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테니스 천재가 떴다!

서브 에이스 (1)

2023.02.06 조회 41,818 추천 613


 비가 온다.
 이럴 땐 회원들이 펑크를 내는 일이 많아서 좋다.
 실내 테니스장이긴 하지만 예상 외로 날씨의 영향은 크다.
 궂은 날씨는 여유로운 취미 생활을 즐기려는 회원들에게 생각보다 큰 장애물이니까.
 
 “오늘 늦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벌써 네 번째 펑크.
 운이 심하게 좋은 날이다.
 물론 내가 사장이라면 이런 현상이 그리 달갑진 않겠지만.
 난 그저···.
 이 작은 테니스장의 좋게 말하면 코치, 정확히 말하자면 아르바이트일 뿐이니까.
 
 “우리 강태양 코치님!!!”
 “아···. 아?”
 
 이럴수가.
 네 번째 펑크는 취소.
 우리 VIP 회원님이 왜인지 폭우를 뚫고 등판했다.
 잔뜩 젖은 머리에 놀란 척 하며 달려간 나는 바닥을 닦던 걸레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왜 이렇게 다 젖으셨어요. 우산은?”
 
 중년의 여자는 손사래를 치며 젖은 손으로 테니스 채를 고르고 있었다.
 
 “나 원래 우산 안쓰는 거 알잖아.”
 
 모른다.
 모르지만 애써 아는 척 웃음을 지었다.
 그저 평소처럼 사모님을 테니스 코트로 안내하고 적당한 자세 교정과 적당한 리액션을 시작할 뿐.
 그녀는 오늘도 발 대신 입이 바빴다.
 
 “오늘 공 컨디션이 왜이래? 갈 때 된 거 아니야?”
 “어머, 이 펠트 닳아서 보풀난 거 좀 봐. 사장이 어디 돈 떼였나? 이런거 관리도 안하고 뭐하는 거야, 회원들 다 떨어져 나가게.”
 “바닥 상태가 왜 이래? 어머머, 누가 클레이 코트에서 신은 신발 그대로 신고 왔나? 하여간, 매너들이 없어요. 쯧쯧···.”
 
 답 대신 자본주의 미소를 짓는 내게 사모님이 말했다.
 
 “강 코치, 이제 보니까 전적이 화려하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내 프로필이 걸려있었다.
 오래된 신문기사 스크랩과 함께.
 
 “오마나, 내가 왜 이걸 이제 봤을까?”
 
 [강태양 프로 코치]
 2013년 텐에이 아카데미
 2014년 윔블던 주니어 16강 진출
 2017년 아시아국제대학 테니스학과
 2018년 US오픈 본선 2라운드 진출
 
 [”슈퍼 루키 강태양, US오픈 2라운드 진출”]
 
 한동안 내 프로필을 보던 아주머니 회원이 다시 나에게로 반짝이는 시선을 던졌다.
 새롭게 보인다는 듯이.
 
 “어머, 엄청 대단한 사람이었네. 강 코치.”
 “다 옛날 일인데요, 뭐.”
 “그런데 왜 여기있어? 여기 사장이 돈 많이 줘?”
 
 호기심 가득한 사모님의 질문에 우물거릴 쯤.
 딸랑거리는 문 소리가 들렸다.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피해갈 수 있는 찬스라 생각했다.
 
 “뭐···네, 저 그럼 오늘 강습은 여기까지 하고···.”
 
 하지만 돌아 본 곳에 더 큰 난제가 있었다.
 
 * * *
 
 “너 예전엔 잘 나가지 않았냐?”
 
 보풀이 일어있는 테니스 공, 테니스 채의 끊겨있는 줄 들.
 스크린이 고장난 머신 볼. 비좁고 협소한 테니스 장.
 그 안에서 아이스 믹스 커피에 남은 얼음을 아그작 씹어 삼킨 녀석이 말했다.
 
 “주니어 때만 해도 천재. 나랑 같은 아카데미, 엘리트 코스 밟고 유학까지 간데다가, 투어까지 돌았었잖아. 동기들이랑 연락도 끊더니 이런 낡은 테니스장에서 코치나 하고 있을줄이야.”
 
 차웅재.
 그때나 지금이나 껄렁껄렁한 날건달같은 느낌은 그대로였다.
 부상으로 프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나와 달리.
 이 놈은 최근까지도 복식조로 아시안게임 본선에 진출하고 데이비드 컵 파이널에 이름을 올렸다.
 ATP 순위권 안에 들어있을 정도로 제법 왕성하게 활약했던 선수였다.
 
