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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내 아내가 돈을 잘 번다

프롤로그

2022.12.25 조회 58,249 추천 889


 프롤로그
 
 
 
 “119입니다! 들리십니까!”
 쾅, 쾅, 쾅!
 있는 힘을 다해 어깨로 안쪽 문을 밀쳐냈다.
 화재로 인해 발생한 연기가 내 시야를 빼앗아갔다.
 오밤중이 되어도 이렇게 어둡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있으면 대답해주세요, 제발!”
 젖 먹던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열기로 인해 찌그러져 있던 현관문이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하려고 하던 순간, 마침 계단을 올라온 김 반장님이 나를 보자마자 윽박질렀다.
 “야, 이빛찬! 너 미쳤어? X발, 무전을 하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어?”
 반장님이 내게 무전을 하셨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나는 어떻게든 문을 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여기, 이 안쪽에 사람 목소리가 들린 거 같아서 확인해봐야 합니다!”
 “뭐? 사람이 있다고? 확실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살펴보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반장님도 빠르게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넌 저쪽 맡아라. 나는 거실 쪽 찾아볼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X발, 이 지랄맞은 불은 왜 이리도 빨리 번진대!”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반장님이 본격적인 생존자 수색에 나섰다.
 나도 주변을 샅샅이 살피면서 생존자의 흔적을 찾아 해맸다.
 그러나 아직까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방 하나 더 남았어.’
 작은 방으로 이동하려던 찰나.
 와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부엌이 무너져 내렸다.
 “이빛찬! 생존자 찾았냐?”
 “아직 안 보입니다!”
 “그럼 없는 거잖아! 우리가 X되기 전에 빨리 나가자! 얼른 와!”
 “그치만······.”
 아직 작은 방을 수색하지 못했다.
 문고리를 돌려보려고 했지만, 현관문처럼 열기에 녹은 모양인지 제대로 돌아갈 생각을 하질 않았다.
 다시 한번 힘을 줘서 문을 부수려던 찰나.
 “빨리 나오라고, 새끼야!”
 반장님이 내 팔을 잡고 강제로 끌어당겼다.
 김 반장님이 정색하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철수한다. 명령이다.”
 “······.”
 “이빛찬. 난 더 이상 내 부하 잃고 싶지 않다. 이 이상 찾았으면 없는 거야. 알겠어?”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반장님 말이 맞다는 건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재촉하면서 빠르게 빌라 계단을 내려왔다.
 우리가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퍼어엉―!
 방금 내가 생존자의 기척을 느낀 거 같다고 가리켰던 곳에서 폭발이 벌어졌다.
 등에 식은 땀 한 줄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김 반장님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생존자를 찾아 헤매다가 저 폭발에 휘말렸을지도 모른다.
 소방관이라는 일이 항상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위험천만한 직업이라는 건 항상 인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아직까지 쉽게 다스리지 못했다.
 저 안에 정말로 생존자가 없던 걸까.
 오늘따라 입맛이 쓰다.
 
