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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1)

2022.12.23 조회 50,087 추천 953


 “김 대리, 이번 주간 보고서 취합 아직이야?”
 
 “네, 거의 다 돼 갑니다.”
 
 “지난주 업무회의 내용 알지? 웬만하면 큰 문제 아니고선 한 달 안에 해결 가능하다고 적어.”
 
 네 보고서는 네가 써야지 왜 나한테 떠넘겨 놓고 지랄이야? 말이 좋아 취합이지 짬 때리기다.
 
 종일 폰으로 너튜브나 보고 주식이나 하는 주제에 유일하게 하는 일이 고작 자기 업무 떠넘기기라니. 덕분에 나는 이 부서에 오고부터 단 한 번도 금요일 야근을 면해본 적이 없다.
 
 띠링.
 
 그렇게 한참 키보드를 두들기던 와중에 문자 한 통이 왔다.
 
 「〈부고〉
 김춘배 님 별세.
 빈소: 월산 장례식장
 발인: 12월 24일 10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다. 유일한 손자인 나를 유독 아끼셨던 분이기도 하고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키워주신 고마운 분. 부모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지난 세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덕분에 나에게는 할아버지가 부모님보다 더 각별했다.
 
 나이가 들고 회사 일에 치인다는 핑계로 방문이 뜸해진 지난날이 죄송스러웠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은 법. 할아버지는 어느 날인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셨고 그렇게 의식이 없으신 채로 병원에서 지내시게 되었다.
 
 의식이 없으신 채 두 달 동안 병상에 누워계시면서 나름의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도 막상 세상에 할아버지가 안 계신다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작별은 30이 넘는 나이가 되어도 담담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뚝뚝.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삐리리.
 
 [아버지]
 
 점점 흐려지는 문자 화면이 통화연결 화면으로 바뀌었다.
 
 “네.”
 
 (문자 받았지? 위중하신 기색은 없으셨는데 갑자기 호흡이 멈추셨다고 하더구나. 우리도 지금 출발하니까 조심해서 내려와라.)
 
 통화를 끊고 한동안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청년이라기에는 어중간하게 늙어버린 30대의 눈물은 흉하다. 젊은 시절의 격동하는 감정이 담기지도 않고 경험 많은 노인의 애환이 담기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감정을 추스른 뒤 최 부장의 자리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 부장님.”
 
 “왜에?”
 
 최 부장은 먼지가 잔뜩 낀 안마기로 등을 두들기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오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제가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 김 대리, 설마 발인까지 다 보고 올 거야?”
 
 “네?”
 
 “아니, 부모님 상도 아니고 할아버지 상인데 그거 꼭 쉬어야 해? 오늘 퇴근하고 잠깐 다녀오면 될 거 아냐.”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하, 시발.”
 
 “뭐, 뭐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시발이라고 했다. 저 오늘 그만둡니다.”
 
 “야! 야! 김 대리!”
 
 뒤에서 최 부장이 고래고래 내지르는 소리가 이리 하찮은 줄 몰랐다. 평소 같으면 후배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면전에 대고 인신공격을 해대는 탓에 조금만 언성이 높아져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었다.
 
 저 무섭고 큰 사람이 결국 퇴사를 결심하니 한없이 별 볼 일 없는 아저씨가 된다.
 
 진작 나올 걸 그랬나?
 
 굴지의 대기업에 무기계약직으로 성과는 없이 책임만 떠안고 언제 잘려 나갈지 모르는 불안의 연속. 이렇게 버티다 직급이 올라가도 결국 한직을 전전하다 끝날 운명이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을 때만 해도 뛸 뜻이 기뻤지만, 그 실체는 옷을 벗고 나갈 순서를 기다리는 자살특공대나 다름없었다.
 
 서울 본사 건물에서 근무하는 것만으로도 무기계약직으로서는 엄청난 행운이다. 다른 무기계약직들은 부산으로, 강원도로, 마치 소 팔려 가듯 이리저리 철새처럼 돌아다닌다. 저 뱀 같은 최 부장도 그걸 알기에 나에게만 유독 막말을 일삼았다. 자기 눈 밖에 났다간 나도 그런 꼴을 당할 테니 말이다.
 
 이젠 다 필요 없게 되었다.
 
 “야! 인마! 김 대리! 너 지금 말 다 했어? 이 새끼는 할아버지 죽은 게 무슨 벼슬이야? 이리 안 와?”
 
