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2,800조 사우디 재벌집 만렙 아들

2,800조 사우디 왕세자

2022.12.26 조회 75,814 추천 1,079


 “이재용 회장이다!”
 “어디어디?”
 “일단 카메라부터 가져와!”
 
 호텔 로비는 오늘 기자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사우디 왕세자 빈 살로만이 어젯밤 이 호텔에 도착한 것이다.
 
 “저쪽에 정의선 회장이야!”
 “일단 사진부터 찍어!”
 
 정의선 회장이 차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몸싸움이 치열하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재벌들이 벌떼처럼 한 곳에 모이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그 바쁘신 양반들이 모든 스케줄을 뒤로 미루고 한날한시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난다긴다하는 재벌 회장들도 사우디 왕세자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지?”
 
 김 차장이 내게 말했다.
 
 “재산이 2,800조인데 그럴 수 밖에 없죠. 그런데 왕세자가 갑자기 무슨 일로 한국에 왔습니까? 혹시 네옴 시티 껀 입니까?”
 
 내 말에 김 차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잘 알고 있구만.”
 
 사우디에서 얼마 전에 초대형 신도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네옴 시티, 더 라인.
 
 수 백조원을 들여 서울의 44배가 넘는 SF형 신도시를 사막 한 가운데에 건설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수행원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그렇다면 미리 사람을 보냈을 터다.
 
 “200명이 넘어. 2주 전에 미리 보냈다는 구만. 객실 400개를 사용 중이고 개인 요리사에 메이드까지 데려왔어.”
 
 김 차장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 정도 규모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JK 회장을 따라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그도 이런 규모에 적응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MBS가 사실상 사우디 왕이니까요. 그에 걸맞은 의전을 해야 할 겁니다. 이 정도 규모는 현지에 비하면 오히려 약과에요.”
 
 난 하얀 천막으로 가려진 왕실 전용 차량을 보며 말했다.
 
 “MBS···? 그게 무슨 말이야?”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로만을 줄여 현지에서는 MBS라고 부릅니다.”
 
 “그으래? 역시 사우디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구만.”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내가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거야. 통역하는 놈들은 영 시원치 않아서 말이지. 사우디 방언 좀 섞였다고 못 알아듣는다는 게 말이 돼?”
 
 김 차장이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그 바람에 잠시 몸에 중심을 잃고, 경호원이 지키고 있는 가림막 쪽으로 몇 걸음 옮기게 되었다.
 
 “어이, 거기! 뒤로 물러 서!”
 
 무장 경호인이 김 차장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가림막에 더 다가서지 말라는 엄포다.
 방탄 헬멧에 방탄조끼, HK416C 소총까지 손에 들고 있다.
 
 종로 한복판에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난 일단 김 차장을 부축해 가림막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아이, 치사하게 구네. 너무 한 거 아니야?”
 
 김 차장이 투덜거렸다.
 
 “흠··· 다행인 줄 아셔야 할 겁니다. 현지에서는 왕실 차량에 접근하는 사람에게 말로 경고하지 않아요. 일단 총기로 후려치고 봅니다.”
 
 김 차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돼! 21세기에 그렇게 야만적으로 구는 국가가 있다고?”
 
 “중동의 몇몇 국가는 21세기가 아니라, 18세기라 생각하시는 게 속 편 합니다. 오스만 제국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허허···.”
 
 김 차장이 허탈하게 웃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도 사실이야? 빌 살로만 왕세자가 7천 명이 넘는 왕자들을 칼츠 호텔에 가둬놓고 몽둥이찜질로 충성 맹세를 시켰다는 거?”
 
 “사실입니다. 그리고 언론에 보도된 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요. 탈출한 왕자 헬기를 로켓포로 쏘아 떨어트리는 장면도 봤습니다.”
 
 김 차장의 벌어진 입이 다물지 못 했다.
 
 중동의 권력 다툼은 야만적이다.
 현대판 왕자의 게임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허··· 자네는 진짜 중동 전문가가 다 되었구먼.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역시 통역은 현지에서 살던 사람이 해야 돼.”
 
 립 서비스가 좋다.
 김 차장은 몇 년 못 본 사이 사람을 더 잘 다룰 줄 알게 된 것 같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가?
 
 “고맙습니다. 이번에 승진하셨다면서요?”
 
 “뭐, 승진이랄 것도 없지.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야. 그나저나 이번에 중동에서 일은 좀 성과가 좀 있었어?”
 
 “뭐··· 지난번과 비슷했습니다.”
 
 “그래···? 아쉽게 됐구만.”
 
 김 차장이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그는 내 개인적인 사정을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사우디에서도 성과가 없었어?”
 “네.”
 
