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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22.12.08 조회 37,902 추천 610


 오랜만이었다. 컴퓨터앞에 앉는 것도.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는 것도.
 
  "....."
 
  자연스레 업데이트 소식에 눈길이 갔다.
 
  여섯 번째 직업인 [네크로맨서]의 추가.
 
  게임을 다섯 번 플레이하며 모든 직업을 즐겼다. 이제 6회차를 시작할 차례다.
 
  물론 모든 캐릭터를 만렙까지 키우지는 않았다. 그래도 즐길 만큼은 충분히 플레이했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홀짝이며 스크롤을 내린다.
 
  [네크로맨서]
  - 사령 군주가 되어 이 땅에 흑마법의 깃발을 꽂으십시오.
  - 드래곤과의 전쟁 이후 150년,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은 인류를 구원하십시오. 혹은 파멸시키거나.
 
  이 게임은 직업이 추가될 때마다 세계관 속 시간이 흐른다.
 
  스토리 상 다섯 번째 영웅인 마법사 캐릭터가 추가된 이후로 150년이 흘렀다. 그것만 알고 가면 충분했다.
 
  "어디보자..."
 
  [캐릭터 생성]
 
  버튼을 누르자 외형 선택 화면이 나타났다.
 
  네크로맨서라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창백한 흰 피부, 흑발, 흑안. 삐쩍 마른 몸뚱아리.
 
  언제나 그렇듯 큼지막한 거시기까지 무심하게 설정한 뒤 다음 버튼을 눌렀다. 캐릭터 능력치 설정이다.
 
  [사령학 재능 : 15/20]
  [독술 재능 : 15/20]
  [혈술 재능 : 15/20]
 
  설정할 수 있는 재능 능력치는 20이 한계다.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능력치 중 어느 하나에 집중 투자한다면 특화 테크를 탈 수 있을 터다.
 
  뼈독네크, 조폭네크, 시폭네크 등등, 다양하겠지.
 
  하지만 직업 관련 능력치를 전부 15로 맞춰놓으면 모든 빌드를 전부 즐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힘, 민첩, 행운 따위의 기본 능력치는 포기해야 했지만 상관 없었다. 아이템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간신히 사람 구실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맞췄다.
 
  이 게임은 싱글 플레이 게임이었으니 즐겁게 한 회차만 플레이하면 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마우스를 클릭했다.
 
  "...이건 뭐야?"
 
  캐릭터 특성 창이 눈 앞에 떠올랐다. 눈을 찌푸린 이유.
 
  전에 없던 부분이 추가됐다.
 
  "패널티를 추가하고 보너스 능력치를 얻는다..."
 
  캐릭터의 성격과, 타고난 특성은 게임을 플레이 하는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였다. 눈썹을 긁적이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선천적 기형아]
  [시체 성애]
  [혐오스러운 생김새]
 
  선천적 기형아는 말 그대로 사지 중 하나를 상실한 채 시작하는 패널티였다. 휠체어 타고 돌아다닐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시체 성애 또한 마찬가지. 아무리 게임이라 할지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세계관 속 여럿 존재하는 네크로맨서에 관한 인식을 생각해봤을 때, 돌 맞아 죽기 딱 좋은 디메리트였다.
 
  혐오스러운 생김새 또한 별 생각 없이 넘겼다. 게임이라고 한들 못생긴 캐릭터로 플레이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몇 가지 디메리트 특성을 쭉쭉 내리자 쓸만한 게 눈에 들어왔다.
 
  [원소 불감증]
  - 원소 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흑마법 뿐입니다.
  -사령학, 독술, 혈술 추가 능력치 + 5
 
  이 게임의 마법은 두 종류로 나뉜다.
 
  원소마법과 흑마법.
 
  내가 능력치를 배분한 혈술, 독술, 사령술은 흑마법의 하위 분류에 속한다.
 
  흑마법의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했으나 게임이라는 특성상 그걸 전부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플레이어가 수많은 흑마법적 지식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 가장 대중적인 세 가지 스킬트리만 배울 수 있게 구현했겠지.
 
  어차피 이번 회차는 시체 군단을 일으켜 두들겨 패고 다닐 생각이었으니 전혀 아쉬울 것 없는 디메리트다.
 
  강력한 대군 마법?
 
  이미 즐겨 봤을뿐더러 스켈레톤 100,000마리 소환해서 전장을 쓸어버리면 그게 대군마법이 될 터였다.
 
  성채를 한방에 박살내버리는 초월 마법?
 
  글쎄. 본 드래곤을 갖다 박으면 그 어떤 성채라도 쉽게 무너트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강력한 사령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레벨을 올려야 할 터다.
 