 또 선을 넘는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머리에 필터가 없이 쏟아내는 게 최 부장의 악질적인 성격이다. 그것도 아랫사람에게만.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최 부장의 코앞까지 걸어갔다.
 
 “나 과장 단 지 2년째야, 새끼야. 지금까지 네 프로젝트 매출이랍시고 계열사 하청에 돌려막기 한 거 그대로 사내게시판에 올려줄까? 너 지금 잘리면 갈 데나 있어? 곱게 그만둔다잖아. 옛정을 생각해서.”
 
 “너, 너!”
 
 최 부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저 자식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싶다. 하지만 나도 현실을 살아야 한다.
 
 나름 이쪽에서 성실하다고 입소문이 난 상태다. 이직해도 여기보다는 못하지만, 꽤 괜찮은 업체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만약 내가 최 부장을 시원하게 보내고 나면 이쪽 업계에는 발도 딛지 못한다. 내부고발자를 원하는 회사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
 
 아쉽지만 욕설 섞인 반항으로 지난날의 쌓인 감정을 날려야 했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 인트라넷에 접속해 저장해둔 사직서를 결재라인에 업로드했다.
 
 클릭 두 번.
 
 재작년에 작성해서 저장해둔 사직서가 그렇게 허무하게 올라갔다.
 
 회사원은 누구라도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어둔다 했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나 대신 이 궁상맞은 노트북이 대신 품고 있었을 뿐.
 
 인수인계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철야와 주말 출근을 하며 열정적으로 일했던 과거의 성과들은 모두 정규직들의 진급에 쓰였다. 남은 거라곤 파티가 끝난 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유지보수 업무들이 전부.
 
 또 누군가 맡을 것이다.
 
 나처럼 비빌 언덕 없는 또 한 명의 무기계약직이.
 
 그도 나처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길 바랐다. 가장은 이 모욕과 수치를 그저 견딜 수밖에 없을 테니까.
 
 ***
 
 퇴근 시간 막힌 도로를 뚫고 조금 늦게 도착한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사뭇 밝았다.
 
 평생을 남양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아오신 할아버지다. 이미 의식이 없으실 때부터 외아들인 아버지와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었고 동네 사람들은 이미 죽음에 익숙한 분들이다.
 
 건배만 하지 않았지, 술자리는 시끌벅적했고 상주인 아버지 대신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의 말동무로 제법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때 이놈이 선풍기에 손가락이 끼어서 김 영감이 소달구지를 타고 읍내로 데려갔다니까.”
 
 “아이고, 큰일 날 뻔했제.”
 
 “하하하······.”
 
 벌써 5번도 더 들은 이야기다.
 
 이제는 아득한, 나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추억이다. 하지만 멈춰진 시간을 사시는지 어르신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이야기하신다. 그 횟수가 문제지만.
 
 얼큰하게 약주가 들어간 어르신들은 했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누군가 한 명쯤 말릴 법도 했으나 그때마다 다들, 마치 처음 드는 이야기처럼 리액션이 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가 계시던 동네 작은 분교를 폐교되기 직전까지 다녔던 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 뒤로 명절에나 들을 수 있는 귀한 손님이 되었다. 어르신들에게 동네를 제 운동장처럼 쏘다녔던 어린아이와의 재회는 오랜 친구의 죽음 못지않게 반가웠나 보다.
 
 “참, 방앗간 최 씨는?”
 
 “안 그랴도 마을회관에 보냈어. 금방 올겨. 저 오는구먼.”
 
 장례식장 입구에는 결재 파일을 손에 든 방앗간 아저씨, 아니, 이제는 할아버지라 불러야 할 분이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잘 벗겨지지 않는지 연신 다른 발로 구두를 눌러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 앞까지 왔는데 내가 그걸 까먹어 가지고서리 다시 돌아갔다니까.”
 
 “늙었는가배.”
 
 “그래도 저 자슥이 우리 중에 제일 젊은데 벌써부터, 에잉.”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자전거로 쌀 배달을 하던 그대로셨다.
 
 “자. 니 할배 유언장. 예전에 동사무소에서 사람이 나와가 이거 다 적으라 하데? 자식에게 남길 거 있으면 남기라믄서. 니 할배 꺼다.”
 
 건네받은 싸구려 결재 파일은 사용하지도 않았을 텐데 모서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와 속살이 보였다.
 
