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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2022.09.22 조회 47 추천 0


 #000. 괴담 도서관 이용 수칙
 
 
 
 
 
 안녕하세요.
 
 괴담 도서관에 오신 독자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괴담 도서관은 다양한 괴담을 수집하여 모아둔 곳입니다. 다양한 괴담이 모여 있는 만큼 이곳은 신비스럽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죠.
 괴담 도서관을 이용하는 데 앞서, 이곳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돈다거나, 괴현상을 직접 겪으신 분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수하여 괴담 도서관을 이용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매뉴얼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다음 사항을 주의하시면 보다 아늑하게 괴담을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괴담 도서관은 이십사 시간 개관하고 있습니다. 평일, 주말 상관없이 언제든지 편하게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괴담 도서관에 등록된 괴담은 주로 단편들입니다. 운이 좋다면 서로 다른 단편과 단편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변칙이 없는 한 이러한 괴담의 주된 테마는 이를테면 <환상 특급>, <블랙 미러>, <기묘한 이야기>, 이토 준지 컬렉션, 스티븐 킹, 러브크래프트, 에드거 앨런 포등과 그 궤가 유사하다 보시면 좋을 겁니다. 물론 귀신, 악령, 악마, 요괴 등의 오컬트적인 요소도 도서 목록에서 자주 목격될 거라 사료됩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괴담 도서관 이용 수칙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괴담 도서관 이용자 매뉴얼
 
 1. 괴담을 읽으시는 도중 어디선가 대화 소리가 들린다면 호기심을 가지지 마십시오.
 만약 그것에 호기심을 보이신다면 그 후에 벌어질 일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2. 침대에서 읽으시다가 문득 잠이 드신다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 책임질 수 없음을 당부드립니다. 그러니 또렷한 정신 상태에서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3. 한밤중에 읽으시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셨다면 숨소리도 내지 말고 최대한 기척을 줄이십시오.
 만일 그 부름에 호응을 한다면 그건 굉장히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4. 새벽에 괴담 도서관을 이용하시다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시 절대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머무르는 곳은 분명 고층일 테니까요.
 
 5. 이야기를 즐기시는 도중 사용하시던 전자 기기 화면에서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신다면 당장 기기를 끄시고 오 분 정도 안정을 취하시길 추천합니다. 눈의 피로는 건강에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괴담 도서관은 단순한 웹소설일 뿐이며, 어떤 효과나 장치를 입히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6. 허밍을 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셨다면 이미 당신은 홀리셨다는 증거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그 장소를 벗어나시길 권고드립니다.
 
 7. 촛불을 켜놓고 괴담을 읽지 마시길 바랍니다.
 특히 괴담을 다 듣고 나서 촛불을 하나씩 꺼트리는 행위는 스스로를 저주에 걸리게 하는 자살 행위에 가깝습니다. 이와 같은 사례가 왕왕 발생했다는 걸 저는 잘 압니다.
 
 8. 괴담을 보시는 중에 네발로 기어 다니는 존재를 목격하거나 기이한 현상을 겪게 된다면 동요하지 마시고 평상시대로 행동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전등이 꺼졌다 켜졌다 한다거나 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수시로 반복한다거나 거울이 깨진다거나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거나 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절대로 동요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서둘러 그 장소를 피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위에서 말씀드린 사항 이외에도 다른 괴현상을 경험하게 되신다면 댓글을 꼭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게 좋을 테니까요.
 
 위와 같은 사항을 잘 준수하신다면 이용하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리라 사료됩니다.
 
 그럼 괴담 도서관의 회원이 되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001. 토끼 굴
 
 
 
 
 
 나는 누구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이 공간을 잠시나마 울릴 뿐이다.
 이리저리 벽을 타고 다니는 나의 목소리.
 그리고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해 주는 그 울림.
 그 울림 덕분인지 난 조금이나마 안심했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기억을 조작한 것처럼, 나는 도통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까 전부터 그런 상태로 이곳을 헤매고 있다.
 시발, 대체 여긴 어디지?
 긴장한 목을 빳빳이 세운 자세로, 그렇게 난 무작정 전진만 할 뿐이다.
 깊숙한 탄광과도 같은 이 토굴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완연한 어둠이 깔려 있지는 않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조명. 주위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조도. 어떤 자식이 이런 곳을 설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개같은 토굴이다.
 왠지 아까부터 같은 자리를 맴도는 기분인데···. 그래, 그저 기분 탓일 거야.
 그리고 한 발자국 발을 내디뎠을 때, 고막이 찢길 듯한 엄청난 이명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명 사이로 어느 한순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딴 곳에 처박히기 전의 마지막 한 줄기 기억 같은데···.
 우쭐해하며 잘난 척하는 면상의 안경잡이 새끼가 날 이 구렁텅이에 빠뜨린 것 같다는 그 개같은 기분. 그리고 끊긴 필름과도 같은 장면들.
 또 드문드문 기억나는 조각난 단어들.
 희생자, 단서, 실마리, 해결, 추격, 탈출, 토끼몰이···.
 아. 시발.
 단어들의 조합을 짜 맞추려 하자 기다렸다는 듯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든다.
 머리통을 통째로 감싸고 괴로워하는 동안 나는 잠시 날 이곳에 가둔 놈을 얼추 떠올려 보았다.
 능숙한 말솜씨와 능글맞은 미소. 그런 잔재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꾀어내어 이 짓거리를 자행했을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정신이 든다.
 이딴 잡념이 지금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라고.
 그래. 일단 이 엿같은 터널을 빠져나가기 위해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엔 없어 보인다. 이 앞에 어떤 함정과 덫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조심해야겠지.
 
