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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화 무림으로 환생했다.

2022.09.15 조회 82,122 추천 1,265


 #001화 무림으로 환생했다
 
 
 
 
 환생했다.
 수틀리면 배때기에 칼침 놓는 게 일상인 헬무림으로.
 
 웹 소설 보면 남들은 귀족 집안이나 무림세가에서 다시 태어나던데 나는 그딴 것도 없었다.
 오히려, 다 쓰러져 가는 모옥에서 아홉 살까지 살다가 갑자기 유행한 전염병으로 온 가족이 죽어 버렸다.
 
 그리고 한 노인을 만났다.
 
 “나를 따라오겠느냐?”
 
 “가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거야 네가 어떻게 하냐에 달렸지. 무림의 영웅이 될 수도 있고 한낱 외당 무사로 썩을 수도 있고.”
 
 “밥은 잘 주나요?”
 
 “삼시 세끼 꼬박꼬박 나오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럼 따라갈게요.”
 
 나는 그렇게 무림 속 초거대 기업인 구룡성의 외당 무사가 되었다.
 
 * * *
 
 “으허! 피곤하다.”
 
 이놈의 구룡성,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헬조선과 마찬가지로 헬무림의 아침도 분주하기 짝이 없다.
 
 오늘은 조장 회의가 있는 날, 늦으면 안 되기에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외당 본부로 향했다.
 
 “십칠조장!”
 
 도착하니 삼조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행복한 사회생활은 참된 인사로부터 시작되는 법.
 
 나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하늘 같은 삼조장님께서 저를 다 마중 나와 주시다니, 삼생의 영광입니다.”
 
 “허허허, 이 친구 아부가 가면 갈수록 느는구먼.”
 
 “아부라니!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이게 다 가슴 속 깊은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겁니다.”
 
 “허허허허.”
 
 삼조장이 만족스러운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두어 달만 더 구워삶으면 빚보증도 서 주는 사이가 될 것이다.
 
 “당주님 도착하실 시간이 다 되었네. 어서 들어가자고.”
 
 “제가 감히 어떻게 앞장서겠습니까. 삼조장님 뒤에 살포오시 따라가겠습니다.”
 
 “허허, 이 사람도 참.”
 
 그의 뒤를 따라 문턱을 넘으며 나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외당의 막내 조장으로서 인사를 할 대상이 스무 명이 넘기 때문이다.
 
 “아이고! 이조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칠조장님!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엌! 십오조장님의 미모에 눈을 뜨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문 앞에서 허리를 숙인 지 한 식경.
 
 선배 조장들이 모두 전각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후,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잠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자 중년 사내가 들어왔다.
 
 커다란 덩치에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 산적같이 사방으로 뻗은 수염과 번들거리는 눈.
 
 누가 봐도 흉신악살의 외모를 지닌 이 남자가 바로 현재 내 주인님 격인 외당주 북궁백이었다.
 
 “당주님을 뵙습니다.”
 
 조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포권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잘 있었냐?”
 
 “예!”
 
 “그럼 시작해 보자고.”
 
 그렇게 시작된 회의는 큰 내용 없이 흘러갔다.
 
 당연했다.
 
 무림 세계에서 외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없이 작았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구룡성 최고의 엘리트 교육 기관인 등천각을 졸업하고도 외당을 근무지로 택한 거고.
 
 아니나 다를까.
 
 “드르렁, 푸우, 크득크득.”
 
 북궁백이 반 각도 참지 못하고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어서 부당주 및 조장들은 그를 무시하고 회의를 진행해 갔다.
 
 그리고.
 
 “이번 달 남문 경비는 십칠조와 삼조, 일조에서 맡는 거로 하지.”
 
 ‘나이스!’
 
 그동안의 기름칠이 먹혀들었는지 우리 조는 꿈의 근무지에 편성되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포권을 하며 외쳤다.
 
 “십칠조장 진무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
 
 우렁찬 목소리의 막내는 어디서든지 환영받는 법이니까.
 
 * * *
 
 남문 경비는 생각보다 더 꿀 같은 자리였다.
 
 조장인 나는 한쪽 구석에 마련된 탁상 앞에 앉아 있었고.
 조원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통행자들의 짐과 호패를 살폈다.
 
 이게 어떻게 꿀 같은 자린가 하겠지만, 성문 경비의 진정한 진가는 다른 데에 있다.
 
 “헤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끝나고 탁주라도 한 사발 하시지요.”
 
 바로 상인들이 찔러주는 뒷돈이다.
 
 간단하게 성문만 통과시켜 주는데 웬 뒷돈이냐 하겠지만, 그건 성문 경비가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우리가 검사를 얼마나 빡빡하게 하느냐에 따라 이들의 이익이 천차만별로 차이 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조장, 저기 수레에 말린 독사들이 있는뎁쇼?”
 