  대적자를 때려잡고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는 것. 그리하여 세계관 속 미션들을 하나하나 클리어하는 것이 게임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이 특성을 선택한다면 내가 만든 캐릭터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네크로맨서가 되겠지.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고난과 역경을 전부 씹어먹을 그런 캐릭터가 될 터.
 
  그 과정에 원소 마법은 필요 없었기에 아쉬움은 남지 않았다.
 
  [원소 불감증] 항목에 체크한 뒤, 마지막 특성을 살핀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
  - 진정으로 죽음을 극복한 자는 지금껏 세상에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 아크리치archrich, 데미갓demigod마저 죽음을 유예했을 뿐, 사후에 찾아오는 공허를 편린이나마 엿본 자는 단 한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당신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재능을 얻게 됩니다. 그 대가로 스타팅 포인트에서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 사령술사로서 필요한 덕목. 평정심, 영혼교감, 시체 탐지 등의 재능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 죽은 자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이 언제나 죽음에게 쫓기기 때문입니다. 혹은 죽음을 사랑하거나.
  - 당신의 능력은 첫번째 죽음과 함께 개화합니다.
  - 사령학 + 10
  - 독술, 혈술 + 5
 
  꽤나 어이없는 설명에 헛웃음이 나온다.
 
  한번의 죽음을 경험한다고?
 
  당연히 체크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건 게임이니까. 현실 세계의 내가 죽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낸 캐릭터 시트는 꽤나 화려했다.
 
  치트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 마냥 최대치의 천장을 뚫어버리는 모습.
 
  프로그램상 오류인지, 개발자들이 작정하고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안배한 건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패널티 같지도 않은 패널티를 얻게된 이 캐릭터는 내 손짓에 따라 시체로 이루어진 백만대군을 일으켜 세상을 정복하리라. 그리하여 인류를 구원하거나, 파멸시키거나. 둘 중 하나일 터였다.
 
  딸각.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
 
 
  쩔그럭.
 
  삐쩍 마른 사내가 몸을 움직였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낯설다.
 
  서늘한 쇠의 감촉이 목과 손목, 발목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철퍽!
 
  누군가 뱉어낸 토사물이 사내의 발치에 튀었다. 누런 빛깔의 오물이 풍기는 시큼한 냄새에 사내는 본능적으로 헛숨을 들이켰다.
 
  "컥, 쿨럭."
 
  가래가 가득 낀 듯한 소리.
 
  "이게, 무슨."
 
  시야가 어두웠다가, 점차 밝아졌다. 멍청하게 흐렸던 정신이 서서히 또렷해진다. 그가 인상썼다.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전 처음보는 장소에 팔다리가 묶인 채 감금되어있는 게 아닌가.
 
  쩔그럭, 쩔그럭!
 
  몸을 움직여보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않는다. 우악스럽게 몇 번 잡아당기자 팔목이 시큰했다.
 
  "......"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팔목이 아니었다. 앙상한 뼈가 툭 튀어나온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로 말라 비틀어진 팔뚝. 갈비뼈.
 
  창백한 피부 아래로 핏줄이 도드라졌다.
 
  철컹, 철컹.
 
  몸을 움직일 때마다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거칠게 울려퍼졌다. 그 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힌 건.
 
  "소용 없어."
 
  "......"
 
  사내는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본다. 붉은 수염을 가진 남자였다. 토사물을 수염에 덕지덕지 묻힌 채 조소하는 수염 남자.
 
  "소용 없다고 젊은이. 5구역의 그림자에 잡혀들어온 이상. 스타폴에서 살아나가기는 글렀어."
 
  "...스타폴? 5구역?"
 
  처음 듣는 이름에, 사내는 그 뜻이 뭐냐며 되물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퍽이나 낯설다는 감상을 느끼며.
 
  그에 수염 남자가 인상을 팍 썼다.
 
  '너는 병신이냐?'하는 눈빛이다.
 
  눈치껏 스타폴이 지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럴듯한 변명을 갖다붙인다.
 
  "...외지에서 온지 얼마 안 돼서."
 
  "인구수 300만을 자랑하는 대도시가 뭔지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설마 구역 개념도 모를 정도로 깡촌에서 온 거냐?"
 
  끄덕.
 
  피부가 창백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수염 사내가 뭐 이런 새끼가 있냐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쯧. 너도 더럽게 운 없는 놈이군."
 
  "운 말입니까?"
 
  "그래."
 
  붉은 수염의 입에서 스타폴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이 위치한 장소는 5구역의 검투 경기장.
 
  스타폴 법률의 검투 허용 범위는 처형 경기, 혹은 검투사들끼리의 명예로운 대결까지다.
 
  검투 경기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는 반면 질 좋은 범죄자들의 수는 언제나 부족하기에, 뒷골목 거렁뱅이들을 잡아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둔갑시키는 일이 있다고.
 
