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내 강화에 파괴는 없다

+0. prologue

2022.11.01 조회 37,667 추천 1,236


 1.
 
  긴장으로 인해 망치를 든 손끝이 잘게 떨리고, 식은땀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꿀꺽.”
 
  이유는 간단했다.
 
  내 눈앞에 3년 만에 처음으로 먹어본 S급의 장비가 놓여있으니까.
 
  『+0 티타늄 합금 도검』
 
  가격으로 환산하자면 대충...반X자이 한 채는 될 ‘억’ 소리 나는 장비다.
 
  어지간한 인구수 많은 게임에서도 억 단위의 아이템이 흔한 것은 아니지만, 이 게임은 오히려 인구수가 얼마 없는 마이너 게임이기에 희귀한 아이템이 더욱 비쌌다.
 
  어쨌든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내가 손을 떠는 이유는 앞으로 이 어마어마한 몸값을 자랑하는 녀석을 강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최강의 아이템을 한계를 뛰어넘어 더욱 강하게.
  생각만 해도 다른 평범한 장비를 강화하는 것보다 더욱 엄청날 것 같지 않은가?
 
  “꿀꺽.”
 
  그러니 이렇게 절로 침을 삼키는 거겠지.
 
  “후우...긴장을 좀 풀자.”
 
  심호흡을 통해 긴장으로 굳은 몸을 푼 나는 곧바로 장비를 강화하기 전 항상 하는 루틴대로 인벤토리에서 장비를 꺼냈다.
 
  『+0 나뭇가지』
 
  길가에 돌아다니는 나무의 나뭇가지를 꺾으면 나오는 아주 기본적인 무기이자, 잡템이다.
 
  지금 내가 이 나뭇가지를 왜 꺼냈냐면, 그것은 바로 장비 강화 전 치르는 나만의 독특한 장비 강화법 때문이다.
 
  강화가 되지 않은 나뭇가지를 한 번씩 강화하여, +7강 이후의 나뭇가지가 강화에 실패하여 터지면 원래 강화하려던 장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강화를 하는. 소위 말해 제물을 바치는 강화법이다.
 
  “시작해볼까.”
 
  이 루틴은 긴장을 풀고 행운을 불러오는 내 나름의 미신적인 행동이긴 하다만, 나는 이게 효과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걸로 재미를 몇 번 봤었으니까.
 
  어쨌든.
  게임을 시작하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써왔던 방식대로 나는 장비를 강화하기 위한 루틴을 시작했다.
 
  “후흡!”
 
  호흡을 참고 손에 들린 망치를 내리친다.
 
  까앙!
 
  모루 위에 놓인 나뭇가지와 만난 망치에서 맑은 울림이 퍼지며 내 눈앞에 강화가 성공했음을 알리는 시스템 문구가 떠올랐다.
 
  [강화에 성공하여, 『+0 나뭇가지』가 『+1 강화된 나뭇가지』가 되었습니다.]
 
  첫 강화가 성공할 확률은 90%.
  강화 실패 시 장비가 그대로 유지될 확률은 9.99999%며 파괴될 확률은 0.00001%다.
 
  뭐, 말 그대로 그냥 속 편하게 강화하란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곧바로 『+0 티타늄 합금 도검』을 강화하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3년간 이어온 나만의 장비강화 루틴이기 때문이다.
 
  루틴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 왠지 부정을 탈 것 같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순조롭게 시작한 강화에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다시 망치를 들어 올려 힘차게 내리쳤다.
 
  까앙!
 
  [강화에 성공하여, 『+1 강화된 나뭇가지』가 『+2 더욱 강화된 나뭇가지』가 되었습니다.]
 
  강화가 되면 될수록 더욱 웅장해지는 수식어를 보며 다시 망치를 내리친다.
 
  이것은 신성한 행동이고, 의식이며 강화할 장비에 깃든 티끌만큼의 사이한 확률을 물리치는 간절한 기도다.
 
  까앙!
 
  [강화에 성공하여, 『+2 더욱 강화된 나뭇가지』가 『+3 매우 강화된 나뭇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흘러...
 
  까앙!
 
  장인의 손길로 한땀 한땀 망치를 내리치던 나는 어느덧 +14강이 된 나뭇가지를 보며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강화에 성공하여, 『+13 엄청나게 강력해진 나뭇가지』가 『+14 말도 안 될 만큼 엄청나게 강력해진 나뭇가지』가 되었습니다.]
 
  “...어라?”
 
  스트레이트로 +14강.
  +13에서 +14로 성공할 확률이 0.3%밖에 안 되니까 지금까지 대충 미친 확률을 뚫었다는 말이 된다.
 
  “지금 내 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미다스의 손이라도 깃든 것인가.
 