 ***
 
 퇴근하려고 하던 와중에 반장님이 나를 불렀다.
 “오늘은 어디 가지 말고 집에 들어가서 얌전히 쉬어라. 알겠냐.”
 “그게······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요. 아마 거기 들렀다가 가야 할 거 같아요.”
 “어디.”
 “최성춘 할아버지 댁이요.”
 반장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에 그 난리를 겪었는데. 오늘 하루 정도는 빼먹을 수 있잖아. 그 노인네······ 아니지. 그 할아버님도 이해해주실 거야.”
 “안 돼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전기 통닭구이, 금요일에만 팔거든요. 그거 안 사다주면, 2주는 삐치실 거예요.”
 “네 친할아버지도 아니고. 자원봉사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할아버지를 무슨 3년 내내 챙기냐. 어휴!”
 천성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다.
 한숨을 쉬는 김 반장님을 보면서 같은 팀 선배가 나를 대신 변호해줬다.
 “빛찬이 같은 착한 사람이 있어야 우리 사회가 더욱 아름다워지는 거 아닙니까.”
 “나도 아는데. 그래도 자기 몸 정도는 챙겨가면서 해야지. 그러다가 빛찬이, 네가 쓰러지면 어떻게 하냐.”
 반장님의 걱정을 덜어주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팔에 가득 붙은 근육을 자랑했다.
 “괜찮습니다. 그래서 더 운동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벽 한쪽에 아직도 내가 우리 소방대를 대표로 해서 찍은 ‘몸짱 소방대원 달력’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그래. 니 팔뚝 굵다. 하긴. 저러니까 찌그러진 현관문도 몸으로 부딪쳐서 강제 개방시키는 것도 가능했겠지.”
 “그러게요. 만약에 그곳에 빛찬이 말고 저나 반장님이 있었더라면 무조건 장비 써서 열었을 겁니다.”
 “내 말이.”
 한숨을 푹 내쉰 반장님이 나를 향해 손을 저었다.
 “알았다. 그만 붙잡을 테니까 후딱 들어가 봐.”
 “할아버지한테 가는 김에 반장님 안부도 같이 전해드릴까요?”
 “됐어. 그 노친네한테 욕만 더 먹을 거다.”
 김 반장님의 말에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가방을 들고서 소방대 앞에 세워둔 자전거에 올라탔다.
 ‘날씨가 슬슬 추워지네.’
 이제 자전거 타고 다니기에는 힘든 계절이 온 모양인가 보다.
 집으로 향하는 방향을 사거리 쪽으로 틀었다.
 근처에 일주일마다 한 번씩 오는 전기통닭 트럭이 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이 기운차게 인사하는 나를 보자마자 기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도 똑같은 거로?”
 “아니요. 오늘은 한 마리만 주세요.”
 “왜?”
 “제가 입맛이 없어서요.”
 새벽부터 그 난리통을 겪어서 그런지 입에 뭔가 넣는 게 땡기지가 않았다.
 게다가 그 방에 생존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신경이 쓰이고 말이다.
 ‘현장 감식도 아직 안 끝났다고 했지.’
 바로 확인은 어려울 거 같다고 들었다.
 워낙 현장이 심각해서 며칠은 걸린다고 했는데.
 한동안 오늘의 일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 것 같다.
 “자, 여기.”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리고 이런 말하기에는 좀 미안한데. 오늘부터 나, 장사 접기로 했어.”
 “네? 왜요?”
 사장님이 아직도 손님을 기다리듯 기계 안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닭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요즘 장사가 안 돼. 그래서 그냥 다른 일을 찾아볼까 고민 중이지.”
 “그런 이유에서라면야······ 어쩔 수 없죠. 최 할아버지가 많이 아쉬워하겠네요.”
 “그러게 말이야. 우리 단골이었는데. 아무튼 나 대신해서 어르신한테 미안하다고 잘 말해줘.”
 “네, 알겠습니다.”
 “빛찬이도 그동안 고마웠고. 덕분에 즐거웠어. 여기저기 착한 일 많이 하고 다니니까, 분명 복 받을 거야.”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내가 먹을 것도 한 마리 더 주문할 걸 그랬나.
 그러면 한 마리라도 더 팔아드릴 수 있을 텐데.
 괜히 사장님한테 미안해진다.
 