 난 내 뿌리를 찾아 오랜 기간 중동을 헤맸다.
 특히 아버지가 사우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제보를 받아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생활비는 어떻게 하고···?”
 “돈 되는 건 이것저것 다 했습니다.”
 
 JK 통신이 철수하고 난 뒤 현지에서 먹고 살기 위해 안 해 본 게 없다.
 
 “자네 생활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구만. 사막 한 가운데서 홀로 살아남다니. 그때 나랑 같이 귀국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구먼···.”
 
 “저는 차장 님이랑 상황이 좀 다릅니다. 지방대 출신이 올라가 봐야 어디까지 올라가겠습니까?”
 
 JK 그룹은 학연을 중요하게 여긴다.
 현장에서 구르다 운 좋게 해외 파견까지 나가게 됐지만, 본사에서 과장 이상 승진은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네 눈은 왜 그렇게 빨간 가? 잠을 한숨도 안 잔 얼굴인데? 오랜만에 일이라 긴장했나?”
 
 “그건 아닙니다. 키우던 개가 어제 무지개다리는 건너서 말 입니다···.”
 
 난 일부러 무심하게 얘기했다.
 사사로운 감정을 일에 연관 시키고 싶지 않았다.
 
 “흐음··· 그 마음 내 잘 알지. 나이가 많아지니까 나도 점점 변하더라고.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나 봐. 눈물이 많아지고 감성적으로 변하게 됐어.”
 
 “······.”
 
 “나도 개를 키워봐서 알지만 짐승이 사람보다 나은 경우가 많아. 내가 아파도 걱정해주는 개 밖에 없더라고···.”
 
 “···?? 형수님과 아이들은 아직도 귀국 안 했습니까?”
 
 “대학 졸업하면 귀국 한다고 하더니 아예 그 쪽에 자리를 잡을 모양이야. 둘째 녀석도 대학을 가야 하니까 얘들 엄마도 거기 있어야겠지.”
 
 김 차장은 쓸쓸히 중얼거렸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JK에 입사해 운 좋게 황금 라인을 잡아 탔지만, 현재는 나와 같은 기러기 아빠 신세다.
 
 “자네는 어떤가?”
 “저도 뭐 비슷합니다.”
 
 중동에서 돌아왔더니 와이프가 이혼 요구를 해 왔다.
 
 돈만 벌어다 주고 가정과 아이에게 충실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현재는 이혼 숙려 기간이라 떨어져 살고 있다.
 
 “아이쿠, 내가 괜한 걸 물어본 모양이군. 미안하게 됐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솔플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래···, 그 말이 맞지. 그걸 왜 총각 시절에 못 깨달았을까?”
 
 김 차장은 씁쓸하게 웃었다.
 
 — 삘리리
 
 전화가 울린다.
 
 JK 그룹 미래 전략실에서 온 전화였다.
 
 “네! 실장 님! 알겠습니다!”
 
 김 차장은 결연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포토 타임 끝나고 이제 비공식 회담이 시작된다는구만. 우리 차례야. 빨리 올라가지.”
 
 우리는 호텔 보안 검색대를 지나 위로 올라갔다.
 
 
 
 *
 
 
 
 미스터 에브리띵(Mr. Everything)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남자.
 
 사우디 왕세자, 빈 살로만의 별명이다.
 
 ‘그 별명이 아주 잘 어울리는 광경이군.’
 
 우리나라 재계 거목들이 좁은 소파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다.
 
 교무실에 불려간 학생들처럼 다소곳하게 앉아, 빈 살로만의 눈치를 본다.
 
 마치 어미 새가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 참새들 같았다.
 
 그런데.
 
 【4,832조】
 
 빈 살로만 머리 위에 숫자가 등장했다.
 
 ‘???’
 
 난 눈을 크게 뜨고 그 숫자를 세어보았다.
 
 4,832조라니?
 밤을 새서 헛것이 보이는 건가?
 
 【669조】
 
 그런데 헛걸 본 게 아닌 모양이다.
 나란히 앉아 있는 재벌 총수들 머리 위에도 숫자가 하나씩 뜨기 시작했다.
 
 【85조】
 【26조】
 【13조】
 
 깜짝 놀라 눈을 비벼보았다.
 숫자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왜 아직도 피곤해? 청심환이라도 하나 줄까? 몇 개 챙겨왔는데···.”
 
 김 차장이 소곤소곤 물어왔다.
 
 “아, 아닙니다. 잠시 헛 게 보여서···.”
 
 난 조용히 말했다.
 현장 분위기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형식적인 대화만 짧은 영어로 오갈 뿐 아무도 잡담을 하지 않았다.
 
 “영어는 필요 없어. 현지어를 들을 줄 알아야 해. 중요한 정보는 현지어로 상의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잘 알고 있지?”
 
 “네.”
 