  나는 잠시 망치를 옆에 내려놓고 왠지 빛나고 있는 것만 같은 손을 바라봤다.
 
  “여기서 파괴가 안 되면...?”
 
  모루 위에서 기묘한 빛을 내뿜고 있는 나뭇가지 하나.
 
  나는 ‘루틴 따윈 버리고 바로 장비 강화를 해야 했었나?’와‘성공하면 서버 최초로 +15강을 달성한 걸 기뻐해야 하나?’와 같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망치를 들어 올렸다.
 
  스윽.
 
  어쨌든 루틴은 루틴.
  성공할 확률이 0.1%에 실패 시 유지되는 확률 없이 확정으로 파괴되는.
 
  ‘뭐 이딴 확률을 만들어 놨어.’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절로 떠오르는 확률이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 내가 하는 이것은 신성한 행동이고, 의식이며 강화할 장비에 깃든 티끌만큼의 사이한 확률을 물리치는 간절한 기도였기에.
 
  “하앗!”
 
  나는 호랑이 등에 탄 사람의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은 채 망치를 내리칠 수밖에 없었다.
 
  까앙-!
 
  그 어느 때 들었던 소리보다 맑고 영롱한 울림이 귓가에 퍼지고.
 
  나는 턱 끝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느끼며 살며시 감은 눈을 떴다.
 
  “해치웠나...?”
 
  ‘해치웠나’가 아닌, ‘해치워야만’ 했다.
 
  원래 이 루틴에 ‘성공’이란 단어는 존재해선 안 되니까.
 
  그렇기에 이것이 강화할 장비에게 바치는 제물이고 의식이며 신성한 행동인 거다.
 
  그러니 반드시.
  강화할 장비에 깃든 티끌만큼의 부정도 대신 받아야 할 이 나뭇가지는 파괴되어야만 했다.
 
  “스읍...”
 
  숨을 깊게 들이쉰 나는 조심스럽게 뜬 눈으로 천천히 앞에 뜬 시스템 문구를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강화에...”
 
  눈알을 조심스럽게 굴려 다음 글자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야를 옮긴다.
 
  “ㅅ....”
 
  눈에 들어온 시옷이란 자음을 본 나는 성공이란 생각에 다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정녕 성공해버리고 만 것인가? 오늘 내게는 실패란 단어가...어?!’
 
  착각했다.
 
  “싯팔. 성공이랑 실패 둘 다 자음이 시옷이잖아!”
 
  그렇다.
  실패와 성공은 둘 다 시옷이란 자음을 쓴다.
 
  잇새 사이로 자음을 내뱉은 나는 갑작스레 머리를 타고 도는 아드레날린에 감고 있던 눈을 확 뜨며 자음 너머에 있을 미지의 세계를 확인했다.
 
  [강화에 성공하여, 『+14 말도 안 될 만큼 엄청나게 강력해진 나뭇가지』가 『+15 궁극의 나뭇가지』가 되었습니다.]
 
  땡그랑.
 
  힘이 풀린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바닥과 거친 마찰음을 내며 튕겨나는 망치.
 
  “이게 왜...”
 
  나는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나 버린 상황에 절로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풀썩.
 
  동시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회한, 후회, 미련, 절망, 공포.
 
  이런 내 기분 따윈 상관없다는 듯이 시스템은 내가 문구를 확인한 직후, 성공했음을 알리는 팡파레를 터트리며 업적 달성을 알리는 문구를 차례로 띄웠다.
 
  [최초로 +15강 업적 달성에 성공하여 특전이 제공됩니다!]
 
  “시발...”
 
  모루 위에 놓인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나뭇가지 하나.
 
  힘없이 나뭇가지를 주워든 나는 인벤토리에 대충 던져넣으며 떨리는 손으로 시스템이 알리는 특전을 확인했다.
 
  [원하는 한 가지 소원을 적으면 시스템이 정한 인과율 측정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자체적인 판단을 통해 가능한 수준에서 소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소원...?”
 
  그렇다.
  성공해서는 안 될 의식이 성공했다지만, 어쨌든 내게는 그 의식으로 인해 얻은 특전이라는 부산물이 있었다.
 
  특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림과 동시에 공포에 물들어 패닉에 빠졌던 이성이 빠르게 돌아왔다. 직후, 나는 특전에 어떤 것을 적어야 할지에 대해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흐음...”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소원.
  그중 나는 앞으로 해야 할 행동을 떠올리며 가장 필요한 소원을 시스템이 띄워 올린 빈칸에 적기 시작했다.
 
  [강화를 실패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 무엇보다 간단하고 가장 필요한 소원 아닌가.
 
  [인과율 측정 중···]
 
  시스템은 특전 칸에 적힌 내 소원이 들어줄 수 있는 것인지를 가늠하듯 인과율인지 뭔지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되나?”
 
