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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이리 용병대

2022.07.20 조회 18,494 추천 257


 붉은 이리 용병대
 
 
 
 
 황량한 대지에 검은 물결이 가득하다.
 
 갖가지 지상 생물을 본 딴 생김새, 그럼에도 모두 핏빛 눈동자와 검은 몸뚱이를 가진 이형의 존재.
 전조도 없이 등장한 이들은 검은 마물이라 불렸다.
 
 “대장! 밀린다!”
 “전열, 방패 들고 버텨! 죽어도 버텨!”
 
 불과 두 달 만에 북부 대륙을 초토화한 마물의 무리.
 놈들을 저지하기 위해 중앙과 남부에서 군이 모여 들었고.
 물경 일 만이 넘는 병사와 용병들이 북부와 중앙을 잇는 좁은 육로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마물과 대치한 방어선에서 한 달 째 이어진 치열한 전투.
 
 “조금만 더 버텨! 곧 지원이 온다!”
 
 붉은 이리 용병대의 대장 레오의 독려가 전장에 퍼졌다.
 사자의 갈기처럼 거칠게 뻗은 갈색 머리칼과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사내.
 
 “버텨! 살고 싶으면 버티라고!”
 
 커다란 방패를 땅에 박아 넣고 다른 손의 검으로 방패 사이를 찔러 대면서도 그는 독려를 멈추지 않았다.
 수 시간째 이어진 전투에 몸은 한계였다. 호흡이 턱까지 차 올랐고, 팔은 천근 만근에 손아귀에는 감각도 없을 정도.
 그래도 쉴 수 없다. 이미 한계를 넘은 동료들에게 대장의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으니까.
 
 “레오! 좌익이 무너지려고 해!”
 
 부대장 덱스가 갈라진 목으로 외쳤다.
 
 그 말대로.
 좌측에서 버티고 있던 카스티아 용병대의 진형이 크게 흔들리며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 약해 빠진 새끼들이!”
 
 레오는 악을 썼다.
 애초에 별로 믿음직하지 않은 놈들이었다. 대규모 원정대에 발을 걸쳐 유명세를 얻겠다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
 
 으득-
 이렇게 되면 전방뿐 아니라 좌측의 공격까지 받아내야 한다.
 진형이 붕괴된 카스티아 용병대 한 가운데에 마물이 뛰어 들며 살육이 시작됐다.
 짧은 축제를 끝낸 놈들은 핏빛으로 물든 시체를 밟으며 붉은 이리 용병대를 향해 짓쳐 들었다.
 
 “진형 정비! 방패 세워! 충격에 대비해!”
 
 쾅-!
 
 레오의 지휘로 재빨리 진형을 변형했다.
 좌측에 방패 벽을 세우며 첫 충돌을 어떻게든 버텼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지원군은 언제 오는 거야!”
 “대장! 이러다가 전부 뒈진다고!”
 
 사방에서 들리는 대원들의 외침.
 다들 체력은 바닥난 지 오래다. 오직 살고 싶다는 의지가 팔과 다리를 움직이게 할 뿐이다.
 
 ‘지원이 왜 오지 않지?’
 
 레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약속대로라면 진작 켈시온 백작의 사병이 뒤를 받쳐 주어야 하지만 후방은 고요하기만 하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심장이 서늘했다.
 
 ‘우리를 미끼로 삼았나?’
 
 고려하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상황.
 허나 수긍하기 힘들다. 여기에서 용병을 던지고 뒤로 빠질 이유가 없었으니까.
 후방에서 새로 방어선을 짠다고 해도 지금은 병사 한명이 부족할 때다. 그러니 용병을 내던지면서까지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이 방어선을 포기하고 후퇴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것은 중앙 대륙 침공을 허용하겠다는 뜻이니까. 당장 가까운 켈시온 백작의 영지부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씨바알! 우익도 무너진다!!!”
 
 누군가의 욕설에 레오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양 옆을 지키던 용병대가 빠른 속도로 붕괴됐다.
 
 “방원진!!!”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마물은 물결처럼 밀려왔고 도망칠 곳은 보이지 않는다.
 붉은 이리 용병대는 순식간에 사방을 포위 당했다.
 마치 망망대해의 작은 무인도처럼, 검은 물결의 한 가운데 고립된 것.
 
 “아아악-!”
 
 허술한 방패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검은 아가리에 용병 하나가 사라진다.
 비명 소리가 메아리처럼 멀어졌다.
 
 “방패 틈 메워! 칼 하나 들어갈 자리만 만들어!”
 “손 노는 새끼 누구야! 쑤셔!!!”
 
