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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귀신에 이끌리다

2022.09.29 조회 626 추천 3


 1화― 귀신에 이끌리다
 
 
 
 검성(劍聖).
 
 나를 부를 때 세인들은 그렇게 불렀다.
 
 사냥꾼의 아이로 자라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사냥을 배워 온 나는 열셋의 나이에 혼자가 되었다.
 
 미련한 아버지가 곰을 잡아 보겠다고 덤볐다가 곰 발에 맞아 별세하셨기에, 어린 나이에 친부의 시신을 묻고 장례를 치러야 했다.
 
 배운 게 사냥밖에 없는지라, 아버지가 남겨 준 산중의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며 사냥을 통해 벌어먹고 살아왔다. 사냥에 나쁘지 않은 재능이 있었기에 그 재주를 발휘하여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죽였던 그 곰이 먹이를 찾다가 오두막을 덮쳐 왔고, 이미 사람 고기에 맛을 안 녀석은 도망가는 날 끈질기게 쫓아왔다.
 
 죽어라 도망을 친 나는 결국 절벽 아래로 떨어졌지만, 운 좋게도 추락하던 도중 나무에 걸려 살아나게 되었다.
 
 절벽 중간에 작은 동굴이 있음을 발견한 나는 거기로 기어 올라갔고, 거기에서 무림인들이 말하는 기연(奇緣)을 만나게 되었다.
 
 비뢰검제(飛雷劍帝)라는 사람의 무공서와 그가 남긴 안배를 발견한 나는 그것을 따라 수련했고, 단숨에 무림 고수 반열에 들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비뢰검제라는 분은 삼백 년 전 무림을 평정했던 고수로, 그가 남겨 준 모든 것은 사냥꾼에 불과했던 날 무림의 고수로 만들었다.
 
 무림인이 된 나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무림행을 시작했고, 나의 강함에 사람이 모여들고 여인들이 구애해 왔다.
 
 모든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검의 최고수가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검성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명성을 누리기도 전에 난 불치병을 얻고 말았다. 약선(藥仙)조차 나를 고칠 방법이 없다고,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나는, 내가 얻었던 기연처럼 누군가를 위해 나의 무공을 남기기로 했다. 내가 얻었던 그 장소에 내가 얻었던 무공과 내가 새로 창안한 무공까지 남겼다.
 
 이곳을 발견할 자신의 무공을 이어 줄 이를 위하여······.
 
 * * *
 
 여산(廬山).
 
 강서성(江西省) 서북쪽 위치한 산으로, 늘 안개에 잠겨 신비한 분위기를 주는 산이었다. 그 여산을 아침 일찍부터 오르는 소년이 있었는데, 복색을 보면 순전히 서생으로만 보였다.
 
 “아침부터 운동 열심히 하겠네.”
 
 소년은 한숨 섞인 소리를 내뱉으며 자신이 오를 산을 쳐다보곤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소년의 나이는 열셋, 이 시간에 산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분이었다.
 
 소년의 정체는 여산 아랫마을에 있는 백학서원(白鶴書院) 원장의 늦둥이로, 마을에서도 꽤 유명 인사인 아이였다.
 
 건문제(建文帝) 시절에 왕사(王師)까지 지냈던 이화운(李華雲)은 영락제(永樂帝)가 즉위하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물러나 여산 아래 작은 서원을 차려 아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며 지냈고, 그 이화운의 아들이 바로 여산을 오르는 소년 이윤후(李㣧珝)였다.
 
 소년은 산을 오르며 주위를 계속 두리번두리번하며 살폈다. 그러다 무언가를 찾은 듯, 갑자기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소년이 도착한 곳은 절벽 끝이었다.
 
 “여기라고요? 이거 맞아요? 뛰······ 뭐요?”
 
 소년은 허공에 알 수 없는 넋두리를 하더니, 절벽 아래를 살짝 바라보고는 겁에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허······.”
 
 소년은 다시 한번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운무 탓에 바닥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떨어지면 속 터진 만두처럼 박살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소년은 울상이 된 채 절벽 끝에 섰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거 같았지만, 가까스로 참아 내었다.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할 겁니다.”
 
 절벽 끝에 외로이 서 있던 소년은 한참을 서서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더니 이내 아래로 몸을 던졌다.
 마치 누군가 등을 밀어 준 것처럼.
 