  솔직히 특전이라고 해도 만약 된다면 저만한 사기는 없을 거다.
 
  그럴 것이 [에프터데이]에서 장비를 강화하는 행위는 장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한다는 의미였으니까.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별거 아닌 나뭇가지도 +5까지 강화하면 나뭇가지가 철검보다 강력한 성능을 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바로 이 게임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강화의 의미다. 물론,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아무 장비나 강화할 순 없었다.
 
  장비마다 만들어진 재료에 따라서 강화 가능한 최대 강화 수치란 개념이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로 정해진 정도를 벗어난 수준의 강화를 한다면 해당 장비는 딱 ‘한 번’ 쓰는 순간 파괴되는 기현상을 맞이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강화 정보란에 있는 정보일 뿐이고 직접 겪어본 적은 나뭇가지 외엔 없지만.
 
  [인과율 측정 완료.]
 
  잠시 잡념에 빠진 사이, 어느새 시스템은 인과율인지 뭔지에 측정을 끝마친 듯, 내가 원하는 소원의 수리 여부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인과율 측정결과, 플레이어 강현성님이 적은 소원은 들어줄 수 없는 소원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싯팔. 그럼 그렇지. 이걸 들어주면 나라도 어이가 없겠다.”
 
  본능적인 실망과 이성적인 수긍을 동시에 겪은 나는 계속해서 뜨는 시스템 문구를 차분히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자체적인 판단을 내린 결과, 플레이어 ‘강현성’님에게 인과율의 허용 범위 내에서 수용이 가능한 특전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두 가지의 선택사항이라.”
 
  턱을 긁으며 고민하는 내 앞으로 시스템은 두 가지 선택사항을 보여주었다.
 
  [1. 강화 시 성공확률을 대폭 올린다.]
  [2. 실패 시 파괴라는 옵션을 없앤다.]
 
  “이것이...특전?!”
 
  시스템이 제시한 각 선택사항의 세부적인 변동사항을 훑어본 나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가락을 들어 하나의 특전을 눌렀다.
 
  [2번 특전이 맞습니까?]
 
  “응.”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2번.
  시스템이 제시한 1번 특전도 사기적이긴 했지만, 거기엔 ‘파괴’라는 모든 것을 잃는 옵션이 존재했다.
 
  하지만 2번은 어떤가.
  ‘실패’라는 확률은 있어도 ‘파괴’라는 단어는 없다.
 
  이 말은 장비를 강화할 재료만 있다면 얼마든지 파괴의 부담에서 벗어나 마음껏 눌러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부담 없이.
  속 편하게.
 
  지금까지 [에프터데이]를 플레이하며 애지중지하던 장비가 가루가 돼버리는 파괴의 쓴맛을 톡톡히 본 나로선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선택지는 없었다.
 
  [플레이어 ‘강현성’님이 선택하신 특전은 서버가 통합되는 익일 오전 00시부터 적용됩니다.]
 
  “좋아. 아주 좋아.”
 
  시스템은 그것을 끝으로 용건이 끝났다는 듯이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받은 특전으로 기분이 좋아진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0 티타늄 합금 도검』을 꺼내 모루 위에 올리고선 망치를 집어 들었다.
 
  +1강은 해놔야 지금까지 한 모든 루틴이 의미가 있으니까.
 
  후웅!
 
  경쾌하게 모루에 놓인 『+0 티타늄 합금 도검』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곧이어 들릴 소리는 맑고 청량한 소리-
 
  빠각!
 
  “응?”
 
  좋지 않은 울림과 듣기만 해도 몸이 굳는 불길한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
 
  굳은 몸으로 간신히 고개를 돌려 눈앞에 뜬 시스템 문구를 바라본 나는 미쳐버린 운빨에 그 상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강화에 실패하여, 『+0 티타늄 합금 도검』이 파괴되었습니다.]
 
  ...
  ...
  ...
 
  0.00001%를...
  싯팔!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좆나게 운수 좋은 날이었다.

댓글(117)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2.11.01 17:59
검치우    
잘보고가요
2022.11.01 20:19
조나로무    
ㅋㅋㅋㅋㅋ 골 때리네
2022.11.02 00:46
    
ㅋㅋㅋ 왜 강화함
2022.11.02 08:08
초특급힐러    
하루만 참지
2022.11.02 14:01
zdsaafa    
그걸 못 기다리냐
2022.11.02 23:11
술법자    
시스템이 다음날 적용한다고 해는대 , 바로 날리는 주인공
2022.11.03 07:45
lucci8    
주인공 빡대가린가?
2022.11.03 10:07
마아카로니    
2022.11.03 13:07
2n*******    
0.1%..? 이거 픽업이벤이죠?
2022.11.0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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