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인간 낚시의 끝은 지옥행.

2023.01.25 조회 21,383 추천 354


 (1)
 도입부 쌔벼가는 새끼들 벽돌로 대가리 찍어버리고 싶다.
 
 예전부터 품어온 개인적인 갈망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나 혼자만 하는 게 결코 아닐 것이다.
 도입부 훔치기 정도야, 업계에서 흔하니까.
 
 사람들 의견 듣고 싶어서 사운드 클라이머에 올려놓으면 프로라는 놈들이 뻔뻔하게 반키만 올려서 코드를 떼간다.
 
 물론 이건 양심 있는 경우고.
 
 마이너 메이저 구성을 떼가는 게 아니라 Amj9같은 정확하기 그지없는 코드조차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떼가는 놈들도 부지기수이자 다반사.
 
 멜로디 떠가는 건 한술 떠든 놈.
 
 그게 우튜브 알고리즘에 걸려든 아이돌 연습생 BGM으로 탈바꿈 되는 건?
 
 은근 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라고 의문이 들어도 따질 수는 없다.
 
 개인이 유명인, 기업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
 
 이미 다 나올 대로 나온 조합, 왜 혼자 피해망상 걸려서 지롤하냐는 말이 돌아올 게 뻔할 뻔 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Hit! - 오늘자 20초좌 근황
 
 
 Play ->
 
 오늘도 기가 막힌 도입부 뽑아냄
 
 
 추천 : 1002
 
 
 - 와 존나 좋네
 - 저새끼는 왜 작곡을 다 안하는 거냐?
 ㄴ 안하는 게 아니라 이미 하고 있을듯.
 ㄴ 이게맛다.
 ㄴ 100퍼 프로가 심심풀이로 갖고 노는 거임 ㅋㅋ
 
 
 내 곡이 유명 커뮤니티의 메인에 올라갔다. 자주는 아니지만,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오늘도 반응은 좋네 ···.”
 
 근데 이걸 ‘곡’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기는 한 걸까?
 그냥 20초짜리 멜로디랑 코드 덩어리라 하는 게 진실에 가까운 거 아닐까?
 
 뭐 어찌 됐든 간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20초 짜리 곡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다.
 
 그리고,
 
 - 제발 끝까지 좀 만들어!!
 - 씨!!!발럼아!!!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
 
 “흐흐. 안 만드는 게 아닌데.”
 
 나는 인터넷에서 도입부 업로드 외에는 다른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사실 20초짜리 곡을 올리는 이유는, 20초짜리 곡밖에 못 만들어서라는 걸.
 
 “하아 ···.”
 
 34살.
 
 이제는 딱히 부정할 새도 없이 30대 중반이 되었다.
 아직 만으로 20살, 30초랑 20대랑 다를 바 없다, 이런 말로 자신을 위안하기에는 빼박 아저씨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느껴버렸다.
 
 “망했군.”
 
 내 인생이 망했다는 것을.
 
 예고 졸업 예대 입학.
 걸어온 발자취에 음악밖에 남지 않은 인생.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
 실제로 작곡가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작곡가가 되었다.
 
 스튜디오에 입성하여, 선임 프로듀서 발닦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마스터키보드를 잡았을 때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내가 만든 짧은 연습곡으로 미소 짓고 춤을 추던 연습생들을 보는 기분··· 말로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행복했다.
 
 다만 행복했던 시간이 짧았을 뿐.
 
 하지만 모든 문제는 그 시기부터 시작됐다.
 
 - 인트로는 좋은데··· 중반부터는 그냥 그래. 차라리 다른 사람 곡 앞에 붙여보는 게 어때?
 
 프로로서의 첫 곡을 내고서 받은 제안.
 나는 순간 그 제안을 듣고 나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인트로만 하라고?’
 
 인트로를 만들고, 그에 맞춰서 다른 작곡가가 멜로디를 보강하고 편곡까지 끝낸단다.
 
 이게 뭔 좆같은 합체 로봇 같은 소리인가 했는데, 알음알음 있을 수 있는 경우란다.
 
 그리고 ···
 
 -공동 작곡은 당연히 안 되지. 일 복잡해지는 거 몰라?
 
 당연히, 명예 또한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뭐, 어떻게 되었느냐.
 
 했다.
 
 할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나는 돈이 필요했다. 제시한 수익을 따져보면 일반적인 회사원 월급 정도는 됐으니 미래를 위한 초석으로써 사용한다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 착각이었다.
 
 깊고 깊은 착각 말이다.
 
 “익숙해져 버렸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인트로만 작곡하다 보니 원래부터 특기였던 초반부는 더 잘하게 됐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귀찮음이 매우 심해졌다.
 
 이것만 해도 먹고 혼자서 먹고 살 수 있는데, 뭣 하러 귀찮은 풀 작곡을 해야 하나?
 
