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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전설(Rebirth Legend) [비상(飛上)을 꿈꾸는 아이]

2015.04.06 조회 35,812 추천 759


 @ 비상(飛上)을 꿈꾸는 아이.
 
 난 날고 싶다.
 아, 물론 진짜로 날고 싶단 얘기는 아니다.
 이 빌어먹을 병원 침대에서 벗어나 달려나가고 싶단 뜻이다.
 난 많이 아프다.
 그리고 치료도 불가능하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은 흔히 사람들이 불치병이라 얘기하는 병 중 하나다.
 근이영양증.
 정확한 병명은 근디스트로피(muscular dystrophy).
 나 같은 경우는 대략 4살 즈음에 증상이 나타났고 7살 무렵부터 거의 누워서만 지냈다. 그 뒤로 15년을 더 누워서 지내는 중이다.
 나는 근디스트로피에서도 뒤시엔느 근육퇴행위축이라는 경우에 속했는데 의사선생님은 제대로 얘길 해주지 않았지만 내가 대충 여기저기를 찾아본 결과 아주 좋지 않은 케이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뒤시엔느 근육퇴행위축 환자는 지적 능력 저하도 동반했었는데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더 똑똑했다.
 그냥 똑똑한 게 아니라 아주 많이 똑똑했다. 신은 나에게서 몸의 모든 근육을 빼앗아 갔지만 대신 남들과 다른 뇌를 선물한 느낌이었다.
 이건 공인된 테스트를 받아서 확인까지 한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난 누워서 책을 읽는 것도 힘겨워했다. 그런 나에게 무슨 기대 같은 걸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내 삶에 기대를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저 난…… 이루어질 수도 없는 환상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내 이름은 정연욱.
 너무나 날고 싶지만 절대 날 수가 없는 날개 꺾인 새 한 마리…… 그게 바로 나다…….
 
 
 * * * *
 
 “이건 정말 제대로 던질 수 있으면 가히 마구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구나.”
 지금 연욱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은 ‘실전야구기술’이란 것이었다. 연욱은 그 책에서 흔히 너클볼이란 공에 대한 모든 것을 적어놓은 부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중이었다.
 그의 옆에는 수많은 책이 쌓여 있었다.
 책들은 모두 각종 스포츠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냥 일반인들이 읽는 평범한 책들부터 전문가들이나 읽는 연구논문 같은 것까지 연욱은 다양한 스포츠 관련 서적을 즐겨 읽었다.
 그랬다. 연욱은 스포츠를 무진장 좋아했다.
 특히 야구, 축구, 이종격투기, F1, 골프 같은 경우는 진짜 미쳤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광적으로 좋아했다.
 물론 몸을 움직일 수 없기에 그저 좋아하는 걸로만 끝나야 했지만 그러한 현실 때문에 연욱은 더 미친 듯이 그것들을 파고들었다.
 그는 벌써 14년째 스포츠 관련 서적들을 매일 몇 권씩 읽었기 때문에 적어도 이론적이 부분에서는 누가 와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 정말 던지고 싶다.’
 너클볼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글을 읽던 연욱은 옆에 책들과 함께 놓여 있던 야구공을 집어 들었다.
 평범한 야구공이었지만 연욱은 이걸 들고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는 책도 들고 읽지를 못해 책상에 내려놓고 읽는 신세였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야구공을 던져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젠장…….”
 짜증과 함께 욕이 치밀어 올라왔지만, 옆에서 졸고 있는 간병인 아주머니 때문에 꾹 눌러 참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연욱의 집은 꽤 부유했다. 아버지는 대기업의 유능한 간부였고 어머니는 잘나가는 패션디자이너였다.
 그래서 연욱은 최고의 병원에서 이렇게 VIP 병실을 차지하고 누워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연욱의 부모는 바빴다. 그들도 처음 연욱이 아플 땐 여느 부모들처럼 연욱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연욱의 병세가 장기화되자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솔직히 연욱도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진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바쁜 일상을 살기 때문에 자신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동생이 태어난 이후 더욱 자신을 찾는 횟수가 부쩍 줄어든 것은 살짝 서운했지만, 요즘은 그것마저 이해하고 있었다.
 ‘어차피 난 곧 사라질 존재일 뿐이니까…….’
 담당 의사는 늘 연욱에게 희망을 얘기했지만 이미 연욱은 자신이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운동을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연욱은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잔디밭에선 몇몇 꼬마 애들이 축구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그는 머릿속으로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운동했다.
 야구공을 던지고…… 축구공을 차고…… 다른 이들과 링 위에서 싸우고…… 멋진 F1포뮬러 자동차를 몰고…….
 할 수 있는 운동은 뭐든지 머릿속에서 해보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일까? 우연히 책에서 보고 따라 한 명상(冥想)은 마치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너무나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연욱은 신(神)이 자신의 몸을 빼앗아 간 대신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한 정신력을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연욱은 시간이 날 때마다 명상을 하며 자신이 꿈꿔왔던 것들을 머릿속에서 제법 또렷하게 완성했다.
 하지만 아무리 포장을 해도 이 모든 것은 머릿속에서만 유지되는 상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좀 더 막말로 얘기하면 결국 이건 망상(妄想)일 뿐이었다.
 현실에서의 연욱은 야구공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는 근이영양증 환자일 뿐이었다.
 “던지고 싶다…… 뛰고 싶다…… 날고 싶다…….”
 너무나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연욱.
 하루하루 간절하게 원하고 또 원했지만, 현실은 언제나 시궁창이었다.
 그는 그날도 어김없이 꿈을 꾸었다.
 축구장에선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있었고 야구장에선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옥타곤에서는 챔피언이 되어 수많은 이들이 쏟아내는 환호성을 듣고 있었다.
 그는 늘 이런 꿈을 꾸었다. 세상에 모든 운동의 정점에 올라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최고의 스타가 되는 꿈.
 그 꿈들은 거울에 비친 그의 간절한 욕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 * * *
 
