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돌아온 천재 배우

1화 - 비운

2023.02.03 조회 322 추천 3


 1화 - 비운
 
 
 
 ―와장창
 2층 유리창이 깨지더니 검은 모자에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2층 창문 너머로 뛰어내렸다.
 남자는 착지하자마자 몸을 한 바퀴 구른 뒤 곧장 도로를 향해 달렸다.
 “잡아! 잡아!”
 건물의 1층 입구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달려 나오며 소리쳤다.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는 허벅지가 터질 것처럼 달렸다. 정장을 입은 남자들 역시 넥타이를 휘날리며 쫓아왔다.
 ―끼이이익
 남자들이 도로로 달려들자 차량들이 급정거를 했다.
 ―쿵
 그 중 한 대는 검은 점퍼의 남자를 쳤다. 남자의 몸이 보닛 위로 올라갔다가 굴러 떨어졌다.
 ―빠아앙 빵빵-
 정장을 입은 남자들도 달리는 차들을 멈춰 세우고 피하며 계속 접근해왔다.
 “큭!”
 검은 점퍼의 남자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당신 미쳤어?”
 운전자가 소리쳤다. 남자는 대꾸하지 않고 반대편 인도를 향해 달렸다.
 ···
 ··
 
 “컷! 컷! 컷! 컷!”
 확성기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거칠게 달리던 남자가 한숨을 쉬며 어깨 운동을 했다.
 정장 입은 남자들도 도로 한 가운데에서 멈추더니 다시 건물로 돌아갔다.
 “앵글 잘 나왔어?”
 턱수염이 수북하고 배가 불뚝 튀어나온 감독이 소리쳤다. 세상의 온갖 짜증을 다 머금은 표정이었다.
 “카메라는 다 돌았어요.”
 “하아. 뭔가 긴박감이 안 사는데. 저 스턴트 달리기가 느린가?”
 감독은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남자는 모자를 벗고 손을 휘저었다.
 갸름하게 날이 선 얼굴형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스턴트 배우 이찬종이었다.
 일개 스턴트 배우라기엔 눈에 띄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어 한 때 이슈몰이를 했었던 배우였다.
 “제 달리기가 느렸나요?”
 찬종이 감독 옆으로 다가와 모니터를 보며 물었다.
 “찬종이가 전국체전에서도 달리기로 상을 탄 적이 있는 녀석인데 그럴 리가.”
 무술감독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신 대답했다.
 하지만 감독의 표정은 여전히 마땅치 않은 듯 했다.
 “이게 영화 시나리오 상 킬링 포인트란 말이야. 여기서 우리 영화의 이미지가 팍 잡히는 건데 이렇게 밋밋하게 나오면 어떡하냐.”
 감독은 모니터를 연신 돌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건 찬종이 내릴 답이 아니었다. 연출자의 의도와 연기 디렉팅 대로 몸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미치겠구먼. 어차피 컷 씬은 쪼갤 거니까 찍은 건 일단 세이브 해두고. 저기, 신대범 어디 있어? 신대범.”
 “자기 밴에 있을 걸요?”
 “지가 주연인 영화인데 툭 하면 짱 박혀 있어. 빨리 불러와!”
 감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대범은 이 영화의 주연이었다. 찬종은 신대범의 액션 시퀀스를 대신 촬영해주는 스턴트 배우였다.
 “에이, X발.”
 감독은 예민함이 극에 달해 있는 듯 했다. 그는 욕을 중얼거리더니 담배를 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찬종은 모니터에 나온 자신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자신이 직접 뛰어서 그런지 몰라도 긴박함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전해지지는 않았다.
 ‘뭔가 저들만의 감각이란 게 있나보지.’
 찬종은 어깨를 으쓱였다. 순간 어깨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바늘로 어깨로 푹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차에 받힐 때 잘못 받혔나. 떨어질 때 낙법이 잘못 됐나.’
 혼자 어깨를 주물 주물하며 안마를 해보았다. 그러자 통증이 조금 가시는 듯 했다.
 감독이 담배를 다 필 때까지도, 대범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 이건 진짜 무슨 개념이야. 신대범 왜 안 와.”
 “저기 옵니다! 저기요!”
 조감독이 한쪽 골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골목에서는 찬종과 같은 옷차림의 신대범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촬영장으로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벌써 제 차례에요?”
 대범은 자다 왔는지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그 옆으로 대범의 코디가 졸졸 쫓아오며 대략적인 화장을 시켜 주었다.
 몇 번 파우더를 찍은 대범이 귀찮다는 듯 코디를 밀쳤다. 그러자 코디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다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섰다.
 “신대범 씨. 바쁘신 거 알기는 하는데 오늘 45씬까지는 찍어 놔야 하는데 어디 가 계시는 거예요.”
 “아이고, 무지 죄송합니다, 감독님. 어제 스케줄이 갑자기 늦게 끝나서 잠을 못 잤어요. 지금 어디, 어디 촬영하고 있는 거죠?”