 그냥 평생 이것만 하며 살아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들이, 어느새인가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태.
 
 난 나태했다.
 
 그리고 나태했기만 했으면 좋으련만···
 
 ‘병까지 있을 줄이야.’
 
 평생을 모르다 병원에 가서 뭔가 희귀병을 발견하는 상황은 그냥 드라마적 클리셰라고 생각했었는데.
 
 겪어보니까 아니더라?
 
 놀라웠다.
 
 Adhd
 
 진짜 평생을 모르고 살았는데, 집중력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단다.
 
 되돌아 보면 징후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난 언제나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어 달고 사는 아이였고, 흥미있는 걸 발견하면 모든 힘을 쏟는 주제에 이상하리만치 빨리 식었다.
 
 병명은 내가 도입부를 유난히 잘 작곡하는 이유··· 아니,
 도입부를 넘어서면 유난히 퀄리티가 수직하강하는 설명도 같이 됐다.
 
 ‘충격적이었지.’
 
 뭐,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라도 발견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치료를 시작했다.
 
 비록 지금은 20초짜리 곡이나 올려서 가끔 디쉬 힛갤이나 가는 몸이지만, 언젠가.
 
 언젠가 반드시 나만의 완벽한 200초짜리 곡을 완성해 내고야 말 테다.
 
 비록 지금은 인트로 일마저 짤려 물류센터 상하차를 뛰고 있는 몸이지만 언젠가···
 
 “일이나 가자.”
 
 시계는 이미 다섯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물론 저녁이 아닌 아침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디찬 물세수를 끝낸 뒤, 집 밖을 나섰다.
 
 부르르르르-
 찬바람이 목덜미에 닿자마자 온몸이 안마 의자처럼 떨린다. 한겨울에 걸맞은 롱패딩을 입긴 했는데 돈 아까워서 낡은 세탁기에 쳐넣고 돌리다가 안에 털이 다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춥다···”
 
 살이 애린다.
 밖의 기온과 내 인생의 기온이 같은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버틸 수밖에 없다.
 버티기로 약속했으니까.
 
 나는 상하차 물류 통근버스에 올랐다.
 그냥 묵묵하게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선한 인상의 아재의 뒷자리.
 나는 오늘도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뭐 딱히 저 아재랑 친하냐 묻는다면 그런 건 아니고.
 취향이 그쪽이냐 묻는다면 그건 절대로 더더더욱 아니고.
 
 내가 매일 여기에 앉는 것은 바로 아재의 핸드폰을 훔쳐보기 위해서였다.
 
 - 디리리링.
 
 감미로운 어쿠스틱 기타 소리의 전형적인 팝 인트로.
 버스의 몇몇 사람들은 뭔가 싶어서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딱히 그게 ‘모두’는 아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 아재가 우튜브를 볼 때 이어폰 따위는 전혀 쓰지 않는다는 것에!
 
 좌아아앙-
 
 10 초가량의 조용한 어쿠스틱 사운드가 끝나고, 일렉기타가 치고 들어왔다.
 
 까랑한 스트라토캐스터에 살짝 걸린 오버드라이브, 세븐 코드.
 뭔가,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
 
 딱 보컬이 치고 들어와 우렁차게 가사를 쏟아내어야 할 것 같은 기분!
 
 띡.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22초.
 본격적으로 곡이 시작되기에는 충분한 인트로시간이지만 보컬과 메인 멜로디를 음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야, 내가 작곡한 곡이니까.
 
 “씨!이벌!”
 
 그리고 아재의 저런 반응 또한,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왜 끝까지 안 만들어 쉬벌 ··· 시벌놈··· 쉬벌련인가?”
 
 혼자 중얼중얼 거리기 시작하는 아재.
 다른 사람들은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고 나도 처음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뭐, 길가다 가끔 보면 있지 않은가. 생각하는 게 입 밖으로 그대로 나오는 사람들이.
 
 딱히 나한테 주먹을 내지르는 것도 아니고.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쉬벌 쉬벌.”
 아재는 욕을 계속하면서도 계속해서 내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고서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벌써 몇 주 동안이나 이어져 온 나만의 루틴.
 너무나도 고된 상하차작업을 하루 동안 버틸 수 있게 만드는, 나만 아는 팬미팅.
 
 “···.”
 그렇다.
 팬이다.
 나는 현실에서 나를 좋아해 주는 팬을 만난 게 처음이었다.
 
 아무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자주 오르내린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체감해볼 기회가 없었다. 인터넷과 현실은 다르니까.
 
 ‘덕분에 포기 안 하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어요 아저씨.’
 
 상하차는 한 시간 만에 도망가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데. 과연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첫날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 아재와의 만남이, 첫날의 고통을 까맣게 잊게 해주었다.
 힘듦보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난 기쁨이 더욱 커다랬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언젠가 제대로 된 곡을 내리라.
 내 곡을 연주하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가 무언가를 느끼고 행복해하는 곡을 쓰리라.
 