 「유언장
 
 유언자 김춘배는 이 유언서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유언한다.
 
 1. 유언자는 다음 부동산을 손자 김민호(1988년 4월 14일생)에게 증여한다.
 -경기도 남양주시 평곡동 관옥리 34길 53-2. 민호 문방구.
 -위 토지 건물 일체 99.17㎡
 -위 주택 내에 있는 가재도구 기타 물품 일체
 
 작성일: 2002년 10월 28일
 
 유언자 김춘배 (인)」
 
 문방구의 상호를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그때는 자식이나 손자 이름으로 가게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었나 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내 이름이 박힌 문방구가 30년 넘게 간판이 걸려 있었다는 사실은 민망한 일이다.
 
 유언장의 맨 아래에는 다운받은 홈페이지의 주소가 찍혀 있었다. 인터넷에서 어설프게 받은 양식이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다.
 
 하다못해 은행의 공증도 없었다. 그저 어르신들끼리 마을회관에 모여 복사한 양식에 대충 적어 냈겠지. 어르신들다운 발상이다. 나름 머리를 맞대고 자기 죽음을 준비했을 이들에게는 남겨진 자식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유언장이 과연 법적 효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문방구에 사업자등록도 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상속자는 아버지가 아니라 나다.
 
 “오매! 그라믄 문방구는 이제 김 씨 손자가 대물림하는가?”
 
 “아, 핵교도 망하고 없는 마당에 무슨! 그냥 팔아치워야지.”
 
 “다 쓰러져가는 문방구를 누가 사준다고 판다그려? 그냥 놔두든지 해야지.”
 
 유언장 내용이 궁금했던 어르신들이 우르르 몰려와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버지, 괜찮을까요?”
 
 아버지를 건너뛰고 나에게 유산을 남기신 모양새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일이지만 그런 일로 흉을 잡아 소문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이곳에 있지 않다는 보장도 없다. 나는 일을 그만둔 몸이지만 아버지는 아직 공무원으로 요직에 앉아계셨다.
 
 “마지막 바람이신데 원하는 대로 해드려야지. 네가 알아서 하거라.”
 
 “네.”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땅과 재산 대부분을 받으셨다.
 
 집안 내력인지 모두 큰 욕심이 없다.
 
 아버지도 공무원 출신으로 이미 정년을 바라볼 나이가 되셨음에도 그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오래된 차 한 대가 재산의 전부였다. 아마 할아버지께 받은 땅과 돈도 대부분 그대로 놓아두셨으리라 짐작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유산을 가지고 치고받을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가지고 계시던 작은 문방구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
 
 재개발은커녕 이제 있는 사람마저도 하나둘 떠나 빈집이 더 많은 시골 동네 문방구. 값으로 치면 오히려 처분하는 데 돈을 써야 할지도 모를 애물단지다.
 
 하나뿐인 손자에게 그런 짐을 안기실 분이 아니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할아버지께선 아마 문방구에서 놀기 좋아했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떠올리셔서 그랬을 터.
 
 사직서도 내던지고 앞날이 막막한 마당에 혹 하나 더 붙었다 해서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시골 폐교 앞 문방구의 주인이 되었다.

댓글(37)

n7***************    
어릴 적에 문방구 진짜 좋았는데 요새는 문구점 없어요
2022.12.25 16:59
Adana    
상속세 많이 물었나용 ㅠ
2022.12.28 13:10
컴뱃    
쳐음 문자와 유언장의 할아버지 성함이 다르네요
2022.12.29 13:06
별가別歌    
갈 때나 있어? - 갈 데나 있어?
2022.12.31 18:37
브라이언    
남양주 시골 어르신들이 왜 호남 사투리를 쓰죠? 경기도 사투리가 아니라?
2023.01.04 07:21
모모시맘    
대기업의 무기계약직이 과장을 달수있나요?
2023.01.06 19:10
가시올빼미    
사표는 이해갑니다만 너무 급발진인듯.
2023.01.07 11:06
나이프    
건필하세요
2023.01.07 18:18
n2************    
직장 생활하며 느끼는건데 한국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벼랑끝에 몰려 있더군요
2023.01.08 17:08
sublimatio    
아놬ㅋㅋㅋㅋ 저 나이때의 제법 흔한 이름이 하필 주인공 이름 ㅋㅋㅋㅋㅋㅋㅋㅋ
2023.01.0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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