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망겜 속 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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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1 조회 84,086 추천 1,536


 김창은 사람 하나를 죽이기로 했다. 왜냐하면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 살려줘······.”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들으며 김창은 가만히 생각했다. 왜 나는 여기서 사람이나 죽이고 있는가?
 
  대전이(大轉移) 때문이다.
 
  뭔가 거창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실상은 새벽에 게임 하던 사람들이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간 사건일 뿐이다.
 
  갑작스레 게임 속에 들어오게 됐으니 다들 당황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이 세상에 빨리 적응했다.
 
  그건 김창도 마찬가지였다. 그 증거로 칼잡이답게 여기서 사람을 죽이고 있지 않나.
 
  그의 캐릭터는 원래 게임에서 랭킹 5위쯤 됐으므로 사람 잘 죽이는 걸로는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어쩌면 이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지도 모르는데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건 지금부터 이 남자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우리 사이에 대체 무슨 원한이 있다고?”
 
 “우리 사이에 원한은 없지.”
 
  김창과 남자 사이에 정말 원한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죽이려는 건 역시나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신 돈은 있고.”
 
 “돈? 그게 뭔 소리야?”
 
 “간단한 이야기다.”
 
  넓적한 바위 위에서 턱을 긁적이고 있던 김창이 스르륵 칼을 뽑았다. 분명 주변이 어두컴컴한데도 시리게 빛나는 칼날만은 훤히 보였다.
 
  남자가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몹시도 크게 들렸다.
 
 “널 죽이면 난 돈을 받는다. 그런 약속이거든.”
 
  남자도 이제 뭔 이야기인지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어떤 씹새끼가 내 목에다가 돈을 걸었다는 소리인가? 어떤 미친놈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왜 죽여야 하는데!”
 
  발악하듯 소리쳤지만 김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칼을 들고 뚜벅뚜벅 걸어올 뿐이었다.
 
  남자는 도망치기 위해 몸을 버둥거렸으나 무의미한 발악일 뿐이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제발!”
 
  김창은 멈추지 않았다.
 
 “잠깐 멈추라고, 이 씹새야! 돈? 돈 때문에 날 죽인다고? 그 돈 내가 줄게! 그 새끼가 얼마를 주기로 했는지는 몰라도 두 배로 주겠다고!”
 
  그 말은 효과가 있었다. 뚜벅뚜벅 걸어오던 김창이 걸음을 멈췄으니까.
 
 “두 배?”
 
 “그래, 두 배! 아니, 세 배도 줄 수 있어! 대신 날 죽여달라고 했던 새끼를 죽여! 그러면 세 배를 주지!”
 
  김창이 손으로 턱을 긁적거렸다.
 
 “내가 받을 돈은 좀 많은데.”
 
 “개자식아, 얼마든 주겠다니까! 주겠다면 그냥 좀 받아!”
 
  새끼가 왜 욕질이지. 김창이 칼자루를 세게 꽉 쥐자 손목의 힘줄이 불끈거렸고 남자가 목을 움츠렸다.
 
 “그러면 금화 삼십 개다.”
 
 “그, 금화 삼십 개?”
 
  좀 많았나? 당황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서 김창이 입술을 비뚜름하게 기울였다. 하기야 금화 하나만 줘도 사람 죽여주겠다는 놈들이 수두룩할 텐데 삼십 개를 달라고 했으니 당황할 만도······.
 
 “내 목에 겨우 금화 삼십 개가 걸렸다고? 아니지, 세 배를 주겠다고 했으니까 원래는 금화 열 개였다는 소리 아니야? 씨발, 어떤 새끼가 겨우 금화 열 개를 내 목에 건 거야?”
 
  이 새끼는 목에 금칠이라도 했나? 목에 금화 열 개가 걸렸는데 왜 적다고 지랄이지.
 
 “고작 사람 목 하나에 금화 열 개면 많이 걸렸지, 네가 뭐라도 되냐?”
 
 “······뭐?”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너 혹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거냐?”
 
 “안다.”
 
 “내가 누구인지 안다고? 내 이름을 알아?”
 
  김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킨겔이잖아.”
 
  원래 게임에서 알던 놈은 아니고 이번 일을 맡으면서 이름 정도만 들은 놈이다.
 
 “···정확히는 킨겔 데노반이지.”
 
 “나도 알아. 이 근방의 상권을 꽉 잡고 있는 데노반 가문의 장남이잖아.”
 