  "...그런 게 가능합니까?"
 
  "치안대에게 돈 몇푼 쥐어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직접 범죄자를 추적해 잡아 오는 것과 길거리의 쓰레기를 주워 범죄자로 둔갑시키는 것. 뭐가 더 쉽겠나?"
 
  "......"
 
  흑발의 사내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나 잡아다 감방에 쳐넣은 뒤 '너는 지금부터 범죄자다.' 라고 말하면 범죄자가 된다는 논리 아닌가?
 
  "삐쩍 말라서 강도짓도 제대로 못 할 것 처럼 생겼는데. 너도 그런 식으로 잡혀들어온 것 같군."
 
  "그럼 당신은?"
 
  사내가 물었다. 눈 앞의 붉은 수염 남자 또한 자신처럼 억울하게 끌려온 것인지.
 
  "나? 식인."
 
  떳떳하게 자신의 죄목을 밝히는 붉은 수염의 뻔뻔함에 사내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왜 인간을..."
 
  "몰라. 태어날 때부터 그냥 먹고 싶던데. 으흐흐."
 
  붉은 수염이 미친놈이라는 걸 깨달은 사내는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더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손과 발에 묶인 쇠사슬의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
 
  그가 가만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복기했다.
 
  낯선 세상에 떨어졌다.
 
  삐쩍 마른 몸뚱아리와 창백한 피부, 언뜻 보이는 검은 머리칼로 봤을 때 그가 만들어낸 네크로맨서 캐릭터에게 빙의했으리라.
 
  가진 거라고는 땀냄새가 짙게 풍기는 면 옷 하나. 바지 하나. 그리고 말라 비틀어진 몸뚱아리 뿐이다.
 
  '하임이었지. 아마.'
 
  들뜬 손으로 캐릭터 시트 위에 입력했던 이름을 떠올려낸 그가 눈을 감았다.
 
  '...말도 안 되는.'
 
  어이가 없다고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민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게임 속 세상으로 떨어졌다면, 믿을 구석이라고는 패널티 두 개를 추가하고 획득한 네크로맨서 재능 뿐일 터.
 
  이 몸뚱아리에는 분명 말도 안 되는 재능이 깃들어있다. 하임은 자신이 설정한 패널티를 떠올려낸다.
 
  원소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패널티인 [원소 불감증]
 
  그리고...
 
  텅! 텅!
 
  "처형 경기 시작 10분 전이다. 모두 죽을 준비하도록."
 
  경비원들이 철창을 두드리며 알려왔다.
 
  10분 뒤 죽게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자신이 선택했던 특성에 관한 내용이 떠올랐다.
 
  특성 [죽음에서 돌아온 자.]
 
  죽음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망자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는 설정.
 
  - 당신의 능력은 첫번째 죽음과 함께 개화합니다.
 
  특성 설명란의 문구를 기억해낸 하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이 정해져있었기 때문이다.
 
  "......"
 
  그가 처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은 능력 발현을 위한 튜토리얼쯤 되는 단계로 보였다.
 
  텅! 텅!
 
  "5분 남았다. 쓰레기들. 준비는 끝났나?"
 
  사형수들을 조롱하며 철창을 두드리는 경비원들을을 가만히 바라보던 하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았다.
 
  "하아아."
 
  뱉어낸 숨결이 거칠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충분히.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는 끔찍한 결론이 내려졌다.
 
  죽음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감과 두려움을 억지로, 억지로 잡아누른다.
 
  1분이 1초처럼 빠르게 흘렀다. 하임의 목덜미를 향해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댓글(20)

소설중독신    
기대됨!
2022.12.17 20:08
묘한인연    
패널티//페널티 것 마냥//것처럼
2022.12.18 07:00
StarPicker    
사지멀쩡하게 죽어야할텐데.. 재밌게 잘 봤습니다
2022.12.21 16:07
만초    
거시기 크기 정할수 있는거 보면 야겜아님?ㅋㅋㅋㅋㅋ
2022.12.23 00:31
레아즈    
네크로 빌드 한정 건강한 레녹?
2022.12.26 04:10
어림없지    
현실에서 죽는게 조건이 아니엇구나 ㅎㅎㅎ
2022.12.27 21:26
st*******    
야설쓰는것도 아닌데 거시기 어쩌고 할때마다 무슨생각으로 쓰는지 모르겠다
2022.12.29 05:07
제르미스    
생각들 좀 해보셈 싸펑이 거시기 크기 늘리고 줄인다도 야겜임?
2022.12.30 03:52
참새모이    
죽음 좋아! 시공 좋아!
2022.12.30 13:46
별가別歌    
게임 빙의한 내가 화이트 하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와그작
2022.12.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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