 “아이고! 독사라뇨. 독은 다 빼고 말려 놓은 것입니다. 약재입니다. 약재.”
 
 이렇게 반입이 애매한 물품도 있었고.
 
 “나리! 어떻게 빨리 좀 안 되겠습니까요? 얼음을 가져왔는데 시간이 지체되어 다 녹게 생겼습니다요.”
 
 순서를 무시하고 빠르게 통과해야 할 물품도 있었으며.
 
 “운남성에서 가져온 철광석입니다. 황가철방에 납품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
 
 “흐음, 아직 들은 바가 없으니 잠시 기다리시오.”
 
 “그러지 마시고······.”
 
 절차상의 편의를 원하는 상인도 있었다.
 
 덕분에 보름 동안 거둬들인 이익은 은자 두 냥, 헬반도의 돈으로 이백만 원에 달했다.
 
 뿌듯했다.
 
 그동안 선배 조장들에게 기름칠을 한 보람이 느껴졌다.
 
 물론, 이 돈은 전부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색하게 굴면 마음의 서찰에 이름이 적혀 몇 년간 지하 뇌옥 생활을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최대한 ‘공평’하게 은자 하나를 품에 넣고 나머지 하나는 조원들에게 배분했다.
 
 ‘든든하구나.’
 
 여느 때와 같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상 밑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 열었다.
 
 그동안 모아 놨던 동전과 은자들이 나를 반겼다.
 
 ‘어디 보자······.’
 
 한 놈 두식이 석삼 너구리······.
 
 한참을 세던 나는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허어! 갈 길이 멀거늘 왜 이리 더디기만 한지······.”
 
 은퇴하고 주지육림의 삶을 누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적금 통장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아니야. 천천히 보자. 무전아. 아직 너는 젊다. 주지육림의 삶은 마흔에 이뤄도 돼.”
 
 곧바로 멘탈을 바로 잡았다.
 
 그래, 이게 어딘가.
 
 무림에 떨어진 지 장장 21년, 등천각을 졸업하고 제대로 된 월봉을 받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이 정도 돈을 모은 것도 기적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등천각 동기 놈들을 따라가려면 한참이나 멀었지만 말이다.
 
 “언제부터 금수저하고 비교했다고.”
 
 참새가 뱁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
 
 ‘아닌가? 뱁새가 아니라 황샌가?’
 
 어찌 됐든, 남 부러워하지 말고 내 주제에 맞게 살면 된다.
 
 열심히 살면 분명 아름다운 내일과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 *
 
 “으허! 피곤하다.”
 
 헬조선의 일주일이 월화수목금금금이라고 했던가?
 
 헬무림의 일주일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 5일제는 언제 도입된단 말인가!”
 
 주 6일제는커녕 주 7일제를 자랑하는 무림의 근무 환경에 탄식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오지게도 부려 먹네.”
 
 직장인 구룡성을 저주하며 걷기를 일각.
 
 십칠조에 배정된 작은 전각에 도착하니 조원들이 무공 수련을 하고 있었다.
 
 쿠웅! 쿠웅!
 
 저기 가장 안쪽에서 투수 폼으로 쇠공을 던지는 놈이 양강.
 
 키 190cm에 몸무게 120kg이 넘는 덩치를 자랑하는 근육몬이지만 놀랍게도 탱커가 아닌 원딜이다.
 
 지금 던지는 저 쇠공이 암기였고.
 
 비격 유성탄이라나 뭐라나······.
 
 슈슛슈슛.
 
 그리고 짧은 판관필로 허공을 찌르는 잘생긴 미청년이 유소평.
 
 글깨나 읽은 학사 출신으로 십칠조의 서류 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다.
 
 무공은 뭐······. 길 가다가 삼류 파락호한테 겨우 두들겨 맞지 않을 정도다.
 
 대신, 십칠조의 서류 작업을 모두 도맡아 하고 있어 조원 중 가장 의지하게 되는 부하다.
 
 “촤아앗! 촤촤!”
 
 마당 한복판에서 이상한 기합성을 내지르며 뛰어다니는 멸치 같은 놈이 하진형.
 
 자칭 신법의 달인으로 경공술이 장기인 놈이다.
 
 덕분에 전령 역할을 맡고 있는데 입만 열면 구라가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놈이라 나오는 말의 절반만 믿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셨······습니······까. 조장.”
 
 이 거북이같이 느린 말투의 주인공은 이당팔.
 
 십칠조의 막내로 당가타에 있는 무관에서 수학하여 독에 관한 지식이 상당한 수준인 놈이다.
 
 대신 행동이 너무도 느려서, 보고 있으면 복장이 절로 터진다.
 
 “그래. 잘 잤냐?”
 
 “······예.”
 
 “요새 수련은 잘 돼 가고? 막히는 거 있으면 얘기해. 언제든지 봐 줄 테니까.”
 
 “······예.”
 