 방패를 두드리는 마물의 소리, 힘겹게 막아내는 용병들의 악다구니.
 그 속에서 레오는 악에 받친 듯 외쳤다.
 알고 있다. 이제 진형이 붕괴되어 전멸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을.
 
 “좆같네···.”
 
 레오는 나직이 숨을 토했다.
 고향에서 뛰쳐나와 용병으로 구르기를 15년.
 불알 친구와 둘이서 만든 용병대를 제국에서 내로라 하는 수준까지 키워내며 이제 좀 살만 해지나 싶었는데, ···그런데 이 따위 끝이라고?
 
 “여기가 죽을 자리인가 보다.”
 
 와락 인상을 쓴 레오의 곁에 서며 어깨를 맞대는 남자.
 그의 소꿉 친구이자 부대장 덱스.
 
 “썅··· 그런가 보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고향에 좀 다녀올 걸 그랬어.”
 “그 깡촌에 뭐하러. 꿀 발라 놨냐?”
 
 그렇게 말하는 레오도 저절로 고향 마을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감자 요리, 이제는 어엿하게 아가씨로 자라 있을 여동생의 웃음 소리도.
 
 지루한 산골 마을이 그저 싫었다.
 자신은 이런 시골에 쳐 박혀 있을 인물이 아니라고, 보란 듯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 꼴이라니···.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를 왼손으로 감쌌다.
 가출할 때 훔쳐 나온 어머니의 물건. 다른 것들은 다 팔았어도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것이다.
 
 “으아아악-!”
 
 겨우 버티던 진형이 결국 무너졌다.
 방진 안쪽에 마물들이 뛰어 들며 난전이 시작됐다.
 비명 소리와 함께 대원들이 하나 둘 쓰러져 갔다. 팔 다리를 뜯긴 동료들의 몸 위로 검은 마물들이 덮쳐 들었다. 등을 맞댄 이들은 점차 줄어 들었다.
 
 캉-
 충격에 견디다 못한 덱스의 방패가 부서지고 그 틈으로 마물의 주둥이가 밀고 들어왔다.
 방패로 밀고 검으로 찌르며 버티기를 몇 차례.
 체력이 다한 손발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아악-!”
 “덱스!”
 
 전장의 소음 사이로 친구의 비명 소리가 유독 강하게 귀를 후벼 팠다.
 눈을 돌렸을 때 덱스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개 같은 새끼들이-!”
 
 검을 쥔 레오의 손이 어지러이 움직였다.
 완전히 붕괴된 진형, 사방에서 울리는 동료의 비명.
 남은 동료가 있긴 한 걸까? 주변을 제대로 살필 겨를도 없이 찌르고 베고 또 찔렀다.
 
 “윽!”
 
 허벅지에 불 같은 통증이 일었다. 직후 전신을 때리는 강한 충격.
 공중에 붕 뜬 몸이 몇 바퀴 회전하더니 마물 떼 사이에 떨어졌다.
 온통 검게 일렁이는 배경 속에, 수십 개의 붉은 눈이 시야를 메웠다.
 
 ‘하아···.’
 
 끝인가.
 전신의 격통에도 점차 의식이 멀어졌다. 이제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다.
 
 검은 아가리가 축 늘어진 레오의 목을 물더니.
 거칠게 뜯었다.
 
 “개··· 크헉! 씨···!”
 
 마지막 욕설도 공기 빠진 소리와 함께 허공에 흩어졌다.
 
 울컥울컥.
 반쯤 뜯긴 목에서 붉은 피가 흘러 넘쳤다.
 붉게 상기됐던 얼굴은 점차 파리해졌고 허공을 향해 부릅뜬 눈동자는 빛을 잃었다.
 이윽고, 서서히 약해진 맥동이 고요히 멎었다.
 
 잠시 후.
 
 우웅-
 피범벅 된 레오의 시체에서 미미한 빛이 일었다.
 
 가슴께의 펜던트가 뿜어내는 작은 빛.
 그것은 이내 크게 몸집을 불리더니 레오의 전신을 삼키듯 화악 감쌌다.

작가의 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22. 8. 19 - 수정이 있었습니다.

댓글(6)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2.08.23 18:20
oikonomos    
선발대 보고 재밌습니다
2022.08.27 10:21
gliblab    
진형을 벌려서 방패벽을 세우니까 마물이 중앙으로 기어들어오는거 아녀
2022.08.29 10:35
대구호랑이    
잘보고 갑니다~^^
2022.09.11 16:25
do****    
볼만함
2022.09.12 11:12
김영한    
달 째 달째
2022.10.0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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