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결혼 후 인생 대박

#001 저랑 결혼해요

2022.06.17 조회 52,391 추천 717


 “저랑 결혼해요.”
 “싫습니다.”
 “매달 300만 원씩 통장에 꽂아 줄게요.”
 
 돈으로 내 인생을 사겠다는 건가? 나도 월에 300만 원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다. 그다음 달에는 골병으로 드러눕겠지만.
 
 애초에 돈을 떠나서, 서로의 얼굴을 본 건 이번이 딱 두 번째인데. 갑작스럽게 이런 제안을 해올 줄이야.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져있는···.
 
 “500.”
 “세후?”
 “당연하죠. 가족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추가수당도 드릴게요.”
 “그 외 다른 조건은요?”
 “당신은 그냥 평소처럼 살면 돼요. 괜히 돈 생겼다고 여자 만나다가 기자들한테 사진 찍히지만 말고.”
 
 평생 딸잡이나 하라는 소리군.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차피 나는 결혼은커녕 연애할 생각도 없었고, 하고 싶어도 형편이 받쳐주지 않는다.
 
 ‘이거···. 개꿀이잖아?’
 
 평소에 하던 반백수 질만 계속해도 꼬박꼬박 500만 원씩 들어온다니. 인생에 두 번은 오지 않을 파격적인 조건이다.
 
 다만 ‘결혼’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묵직하게 다가와서 쉽사리 승낙하기는 어려웠다.
 
 “아, 그리고 하늘 씨 아버님은 저희 그룹에서 운영하는 병원 VIP 병실로 옮겨드릴게요. 당연히 무상이고요.”
 “제 뒷조사도 하셨습니까?”
 “그럼요. 저도 아무한테나 결혼하자고 하는 미친년은 아니거든요.”
 
 아니었구나.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말을 간신히 삼켰다.
 
 아무리 들어도 이쪽에서 손해 볼 건 딱히 없다. 그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여자와 담을 쌓고 지낸다면. 내 인생이. 아니, 우리 가족의 삶이 달라진다.
 
 ‘보험금을 노리는 건···. 역시 아니겠지.’
 
 대한 그룹의 막내.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온 가족의 사랑을 받은 덕에, 갓난아기 때 보유한 주식이 이미 10억을 넘었다.
 
 비유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태어나자마자 조부로부터 10억의 주식을 증여받았다. 그녀가 성인이 될 때쯤에는 뒤에 0이 하나 더 붙었고.
 
 평생 1억도 만져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전혀 상상이 안 가지만. 어쨌거나 내 보험금은 이 여자의 용돈조차 되지 못한다.
 
 “근데 왜 하필 저입니까?”
 
 멍청한 질문이라는 자각은 있으나, 동시에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당장 전화번호부만 열어도 나보다 잘생기고, 돈 많고, 집안 대대로 부자인 ‘명문가’ 출신의 남자들이 수두룩할 텐데.
 
 “당신 웹소설 작가죠? 인기 없는.”
 
 굳이 뒷말을 붙여야 했나.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느낌이다.
 
 어쨌거나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대가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외출한 게 언제예요?”
 “음···.”
 “오늘하고, 생필품을 사기 위해 나간 거 제외하고요. 정말 ‘외출’이라고 부를 만한 거요.”
 
 언제였더라.
 적어도 이번 달은 아니다.
 
 인기 없는 웹소설 작가의 숙명이란 것은, 매일 연재를 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생활비도 벌지 못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지금 나는 전작을 완결치고 기한 없는 유료화 과정을 견디는 중이다. 내 작품은 무료인데, 밖에 나가면 모든 것이 유료다.
 
 ‘···작년에 나간 횟수도 손에 꼽는구나.’
 
 그쯤 되니 이 여자가 왜 날 선택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애초에 밖에 나가는 일이 없으니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도 적다는 뜻이겠지.
 
