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미친 재능의 메이저리거

운명의 장난

2022.09.02 조회 29,483 추천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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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을 알고 살아가느냐 모르고 살아가느냐의 차이일 뿐.
 그리고 나는 운이 좋게도 내가 가진 능력을 일찍이 발견했다.
 바로 타고난 운동신경이었다. 막연한 착각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그러한 말을 했다.
 그것도 스포츠 강국인 이곳 미국에서 말이다.
 
 “반은 어떤 종목을 선택할까?”
 “나도 궁금해. 하지만 뭘 하든 잘하겠지?”
 
 단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풋볼, 아이스하키, 테니스 그리고 농구까지.
 어렸을 때는 투기 종목인 레슬링에도 재능을 드러냈고, 재미가 없어 그만두었지만 골프와 육상에도 소질을 보여왔다.
 이렇듯, 남들이 노력해야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산을 나는 너무나도 쉽게 올라섰다.
 나 같은 사람을 소위 천재라고 하던가?
 그 스펙트럼이 보통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 고민이라면 고민이었지만.
 
 “아들, 이제 고등학교도 올라가는데 웬만하면 한 종목에만 집중해.”
 “알고 있어요. 음···. 그래서 말인데. 농구 할까요?”
 “에이, 농구는 힘들어. 고등학교만 가도 2m 가까이 되는 선수가 수두룩해.”
 “그럼 아이스하키?”
 “안돼, 안돼. 바디첵 한방이면 너 뼈 부러져.”
 “오케이. 그럼 Soccer 괜찮죠?”
 “안돼, 안돼.”
 “또 왜요?”
 “미국에서 인기 없어.”
 “그럼 뭘 해요?”
 “아버지를 위해서 야구는 못 하겠니?”
 
 아버지가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에이, 야구는 별로.”
 “넌 다른 운동은 다 하면서 야구는 안 하려고 하더라?”
 “땀도 안 나겠구만. 그게 뭔 스포츠라고···.”
 “이 자식이, 또 큰일 날 소리 하네. 스포츠가 아니라고? 어? 야구가 스포츠가 아니라고? 아무리 아들이라도 그런 말은 내가 용납 못 해 인마!”
 
 아버지가 발끈하며 말씀하셨다. 야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면 언제나 저러한 반응을 보인다.
 이유는 뭐.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를 한 선수 출신이라는 것.
 비록 프로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야구에 대한 자부심은 지금까지도 대단하시다.
 그런 아버지의 자식인 내가 야구를 안 해봤을까.
 
 ‘재미없어.’
 
 모든 스포츠가 두뇌를 필요로 하고 전략이 존재한다지만 야구는 아···.
 그들이 수 싸움이라고 표현하는 승부 방식은 나랑은 맞지 않았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서 간 인근의 야구 아카데미.
 그곳에서 가장 잘 던진다는 놈의 공을 흠씬 두들겼더니 그때부터는 승부 자체를 하지 않았다.
 이틀간 그냥 서 있기만 했으니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마지막 타석엔 장난스럽게 방망이를 거꾸로 들고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코치한테 얼마나 혼이 났는지.
 
 “하여튼 야구는 안 해요. 아버지가 못다 한 꿈 이룰 생각 없습니다. 다른 거, 다른 거.”
 “아···. 진짜.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네 모습이 아버지 꿈이었는데 말이야.”
 “다른 종목으로 미국에서 꿈 이뤄드릴게요.”
 “어휴···. 그럼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해. 이제는 재능만으로 될 레벨이 아니야. 노력까지 더해져야 해.”
 
 아버지는 나의 오랜 친구인 동시에 인생의 선배이기도 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고.
 
 고등학교 이후, 일찍이 진로를 변경했던 아버지는 현재 수출입을 중계하는 오퍼상이다.
 제법 수완이 좋은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던 아버지는 결국 이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나 역시 어린 나이에 이곳으로 넘어와 정착하기 이르렀다.
 
 “아시아인이라고 무시하던 놈들한테 이왕이면 제대로 보여줘야죠.”
 “너 그러다 진짜 큰코다친다.”
 “코는 여기 놈들이 더 커요. 그리고 그 코. 제가 한번 뭉개 보겠습니다.”
 
 아버지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역시···. 넌 나를 너무나 빼닮았어. 그래! 우리 아들이 한다면 하는 거지! 누가 막을 거야? 누가 막는데? 아니, 씨! 반진우 누가 막을 거냐고?”
 “···. 한번 지켜보세요. 아들이 어떻게 해내는지를.”
 
 나의 재능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
 몇몇 코치들은 나의 피지컬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지금은 몰라도 결국은 아시아인의 신체적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말과 함께.
 
 진학에 대해서 상담하던 총괄 매니저 또한, 하드웨어의 중요성이 높은 종목은 피하자는 의견이었다.
 
 “지누,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해.”
 “제 신체가 그리 밀린다고 보지는 않는데요?”
 “단순히 사이즈 문제가 아니야.”
 
 매니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더욱 높은 확률을 제시한 것이니까.
 물론,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내 한계를 왜 자기들 마음대로 단정 짓는지.
 
 “그래서 말인데. 지금 하고 있는 테니스 쪽이 어때? 성공한 아시아 선수도 많고 말이야. 주니어 랭킹 4위면 조금만 갈고 닦으면 성인 무대에서도 문제없을 거야.”
 “저는 팀 스포츠를 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혼자 하면 재미없어요.”
 “음···. 그럼 축구 어때? 지금 가진 신체조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해.”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잘 생각했어. 넌 충분히 잘할 거야.”
 
 매니저는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난 미국에서 말하는 Soccer가 아니라.
 
