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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데 검사입니다 1화

2022.12.23 조회 20,396 추천 236


 -쏴아......!
 
 
 2010년. 9월 12일. 새벽 1시.
 
 가을밤에는 추적추적 우울한 비가 내렸다.
 
 늦은 시간인데다가, 비도 많이 내려서 강남역의 거리에는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모두가 잠에 빠진 그 시간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남역 앞에 있는 한국대학교 병원의 의사들이다.
 
 
 
 한국대학교병원 3층의 흉부외과 병동.
 
 어둠이 깔린 병동 복도를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거칠게 뛰어오더니
 
 304호라고 적힌 방문을 열고 환자 옆에 있는 노가영 간호사에게 말했다.
 
 
 "노가영 간호사."
 
 "아아...! 부교수님? 오셨어요.."
 
 
 그런데 도자기 같이 새하얀 그녀의 얼굴이, 지금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덕분에 병실에 뛰어든 김세민 부교수는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채고,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 시간에 응급 콜이라니. 집에서 자다가 급하게 뛰어 왔어요. 그나마 5분 거리라서 다행이지. 쯧쯧..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나까지 부른 거예요? 이강철 레지던트가 옆에 있었을 텐데."
 
 "죄송합니다. 김세민 부교수님! 갑자기 환자가 심부전이 왔는데.... 당직인 이강철 선생님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해서요. 환자 담당인 부교수님을 불렀어요."
 
 "일단 환자부터 봅시다."
 
 
 심부전.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말초기관에 산소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상태. 호흡곤란 등을 유발한다.
 
 
 늦은 시각. 갑자기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는 입원환자 때문에, 큰 소동이 벌어졌다.
 
 병동 당직을 맡은 이강철 레지던트가 환자를 진정시키지 못하자, 급하게 흉부외과 부교수가 쫓아오고 난리가 났다.
 
 
 김세민 부교수가 못마땅한 얼굴로 이강철을 쳐다보고 나서
 
 환자의 상태를 살피니,
 
 희끗한 머리에 며칠을 굶은 것처럼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섬망과 호흡 곤란에 간질처럼 몸을 떠는 증상이 있었다.
 
 그가 퇴근하기 전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기 때문에, 환자의 차트를 살펴봤다.
 
 
 
 "부정맥의 일종인 심방세동 환자....!"
 
 "헉!! 헉!!!!! 끄어어....사..... 살려....! ㅈ... "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환자.
 
 부정맥 환자가 심부전 까지 오면, 상당히 위험해진다.
 
 부교수는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며 간호사를 불렀다.
 
 
 "일단 환자 차트부터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김진호 환자. 64세.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지 않는... 부정맥의 일종인 심방세동으로 입원했고, 다음 주에 수술을 앞두고 있군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갑자기 악화될 상태는 아니었는데... 혹시 제가 오후 4시에 퇴근한 후에 추가적으로 약을 투여한 사실이 있나요? 차트에는 안 적혀 있는데.."
 
 "환자가 저녁식사를 한 후에, 당직의 이강철 선생님이 베타차단제를 복용시켰어요."
 
 "내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환자의 심장을 늦추고 혈압을 감소시키기 위해 하루 세 번, 식 후에 먹으라고 했죠. 심장이 건강해져야, 다음 주에 수술을 할 수 있거든요. 근데 왜 이렇게 몸을 떨지? 분명 베타차단제 복용량은 겨우 10MG 밖에 안 되는데.."
 
 
 이 환자는 평소 빠른 심장박동을 느리게 하기 위해,
 베타 차단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에 과도한 양을 복용한다면, 이렇게 심부전이 올 수 있다.
 
 
 김세민 부교수가 퇴근하고 6시간 동안 이루어진 처치는, 환자의 약 복용 밖에 없었다.
 
 그는 혹시나 경험이 적은 이강철이 약을 과다 복용시켰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저 무능한 놈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수능을 삼수해서 의대에 들어온 레지던트 이강철은 병원에서 유명할 정도로, 의사 체질이 아니었다.
 
 성실한 게 유일한 장점이었지만, 손은 곰처럼 느렸고 의사로서의 자질이 전혀 없었다.
 
 
 천재들만이 모여 있다는, 한국대병원에서
 
 그는 나 홀로 둔재였다.
 
 밤을 새워서 시험공부를 해도, 항상 성적이 좋지 못했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상 실습을 했지만, 간단한 시술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이강철에게는 의사로서의 재능이 1도 없었다.
 
 그래도 항상 무던하게,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도맡아했기에 레지던트까지는 달았다.
 
 오늘도 이강철이 다른 사람의 당직까지 대신 서다가 문제가 터졌다.
 
 
 부교수는 레지던트 이강철의 인성과는 별도로, 그가 정말 골 때릴 정도로 무능하다는 것에 짜증이 치솟았다.
 
 그리고 이강철이 무언가 실수를 한 것 같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부교수는 의심 가는 것부터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빨리 수액 가져오고 약물 과잉검사부터 하세요. 환자 상태가 이상합니다."
 
