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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용사 식당

2022.08.01 조회 18,584 추천 388


 곧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목제 건물에 기다란 간판이 삐뚜름하게 걸려 있었다. 간판에는 <용사 식당>이라는 글자가 하얀색 페인트로 휘갈겨 써졌다.
 
 “하아암~.”
 
 임성훈은 좀체 열리지 않는 문을 보며 늘어지게 하품했다.
 F급 각성자인 그는 아르바이트로 던전 짐꾼 일을 했었는데, 오늘 오전에 다녀온 E급 고블린 던전은 부산물이 넘쳐났던 편이라 피로가 누적되었다.
 온수동 고블린 던전에는 ‘E-68’ 코드명이 부여되었다. 난이도가 E급 중에서 ‘6’으로 중상 정도이고, 부산물은 ‘8’로 꽤 많은 축에 속한다는 뜻이었다.
 
 사냥팀이 획득한 부산물은 신동 그룹으로 보내져 연구 개발 용도로 쓰였다.
 이계 몬스터의 침략은 인류에게 재앙이면서 동시에 기회였다. 저들 덕에 상당수의 불치병이 정복되었고, 마정석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기술도 마련되어 화석 연료에 의존하던 기존 체계를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혜택과 <용사 식당>이 위치한 F구역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F구역은 정부조차 포기해버린 무정부 구역이었다.
 
 ‘식재료 다듬어야 하는데.’
 
 생각과 달리, 자꾸만 눈이 감기는 성훈이었다.
 결국 성훈은 주방 의자에 기대어 앉아, 불편한 자세로 까무룩 잠들었다.
 어차피 지난 며칠 손님을 맞이하지 못한 참이었다. 이 근방은 치안이 안 좋은 우범지대라, 성훈처럼 낮은 등급이라도 각성하지 않은 자들은 혼자 돌아다닐 수조차 없었다.
 그나마 눈에 띈 사람은 주머니에 코인 하나 없는 부랑자뿐이었다. 저들이 언제 강도로 돌변해서 달려들지 모를 일이었기에, 성훈은 언제나 보초를 서듯 선잠을 자야만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성훈은 북적거리는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용사 식당>은 주방과 홀이 따로 구분되지 않았다. 좋게 표현하자면 오픈 키친이었는데, 실상은 주방을 따로 설치할 여력이 없어서 한쪽에 아일랜드 식탁과 버너 등을 가져다 놓았다.
 
 [일어난 것 같은데?]
 [이봐, 사장! 손님 받아라!]
 [괜찮은 거야? 저 몰골로 무슨 요리를 한다고, 쯧!]
 [저래 봬도 요리 능력 각성자야.]
 [그래봐야 F급이겠지.]
 
 성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침을 훔쳤다.
 어느덧 성훈의 손에는 식칼이 들렸다. F구역에서 오랫동안 장사하며 생겨난 습관이었다.
 순간적으로 주위를 훑어본 성훈은 식칼을 든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저들이 강도가 아닌 손님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오셨으면 깨우시죠. 오래 기다리셨어요?”
 
 테이블에 자리 잡은 사람은 8명이었다. 놀랍게도 그들 모두 외국인이었는데, 한국말을 기가 막히게 했다. 아니, 저들의 외국어가 성훈의 귀에 쏙쏙 들어와 이해되었다.
 외국인들의 목소리가 조금은 먹먹하게 들렸는데, 성훈은 잠결인지라 이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 사실을 알아챌 겨를도 없이, 성훈은 버너에 냄비를 올리고 물부터 끓이기 시작했다.
 <용사 식당>에는 정해진 메뉴가 없었다. 그때그때 식재료와 손님의 입맛에 따라 음식을 만들었는데, 오늘은 고블린 던전에서 가져온 ‘정체 모를 숙성 고기’가 냉장실에 들어 있었다. 몬스터 고기 유통은 불법이지만, 매주 한두 명씩 굶어 죽는 F구역에서는 이마저도 없어서 못 먹었다.
 
 스마트폰 시계를 확인한 성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3시.
 
 오후가 아닌 오전이었다. 성훈의 식당은 낮 12시부터 8시까지만 영업했고, 오늘처럼 던전 아르바이트가 있을 때는 늦게 문을 열었다.
 성훈은 영업이 끝났다고 말하려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성훈에게는 어린 동생이 있었다. 보육원에 맡겨두었는데, 얼른 돈을 벌어서 동생을 데려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 자신도 몬스터 출몰지나 다름없는 F구역에서 벗어나, 치안이 좋은 동네에 제대로 된 식당을 차리고 싶었다.
 
 “혹시 원하시는 메뉴가 있으신가요?”
 
 성훈이 최대한 공손히 묻자, 붉은 턱수염이 인상적인 사내가 침을 튀기며 되물었다.
 