 “납득했습니다.”
 “역시 그런 점도 좋네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요?”
 “네. 그리고···.”
 
 문득 강바다가 손을 뻗어 내 안경을 벗겼다. 이후 덥수룩한 앞머리를 양옆으로 넘겨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안 꾸며서 그렇지 얼굴도 무난하고. 기본적인 체격도 상당히 좋아요.”
 
 여사친 없음.
 범죄 이력 없음.
 외부활동 취미 없음.
 
 그 외에도 철저히 그녀의 입장에서 서술된 나의 장점들이 줄줄이 나열된다. 나보다 나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 같다.
 
 “또 서울대 출신이죠?”
 “일단은요.”
 “저랑 부모님도 서울대 출신이라서요. 여기서 다시 가산점이 3포인트 들어갔어요.”
 
 장하다, 과거의 나여.
 밤낮으로 아르바이트하면서도,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한 내 자신이 대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과외비로 꽤 짭짤하게 벌었지.
 
 “···거기에 뭐 이것저것 더해서 총점은 95점. 여러 후보 중에 당신이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아서 선택한 거예요.”
 “5점은 뭐죠?”
 “그쪽이 내 취향이 아니라서.”
 “오, 저는 10점을 드리죠.”
 “무슨 뜻이에요?”
 “저랑 마음이 잘 맞으셔서.”
 “······.”
 
 상대가 말없이 나를 노려본다.
 이럴 때 보면 외모가 정말 깡패이긴 하다. 분명 안 좋은 감정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건데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래서 할 거예요, 말 거예요?”
 “다 좋은데 계약 조건을 조금 수정하죠.”
 “스킨십 요구라면 절대 사양이에요.”
 “그건 남자로서 좀 아쉽네요.”
 “······!?”
 
 그녀가 움찔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얼굴도 살짝 붉어진 것 같은데.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반응을 실제로 보니 꽤나 신선하다.
 
 의외로 이런 농담에는 면역이 없는 모양. 괜히 더 놀리고 싶어졌으나, 아직 서류에 도장을 안 찍었다. 그전에 고객님께서 마음이 바뀌시면 곤란하지.
 
 “추가수당은 안 받아도 되니까, 저희 쪽 가족 행사도 참여해주세요. 부모님을 속상하게 해드리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래요. 완벽한 위장을 생각한다면 그쪽이 더 좋겠네요.”
 
 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그녀가 가방에서 웬 종이 뭉텅이를 꺼내 이쪽으로 내밀었다.
 
 맨 앞장에는 혼인신고서.
 그 뒤로는 각종 계약서다.
 
 “혹시나 이혼하게 되면 당신이 재산 분할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계약서예요. 나머지는 동거계약서나, 또 이것저것.”
 “그렇군요.”
 
 서류에는 나에 관한 인적사항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덕분에 오류가 없는지만 간단히 검토한 후 사인할 수 있었다.
 
 “···제대로 읽으시죠?”
 “다 읽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계약서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읽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요. 자연스럽게 속독하는 실력이 늘어났습니다.”
 
 읽는 걸 참 좋아하는데, 세상에는 볼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뭐든 최대한 빨리 읽는 훈련을 했다.
 
 자연스럽게 집중력도 크게 늘어서, 단기 기억이라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
 
 “책이랑 계약서는 다르잖아요.”
 “그럼 물어보시든가요.”
 “1번.”
 “갑(강바다)과 을(김하늘)은 각자의 수익에 대해 각자가 관리한다. 단 공통의 수익에 대해서는 협의를 거친다.”
 “···5번은?”
 “계약 기간 중에는 다른 이성과의 만남이나 성관계를 일절 금지한다.”
 
 이후로도 몇 번인가 더 문답을 주고받았고, 결국 ‘강바다’는 내 속독 실력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녀는 사인이 완료된 계약서를 가방에 넣은 후, 선뜻 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뭐, 잘 부탁해요. 남편.”
 “저도 잘 부탁해요. 마누라.”
 