 “여긴 어떻게 알고.”
 “비지니스 하러 왔지. 너네 사장이 여기 매물로 내놨던데, 양도 한다고. 설마 몰랐냐?”
 
 탁-!
 아이스 커피를 요란하게 내려 놓은 녀석이 비치되어있는 테니스 채를 아무거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볼 머신 기계를 작동시켜 제대로 튀어 오르지도 않는 공을 치기 시작했다.
 
 “어디 머신 볼 컨디션 좀 보자.”
 
 탁!
 
 [In / speed 178km/h]
 
 탁! 퍼어어억!
 
 [In / speed 182km/h]
 
 스크린이 찢겨질 정도로 강력한 파격음이 테니스 코트 실내에 퍼졌다.
 한동안 몸을 푼 녀석이 그제야 만족한듯 테니스 라켓을 가져와 내 앞에 내려놨다.
 창밖에선 비가 솨아아아 미친듯이 바닥을 내려 찍고 있었다.
 
 “와, 맛가기 직전인데. 상태가 이런데 시설 권리를 받겠다고? 양심 없네.”
 
 방금까지 불평불만을 쏟아내던 사모님과 동일한 조건에서 쳤음에도.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하늘과 땅 끝 차이였다.
 
 "요닉스 200EB네. 크으··· 이거 근대사 박물관이 따로 없구먼. 니가 쓰던 라켓이잖아. 그때 기억나냐? 니가 경기 중에 라켓 내리쳐서 부순 거. 그래서 아마 실격 당했었지. 코치님한테도 엄청 혼났었잖아. 푸하하.“
 
 한창 사춘기 때.
 운좋게 여러 대회에서 입상했고.
 실력과 인기가 하늘을 뚫었을 때.
 그땐, 세상이 전부 내 발 아래에 있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성질머리도 받아줄 사람이 옆에 남아 있을 때나 부릴 수 있는 거였다.
 
 “그게 그렇게 웃겨?”
 
 한동안 배를 부여 잡고 웃던 그가 정색한 나를 보며 웃음을 삼켰다.
 
 “아차차, 한보름은 어떻게 지내냐?”
 
 한보름.
 놈의 더러운 입에서 그녀의 이름 석자가 불려지는 것조차 싫었다.
 못난 나를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지지해주고 있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비아냥은 이제 시작인듯 했다.
 
 “듣기로 한보름도 그렇고 너도 힘들게 산다며. 이렇게 코치도 열심히 하는데 왜 그렇지?”
 “비지니스 하러 왔으면 비지니스나 하고 가라.”
 “돈 많고 예쁜 여자 물었으면 잘 살아야지, 이게 뭐냐. ······집에서 쫒겨나게나 만들고. 쯧.”
 
 나는 날씨 탓인지 슬슬 더 시려오는 어깨를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만 닥치고 ···꺼지라고.”
 
 이 새끼가 보자보자하니까.
 자꾸 선을 쎄게 넘어오는데?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내 눈빛을 읽었는지 녀석은 눈을 내리깔며 웃었다.
 
 “오, 강태양. 옛날 성격 나오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어깨를 살짝 왼손으로 툭 두드리며 지나쳤다.
 
 “그러게. 좀 잘하지 그랬어. 간다. 너무 후져서 양도는 좀 어렵겠네.”
 
 당장이라도 놈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인지 온 몸이 얼음처럼 얼어붙어버렸으니까.
 
 솨아아아.
 창밖에는 요란한 빗소리가 더 거세지고 있었다.
 
 * * *
 
 한동안 멍하니 앉아 분을 삭힌 후 나는 놈이 내려 놓고 간 테니스 라켓을 집어들었다.
 스크린을 얼핏 봤지만, 180km/h가 넘는 서브 스피드였다.
 이 환경에서 그 속도가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코치인 내가 칠 때 조차도.
 
 나는 결심한 듯 라켓을 꽈악 틀어쥐었다.
 그리고 볼 머신기에 [프로-서브] 버튼을 누른 후 비장한 표정으로 코트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비틀어 꽉 쥐었다.
 그리고 하늘로 훅 날려 올린 공.
 
 터어어엉!
 
 벽채가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강력한 타격감과 타격음.
 
 [In]
 
 곧바로 업데이트 되는 스크린.
 일단 아웃은 아니고.
 
 [speed 172km/h]
 
 실망스러운 결과값이 표기됐다.
 
 마치, 놈과 나의 극명한 차이처럼 수치가 와닿게 느껴졌다.
 몇 번을 반복해서 때려도 결과는 같았다.
 곧 어깨가 시리다 못해 찢어질 듯 고통이 느껴질 때까지.
 반복해 보았지만.
 
