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귀환 후 인생 대박

1화

2022.07.19 조회 81,203 추천 918


 # 1화
 
 
 갑옷을 입은 병사가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뛰어왔다.
 
 “백작님! 적들이 항복 문서를 보냈습니다.”
 “흠··· 그래?”
 “네! 여기 있습니다.”
 
 대각선 뒤에 서 있던 부관이 병사에게 문서를 받아 공손하게 건넸다.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두루마리가 기분 좋게 손바닥에 잡혔다.
 
 화려한 문양이 찍힌 봉인을 제거하고 내용을 확인했다.
 정중한 수식어로 가득한 편지에는 무조건적인 항복 의사가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전쟁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 저들의 항복을 받아들이겠다.”
 “충!”
 “저들의 무기를 빼앗은 후 전장을 정리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오늘 밤 성대한 연회를 열 테니 모두 즐겼으면 좋겠군.”
 “모두 기뻐할 겁니다.”
 
 부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3년 동안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간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루 정도는 맘 놓고 쉬어도 괜찮겠지.
 
 *
 
 “으······.”
 
 머리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두통을 느끼며 정신을 차린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푹신해 보이는 하얀색 침대와 책이 듬성듬성 꽂힌 작은 책장.
 
 “뭐지?”
 
 어딘가 익숙하지만 잠이 들었던 장소와 다른 풍경에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잠자리에 들기 전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하지만, 수많은 보초와 예민한 감각을 피해 나를 납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심호흡을 반복해서 내쉬며 잔뜩 긴장한 몸을 이완시켰다.
 어느 정도 진정한 후 지끈거리는 머리를 괴롭히며 자세히 방 안을 살피니 있을 수 없는 것들이 보였다.
 
 ‘저건······.’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 구석에는 작은 냉장고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동하고 있었다.
 
 환각을 보는 게 아니라면 이곳은 지구에 있을 때 생활하던 자취방이다.
 
 “돌아온 건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볼을 꼬집어도 보고,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도 보고 나서야 확신이 들었다.
 이세계 생활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왔다고.
 
 “진짜 돌아왔네.”
 
 얼떨떨한 기분이다.
 읽지도 않은 소설 속 인물에 빙의하여 20년을 굴렀다.
 말도 통하지 않아 밑바닥에서 시작해 국경 수비를 맡는 백작의 작위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선심 쓰듯 주어진 능력 하나만을 가지고 악착같이 살아남았지.’
 
 마왕을 죽이지도 못했고, 대륙을 통일해 제국을 세우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구로 돌아왔다니?
 
 지구로 돌아온 게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꿈이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세계 생활을 보낸 나에게 지구로의 귀환은 목표를 이룬 셈이다.
 
 “유리엘······.”
 
 그러나 그동안 맺은 인연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계속 거절했지만, 항상 나만을 바라본 유리엘과 충직한 부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디 행복하게 잘 살기를······.’
 
 옆 왕국과의 전쟁은 끝났고 세력 또한 잘 정비되어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유리엘도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니 금방 다른 인연을 찾을 수 있겠지.
 
 마음을 다독이자 죄책감이 조금은 가셨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을 뿐이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방 안을 자세하게 살폈다.
 기억과 크게 다른 부분이 없는 것을 보아 20년이 흐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지금 며칠이지?”
 
 침대 옆에 있는 협탁 위에서 휴대폰을 찾아 조심스럽게 잡았다.
 차가우면서 매끈한 감촉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2022년 2월 15일 09:34]
 
 날짜와 시간을 확인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14일 밤에 소설에 빙의했으니 12시간도 흐르지 않은 것이다.
 
 이세계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이 고작 하룻밤 꿈이 됐다는 것은 허탈한 일이지만, 가족을 생각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20년간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모를 테니.
 
 “후··· 평범하게 살아가면 되는 건가.”
 
 절대 잊지 못할 일을 겪었지만, 남들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부터는 세너소 왕국의 백작 이미누스 폰 엘리언의 삶이 아니라, 26살 대한민국 남성 이민수의 삶을 살아가면 될 것이다.
 
 ‘그래.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모든 것을 되찾은 거야.’
 
 한동안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니 주변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가며 시간이 느려졌다.
 
 “아니. 이게 왜······?”
 
 익숙하지만 지구에서 벌어질 수 없는 현상에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윽고 완전히 흑백사진처럼 변한 세상에 ‘선택창’이라고 부르는 것이 떠올랐다.
 