 적당히 대답하며 손을 마주 잡자,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누라는 좀 아니죠!”
 “여편네?”
 “일부러 그러시는 거예요?”
 “그럼 여보라고 부를까요?”
 “그냥 ‘바다 씨’로 충분해요.”
 “알겠습니다. 바다-Sea.”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찌릿-!
 강바다는 한껏 나를 노려보더니, 마주 잡은 손에 잔뜩 힘을 줬다. 늦은 봄 날씨에 걸맞은 따뜻한 손이었다.
 
 * * *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간단한 홈 트레이닝과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강바다로부터 카톡이 와있었다. 결혼을 위한 앞으로의 간단한 일정을 적어놓은 계획표였다.
 
 “···일 잘하네.”
 
 나는 다소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편인데, 그녀는 정반대였다. 시간, 날짜, 인원수 등 빼곡히 나열된 엑셀표까지 만들었으니.
 
 보통의 연인 사이라면 기가 질리겠지만, 직장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난 그냥 이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
 
 우웅우웅-!
 문득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그 특유의 진동만으로도 은행 앱에서 알림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우주은행 강바다
 입금 5,000,000원.
 ──────────
 
 “···꿈이 아니었구나.”
 
 통장을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내 월급 플랫폼에 이렇게 손님이 많은 날도 있구나.
 
 ‘연금 복권에 당첨된 셈인가?’
 
 요즘 연금 복권이 세후 약 550만 원을 받으니까, 그보다는 좀 적긴 하지만. 그건 ‘고작’ 20년이고, 나는 평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연금 복권의 당첨 확률은 약 5백만 분의 1. 퍼센트로 따지면 0.00002%라는, 한국 가챠겜도 울고 갈 확률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감사했다.
 문자 그대로 ‘황금’ 같은 기회가 찾아온 것에.
 
 ‘일단 부모님께 말씀은 드려야겠지.’
 
 뚜르르르-
 나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본 컬러링이 몇 차례 울리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 응, 아들.
 “엄니. 밥은 드셨어?”
 - 먹었지. 너는?
 “나도 먹었지.”
 - 너 또 편의점 음식 먹은 거 아니야? 그러다 진짜 건강 망가진다니까. 반찬 보내줘?
 “아니야, 오늘은 스테이크 먹었어.”
 - 스테이크?
 
 오늘 강바다가 나를 부른 곳은 룸식으로 운영되는 고급 음식점이었다. 덕분에 영화에서나 보던 음식들을 마음껏 즐겼다.
 
 “거기 괜찮더라. 다음에 내가 모시고 갈게.”
 - 네가 그럴 돈이 어딨다고.
 “나 복권 당첨됐거든.”
 - 오천 원?
 “아니, 오백만 원.”
 - 뭐어-!? 아이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깜짝 놀란 엄마의 비명과 연이어 사과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이면 아버지 병원에 계실 테니,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분들께 사과하시는 모양이다.
 
 “미안. 그렇게 놀라실 줄은 몰랐네.”
 - 안 놀라게 생겼니?
 “그대로 계좌로 보내드릴게. 생활비에 보태.”
 - 됐다. 스테이크나 더 사 먹어라.
 
 이럴 줄 알았다.
 한평생 자식들 키운다고 뒷바라지를 그렇게 하셔놓고는, 새끼들 돈은 죽어도 안 받으려고 하신다. 병원비랑 생활비 감당하는 것도 벅차시면서.
 
 “그럴 줄 알고 이미 보내놨지.”
 - 아니, 얘가 증말!?
 “다시 돌려보내면 이제 엄마 얼굴 안 볼 거니까. 그렇게 알아.”
 
 엄마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당신께서 다시금 입을 열었을 때는 목소리에 작은 물기가 맺혀있었다.
 
 - ···고마워, 아들. 잘 쓸게.
 “그래요. 아, 그리고.”
 - 응?
 “나 이제 결혼해 엄마.”
 