 “······.”
 
 말을 말자.
 
 문턱을 넘어 들어가자 조원들이 인사를 건넸다. 평소와 달리 기합이 들어간 것이 꽤나 듣기 좋았다.
 
 그럴 수밖에.
 
 은 한 냥이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성과급으로 지급했으니 나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솟아오를 것이다.
 
 “크흠, 다들 잘 있었나?”
 
 “어제 봐 놓고 웬 지랄이오?”
 
 아닌가 보다.
 
 무식한 양강 놈을 애써 무시하고 유소평에게 물었다.
 
 “오늘 높은 분 행차 소식은?”
 
 “청룡당주께서 한중 분타로 출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 쪽이 아니라 북문으로 가겠네?”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정보다.
 
 군대에서도 사단장이 방문하면 대청소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성의 높은 분이 지나간다는 소식이 들리면 미리미리 준비해 놔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이네. 그럼 다들 가자고.”
 
 곧바로 조원들을 데리고 나와 남문으로 향했다.
 
 다시 시작된 근무.
 
 “다음!”
 
 십칠조 중 덩치가 가장 큰 양강이 땅바닥에 기다란 창을 꽂고 연신 다음을 외쳤고.
 
 하진형과 이당팔이 짐과 호패를 확인하였으며.
 
 유소평이 방명록과 각종 서류 작업을 맡았다.
 
 나는 뭐 하냐고?
 
 뭐 하겠는가. 명색이 관리직이니만큼 조원들 관리에 힘을 쏟았지.
 
 드르렁······.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던 중 하진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장, 식사 안 하십니까?”
 
 “어? 어어. 먹어야지. 밥을 먹어야 일을 하지.”
 
 “그럴 줄 알고 저기 남가객잔에서 주먹밥을 사 왔습니다.”
 
 “그래그래, 고맙다.”
 
 그렇게 주먹밥을 씹어 먹던 중 아는 얼굴이 보였다.
 
 새하얀 백의 무복에 박혀 있는 백룡 자수, 백룡당 소속의 무사였다.
 
 “오랜만이다?”
 
 “꿀꺽. 그래. 오랜만이네?”
 
 “등천각을 졸업하고 외당 생활을 한다더니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데? 근본이 없는 놈이라서 그런가?”
 
 “등천각 생활 팔 년 내내 그 근본 없는 놈한테 털린 게 너였고.”
 
 도발을 받아친 내 말을 들은 놈이 양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 댔다.
 
 관자놀이에 힘줄이 토룡처럼 올라오는 것을 보아하니 꽤나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한 판 붙을 거면 저쪽 공터로 가고.”
 
 “크흠.”
 
 “덤비지도 못할 거면서 시비는.”
 
 부들부들.
 
 놈의 몸이 떨리는 게 여기까지 느껴진다.
 
 당연했다.
 
 온갖 정치질이 난무하는 AOS 게임에서 채팅으로 단련한 나다.
 
 세계관 설정상 유교와 불교 사상에 물들어 있는 무림 세계에서 말빨로 나를 이길 자는 몇 안 되었다.
 
 “······나중에 두고 보지.”
 
 “웅 아무고토 못하죠?”
 
 “크흑.”
 
 놈이 분한 얼굴로 성안으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유소평이 궁금했는지 슬쩍 물어왔다.
 
 “누굽니까? 백룡당의 무사 같던데.”
 
 “백룡당주 막내아들.”
 
 말하고 보니까 웹 소설 제목 같네.
 
 “······그래도 됩니까? 나중에 앙심을 품고 보복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백룡당주같은 양반이 철없는 막내아들 말에 휘둘릴까.”
 
 “그거야 그렇지만, 시일이 지나면 모를 일 아닙니까. 저 사람도 앞으로 내성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텐데.”
 
 그거야 내가 구룡성에 남아 있을 때 문제고.
 
 저놈이 승승장구할 때쯤 나는 이미 구룡성에서 사라져 있을 텐데.
 
 “그거야 그때 생각하지, 뭐.”
 
 그렇게 다사다난한 구룡성의 하루가 지나갔다.

댓글(47)

n9************    
벌써부터 재밌네요!
2022.09.16 07:53
키나아빠    
첫 댓글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좋은하루 보내십쇼!
2022.09.16 10:10
사마택    
좋쿤요
2022.09.17 13:14
에이엔01    
흥미롭네요. 엑스트라물 같은 느낌이 나와서 좋아요
2022.09.23 12:35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2.09.25 23:59
학교    
좋습니다.
2022.10.01 10:49
맛있는새우    
이름만 성이 아니라 진짜 성을 먹은 문파네요 ㄷ
2022.10.04 23:17
이슬딱지    
엄청 잘 쓰시네...
2022.10.05 06:52
양마루    
건필
2022.10.05 15:55
참뽕    
아무고토모타죠
2022.10.0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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