 [1. 지금 당장 라면 끓여 먹기 2. 지금 당장 부모님께 전화하기]
 
 ‘······?!’
 
 황당한 내용의 선택창을 재차 읽었지만 그대로였다.
 흑백사진처럼 변해 버린 세상은 분명히 능력이 발동했다는 증거다.
 
 이세계에 떨어진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능력.
 ‘양자택일’이라고 부르는 능력으로 ‘분기점’에 다다르면 시간이 멈추고 선택지가 주어진다.
 마치 게임 스토리를 진행할 때처럼 말이다.
 
 ‘능력이 이상해진 건가? 아니, 애초에 지구로 돌아왔는데 왜 능력이 남아 있지······?’
 
 우선, 원래는 [1. 언덕 뒤 수풀에 매복한 적군을 습격하기 2. 목적지로 이동하기] 같은 유용한 선택지를 알려 주던 쓸 만한 능력이 이상하게 변해 있었다.
 
 [1. 지금 당장 라면 끓여 먹기 2. 지금 당장 부모님께 전화하기]라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그리고 이세계로 빙의하며 얻은 능력이 지구로 귀환한 지금도 발동됐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다.
 이곳이 내가 알고 있는 지구가 아니라 평행 세계일 수도 있고 능력이 필요한 일, 예컨대 던전이나 몬스터가 나타나는 ‘클리셰’의 전조일 수도 있었다.
 
 ‘정신 차리자.’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머릿속을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눈앞의 선택지에 집중해야 한다.
 아무리 어이가 없고 황당해도 능력이 발동되었다는 건 지금이 분기점이라는 말이기에.
 
 지금 라면을 끓여 먹으면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오랜만에 먹는 자극적인 음식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면서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떠올리지 못하는 사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간을 좁히며 아무리 생각해도 라면을 끓여 먹음으로 얻는 이득은 그게 다였다.
 
 반면 부모님에게 전화를 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의문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겠지.
 
 결정을 마친 나는 손가락을 옮겨 두 번째 선택지를 만졌다.
 선택창이 사라지고, 능력이 발동됐을 때의 역순으로 세상이 원래 모습을 찾아갔다.
 총천연색을 되찾은 세상에서 웅웅거리는 냉장고 소음이 들렸다.
 
 “······.”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능력이 발동됐다.
 지구로 돌아온 지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꼭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 A를 처형하기 2. B를 처형하기] 같은 선택지가 나오면 선택을 마친 뒤, A와 B를 모두 처형할 수도 모두 처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보통의 경우 하나를 택했지만.
 
 생각을 정리한 후 옆에 내려놓은 휴대폰을 들어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지문 센서가 작동하며 잠금 해제 된 화면이 밝은 빛을 뿌렸다.
 
 “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으나 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어색한 몸짓으로 전화번호부에서 번호를 찾았다.
 
 [엄마 010-XXXX-XXXX]
 
 의미 없는 11자리 숫자의 조합.
 그리움과 두려움을 뒤로하고 손가락을 옮겨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몇 번의 신호가 갔을까,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씹으려는 순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엄마.”
 “아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20년 만에 듣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감정이 북받쳤지만, 최대한 억누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를 걱정시킬 수 없기도 했지만, 의문도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그냥 전화해 봤어요. 별일 없죠?”
 “아침 잘못 먹었나? 안 하던 짓을 하네.”
 “하하······.”
 “아무 일 없다. 점심 장사 준비하고 있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백반집을 운영하셨다.
 작고 오래된 가게지만, 단골들이 많아 일이 꽤나 바빴다.
 
 “그래요? 오랜만에 엄마가 해 준 밥 먹고 싶어요.”
 “먹으면 되지. 점심시간 지나고 와.”
 “알겠어요.”
 “그래. 바쁘니까 끊는다. 이따가 보자.”
 
 뚝-
 
 무심하게 끊긴 짧은 통화에도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다행히도 부모님에게 어떠한 문제가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대기 중에 마나가 거의 없군.’
 
 마나 Mana.
 기, 에테르, 차크라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눈을 감아 정신을 집중했다.
 서클에 저장된 마나를 가느다랗게 뽑아 혈관을 따라 천천히 회전하며 대기와 공명시켰다.
 
 클리셰처럼 몬스터나 던전 따위가 생겨 마나가 풍부했다면 일어났을 마나 공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묵묵히 혈관을 따라 돌아다니는 마나를 조심스럽게 갈무리했다.
 