 "예! 부교수님."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의사 두 명과 간호사 한 명이 부교수의 지시에 따라, 부산스럽게 응급처치를 했다.
 
 평소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빨라지는 심방세동 환자라, 아주 잠시 동안의 심부전도 한순간에 환자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환자는 크게 고통스러워하며 기절했다.
 
 
 "끄어어억!!"
 
 "환자가 의식을 잃었습니다. 부교수님!"
 
 "이.... 이건....! 다 틀렸어..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열심히 응급처치를 주도하던, 김세민 부교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침상에서 뒷걸음질 쳤다.
 
 그의 생각에는 이미 환자가 죽은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당직의 이강철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더 이상 부교수가 지시를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을 확인하고, 슬리퍼를 벗고 환자의 몸 위로 올라갔다.
 
 
 
 "헉! 헉!!! 꺼어억!!!"
 
 
 그리고 환자의 호흡을 다시 한 번 살핀 이후에, 두 손으로 깍지를 끼고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심정지가 왔습니다. CPR 시행하겠습니다."
 
 심부전이었던 환자가 눈을 까뒤집으며, 더 심각한 상태인 심정지로 악화되었다.
 
 
 -심정지
 심장이 완전히 멈추면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다.
 
 
 그러면 피가 멈춰서 피부에 파란색의 청색증이 나타난다.
 
 김진호 환자의 머리에 벌써 파란 핏줄이 흉측하게 올라와 있었다.
 
 이강철은 넋이 나간 부교수를 대신해서, 최선을 다해서 CPR을 시행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계속 바이탈 상황 체크해 주세요. 간호사님!"
 
 "바이탈 변화 없습니다!"
 
 "하나! 둘! 셋! 넷!!!"
 
 아직 레지던트 2년차인 이강철이 열심히 환자의 가슴을 두 손으로 누르며, CPR을 했지만 환자의 상태는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심장에 자극을 주기 위해 에피네프린을 요청했다.
 
 
 "후..... 후....... 간호사님 에피네프린 정맥주사 1mg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벌써 심정지가 온지 1분이 지났기 때문에, 그는 조급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CPR은 강한 체력을 요구하기에, 호흡도 고르지 못했다.
 
 이강철은 급한 호흡을 다스리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고 건네받은 정맥 주사기를 환자에게 주사했다.
 
 에피네프린을 주사한 후에 이강철은 변화를 기대하며 물었다.
 
 
 "바이탈 변화 있나요?"
 
 "변화 없습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환자는 희망이 없었다. 심지어 김세민 부교수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러나... 이강철은 동요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시했다.
 
 
 "그럼 심장 충격기 주세요. 차지 100줄!"
 
 "차지 100하겠습니다!"
 
 "모두 떨어지세요!"
 
 -빠각!!!
 
 "차지 200줄!"
 
 -빠각!!!
 
 "다시 한 번 가겠습니다. 차지 360줄!!!"
 
 
 이강철의 땀방울이 사방으로 튀었고 호흡이 가빠졌지만, 그는 쉴 새 없이 CPR을 실시했다.
 
 그때 힐끗 모니터를 쳐다본 노가영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환자의 상태는 아무 변화 없습니다! 여전히 심정지 상태입니다."
 
 "그럼 다시 한 번 CPR 실시하겠습니다!"
 
 "이강철 선생님! 하지만 환자는 이미...."
 
 "아니요. 아직 살릴 수 있습니다. 간호사님은 에피네프린을 추가로 투여해주세요!"
 
 "예!"
 
 
 ..... 그렇게 전쟁 같은 5분이 지나고,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이강철의 간절한 바람이 통한 것일까?
 
 옆에서 그를 돕고 있던, 노가영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드디어 환자의 바이탈에서 변화가 목격되었다.
 
 
 "이강철 선생님. 환자의 심장이 돌아왔습니다!!!!!!"

댓글(12)

Queenone    
잘보고 갑니다
2022.12.23 22:27
세비허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2022.12.24 12:13
홍국영    
음ᆢ새벽? 한시 초저녁이고 불야성일걸ᆢ비가오나 눈이오나
2022.12.24 17:43
산마    
이미 현실에도 의사출신 검사 있을텐데ㅋㅋㅋ
2022.12.27 18:52
n2**************    
법 검사 말고 차라리 칼 검사였으면
2023.01.01 08:29
2008빼꼼    
정교수도 아니고 부교면 자기환자 차트에 적힐만한 기본적인건 알고있지 않나? 응급콜받고 자정넘어 병원에 들어왔는데 그때서야 환자차트를 확인한다고??
2023.01.06 01:40
공고쌤    
인턴도 아니고 부교수가 심정지왔다고 정줄을 놓는다는게 더 이상한데요
2023.01.06 16:48
world33    
벌써 피곤하네
2023.01.07 05:25
레자르.    
부교수가 저런 상황 한두번도 아닐텐데 처치도 안하고 정신줄 놓고 있는다고? 최고대학병원 부교수가?
2023.01.14 21:59
물물방울    
연재시작을 축하합니다.
2023.01.2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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