  이 새낀 그걸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나? 우리 가문이 무섭지도 않아? 킨겔은 어이가 없었지만 곧 침착을 가장하며 말했다.
 
 “그, 그래······.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그래서 우리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할까? 금화 삼십 개라고 했지. 줄게. 아니, 그냥 숫자 깔끔하게 오십 개 어때? 나쁘지 않은 거래잖아?”
 
  본래 받아야 할 돈이 두 배도 아니고 다섯 배로 늘어났다. 금화 오십 개면 한동안 아무 일도 받지 않고 흥청망청 놀아도 될 만큼의 거금이니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괜찮은 제안이군.”
 
  김창이 고개를 끄덕이자 킨겔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칼잡이 놈에게 금화 오십 개를 주는 건 속이 쓰린 일이지만 그래도 일단은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죽고 나서 무덤까지 금화를 들고 갈 것도 아닌데 그깟 금화 좀 뿌려봤자 뭐가 대수인가?
 
 “그, 그러면 거래는 성립된 거겠지?”
 
 “아니.”
 
 “아니?”
 
  뜬금없는 대답에 킨겔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그를 보면서 김창이 말했다.
 
 “몹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야. 근데 받아들이긴 싫은데.”
 
 “어째서!”
 
 “내가 널 믿어도 될까? 내가 널 살려주면 복수하려 들 게 뻔한데.”
 
  킨겔은 순간 뜨끔했다. 저딴 부랑자에게 금화 오십 개를 뿌려야 한다는 게 속이 쓰리긴 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복수도 할 겸 돈을 뺏어오라고 할 생각이 아주 없다고는 못 하겠다.
 
  하지만 그는 곧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어. 내 맹세하지.”
 
 “그래, 다들 내 뒤통수를 치기 전엔 그렇게 말하지.”
 
  김창은 킨겔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죽음의 위기와 김창의 비꼬는 말투, 그 두 가지가 합쳐져 킨겔의 화를 자극했다.
 
 “씹, 나 죽으면 너라고 무사할 것 같아? 가문에서 사병과 용병을 풀어서 널 쫓을 거다! 그리고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지! 알겠어? 나 죽이면 너도 죽는 거야!”
 
  킨겔은 거의 악을 쓰듯 꽥꽥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런 협박이 김창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향해 겁도 없이 소리를 지르는 킨겔을 보면서, 김창은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막 나가는 놈이라도 귀족을 죽이진 않지.”
 
  갑작스러운 김창의 말에 킨겔이 멈칫했다.
 
 “대상회 가문의 장남을 죽이지도 않고. 그러면 안 되니까.”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러지? 마지막 발악처럼 외친 말에 겁이라도 먹었나? 킨겔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러면 안 돼. 분명 귀찮은 일이 될 테니까.”
 
 “근데 나는 그래도 돼.”
 
 “씨발, 뭐?”
 
  김창이 천천히 킨겔에게 다가왔다. 그가 킨겔의 왼쪽 검지를 꽉 잡으며 말했다.
 
 “나는 그래도 된다고. 아무리 막 나가는 놈들이라도 귀족을 죽이진 않지만 나는 그래도 돼. 왜인 줄 아나?”
 
 “왜, 왜?”
 
 “신문 보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물론 신문이 뭔지 킨겔도 알고 있었다. 대륙 각지를 돌아다니는 여러 상인이 가져다주는 곳곳의 소식을 모아서 매달 한 번씩 상인회에서 간행하는 소식지.
 
  글 읽을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제법 유행인데다가 귀족들 역시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자주 보곤 했다.
 
  그런데 그걸 갑자기 왜? 킨겔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갑자기 뚝 하고 손가락이 부러졌다.
 
 “끄아아악, 씨발!”
 
 “신문 보냐고.”
 
 “봐! 본다고, 씹새야!”
 
 “거기 보면 칼 하나 들고서 괴물이니 악마니 썰어 죽이는 놈들 나오지? 플레이어 말이야.”
 
  세상엔 플레이어란 족속들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그들이 가진 강력한 힘으로 대륙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자들.
 
 “씹, 그게 뭐!”
 
  김창은 이제 킨겔의 왼쪽 중지를 손으로 잡았다. 서늘한 감각이 킨겔의 등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면 칼 하나로 괴물 죽이는 놈들이 사람은 못 죽일까?”
 
 “뭐, 뭐······?”
 
  뚝.
 
 “끄아아악!”
 