 꽤 시간이 흐른 것 같다.
 허기도 지고 다리가 저려오는 걸 보니 대충 그렇게 감이 왔다.
 이 미로 같은 터널은 정말이지 굶어 죽기 딱 좋은 곳이다. 이런 거지 같은 토굴을 만든 녀석 또한 분명 정상은 아닐 거야.
 멍하니 선 채, 나는 주변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역시 사방이 막힌, 오로지 전진과 후진만이 허락되는 일방 통행로일 뿐이다.
 이것과 비슷한 걸 영화 같은 데서도 본 것 같단 말이지. 사람들을 가둬놓고 탈출하게끔 유도하는 그런 공간이나 장치 같은 것들 말이야.
 누가 날 이런 함정에 빠뜨린 걸까? 누가?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바짝 열이 오른 그 순간, 나의 몸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경직됐다.
 잠깐,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가 도로 제자리로 발걸음을 돌렸다.
 
 저벅-
 
 분명히 들렸다.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다시 저벅.
 그 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내 귀가 틀리지 않았다면, 나 말고도 공간을 울리는 발소리가 분명히 하나 더 있다.
 뒤통수 쪽이 싸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누군가 뒤에서 날 지켜보는 것 같았다.
 잠시 나는 패닉 상태에 빠졌으나, 정신을 가다듬고는 슬며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저 뒤 코너 너머로, 음울한 형상의 그림자가 벽을 타고 날 덮쳐오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미친 듯이 앞만을 바라본 채 뛰고 있었다.
 미로 속 모퉁이를 돌려고 할 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자명종 시계가 걸려 있었다. 시계추는 멈춰 있었지만, 시계 소리가 미칠 듯이 귓가에 울려 왔다.
 
 틱- 틱- 틱-
 
 마치 느려터진 행동이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시계 소리가 나의 목을 조여오듯 더 빠른 템포로 울려왔다.
 그때였다.
 
 - 시간이 얼마 없다.
 날 쫓고 있는 검은 형상.
 뒤쪽에서부터 그 악마 같은 놈의 기이한 목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나보고 어떡하라고?
 - 네가 운이 좋다면 이 미로를 빠져나갈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놈은 내 속이라도 읽는 것인지 묘한 웃음을 흘렸다. 소름끼치는 웃음이었다. 나는 두 귀를 막으며 도망치듯 급하게 모퉁이를 돌았다.
 몇 걸음 떨어진 앞으로 감겨 있는 눈이 보였다. 그것은 대략 현관문 정도의 크기였던 것 같다.
 그 눈에 가까워지자 마치 자동문처럼 눈이 스르르 열렸다.
 열린 눈 안으로 까만 공간이 전방에 확 펼쳐져 있었다.
 시발, 아무래도 좋았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놈을 피해 눈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곧바로 등 뒤의 눈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숨을 고르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사방의 벽면은 도배지처럼 그림들로 메워져 있었다. 정신이 팔린 것처럼 나는 그것들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목이 잘려 나간 성인 남녀 둘, 거대한 화마에 휩싸인 가정집, 밧줄에 목이 매달린 여러 형상의 동물들···. 이런 그로테스크한 그림들이 벽면이 너덜너덜하게 느껴질 만큼 한가득 걸려 있었다.
 시발, 대체 이건···.
 나는 충격에 휩싸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픽-
 
 전원 차단기가 내려간 것처럼, 공간은 암전이 되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땐 나는 미로의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마치 재부팅된 새 게임처럼, 방금 전의 검은 방은 온데간데없고, 모든 게 처음 그대로다.
 그렇게 어안이 벙벙해질 때쯤.
 
