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파인더로써 던전을 공략하다 동료들에게 배신당해 목숨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소설에서 나올 법한 무림 속 세상이었고,
내가 백가장(白家場)이라 불리는 명문가의 자제로 환생하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집구석, 정상이 아니다.
“아니, 부인 내가 바닥에 철질려(鐵蒺藜)를 깔아놓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게다가 독까지 발라놓다니 누구 죽일 일 있소?”
“낭군께서 좀도둑같이 밤마다 집밖에 기어나갈까 봐 제가 깔아놓았는데, 큰 문제가 있습니까?”
“좀도둑이라니?! 하늘같인 지아비에게 좀도둑이라니!!!”
“아! 좀도둑 같은 게 아니라 좀도둑이었죠.”
“이이이익!!”
“어딜 아녀자에게 눈을 부라립니까?”
퍼퍼퍼퍽!!!
오래전부터 기둥을 세우고, 감숙성 무위에서 명문가라 불리는 백가장 삼대독자 백유성
그는 눈을 부라렸다가 어머니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주사위를 잘못 굴린 거 같아.’
주사위를 다시 굴리고 싶은데, 어디 가서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전생에 유성은 몬스터와 던전이 난무하는 현대에서 최상급 패스파인더로써 명성을 떨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렇게 승승장구하고 있을 무렵,
한국에 최초로 S급 던전이 생겼고, 정부로부터 의뢰를 받아 당시 한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흑표길드와 함께 던전 탐사에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던전 탐사 당시
다른 던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자원과 아티펙트에 눈이 먼 흑표길드의 배신으로 그들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목숨을 잃었다.
그때 유성 역시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딱히 배신을 당해 죽는 것이 원통하거나 억울하진 않았다.
조금만 수틀려도 배신하고, 서로를 죽이는 곳이 던전이었으니까.
다만 지금까지 모아온 재산을 한 푼도 쓰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을 뿐
그렇게 약간의 아쉬움 속에 눈을 감고, 죽음을 받아들였는데,
다시 눈을 떠보니
무림 속 명문가의 후손이 되었다.
무림에서 환생한 지 어느덧 15년째
여느 때와 다름없는 지극히 평범한 가족들과의 아침식사······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투두둑! 쿵!!
“이 여편네가!! 밥상 앞에서??!!!”
“당신 대가리에 침 좀 놔줄까요??”
“서총관님 오늘은 국이 좀 싱겁네요.”
“···예”
“다음엔 조금 더 짜게 해달라고 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국이 좀 싱겁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그러던 그때
어머니의 일장에 아버지가 발을 헛디디셨는지 바닥에 엎어지며 밥상이 뒤집어졌다.
스스슥!!
이미 평소에 자주 있던 일이라. 자연스럽게 몇 가지 반찬과 밥 그리고 국을 들어 올려 대참사를 피했다.
‘휴우···하마터면 또, 아침을 굶을 뻔했네,’
이미 며칠 전 비슷한 경험으로 굶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두 번이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엎어진 밥상을 다시 세우고, 무사히 지켜낸 반찬과 밥을 다시 올리고 전보다 더 속도를 올려 식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평소와 다름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처 해버렸다.
팅!!!
안면을 향해 날아오는 장침을 그만 반사적으로 숟가락을 들어서 막아버린 것이다.
“아!!!”
장침에는 독이 발라져 있었는지 은수저가 검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나마 남아있던 반찬들을 스윽 둘러보니 이미 장침에 하나둘씩 박혀있는 상태
“하아···이놈의 집구석 진짜···”
이곳에 환생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집이었다.
감숙성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가의 이대 독자인 아버지와
대륙에서 알아주는 천하상단의 금지옥엽인 어머니
이것이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우리 가족의 모습이었지만,
그 실상은 많이 달랐다.
친가는 대대로 신투를 배출한 도둑집안
외가는 평범한 상단처럼 보이지만 뒷 세계에서 알아주는 살수가문
그 두 가문의 남녀가 혼인한 끝에 태어난 것이 바로 나였다.
어렸을 땐 이러한 가문의 배경 속에서도 그나마 정상이었던 같은데,
“죽어, 이 화상아!!!”
“커어어억!!”
약 8년 전부터 이어진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시작으로 집구석이 이상해졌다.
‘아니지 원래 이상했나?’
아무튼.
정말이지 나 빼고는 정상이 없는 집안이었다.
“서총관님, 혹시 부엌에 남는 음식 있으면, 장삼이한테 부탁해 제 방에 가져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이미 아침 먹기는 그른 것 같으니 남은 음식이라도 챙겨 먹어야 할 판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고단한 인생이다.’
오늘도 침실에서 남은 음식으로 허기나 채워야겠다.
한편, 백가장의 총관이자 가문의 대소사를 모두 도맡아 처리하는 서환은 죽은 동태 같은 눈으로 유유히 자리를 벗어나는 유성을 바라보았다.
‘고향으로 내려갈까···?’
매번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고향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서총관이었다.
‘20년 동안 이 가문을 보필하며 살아왔지만···.’
가주 내외는 물론이고 장차 가문을 이끌어갈 소장주까지,
정말이지 가문에 정상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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