 * * *
 
 절벽에서 떨어진 소년. 이윤후가 오랜 시간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뜬 곳은 어두운 동굴 안이었다.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으로 본능적으로 일어나 달렸지만, 밖은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절벽 중간쯤 위치한 동굴 안인 듯했다.
 
 “정말로 살아 있었구나······.”
 
 이윤후는 멀쩡한 자신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끝이라고 느꼈기에 더욱 그랬다.
 
 [이 녀석아, 내가 그렇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건만 그렇게도 걱정되었더냐?]
 
 이윤후는 동굴을 울리는 소리에 살짝 삐진 듯이 표정을 보였다.
 
 “귀신이라고 말은 잘하십니다. 이제 약속을 지키시지요!”
 
 울분이 터진 이윤후의 외침에 동굴은 조용해졌다.
 
 잠시간 침묵이 흐르던 와중, 어디선가 들렸는지 알 수 없는 음성이 다시 들렸다.
 
 [동굴 안으로 들어오너라.]
 
 그 말에 윤후는 잠시 뒤돌아 시선을 던졌다. 밖은 이미 짙게 어둠이 깔린 밤이었다. 자신이 늦어 걱정하고 있을 백학서원 사람들이 잠깐 머릿속을 스쳐 갔으나, 이내 마음을 굳혔다. 자신은 더 넓은 곳을 보리라.
 
 이윤후는 동굴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어두운 곳을 지나자 밝은 장소가 나왔다. 그곳엔 놀랍게도 동굴의 천장 쪽이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야명주(夜明珠)? 말도 안 되는 크기 같은데······.”
 
 이윤후는 천장에 빛을 내는 돌을 보고는 야명주임을 알았다. 어리긴 했지만 학식이 많아 야명주의 가치도 알았는데, 값을 잘 받으면 삼대가 먹고살 만한 크기였다.
 
 야명주에 정신이 팔린 사이 앞을 보니 돌로 된 단상 위에 앉아 있는 노인이 보였다.
 
 그가 자신을 여기로 이끈 사람일 터였다.
 
 “정말······ 검성(劍聖)?”
 
 저 앞에 앉아 있는 노인은 자신을 검성이라고 밝히곤, 자신의 꿈에 나타나 매일 이곳에 찾아줄 것을 사정해 왔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꿈이라 여겨 무시했으나, 서원의 비고에서 검성의 용모파기와 무림의 여러 자료들을 찾아 대조해 보니, 심증은 계속 굳어졌던 것이다.
 
 “정말 꿈에 나타난 노인과 같은 인물이군.”
 
 앉은 채 눈을 감고 있는 노인을 가까이서 찬찬히 살펴보니, 확실히 시체였다.
 
 중후한 인상을 한 백발백염의 노인. 무공에 전혀 문외한인 이윤후였지만, 앞에 앉아 있는 노인이 금방이라도 눈 뜰 것 같은 착각을 받을 정도의 기운이 느껴졌다.
 
 “도대체 시체에서 느껴지는 이 기운은······ 뭐죠?”
 
 이윤후는 허공에 소리쳤고 두리번두리번했다.
 
 “이제야 내 말을 모두 믿겠느냐?”
 “뭐······ 이렇게 직접 본 이상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이전과 달리, 목소리는 동굴을 울리는 진성(眞聲)이었지만, 윤후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시체 주위를 둘러보자 한쪽엔 큰 항아리가 보였고, 호기심에 다가간 이윤후가 항아리의 뚜껑을 열자 풀 내음이 동굴 안에 가득 찼다.
 
 “이게 뭐지?”
 
 항아리 안에는 작고 둥근 씨앗 같아 보이는 것이 가득 차 있었는데, 만져 보니 물렁물렁했다. 입에 넣어 볼까 고민했지만, 왠지 모르게 꺼려져 내려놓았다.
 
 “먹어 보아도 된다. 그건 벽곡단(辟穀丹)이란 것으로, 한 개 먹으면 하루의 허기를 잊을 수 있다.”
 
 이윤후는 울리는 말소리에 벽곡단 하나를 집어 먹어 보았고 이내 인상을 쓰고야 말았다.
 
 “그렇게 맛은 없네요.”
 “이놈, 그게 그래도 오십 년은 묵은 벽곡단인데 맛이 있으면 이상한 것이 아니겠냐?”
 “엥, 그럼 상하지 않았어요?”
 “걱정 안 해도 된다. 이곳을 찾아올 이를 위해 부패하지 않도록 처리한 것이고, 기존 벽곡단과 다르게 만들어진 것이니까.”
 