 - 아직 단서를 못 찾았나? 그런 건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쓸모 있는 단서를 찾으라니까?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난 반사적으로 다시 뛰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와 똑같은 눈이 나타났다.
 이번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 눈을 열려 했다.
 그런데 눈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믿음이 부족해서인가?
 불신의 기운을 잠재우고자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제발! 제발요!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검은 그림자, 그 악마의 손아귀가 서서히 벽면을 타고 가까워졌다.
 나는 제대로 기합을 넣고 있는 힘껏 밀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시여!
 눈이 열렸다가 쾅 소리를 내며 도로 닫혔다.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그 눈을 부숴버리려 마구 발길질을 해댔다.
 마지막 발길질이 적중할 찰나, 타이밍 좋게 눈이 열렸다.
 나의 발은 허공을 갈랐고 균형을 잃은 몸뚱이는 그대로 고꾸라지듯 나뒹굴었다.
 바닥을 몇 번 구르고 나서 고개를 쳐드니 바로 눈앞 맞은편에 테이블 하나가 나타났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난 난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단서···. 단서라 했어. 단서를 찾아야 해.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며 난 테이블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테이블 위로는 수십 장의 사진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한쪽은 칼, 손도끼, 망치, 밧줄 등의 각종 흉기 사진.
 다른 한쪽은 숏컷, 단발머리, 긴 생머리 등의 다양한 여자 얼굴 사진.
 이 두 가지 군의 사진들이 서로 대칭을 이루어 배열되어 있었다. 이딴 사진들을 넋 놓고 보고 있자니 전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시발!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토굴을 탈출하기 위한 실마리는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그것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보기 좋은 사진은 아닌 것 같은데··· 보면 볼수록 기분이 이상해져···.
 나는 혹시 몰라서 사진을 챙겨갈 요량으로 몇 장을 건드렸다. 그게 우선 최선이라 여겼다.
 
 그러자 갑자기 큰 굉음과 함께 바닥이 무너져내렸다.
 나는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서 쓰러진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다시 그 빌어먹을 미로였다.
 이 토굴을 빠져나갈 단서를 찾지 못해서 다시 리셋된 건가?
 나는 탈출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또다시 달릴 수밖에 없었다.
 
 모퉁이가 나왔다.
 모퉁이를 꺾었다.
 다시 또 모퉁이를 돌았다.
 이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모퉁이가 나올 것이다.
 계속 같은 곳을 맴도는 기분이 들었다.
 
 똑같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이상한 선율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마치 환청처럼.
 단서. 단서. 단서. 그 기괴한 음성과 웃음이 교차하며 이 공간에 느리게 흘러들었다. 아니, 지금 달리는 동안의 나 자신이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걸지도 몰랐다.
 시발 것아! 내가 왜 이런 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데!
 날카로운 절규조차 느리게 재생되듯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대로 가다간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아무리 앞으로 내달려도 똑같은 장면의 연속이자, 나는 미친 척하고 정반대로 몸을 급하게 틀어버렸다.
 바로 그때.
 시간이 빠르게 흐르듯 시야가 확 트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게 멈춘 것처럼 주변으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완전히 몸을 틀었을 땐 정상으로 시간이 돌아온 듯했다.
 그리고 언제 생성된 건지, 바로 코앞에 눈이 떡하니 버티고 섰다.
 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눈 안으로 몸을 날렸다.
 암실 같은 공간 속.
 영사기는 하얀 빛을 내뿜었다.
 전면에 배치된 스크린은 영사기에서 흘러나온 영상을 비추고 있다.
 단편적인 기억처럼 영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의 눈을 통해 비친 것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장면뿐이었다.
 흉악한 무기를 소지한 사내의 일인칭 시점.
 여러 형태의 흉기가 여러 명의 여성들을 무참히 살해해 나갔다.
 비참한 비명과 절규.
 피해자들을 인형처럼 유린해 나가는 악마와도 같은 그놈.
 나는 삭제 무참히 짓밟히는 이 생명들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분명 잔학했으나 한편으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묘한 긴장과 흥분이 날 감쌌다. 하지만 그건 현장의 공포와 희망 없는 피해자들로 인한 전율이었을지도.
 
 
 
 쓴웃음이 나도 모르게 입가로 흘러나왔다.
 그런 처절한 장면들 하나하나를 마주할 때마다 바닥에 나뒹구는 여성 피해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새하얀 얼굴을 타고 흐르는 피눈물.
 이윽고 스크린을 가득 채울 만큼 그 여성의 눈이 커다랗게 클로즈업됐다.
 그리고 눈이 열렸다.
 지옥의 문처럼.
 나는 빨려 들어가듯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탈출구?
 그래. 탈출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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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님, 이번 토끼몰이는 성공적이었어요.”
 
 조수로 보이는 여성 연구원이 박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동그란 안경을 코 밑으로 눌러 쓴 박사는 수술용 침대에 누운 남성을 지그시 내려다봤다.
 
 “그래. 그렇군. 토끼몰이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마무리된 것 같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박사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극단적인 케이스이긴 했지만···.”
 
 그가 스읍 들숨을 집어삼키곤 다시 말을 이었다.
 