 너무나도 깊어진 명상의 경지 때문인 걸까?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었을까?
 연욱이 곧 올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최후의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늦게 그에게 찾아왔다.
 가빠지는 호흡…….
 그동안 끈질기게 잘 버텨왔지만 결국 호흡근까지 말썽을 일으키자 더는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호흡근 쪽이 이상을 보이면 더 이상 희망은 없었다.
 ‘결국, 단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하고 죽는 건가?’
 호흡이 힘들어지며 의식마저 희미해졌지만, 연욱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나…… 자신이 그토록 해보고 싶었지만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각종 운동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연욱은 모든 게 야속하게 느껴졌다.
 야구공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는 저주받은 몸뚱이.
 자신을 병실에 홀로 놔두고 잘 찾아오지도 않은 부모님.
 심지어 결국 자신을 치료하지 못한 의사까지도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원망이 커지자 이젠 아예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마저 억울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몸뚱이로 단지 ‘생각’만 30년 동안 해왔건만 하늘이 그것마저 빼앗아 가는 게 너무나도 원통했다.
 ‘나에게 시간을…… 조금만 더 시간을 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원망하던 연욱. 그런데 문득 그런 그의 머릿속에 어디선가 읽었던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歲月本長 而忙者自促 (세월본장 이망자자촉)
 세월은 본래 길지만 바쁜 자들은 스스로 촉박하다 하고,
 天地本寬 而鄙者自隘 (천지본관 이비자자애)
 천지는 본래 넓으나 속된 자들은 스스로 좁다고 하며,
 風花雪月本閒 而勞攘者自冗 (풍화설월본한이로양자자용)
 바람, 꽃, 눈, 달은 본래 한가한 것이지만, 일에 바쁜 자들은 스스로 번거롭다고 여긴다.
 
 읽었을 당시에는 아무런 의미 없이 넘겼던 글귀.
 그런데 죽기 직전에 불현듯 이 글귀가 떠올랐다.
 그리곤…… 세상이 갑자기 이상하게 변했다.
 ‘느려졌다.’
 글귀를 떠올린 그 순간 세상이 갑자기 느려졌다. 물론 느려진 것에는 연욱 역시 포함되었다.
 느려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느려지지 않은 것은 연욱의 ‘생각’뿐이었다.
 ‘이건 뭐지?’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던 연욱이었지만 세상이 한없이 느려지며 아직도 살아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욱이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느려진 세상 속에서 이상한 이질감을 느끼며 생각을 계속할 수 있을 뿐이었다.
 ‘죽기 직전에는 누구나 경험하는 그런 것인가?’
 연욱은 자신이 경험한 이 현상이 죽기 직전의 사람에게 찾아오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죽기 전에 느긋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는 걸까? 뭐가 됐건…… 그리 유쾌한 시간은 아니네.’
 평탄한 삶을 살았다면 돌아볼 게 많았겠지만 오로지 아팠던 기억만 가지고 있는 연욱에겐 돌아볼 삶이라는 게 아예 없었다.
 그저 후회만 있고 아쉬움만 있을 뿐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좋다. 제발…… 내 의지대로 내 몸을 움직여보고 싶다.’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비상(飛上)의 꿈.
 하지만 그것은 결국 꿈으로만 끝이 났다.
 느려졌던 시간이 한순간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곤 연욱의 호흡도 완전히 끊겼다.
 적어도 연욱이 기억하는 자신의 삶은 딱 여기까지였다.

댓글(33)

포스아인    
즐감하고갑니다
2015.04.06 19:11
푸스파스    
잘보고갑니다
2015.04.06 19:17
musado0105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2015.04.06 19:29
00oo00    
형광등 아프지도 않곸ㅋㄱ 수은때문ㅇ피하느거지뭐
2015.04.06 19:49
로또네    
감사합니다
2015.04.06 19:51
조카    
즐감하고 갑니다.^^ 언제나 건투를 빕니다!!!
2015.04.06 21:40
산방학    
수은 흡입하면 골로가요
2015.04.06 23:41
태양과바람    
감사합니다
2015.04.06 23:43
혼수상태    
지나치게 조급해하는게 아닌지.. 꼭 빠르게 감각을 단련할 이유도 없는데요.. 그냥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것들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돈 안드는 걸로는 밤에 산을 전속력으로 달리는것도 그 위험성이 길거리 싸움보다는 몇배나 높아 보이고요..
2015.04.06 23:49
[탈퇴계정]    
평소보다는 약간 굳어 있었다 -> 굳게 만들었다 뭐가 이렇게 쉬어? -> 쉬워 저 녀석의 턱이 오른손 훅을 -> 턱에 잘보고갑니다ㅎ
2015.04.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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