 대범이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보았다. 빈정대는 듯한 말투에 감독은 화를 참는 듯 보였지만 무어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만큼 신대범의 몸값은 하늘을 치솟고 있었고, 영화계에서는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콘티뉴이티 보세요. 지금이-”
 “대본. 대본이요. 저, 나 대본 어디 있냐.”
 대범이 자신의 뒤에 있는 코디와 매니저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매니저가 가방에서 허겁지겁 대본을 꺼내 건넸다.
 “지금 씬이 납치됐다가 탈출하는 씬이거든요.”
 “아아. 여기. 여기. 찬종이가 하고 있겠네.”
 대범이 찬종을 보며 말했다. 찬종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대범과 찬종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방황하고 지내던 찬종은 우연찮은 기회로 액션스쿨에 들어가게 됐고 그곳에서 영화와 액션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대범은 그때 알게 된 ‘친구’였다.
 하지만 대범은 주연으로 발탁되어 대한민국 탑 클래스의 영화배우가 되어 있었고 찬종은 아직까지도 엑스트라로만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범은 언제 그와 친구였냐는 듯이 당연하게 찬종에게 갑질을 해댔다. 부당하다고 느낀 적도 많았지만, 찬종은 어디까지나 뜨지 못한 엑스트라에 불과했기에 늘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잘 하고 있는데 말이야.”
 감독은 석연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범은 찬종을 힐끔 보더니 함께 모니터를 보았다. 찬종은 내심 대범에게 짜증이 솟구쳤다.
 같은 액션스쿨 출신이니 어지간한 액션은 스스로 소화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찬종을 불러 쓰는 것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친한 친구였던 찬종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약간 힘들겠다 싶은 부분은 다 찬종에게 떠넘기는 것이었다.
 “에이. 이거, 그거 때문이네요.”
 모니터를 한 번 돌려 본 대범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현장에 있는 모두가 대범에게 시선을 모았다.
 “액션이 격렬하진 않잖아요. 꼴랑 2층에서 떨어지고, 차에 부딪치는 것도 뭐, 한 10km 속도로 가다 부딪치는 건가요. 이러니까 긴박감이 없죠. 스턴트가 이 정도는 살려줘야 하는데?”
 대범은 한쪽 입 꼬리를 올리고 말을 이었다. 찬종이 눈을 부릅떴다.
 “그럼 더 높은데서 떨어지란 소리야?”
 무술감독이 반문했다. 그러자 대범은 당연하다는 듯 모니터를 가리켰다.
 “2층에서 저렇게 떨어지는 거 누가 못해요. 고삐리들도 2층에서는 잘만 떨어지겠구먼. 액션이란 게 그렇잖아요. 아슬아슬, 위험한 걸 해결하는! 구사하는! 그런 맛인 건데 이건 초딩들 방학숙제 UCC 수준 밖에 안 되는 거죠.”
 대범이 찬종을 보며 말했다. 단 한 마디로 감독과 촬영감독, 무술감독, 찬종까지 비하하는 것이었다.
 “저기 밑에 땅도 그렇고. 오늘 촬영 내용 때문에 매트도 많지가 않은데 2층보다 높은 데서 떨어지면 위험해.”
 무술감독이 말했다.
 ‘지가 안 뛴다고 막 던지네.’
 화가 난 찬종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무어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만약 신대범이 영화 못 찍겠다고 발랑 누워버리면 아마 모든 스태프들이 그의 입맛에 맞춰주려고 할 것이 뻔했다. 모르긴 몰라도 감독과 스태프들 입장에선 투자자들의 입맛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도 더 속도 좀 내고. 그래야죠. 에이. 참. 뻔한 걸 가지고.”
 “아무래도 위험한데.”
 무술감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위험한 씬을 보여줘야 주인공이 살고, 주인공이 살아야 영화 플롯이 살죠. 그리고 험한 걸 하는 게 쟤가 할 일 아니에요?”
 신대범이 말했다. 감독은 가만히 말을 듣고 있었지만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신대범의 말이 시건방지게 들릴 법도 할 나이 차이였다. 하지만 감독 역시도 신대범에게 무어라 싫은 소리를 던지지는 못할 입장이었다.
 “저기, 대역. 할 수 있겠어요?”
 감독이 찬종을 보며 물었다.
 “컨디션이 글쎄요. 조금 조심스럽기는 한데.”
 찬종은 어깨 통증도 떠올리며 최대한 소신껏 대답했다.
 “엑스트라 컨디션까지 생각하면서 촬영 스케줄 짜시는 거 아니잖아요?”
 대범이 감독을 보고 쏘아붙였다. 순간 찬종은 욱하는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 매트가 얇아서 위험할 텐데. 일단 바닥에 매트 더 깔고 3층에서 가는 걸로.”
 무술감독이 손가락을 튕기며 지시했다.
 “기왕 올리는 거면 4층으로 하시죠.”
 “저 건물 층 높이도 높아. 3층으로 해도 돼.”
 무술감독은 대범을 살짝 무시하며 다른 스태프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했다.
 “뭐. 알아서들 하시고. 그럼 전 다시 한 숨 자도 되나요?”
 “대역 씬 끝나면 바로 들어가셔야 하니까 잠시 대기하시죠.”
 감독이 딱 잘라 말했다. 대범은 자신의 이름표가 붙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
 
