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먹고 싶네"
마지막 힘을 짜내 내뱉은 나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3류 재난 영화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아포칼립스에서 32년을 버텼다.
그래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내가 지옥 같은 아포칼립스에서 32년을 버텼다.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
나보다 강한 사람은 많이 있었지만 나보다 오래 버틴 사람은 없다.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살아있는 인간을 본 지 3년은 넘었으니까.
죽지 못해 살았다. 그저 버텼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었다.
버티다 보면 게임처럼 짜잔!하고 엔딩이 나온다거나 거대한 생존자 세력이 나를 구하러 올 거라는 그런 희망 따위도 가지지 않았다.
어쨌든 그 버티기도 끝이다.
우습게도 내가 죽는 이유는 좀비 때문이 아니다. 아포칼립스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원인인 굶주림도 아니었다.
암이다. 이 빌어먹을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나는 암으로 죽는다. 모든 문명이 사라진 이 세상에서 문명이 가장 번성했던 시절의 병으로 죽는다.
몸에서 갑자기 힘이 훅 빠진다. 죽을 정도로 다친 적도 몇 번인가 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이게 죽음인가?
여한 같은 것은 없다. 서서히 눈이 감긴다.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라는 메시지가 지나가듯이 보인 것 같다. 밑에 몇 줄이 주르륵 올라왔지만 자세히 보지 않았다. 죽는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그렇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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