 [있으면 만들어주게?]
 “재료가 있으면요.”
 [어떤 재료가 있는데?]
 “던전에서 가져온 고기가 있고요. 냉동실에 등심을 얼려둔 것이 조금 있어요. 쌀이 있으니 밥을 지어 드릴 수도 있고요. 간단한 찌개류도 가능합니다.”
 [몬스터 고기는 됐고, 등심을 내와 봐.]
 
 근육질의 사내가 일행의 행동대장인 듯했다.
 성훈은 등심이 비싼데 괜찮으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8인 남녀의 차림새가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들의 반짝거리는 장비로 추정컨대 최소 D급 이상의 헌터가 분명했다.
 헌터는 크게 3개의 직군으로 나뉘었다. 전방에서 싸우는 전사와 후방에서 지원하는 사수, 그리고 다양한 능력으로 전투를 보조하는 술사였다.
 
 ‘전사 넷에 사수와 술사가 각기 둘.’
 
 성훈은 손님의 차림새만으로 역할과 능력을 짐작했다. 두 사수는 각기 석궁과 투창을 사용했고, 술사는 가죽 갑옷만 걸쳤을 뿐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바로 내오겠습니다.”
 
 성훈은 냉동 고기를 찬물에 담가 해동하는 동안, 밑반찬과 찌개부터 준비했다.
 성훈도 능력자였다. 전사와 사수, 술사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비전투 능력자였다. 그는 한때 미추홀에서 명성을 떨치던 싸움꾼이었지만, 능력자들 사이에서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
 성훈은 8년 전 15살에 F급 요리 능력을 각성했고, 식당을 운영한 지도 어언 4년이 다 되어갔다.
 성훈은 여느 각성자처럼 자신의 능력을 볼 수 있었다. 헌터 협회에서 이 능력을 공인받아 헌터증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 헌터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름] 임성훈
 [체력] 5 [근력] 5
 [매력] 3 [마력] 3
 [손재주] 4
 [스킬] 요리(F), 도축(F)
 
 성훈이 각성한 능력은 2가지였다. 둘 다 비전투 계열이었고, F급일지라도 일단은 능력자인지라 신체 능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72년 전에 게이트가 처음 발생한 이후로,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는 일은 어려워졌다. 성훈만 하더라도 작은 텃밭과 다리 밑에서 키운 채소를 대접했는데, 이마저도 내오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F구역에서는 돼지나 소보다 사람 고기 구하기가 쉬웠으나, 성훈은 아직 그 금기까진 넘어본 적이 없었다.
 
 ‘오늘은 운이 좋았어.’
 
 상추와 깻잎이 넉넉한 편이었다. 다리 밑에서 식용 버섯도 조금 채취할 수 있었는데, 성훈은 그것들을 가져다가 정성껏 내놓았다.
 
 [이건 뭐지?]
 “제가 만든 쌈장이에요.”
 [이건?]
 “깻잎이랑 상추요. 제가 직접 기른 겁니다.”
 
 불판에 올린 한우 등심이 빠르게 구워졌으나, 다들 빤히 보고만 있었다.
 성훈은 외국인들이 이런 음식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쌈과 젓가락을 들고 물었다.
 
 “어떻게 먹는지 보여드릴까요?”
 
 몇몇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다들 성훈을 빤히 올려다봤다.
 몬스터를 눈빛만으로 때려잡을 것 같은 강렬한 장면에, 성훈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성훈은 상추와 깻잎을 겹쳐 쥐고, 잘 익은 한우 고기와 쌈장, 파무침, 구운 버섯을 얹어서 동그랗게 쌌다. 그것을 입 안에 쏙 넣는 모습까지 보여주자, 헌터들은 상추와 깻잎을 들고 어설프게나마 따라 했다.
 
 [오오오옷!]
 [우우우움!]
 
 젓가락질조차 제대로 못 하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다가 입안에 욱여넣었다. 미어캣처럼 먹는 내내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것이 헌터의 평범한 식사법이었다.
 손님들을 돌아보며 성훈은 내심 팁을 기대했다. 그들은 무려 42인분을 먹어 치웠는데, 이 동네에서 구하기 힘든 한우 등심값을 고려한다면 40만 코인은 받아야 했다. 지금이 새벽 5시를 넘어섰으니 60만 코인은 요구해야 한다고 성훈은 생각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사실상 붕괴한 북한의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10년에 거쳐 원화를 폐기하고 정부 주도의 가상화폐를 만들었다. 국가 간 교류가 어려워지고, 모든 것의 가치가 뒤죽박죽 변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
 
 대격변기가 끝나고, 괴멸한 북한의 이주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대한민국 인구는 어느덧 6천만을 넘겼다. 이주민 대부분이 F구역에 머물렀지만, 한국 정부는 최소한의 도리를 했다며 북한 이주민을 홍보 수단으로 써먹었다. 평양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방치된 것이다.
 