 ‘흠······.’
 
 모든 게 꿈이라고 하기에는 이세계에서 단련된 강인한 몸도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일곱 개의 서클도 모두 선명하게 느껴졌다.
 깊은 호흡을 내쉬며 눈을 떴다.
 
 뭐가 어찌 됐든 멀쩡한 지구에 돌아왔으니 기쁜 일이지 않은가.
 
 *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따듯한 물을 맞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으어······.”
 
 이세계는 검술과 마법이 발달한 세상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중세 시대였다.
 공중 보건과 개인 위생의 개념이 희박한 중세 시대.
 
 씻는다는 행위를 불필요한 행위로 여겼고, 개인 위생을 위한 제품은 전무했다.
 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맡기 힘든 냄새를 풍기고 다녔다.
 
 현대인인 나로서는 그 무엇보다 적응하기 힘든 부분이 그것이었다.
 어머니의 된장찌개나 시원한 탄산음료보다 가장 간절했던 것이 바로 혼자 편하게 즐기는 샤워였다.
 
 부드러운 거품이 미끄러지는 느낌.
 라벤더 향기가 나는 바디 워시로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씻었다.
 
 시원한 느낌이 드는 민트 향 가득한 샴푸로 머리를 감으니 단어 그대로 2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샤워를 마치고도 한참을 물줄기를 맞으며 상쾌한 느낌을 즐겼다.
 진정으로 지구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드는 시간이었다.
 
 드르륵-
 
 화장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서랍을 열었다.
 
 “헤어 드라이기가 여기 있었던 것 같은데.”
 
 서랍에는 잡동사니만 가득 들어 있을 뿐 헤어 드라이기는 보이지 않았다.
 
 “아··· 어딨지?”
 
 20년 만에 찾으려고 하니까 어디에다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방 안을 뒤졌지만, 헤어 드라이기를 찾지 못했다. 그 여파로 바닥에 흥건하게 흩뿌려진 물기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이럴 때 드라이 마법 한 번이면 해결되는데······.”
 
 [드라이]
 
 “어······?!”
 
 아쉬운 마음에 외친 주문에 몸에 있던 물기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마법을 사용하려면 서클의 마나뿐만이 아니라 대기 중의 마나를 사용해야 하는데.
 
 ‘분명 마나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발동된 거지?’
 
 꼬르륵-
 
 갑자기 사용된 마법에 당황한 것도 잠시, 강렬한 허기가 느껴졌다.
 아니, 단순한 허기를 넘어서 속 쓰림과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마치 온몸의 에너지가 바닥난 것처럼.
 
 ‘마나 없이 마법이 사용된 부작용인가?’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구에서는 마나 대신 에너지를 소비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몸을 추스르려 노력하며 생각했다.
 
 ‘드라이 마법에 이 정도 부작용이면 고서클의 마법은 힘들겠군······.’
 
 1분 정도 눈을 감고 있으니 몸의 통제권이 돌아왔다.
 여전히 부작용이 몸을 괴롭혔으나, 단련된 정신은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옷을 입었다. 떨어진 에너지를 채운다면 괜찮아질 것이다.
 고개를 돌려 부엌을 봤지만, 전기밥솥을 비롯한 가전제품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사용하지 않는다고 구매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밥을 먹으려면 외식을 하거나 부모님의 가게에 가야 한다.
 
 ‘부모님의 가게에 가는 게 좋겠군.’
 
 부모님의 가게는 자취방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이세계에서 수많은 고초를 겪은 나에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는 시련일 뿐이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패딩을 입고 집 밖으로 나섰다.
 미세 먼지 가득한 하늘과 매캐한 매연이 나를 반겼다.
 
 “······.”

댓글(35)

WhiteTears    
진짜 클래식이네
2022.07.31 08:55
세비허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2022.07.31 19:07
우붸    
에비....
2022.08.04 15:12
우키히    
주인공 이름이 이민우가 아니라니ㅋㅋ
2022.08.06 22:13
변진섭    
음 잘보고 갑니다
2022.08.08 13:43
j1*******    
온갖 제약때문에. 능력초기화랑 똑같네
2022.08.08 22:56
첨보냐    
살 찔 일은 없겠네
2022.08.11 02:28
musado0105    
잘 보고 갑니다. 건 필 하세요^^*
2022.08.11 15:38
애들은가라    
건투를 !
2022.08.12 19:59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2.08.13 14:02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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