 들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었지만 나는 표정을 감추려 애썼다. 이 빌어먹을 이름 때문에 중학교에는 도도왕자, 고등학교 때는 도도한 돼지, 도도돈으로 불렸다.
 “부모님 때문에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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