 난 수첩을 꺼내 사우디 스태프 사이에 오가는 사담을 적어나갔다.
 예전 같았으면 모두 암기 해 버렸을 텐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 기억력이 영 좋지 않다.
 
 “거기 잠깐!”
 
 누군가 날 지목했다.
 
 보좌진 중 유독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였다.
 
 “무슨 일 입니까?”
 
 난 애써 태연한 척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스마트폰은 안 된다고 미리 경고 했을 텐데?!”
 
 “오해 하지 마십시오. 이건 작고 귀여운 수첩일 뿐입니다.”
 
 난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 수첩을 흔들며 영어로 말했다.
 아침에 딸아이 방에서 급히 챙겨나온 수첩이다.
 
 그리고 이 자는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몇 년 전 사우디에 잠입 했을 때 먼 발치에서 본 적 있다.
 직급은 왕실 경호차장 쯤 된다.
 
 “그럼 이건 뭐지?”
 
 경호차장이 내 손목을 낚아챘다.
 
 “진정하세요···. 이건 단지 펜일 뿐입니다. 저는 제임스 본드처럼 펜으로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너스레를 떨어본다.
 
 경호 차장 눈이 매섭게 변했다.
 왕세자를 보호하는 경호원들은 대부분 이렇게 고지식하다.
 보안을 핑계로 별의별 트집을 다 잡는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쉬운 사람이 적응해야지.
 
 중동은 어쌔신의 발원지라 그런지 유난히 보안에 큰 신경을 썼다.
 암살당하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다.
 
 빈 살로만에게 왕세자 자리를 물려준 사촌 형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언론에 알려졌지만 현지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지 않다.
 펜타닐에 의한 독살이라는 게 가장 유력한 소문이다.
 
 “난 그 펜을 말 하는 게 아니야. 이 반지를 좀 볼 수 있을까?”
 
 경호 차장이 내 오른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반지···?
 갑자기 반지를 왜?
 
 - 쿡
 
 김 차장이 내 옆구리를 찌른다.
 소란 일으키지 말고 그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 주라는 뜻이었다.
 
 “오케이, 보여줄게요. 이것 참··· 내 인생의 두 번째 프러포즈를 수염 난 아저씨에게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난 머리를 긁적인 다음, 적당한 농담을 건네며 반지를 내밀었다.
 프러포즈 하듯 장난스럽게 무릎을 꿇는다.
 
 내 나름의 항의 표시였다.
 
 “큭큭···.”
 
 내 행동에 주변 스태프들이 입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통 했나?’
 
 계속된 농담에 현장 분위기가 좀 풀어졌다.
 여러 사담이 오가고 시작한다.
 
 ‘잘 됐군.’
 
 경직된 분위기에서는 다들 말을 아끼고 귓속말을 하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취득할 수 없다.
 
 이제 쓸만한 정보가 흘러 나올 것이다.
 
 “······.”
 
 하지만 경호 차장은 내 농담을 못 알아들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계속 반지를 꼼꼼히 살폈다.
 
 - 쿡
 
 김 차장이 팔꿈치로 다시 내 등을 찔렀다.
 엄지손가락을 펼친다. 잘 대처했다는 의미였다.
 
 “흠흠, 이 반지를 고귀하신 왕자 님께 보여드릴 수 있을까? 아마 흥미를 보이실 것이다.”
 
 반지를 살피던 경호 차장이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뭐, 그렇게 하시죠.”
 
 말투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동 왕자들은 돈 자랑을 즐겨한다.
 특히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그게 얼마가 됐든 무조건 사고 보는 심리가 있다.
 
 ‘어쩌면 좋은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군.’
 
 잘 됐다 싶었다.
 
 오늘 내가 이 곳에 온 이유는 단순히 일당 벌이를 하러 온 게 아니었으니까.

작가의 말

신작 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댓글(45)

as******    
하루에 1화씩 올리시는건가요? 몇시쯤 올리실예정인지도 궁금합니다
2022.12.26 13:13
cj*****    
연참해주세여
2022.12.26 14:02
탁란뻐꾸기    
내로라하는
2022.12.26 16:16
g2**************    
잘보고갑니다 작가님
2022.12.26 19:05
zn*****    
기름집 막내아들
2022.12.28 02:51
카타리아스    
네옴시티 총투자액 6500조 여기에 실재투자 집행액 2.5%(22년 12월 30일기준)162.5조 뉴스기준
2022.12.30 21:13
g2**************    
딸에서 그만 정신을.잃고말았습니다
2023.01.03 09:54
홈즈홈    
와 읽기 싫어
2023.01.10 09:00
OLDBOY    
잘 보고 있어요.
2023.01.11 00:24
주니서기    
내놓으라 하는? 무얼?
2023.01.12 10:38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