 “앞으로 범죄 예방 및 관리 차원에서 정부에게서 예산을 확실히 따낼 수 있겠어.”
 
 그녀가 갑자기 남성의 바이털 체크를 했다.
 
 “눈을 떴어요. 깨어났는데요?”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심박 수가 너무 높아졌어요! 쇼크를 방지···.”
 
 박사가 차분하게 연구원을 제지했다.
 
 “금방 괜찮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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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1.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진 않았지만, 인간적인 심문은 통하지 않았다.
 
 (이하 생략)
 
 연구원이 차트를 덮으며 말했다.
 
 “의식에 침투해 기억을 단숨에 추출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상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나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고···.”
 
 박사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을 이었다.
 
 “그 정도는 사소한 윤리에 지나지 않아. 대가를 치러도 상관없는 놈들도 있는 법이라고.”
 
 박사의 매정한 말에 연구원은 조용히 고갤 끄덕였다.
 
 “이로써 증거는 거의 다 캐낸 것 같네요.”
 
 수술대 위의 남성이 숨을 헐떡였다.
 
 “당··· 당신들··· 누구야?”
 
 그는 거의 다 쉰 목소리로 어렵게 말을 내뱉었다.
 
 “여긴··· 어디지? 악마가··· 악마가··· 날 쫓아왔는데··· 분명히 그곳에서 빠져나왔는데···.”
 
 남성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서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그런 남성의 모습에 아주 잠시였지만 여성 연구원의 측은한 눈길이 그에게 머물렀다.
 박사가 그녀의 어깨를 툭 밀쳤다. 그러고는 말했다.
 
 “연쇄 살인마 놈에게 동정 따윈 거두라고.”
 
 그 말을 들은 후 연구원은 녹음 파일을 켰다. 그렇게 남성이 말한 내용을 확인한 후 껐다.
 
 “열한 건의 사건은 대상자가 말한 대로 윤곽이 잡혔네요.”
 
 대상자를 한 번, 그리고 박사를 한 번 번갈아 쳐다본 그녀가 천천히 입을 뗐다.
 
 “어차피 이대로라도 대상자의 사형을 충분히 집행할 수 있겠는데요?”
 
 연구원이 박사에게 재차 확인하듯이 묻자, 흐음, 고심에 빠진 것처럼 박사가 신음을 냈다.
 
 “아직은 부족해. 아직 세 건의 사건 파일이 남아 있잖아?”
 
 박사가 차트를 그녀의 앞에 펼쳐 보였다. 그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유가족들에게 피해자 세 명의 시신 한 점이라도 찾아줘야지.”
 
 무미건조하게 말을 내뱉은 박사는 무심히 차트를 덮었다.
 박사의 말에 대답하려 그녀가 입을 벌리자 박사는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하여튼 진행하자고.”
 
 박사는 까딱까딱 손가락을 들어 보인 후 수신호를 보냈다.
 
 “얼른 약 가져와.”
 
 약 투여를 위해 그녀가 손바닥 두 뼘만 한 주사기를 가져왔다.
 곧 주삿바늘 끝에서 정체 모를 용액이 몇 밀리리터 뿜어졌다.
 
 “주사 준비 완료됐습니다.”
 
 그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녀에게서 주사기를 받아 든 박사는 주저 없이 대상자의 강제로 벌어진 눈을 향해 그 거대하고도 날카로운 주삿바늘을 들이밀었다.
 
 “대뇌까지 단숨에 넣어야 해."
 
 그런 말을 마친 박사는 연구원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어···.”
 
 그녀가 잠시 망설이듯 신음을 내었다. 그러곤 곧바로 박사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식으로 대뇌에 바로 주입하면 거부 반응을 일으킬지도 모르는데···.”
 
 그녀의 만류에도 박사는 오히려 즐겁다는 듯 더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거의 다 됐는데 확실하게 해야지. 안구 밑 쪽으로 이렇게. 흡. 밀어 넣으면 된다고.”
 
 남자의 안구가 터질 듯이 위쪽으로 쏠렸다. 그녀는 약간의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안구가 뚫릴지도 모르는데···.”
 
 “상관없어.”
 
 박사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그렇게 일축했다.
 박사는 주사기 안의 용액을 마저 밀어 넣은 뒤 여자 연구원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마치 아무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기억은 또 재생될 거니까.”
 “만약 삼 퍼센트의 확률로 대상자가 토끼 굴에서 영원히 헤매면 어떡해요?”
 
 여자 연구원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흘렀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녀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에 박사는 손사래를 쳤다.
 
 “그것보다 아까 악마를 따라 하는 그 흉내, 꽤 수준급이시던데요.”
 
 서류를 정리하던 그녀가 풉,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말에 박사는 홱 뒤돌아 버렸다.
 그러고는 한 마디 내뱉었다.
 
 “농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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