 E구역과 F구역에는 초창기에 가상화폐와 혼용되었던 코인화폐가 유통되었지만, D구역부터는 스마트워치를 활용한 코인 거래가 보편화되었다.
 
 [아주 잘 먹었어!]
 [이런 대접은 처음이야.]
 [F급 요리사라고 무시해서 미안하네. 자넨 훌륭한 요리사야!]
 
 8명의 헌터는 한 명씩 순서대로 <용사 식당>을 빠져나갔다.
 성훈은 저들이 감사 인사만 전할 뿐, 누구 하나 먼저 계산하려는 자가 없어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D급 헌터쯤 되어 보이는 자들이 작정하고 도망친다면, 성훈으로서는 저들을 쫓을 수 없어서였다. 또한 치안대에서 저들을 잡아줄 리도 만무했다.
 
 “계산은······.”
 
 붉은 턱수염의 사내가 피식 웃으며 성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가진 건···, 이것뿐이로군.]
 
 성훈의 손에 얹어진 것은 던전에서 발견했을 법한 진귀한 물건이었다. 그리폰이 양각으로 새겨진 주화였다.
 
 “이, 이거 설마 금인가요?”
 
 무게가 상당했다. 성훈은 어림잡아도 700만 코인은 될 거라 짐작했고, 그래서 의심했다.
 부유한 C급 헌터일지라도, 목숨 걸고 벌어들인 돈을 물처럼 쓰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잘은 모르겠다만, 금보다 귀할 테지.]
 
 성훈은 미간을 좁혔다. 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붉은 턱수염의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기척도 느끼지 못한 터라, 성훈은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봤다.
 거리는 을씨년스러웠고, 식당에서 튀어나온 성훈을 본 몇몇 이들이 눈을 빛냈다. 성훈의 식당으로 쳐들어와 먹을 것을 빼앗으려는 심산이었다.
 
 “설마, 사기를 당한 거야?”
 
 성훈은 얼른 가게로 돌아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때 성훈의 눈앞에 글자가 떠오르고, 중성적인 목소리도 연달아 들렸다.
 
 [폭풍 사냥팀이 평가를 남겼습니다.]
 
 [폭풍 사냥팀(★★★★)] 냉동 고기를 사용한 점과 미흡한 손님 응대는 조금 아쉽다. 그러나 그런 단점조차도 무시할 정도로 강렬한 맛이었다. 특히, 소고기와 쌈장과 쌈의 조합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찬으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맛이었다.
 
 [최초로 별 4개를 받았습니다.]
 [체력이 1 향상했습니다.]
 [근력이 1 향상했습니다.]
 [F급 요리 스킬이 E급으로 갱신했습니다.]
 [체력이 1 향상했습니다.]
 [손재주가 1 향상했습니다.]
 
 성훈은 어안이 벙벙했다. F급 능력을 각성할 당시, 성훈의 능력치는 도합 17이었다. 평균을 웃도는 수준이었지만, F급 요리와 도축 스킬만으로는 짐꾼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건만, 성훈의 능력치는 20에 정체되었다. 몬스터를 사냥하여 정기를 흡수해야 능력치가 오르는데, 비전투 계열의 짐꾼인 성훈에게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아니, 그런 충돌이 거의 없었기에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왜 능력치가 오른 거지? 평가는 또 뭐고?”
 
 성훈의 손바닥 위에서 주화가 빛을 발했다. 이내 그건 신기루처럼 희미해졌고, 성훈은 41인분의 음식값이 날아갈까 싶어서 주화를 움켜쥐려 했다.
 주화는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젠장! 사기였어!”
 
 성훈은 식칼을 꺼내 들었다. 그는 F구역 출신이었고, 당한 것보다 더 갚아주지 않으면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익혀온 참이었다.
 그때였다.
 
 [C급 근력 강화 스킬을 각성했습니다.]

댓글(20)

최이레    
필력이 좋으셔서 이 작품까지 따라왔습니다. 부디 이 작품은 연중 안되길 바라겠습니다. 재밌는 작품 기대할게요! 화이팅!
2022.08.02 12:15
수민    
저도 이 작품이 순항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2022.08.02 12:41
둠치둠칫    
이어왔어요^^좋은작품감사드려용!!
2022.08.02 23:25
수민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2022.08.03 02:42
순풍5    
재미있을거 같아요 설명이 너무많아서 지루한감이 있어요
2022.08.14 12:01
하얀손㈜    
정주행 해봅니다. ~ 잘 보고 갑니다. ~
2022.08.22 19:39
수민    
감사합니다.^^
2022.08.23 05:12
백곰사육사    
어? 순항? 대항온 유저출신이신듯?..ㅎㅎ 추천은 기본매너죠. 일일이 눌러가면서 정주행합니다.
2022.08.30 17:13
수민    
사실 대항해시대2를 엄청 좋아했었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2022.08.30 18:01
보람이맘    
잘보고갑니다
2022.09.0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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