 이윤후는 의심스럽긴 했지만 이미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고 있었기에 그의 말이 허풍이 아닐 거라 짐작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의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자기 귀에 들리는 음성이 저기 앉아 있는 검성이라는 건 지금도 믿기 어려웠으니까.
 
 한 달 전, 갑자기 꿈에 나타나 자신이 검성이라고 밝힌 노인. 그는 이곳을 찾아 달라고 사정을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꿈이라고 무시했지만 언젠가부터는 꿈이 아닌 깨어 있을 때도 자신을 귀찮게 하였기에, 결국 검성이라고 밝힌 이 귀신같은 노인에 대해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검성(劍聖) 나진하(羅珍夏).
 
 검의 극성을 이루어 낸 인물로, 출신은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홀연히 무림에 나타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립(而立)의 나이가 되기 전에 이미 동년배 중엔 적수가 없을 정도의 고수가 되었다.
 
 이후, 극의(極意)를 깨우치기 위해 무당에 찾아가 수련으로 삼 년을 지냈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그는 검의 절대자로서 무림에 군림했다.
 
 하지만 그는 세력을 만들지도 않고, 세력에 속하지도 않았다. 단지 친우들 몇몇과 묶여 오절(五絶)이라 불렸을 뿐.
 
 마교제일검(魔敎第一劍)이라 불렸던 혈천검마(血天劍魔)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난 이후 특별한 활동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인물이었다.
 
 무슨 병에 걸려 죽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속세를 떠나 신선이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명확한 답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사라지자 정파는 큰 어른을 잃었단 슬픔에 잠겨야만 했다.
 
 여기까지가 이윤후가 찾아본 검성의 일대기였다.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자신을 찾아와 괴롭혀 대던 이 노인이 정말 검성이라면 일생일대의 기연을 얻은 셈이었다.
 
 그렇기에, 이윤후는 목숨을 걸고 절벽에서 뛸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요? 절벽 한중간이던데, 그러고 보니 절벽에서 떨어져 이 안에 들어온 것도 신기하네요.”
 “이제야 궁금해진 것이냐?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현재로써는 없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검성의 말에 이윤후는 화들짝 놀라 펄쩍 뛰었다.
 
 “지금 없다고 했지. 아예 방법이 없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저기 내 앞에 놓인 책들이 보이냐?”
 
 검성의 말에 이윤후는 가부좌의 자세로 눈을 감고 있는 검성의 앞을 보았고, 그의 말대로 책들이 몇 권 펼쳐져 있었다.
 
 이윤후가 다가가 살펴보니 비뢰검결(飛雷劍訣)이라고 적힌 책 한 권과 아무 제목이 없는 책 한 권이 있었다.
 
 “설마, 이 무공을 익혀서 내 힘으로 빠져나가라는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
 
 허공을 향해 소리쳤으나 답이 없자, 황망해진 그는 책을 내려놓았다.
 
 “사사해 주시니 감사는 하오나, 무공을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닐진대, 절 여기에 몇 년이나 가두려 하시는 겁니까, 어르신?”
 “내가 못 할 일을 시키려고 너를 이곳에 부른 게 아니다. 너만이 가능한 일이기에 너를 선택하고 여기로 데려온 것이다.”
 
 검성의 말이 어린 이윤후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무림인이거나 검성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에게 인정받은 것만으로 굉장한 영광이었겠지만, 학사 출신인 이윤후 입장에선 대뜸 절벽에 갇혀 수련하라는 말이 영 해괴했다.
 
 그러나 이윤후는 곧 고개를 털고 현실을 직시했다.
 
 “그럼, 제가 이것을 배운다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최대한 빨리 무공이란 것을 익혀야 빨리 나갈 수 있을 터. 이미 결정된 사안에 좌고우면해선 안 되었다.
 
 “그래, 너의 재능이라면 이른 시일 안에 이곳을 빠져나갈 무공의 수준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동굴 안을 울리는 음성에 이윤후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예전부터 어느 정도 각오는 한 상태였다. 어리다 하여 투정만 부리고 있을 순 없다.
 
 소년 이윤후는 각오를 다지며 두 권의 무공서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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