 “Football (미식축구) 하겠습니다.”
 “···.”
 “미식축구 하겠다고요.”
 “뭐? 설마 설마 했는데.”
 
 내가 선택하려는 종목은 괴물 중의 괴물들만 모인다는 미식축구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득실거리는 곳.
 이놈들 코를 납작하게 해주려면 가장 미국다운 스포츠를 해야지 않겠는가.
 지금 하는 운동 중에서 가장 흥미가 돋는 운동이기도 했고, 어쨌거나 나를 희망하는 학교로 나는 진학을 준비했다.
 
 #
 
 네바다주에 위치한 비숍 골먼 (Bishop Gorman) 하이스쿨.
 농구, 야구, 테니스 등등 대부분의 스포츠팀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건 매년 뛰어난 선수를 배출하는 미식축구였다.
 라스베이거스에서 No.1로 불리는 이 학교에서 나는 입학을 하자마자 주전 선수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하이스쿨 10학년.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인 지금, 신장은 6.1피트 (186cm)를 넘어섰고 체중은 202파운드 (92kg)에 육박했다.
 포지션별 차이는 있어도 내가 소화하는 역할에서는 1~2년 위의 선수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신체 스펙이었다.
 
 ‘내가 보여준다고 했지?’
 
 중학 코치들의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던 것을 나는 증명한 것이다.
 단순히 하드웨어만 충족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던 피지컬 적인 운동능력은 다른 선수들을 압살할 수준이라는 거다.
 미식축구에서 필요한 기록들을 최근에 측정한바.
 
 40야드 4.38초, 서전트 점프는 106cm에 다다랐고 제자리멀리뛰기는 3.5m를 기록했다.
 102kg 벤치 프레스는 가슴이 아닌 삼두근으로 밀어내는 클로즈 그립으로 35번을 성공하며 주위의 괴물 같은 흑인, 백인선수들을 놀라게 했다.
 중요한 건, 이 기록들은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
 
 그 결과로 이미 32개의 대학교에서 일찌감치 전액 장학금을 제의해 왔고, NFL에 입성하기 위한 필수 코스인 컴바인은 나의 무대라고 평가받았다.
 
 물론 아직은 한참은 미래의 일이었지만 그만큼 내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의미를 시사했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오늘, 나는 주 챔피언십의 결승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순조로운 경기 양상에도 내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매번 똑같은 좌석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 번도 빠짐없이 오셨고, 오늘 아침에도 나중에 보자고 말씀하셨는데.
 
 ‘조금 늦으시려나.’
 
 #
 
 [4쿼터도 얼마남지 않은 시간. 37-13으로 리드하는 비숍 골먼. 오늘 경기에서도 환상적인 쿼터백의 플레이를 선보이는 지누! 그가 뒤로 물러섭니다!]
 [우와와와와와! 쿼터백으로서의 지누가 왜 애론 로저스(NFL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 중 한 명)를 이을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60야드 거리에서 롱패스를 뿌리는 지누! 지누가 던지고 트라우티가 거기에 있습니다! 공이 엔드 존에서 잡힙니다! 비숍의 터치다운!]
 [경기의 쐐기를 박는 지이이이이누! 비숍 골먼 하이스쿨을 네바다주의 챔피언으로 등극시켰습니다!]
 
 우승이 확실시된 경기에서 나와 선수들은 한참을 포효하고 날뛰었다.
 이 기쁨을 가장 함께하고픈 사람은 역시나 아버지였다.
 나는 관중석으로 눈을 돌렸다. 아직도 좌석은 비어있었고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누! 빨리! 빨리!”
 
 갑자기 왜 그러는지. 코치가 손을 휘저으며 나를 급하게 불러들였다.
 팀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너무나 어두웠다.
 
 싸늘하다.
 
 본능적으로 그러한 느낌이 들었다. 다급해 보이는 깁슨 코치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빨리 병원으로 가. 차 대기시켜놨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 아버지, 교통사고 당하셨어. 상황이 좋지 않아. 어서 가봐.”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지.
 진위를 따질 여유는 없었다. 나는 착용하고 있던 장비들을 풀어헤치고 곧바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는 매니저의 차를 급하게 올라탔다.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 없이 손을 모았다. 신은 믿지 않지만, 지금은 신이 있기를 바랐다.
 
 ‘제발. 아무 일 아니기를.’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불빛을 내뿜는 경기장이 점점 멀어져만 간다.
 언제나 손에 닿을 것만 같은 저곳이 왜 이리 아득해 보이는지.
 
 이윽고.
 
 나의 꿈을 품고 있던 그곳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댓글(14)

아린날    
선발대입니다 쓸만한 재능러(가스라이팅을 끼얹은)
2022.09.16 16:47
잣고을    
어머니를 일찍 여윈 -> 여읜
2022.09.19 08:29
트라이즈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2022.09.19 08:36
OLDBOY    
잘 보고 있습니다.
2022.09.22 22:19
프리먼    
우와와 보단 우와아가 훨씬 나은데
2022.09.23 09:00
ㅎㄹㄷ    
진입장벽을 설치 하셨네요....
2022.10.08 10:47
한량무한    
아들아 공부는 안될까?
2022.10.13 11:53
물물방울    
늦었지만 연재시작을 축하합니다.
2022.10.13 20:08
lll70499    
왜 소설에선 주인공들의 조건을 안좋게해서 시작할까 맨날 고아나 백수 편모 편부 동생이랑 둘이 살거나 그런 조건
2022.10.15 20:01
카리즈    
야구가 아닌 미식축구로 성공하는 소설도 보고싶긴 한데 한국에서 인기가 없으니 어쩔수 없지.
2022.10.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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