 뚝-
 갑자기 전화가 끊어졌다. 잠시 후 다시 걸어보니, 이번엔 아버지가 전화를 대신 받았다.
 
 - 너는 왜 남의 여자친구를 울리고 그러냐?
 “엄마 울어?”
 - 그래. 뭐라고 했길래 저러냐.
 “음···. 그냥 결혼한다고 말했는데?”
 
 뚝-
 다시 또 전화가 끊겼다.
 
 ···아무래도 우리 부모님은 내가 복권에 당첨됐다는 말보다 결혼한다는 말이 더 충격적이셨던 모양이다.
 
 ‘뭐, 이건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고.’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흔치 않게 내 메시지창이 불타고 있었다. 범인은 당연히 강바다였다.
 
 : 저기요.
 : 이봐요.
 : 똑똑.
 :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지금 확인해보세요!
 
 마지막은 진짜 선물이 아니라, 그냥 문장으로 써놓은 거다. 진심으로 저런 거에 낚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 와, 이제야 확인했어.
 : 진짜 이렇게 일할 거예요?
 : (휴대폰 던지는 이모티콘)
 
 나는 슬쩍 시계를 봤다.
 시계는 이제 막 11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새삼 이 직장의 단점을 알게 됐다. 아무래도 밤낮과 출퇴근이 없는 곳인 것 같다.
 
 ‘···당분간은 어쩔 수 없으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수많은 메시지가 날아오고 있었다. 나는 더 오해가 쌓이기 전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가, 갑자기 왜 전화를 하고 그래요? 사람 놀라게.
 “바다 씨가 좀 급해 보여서요.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 ···늦은 시간에 연락한 건 미안해요. 그래도 당장 내일부터 일정이 있는데 확인이 안 되니까. 보내준 건 봤어요?
 “아침 8시에 만나서 미용실에 갔다가, 11시 30분에 예약해 둔 레스토랑. 이후로는 백화점 가서 옷을 사는 일정이죠?”
 
 읏-
 당황한 듯한 음색이 들려왔다. 내가 당연히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 아무튼 저는 모처럼의 휴가를 쓰고 나가는 거니까, 절대 늦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 ······.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끊겠습니다.”
 - ···네, 잘 자요.
 “바다 씨도요.”
 
 뚝-
 전화가 끊어지고 깊은 적막감이 찾아왔다. 익숙한 침묵이건만 오늘따라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던 내 시선이 문득 컴퓨터에 닿았다.
 
 ‘···내일도 글은 못 쓰겠네.’
 
 비축분은 오늘이 마지막. 어차피 돈 문제도 해결된 지금. 망한 작품은 최대한 빠르게 그만두는 것이 좋겠지만.
 
 [건필하세요.]
 [잘 보고 갑니다.]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아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시니까.
 가능한 곳까지는 가봐야겠지.
 
 나는 냉장고에 쌓여있던 닭가슴살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후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댓글(51)

루이스홍구    
캬캬컄 작가님이당 예전에 주신 1만골드 모르고 거절한1ㅅ입니다 캬캬컄 이번작도 잘볼께요ㅣㅣ
2022.06.20 14:10
번너클    
작가닣 화이팅
2022.06.24 20:18
구경군이야    
드라마 보는거 같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22.06.29 22:19
세비허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2022.07.02 13:02
환파월    
재미있어요.길고 재미있게 연재 부탁드립니다^^
2022.07.03 15:16
[탈퇴계정]    
제연재 축하드려요 잘보고 갑니다
2022.07.04 11:06
StarPicker    
이혼이 판치는 문피아에 한줄기 빛과 같은 작품이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2022.07.07 07:18
k4*************    
신박하네요 서울대생이 웹소설이라니...
2022.07.09 22:01
물빛여운    
잘 보고 갑니다
2022.07.11 06:53
파이널번    
실제 상황입니까?
2022.07.1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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