 그리고 그것을 위해 ··· 이곳에서 우선 버티고, 어찌 됐든 인생을 버텨 내리라.
 
 치이잉-
 
 버스가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해도 뜨지 않은 늦은 새벽. 나는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나서 내렸다.
 
 시작 시간이 아직 남았으니 시작하기 전에 건너 유일한 편의점에서 빵이랑 우유나 사 먹으려 했는데.
 
 - 빠아아아아앙!
 
 먹는 빵이 아닌, 다른 빵이 나를 마중 나온 모양이다.
 
 “어 ···?”
 
 시끄러운 트럭 경적소리와 눈부신 상향등이 시야에 비친다.
 
 이어서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흘러갔다.
 
 처음 음악으로 번 돈을 맡았을 때의 냄새.
 
 어릴적 처음 피아노를 잡아본 기억, 존경하는 아티스트와 악수했을 때 기쁨, 낡은 마스터 키보드.
 
 지겨운 로잭 프로의 짙은 회색 기본배경.
 중고라나에서 장물 막북 팔고 감방으로 도망간 새끼.
 
 그리고···
 
 그리고 또.
 
 후회.
 
 ‘아 ··· 고맙다고 할걸.’
 
 내 인생은 그렇게 끝났다.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는 한적한 도로에서의 사고사.”
 
 아무리 친절한 목소리로 설명한들, 보잘것없는 이유였다.
 
 ··· 잠깐.
 
 “어?”
 
 “향년 34세, 한 많음, 정 깊음, 배우자 없음, 선행 많음.”
 
 난 죽었는데 ···?
 
 근데 왜 ···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이 목소리는 대체 ···.
 
 “하지만 ··· 악행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악행이라니 ··· 나 사람 안 죽였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찌 그렇게 소리쳤다는 느낌만은 확실히 들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악행은 아니지. 이 세상에는 선행보다 악행의 종류가 다양하니. 자네는 큰 악행을 저질렀네.”
 
 들려오는 의지는 아주 단호했다.
 
 그리고 서서히 ··· 주변의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밝아지기만 하면 다행인데, 뜨거워지고 있다!
 
 “자네는 지옥에 떨어질걸세. 너무 많은 사람들을 가지고 놀았어.”
 “뭔 ··· 무슨 ···.”
 “곡.”
 “아.”
 
 작곡.
 설마, 설마 내가 20초짜리 곡만 만들어서?
 인터넷에 이름 바꿔가며 띡 싸질러 놓고 도망 다니며 반응 보긴 했는데 ··· 그걸로 재미도 느끼긴 했는데···.
 
 “파렴치한 모습이었지.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즐기는 그 모습. 참이 지옥에 어울리는 인간이 아닐 수 없었다.”
 “뭐 ···?! 잠깐!”
 “열기가 느껴지는가?”
 
 뜨거웠다.
 
 죽을만큼 뜨겁지는 않았지만, 몸에 55도 정도 되는 수비드하기 딱 적당한 물을 계속해서 끼얹는 느낌이다.
 
 “이제부터··· 이제부터 제대로 할 생각이었는데.”
 “모두가 그리 생각하는 법이네. 하지만 이제부터란 건 없네. 자네는 결국 지금과 오늘만 살지 않는가?”
 
 고통 때문에 다시금 시야가 흐려졌다.
 
 목소리도 흐려졌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들려온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가,
 
 나의 정신을 일깨웠다.
 
 “자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 정도였을 걸세. 55도. 수비드하기 적당하지.”
 “···.”
 “그러니까 끝까지 좀 만들지 그랬나. 개새끼가.”
 
 
 나는 싸고 튄 죄로 지옥에 떨어졌다.

댓글(43)

無雙狂人    
재밌게 읽고 갑니다~
2023.01.31 18:14
88****    
오! 작가님 돌아오셨군요.
2023.02.04 09:38
터븀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2023.02.04 15:15
야옹고    
그정도면 비트찍고 외힙가도 먹히는 수준이란건가??
2023.02.04 23:57
에스텔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이 두개가 있는데 한가지는 말을 하다 마는것이고 두번째는
2023.02.06 18:23
동급생    
그정도로 20초가 먹힌다면 20초 짜리만 팔아도 충분할텐데
2023.02.09 13:08
Dva    
기타리스트 4회독..새로운 사료가 왓다
2023.02.15 19:40
티아멧    
이 아재가 이어폰을 유튜브 볼 때 이어폰을 <- 이어폰만 두 번 쓰셨음
2023.02.16 22:06
티아멧    
문장 두개가 합쳐진것처럼 글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좀 있어요 전체적으로...
2023.02.16 22:07
달마도사    
20초짜리 10번 만들면 되겠네
2023.02.1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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