 찬종은 자신이 뛰어내릴 건물 앞에서 준비운동을 했다. 뒤로 촬영 장비들이 다시 세팅 되고 있었다.
 “찬종아.”
 뒤에서 무술감독이 다가와 말했다.
 “신대범이 저러는 거 이해해라. 애가 욕심만 많아서 그래.”
 “아유. 알아요.”
 “조금 어렵겠다 싶으면 말해. 그냥 2층에서 다시 찍는 걸로 이야기 해볼 테니까.”
 “아니에요. 선배도 신대범 알잖아요. 2층으로 하겠다고 하면 분명 사람 난감하게 할 거예요.”
 “느낌이 안 좋은데.”
 무술감독이 머리를 긁적이며 건물을 올려 보았다. 3층이라지만 다른 건물의 4층 정도는 되는 높이였다.
 “언제는 느낌이 좋았나요. 괜찮을 거예요.”
 찬종은 파이팅 있게 대답하고는 건물 위로 올라갔다.
 “여기 밑에 매트 더 깔아라.”
 무술감독이 말했다.
 “매트 얇은 거 한 장만 깔아요! 저거 누가 깐 거야!”
 뒤에서 신대범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술감독이 인상을 쓰며 뒤를 보았다.
 “낙법 하는 게 찍혀야 하는데 매트가 너무 두꺼우면 앵글이 안 나와요.”
 “그 편집하는 거나 인서트하는 건 무술감독인 내가 할 테니까-”
 “대역 씬이 잘 나와 줘야 주연이 살잖아요.”
 대범이 짝다리를 짚고 건방진 목소리로 말했다.
 무술감독은 이를 부득 갈다가 대범의 뒤를 보았다. 촬영감독과 오디오 감독, 스태프들이 대범을 보고 있었다. 괜스레 트집을 잡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무술감독은 맘대로 하라는 듯 손짓을 하며 돌아섰다.
 
 *
 
 [액션- 큐!]
 확성기로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찬종은 3층 복도 끝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거칠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찬종은 대본대로 계단으로 내려가려고 몸을 틀었다.
 “여기야!”
 계단 아래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약 2초 후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성큼성큼 달려 올라올 예정이었다. 찬종은 빠르게 몸을 틀어 창문을 향해 달렸다.
 “거기 서!”
 3층에 올라온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뒤에서 소리쳤다. 찬종은 창문을 향해 달리다 괜스레 복도 옆에 있는 방 문고리를 붙잡고 어깨로 밀쳤다.
 ―덜컹
 문이 열리지 않았다. 예상대로였다. 반대편 문을 붙잡고 어깨로 밀었다. 역시 열리지 않았다. 찬종은 이를 악물고 창문을 향해 내달렸다.
 긴장되었다. 물론 3층에서 떨어지는 연기를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털끝까지 불안감이 몰아쳤다.
 ―챙그랑-
 어깨로 창문을 깨며 몸을 던졌다. 순간 어깨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까 느껴졌던 이물감이 더욱 커진 것이었다. 아무래도 어깨로 문을 밀칠 때 문제가 커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길게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이미 몸은 공중에 떠있었고, 바닥에 매트가 보였으며, 깨진 설탕 창문의 파편이 주위에 있었다.
 “어, 어어, 어!”
 현장을 지켜보던 무술감독이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아챈 것이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스태프들도 모두 현장으로 달려갔다.
 물론 찬종역시 잘못 됐음을 알았다. 어깨 통증 때문에 집중이 깨져서인지, 층이 높아져서인지는 몰라도 예상했던 곳과 다른 곳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퍽-
 짧고 둔탁한 소리.
 까끌한 지면이 찬종의 볼에 느껴졌다. 이내 뜨거운 피의 촉감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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