 “죽일 수 있어. 괴물 죽이는 것보다 더 쉽지. 그러니까 나는 귀족도 죽여도 돼.”
 
  말도 안 되는 논리적 비약이다. 자기가 괴물을 죽일 수 있으니 사람도 죽여도 된다는 건 대체 뭔 개소리인가?
 
  하지만 킨겔은 감히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김창의 말은 개소리이긴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괴물도 칼 한 자루 들고 썰어 죽이는 놈이다. 그런 놈이 일개 귀족 따위가 두렵겠는가? 귀족도 그러할 진데 하물며 상회 따위는?
 
  킨겔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존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설마 김창이 그 플레이어일 줄은 몰랐지만.
 
 “크흐흡, 씨발, 씨발······. 내가 뭔 죄를 지었다고 이런 미친놈한테 걸려서 뒈져야 하는 건데······.”
 
  킨겔은 부러져서 퉁퉁 부은 검지와 중지 때문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는 이제 자기 목숨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 증거로 김창은 이제 칼을 들고서 킨겔의 목을 치려고 하고 있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지만 참 개 같이도 죽는구나.
 
  킨겔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두 눈을 감았다.
 
  휙. 바람 가르는 소리가 선명했다. 그리고 툭 떨어지는 소리도.
 
 “눈 감고 기도라도 하냐? 일어나.”
 
 “······어?”
 
  툭 하고 떨어진 것은 킨겔의 머리가 아니었다. 그의 손발을 결박하고 있던 끈이었지. 킨겔은 얼른 자신의 목을 손으로 더듬었지만 역시나 제대로 붙어 있었다.
 
 “어, 어째서?”
 
 “네가 금화 오십 개를 주겠다고 했으니까.”
 
  무심하게 말하는 김창의 얼굴을 보고서 킨겔은 황당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일 거면서 손가락은 왜 부러트려, 이 씹새야!”
 
 “내가 말했지. 나는 너 같은 놈들을 잘 안다고.”
 
  김창의 두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사람은 은혜는 쉽게 잊어도 고통은 잊지 못하는 법이야. 날 배신하고 싶어지면 부러진 손가락을 떠올려. 내가 너한테 뭘 했는지 기억하라고.”
 
  킨겔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김창이 휙 하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가자.”
 
 “어, 어디로?”
 
 “금화 오십 개 받으러.”
 
  김창이 성큼 걷기 시작하자 킨겔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일어나서 보니 김창의 등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
 
  저 녀석이라면 날 죽이려고 했던 놈을 확실히 처리해줄 수 있겠지. 킨겔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봐. 하나 묻겠는데, 날 죽이려고 했던 놈은 누구지?”
 
 “그건 너희 집에 가면 알게 될 거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킨겔은 정답을 알겠다는 듯 오른손을 꽉 쥐었다.
 
 “제기랄! 내 형제들이었군! 상회를 물려받게 될 내 자리를 노리고 날 죽이려고 든 거였어! 씹새들! 어떻게 가족을 죽이려고 들 수 있지? 짐승도 그딴 짓은 안 하겠어!”
 
  킨겔은 여전히 성이 났는지 혼자 씩씩거리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당장 아버지에게 말씀드려야겠군! 이건 집안의 안위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이야!”
 
  성큼성큼 걷던 김창이 우뚝 멈춰 섰다.
 
 “충고하는데, 네 아버지한테 말하진 마라.”
 
 “왜? 아버지가 충격으로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김창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니. 너 죽이라고 시킨 게 네 아버지니까, 등신아.”

댓글(54)

내소원칼퇴    
잘보고가요
2022.08.21 22:32
손에손에손    
와~ 호밀밭작가님 컴백. 예이~
2022.08.21 23:13
[탈퇴계정]    
어떻게 이름이 김창... ㅋㅋ
2022.08.22 19:52
k5263    
호밀밭은 좀 보다가 바빠서 잊어버리고 못본 작품인데... 꽤 좋았던 소설로 기억
2022.09.01 12:20
[륜]    
연재한다고 쪽지좀 주시지..ㅎㅎ
2022.09.03 23:41
패러독    
죽여->죽어
2022.09.05 00:44
이염    
아버지가 아들살인청부ㄷㄷ
2022.09.05 13:02
졸려죽겠어    
1화가 인상적이네요
2022.09.05 19:58
가츠돈    
오케 마지막 문장보고 바로 하트박음
2022.09.06 16:54
기둥이오    
사람 이름이 어떻게 김창 ㅋㅋ
2022.09.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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