 ***
 
 통닭이 더 식기 전에 빠르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최성춘 할아버지가 거주하고 계신 곳으로 향했다.
 계단을 한참 오르고 올라 도착할 수 있는 작고 허름한 단독주택.
 마침 마당에서 담배를 뻐끔뻐금 피고 있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를 보자마자 잔소리를 흘렸다.
 “어쭈? 이 녀석이. 오늘은 왜 한 마리만 사왔어? 설마 나 안주고 너만 먹으려고 그러냐?”
 “에이. 그럴 거였으면 할아버지 집에 안 왔죠. 그런데 한 마리라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검은 봉지에 감싸서 안에 담긴 닭이 한 마리인지 두 마리인지 잘 모를 텐데.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가 신기가 좀 있잖아.”
 “그랬었죠.”
 물론 반쯤은 농담으로 듣는다.
 사실 처음에는 잘 안 믿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정말로 할아버지한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증거로.
 “오늘 아침에 큰일을 겪었구만.”
 할아버지가 내가 건넨 닭다리 하나를 뜯으면서 말했다.
 오늘 화재 사건 난 것에 대해서였다.
 아직 뉴스로도 안 나왔을 텐데. 할아버지는 이것마저 알고 있었다.
 “가스관이 폭발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정확한 건 감식이 끝나봐야 알 텐데······.”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아침에 벌어졌던 화재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존자 여부에 관한 일이 떠올라서 그런 거였다.
 순식간에 닭다리 하나를 해치우고 다음 타깃을 노리던 최성춘 할아버지가 대뜸 이런 말을 흘렸다.
 “없어.”
 “네? 뭐가요?”
 혹시 내가 단무지나 아니면 찍어먹을 소금이라도 빠뜨리고 왔나 싶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말한 건 그게 아니었다.
 “없다고. 네가 수색하려고 했던 그 방에 생존자 말이야. 아무도 없었으니까 더 이상 그거 가지고 스트레스 받지 마라.”
 “······역시 알고 계셨네요.”
 “아까도 말했잖냐.”
 할아버지가 다시 한번 본인을 가리켰다.
 마치 ‘이게 나야’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해주니까 안심이 된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신기를 자랑할 때마다 궁금한 게 있었다.
 “할아버지 정도면 로또 번호도 그냥 맞히실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난 지금의 생활이 재미있어.”
 “기초생활 수급자시잖아요. 맨날 돈 없다고 구시렁 대시면서.”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이런 빈곤 체험을 하겠어.”
 나름 오랫동안 할아버지와 알고 지냈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알다가도 모를 분이다.
 대신에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요 앞 사거리에서 파는 통닭구이를 좋아한다는 거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오늘로서 마지막이다.
 “통닭 사장님, 오늘부로 장사 접으신대요.”
 “흠, 그렇구만.”
 “안 놀라시네요? 그것도 알고 계셨어요?”
 “뭐, 대충은. 조만간 장사 접을 거 같긴 했는데. 그러려니 해야지, 뭐.”
 갑자기 할아버지가 닭다리 뼈를 들고서 나를 가리켰다.
 “3년 동안 나 보살펴줬으니까. 헤어지기 전에 내가 보답으로 천기누설 하나 들려주마.”
 “네? 헤어진다고요?”
 “더 이상 이 통닭을 먹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평소처럼 나 놀리려고 농담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적당히 어울려주기로 했다.
 “너, 지금까지 네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냐.”
 “아니요.”
 “왜.”
 “만약에 제가 운이 좋았다면······.”
 과거의 기억이 잠깐 스쳤다.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저를 버리고 도망가시진 않았겠죠.”
 할아버지가 ‘쯧!’ 하고 짧게 혀를 찼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운이 나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다를 거다.”
 “그래요?”
 “조만간 너한테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올 거다. 네 운명을 뒤바꿀 기회가 될 테니까 방금 내가 해준 말, 잘 기억해둬라.”
 할아버지가 닭가슴살 하나를 찢어서 입에 털어 넣더니 처음으로 나를 향해 미소를 보여줬다.
 “그동안 성격 더러운 이 늙은이하고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고.”
 처음에는 그저 모든 것들이 농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할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
 
 소방관에게는 평일, 주말이 없다.
 사건사고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으니까.
 일요일 오전. 출근을 위해서 자전거를 끌고 길을 나서던 중이었다.
 ‘사람들 많네.’
 주말이라 그런 걸까.
 오늘따라 길거리가 북적하다.
 그런데 평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어머머, 저 애 어떻게 해!”
 “119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119라는 말에 내 몸이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5층 상가 건물 난간에 매달려 있는 작은 남자 아이의 모습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지나가겠습니다!”
 이상하다.
 할아버지가 분명 나보고 앞으로 운이 탁 트일 거라고 했는데.
 아침부터 사건사고와 마주치게 된 걸 보니, 아무래도 이번에는 할아버지의 예언이 틀렸나 보다.

댓글(27)

묘한인연    
들렸다가//들렀 멤돌 것//맴돌 궁시렁//구시렁
2023.01.01 06:28
에바트리체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1.02 00:02
fo*****    
와 신작이네요 딸 보고있었는데 아내꺼도 나오는군용
2023.01.02 11:17
도화레옹    
우리아내 라고 하면 남편이 여려명인 건가요???
2023.01.03 04:36
에바트리체    
제목은 다음 주에 변경 요청해서 수정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2023.01.07 19:41
천지패황    
딸도 잘 벌고 아내도 잘벌고 좋겠다 ㅋㅋ
2023.01.03 10:41
tower    
제목이 우리 아내가 아니라 내 아내라고 해야하지 않나요? 아내가 여러사람의 아내는 아닌데요?
2023.01.07 19:23
에바트리체    
제목은 다음 주에 변경 요청해서 수정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2023.01.07 19:40
제대로산나    
무한전생 할배인가 ㅋㅋ
2023.01.12 21:58
세비허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2023.01.14 07:59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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