 [in / speed 174km/h]
 [in / speed 168km/h]
 
 .
 .
 .
 
 [out / speed 102km/h]
 
 결국 나는 라켓을 내려 놓았다.
 
 ***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퇴근 길.
 와이퍼를 최대로 해도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날씨나··· 내 인생이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무리한 훈련으로 인한 오른쪽 어깨의 부상.
 재활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치렀던 경기로 인한 발목 부상.
 재기 불능 판정을 받게 됐던 허리 부상까지.
 내 몸은 한 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지며 선수 생활에 발목을 잡았다.
 과욕이었다.
 
 ‘부상 이후부터 내 인생은 줄 곧··· 내리막.’
 
 - 빠아아앙!!!
 
 위험하게 과속하는 차량들.
 마치 코앞만 보고 질주하던 예전의 나 같았다.
 
 [노박 조코비치 상대로 강태양, US오픈 3라운드 진출 실패]
 [경기 도중 어깨부상으로 기권 선언한 테니스계 샛별 강태양]
 [강태양, 호주 오픈 도전 역시 좌절. 메이저 대회의 벽은 높았다.]
 
 반짝 떠오른 관심 이후, 그 마저도 소리소문 없이 묻혀 버렸을 때 비로소 내 선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프로 선수에게 장기적으로 이어진 경기 부진과 부상은 치명적이었으니까.
 
 그때.
 너무 빨리 성장하려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천재들 속에 섞여 경쟁하지 않았더라면.
 온 몸을 박살내며 무리한 훈련으로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어있을 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천재 였거나.
 애매한 천재였기에 모든 것이 이토록 꼬여버린 것이 아닐까.
 
 - 끼이이익!!!
 - 빠앙!
 - 파아아아악!!!!
 
 그때였다.
 앞 차의 타이어가 뱅글 돌아버렸다.
 빗길 미끄러짐 사고.
 그거 뉴스에나 보던 건데.
 지금 내 눈 앞에 일어나고 있는 건가?
 
 “아······.”
 
 브레이크를 빠르게 밟아보았으나, 차가 도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곧 시공간이 분리 된 것처럼 눈 앞의 장면이 느려졌다.
 쏟아지던 빗방울이 점차 느려지고 머릿 속엔 주마등처럼 과거일이 펼쳐졌다.
 죽기 직전, 인생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고 하던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나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가?’
 
 빗방울이 느려지다 못해 완전히 멈추었을 때.
 
 정말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빗방울들이 거꾸로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기이한 광경.
 그리고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걷히기 시작했다.
 
 * * *
 
 쨍하게 내리 쬐는 태양.
 그리고 단숨에 갈증이 밀려오는 듯한 강한 열기.
 덥다. 더워도 너무 더운데.
 바닥엔 고운 모래가 가득하다.
 천국은 열대기후인 걸까?
 
 ‘뭐지?’
 
 오른 손을 내려보자, 라켓이 들려 있었다.
 요닉스200EB.
 천국인지 지옥인지 모를 곳까지 라켓을 쥐고 오는 나란 사람은 대체······.
 
 ‘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이건 옛날에···.’
 
 점차 주변이 또렷하게 보였다.
 머리를 털고 앞을 보자, 입을 툭 내밀고 다시 볼을 던져 주는 한보름이 보였다.
 잔머리가 유난히 많고, 볼살이 통통하던 옛날 모습이었다.
 한보름, 어릴 땐 더 예뻤었지.
 
 “180km!”
 
 그때였다.
 제법 진지한 분위기에서 서브를 날리고 있는 차웅재도 보였다.
 
 “에이스는 에이스네.”
 “자, 차웅재 다시 한 번 더.”
 
 차웅재의 독무대가 펼쳐지고 있는 코트 안.
 익숙한 얼굴들이 어렷 보였다.
 코치님과 아카데미 친구들까지.
 그중에서도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는 한보름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확실해.’
 
 이상하게도 그녀의 미소를 보니 이 날이 어떤 날이었는지 정확히 떠올랐다.
 이 날은 텐에이 아카데미의 입단테스트 날로 현성차의 장학금이 걸려있는 테스트를 진행했던 날이다.
 신입원생중 가장 가능성이 있는 선수에게 적지않은 지원과 장학금을 지급했었고.
 
 ‘그때 장학생이 된 건···.’
 
 내가 아니었다.
 그 생각을 하자, 순간 라켓을 든 주먹에 힘이 실렸다.
 
 요닉스200EB.
 이 라켓. 우리 테니스장에 있던 것과 달리 새털처럼 가볍고 그립감이 좋았다.
 아니, 라켓이 아니라 내 손의 감각과 근력이 달라진 걸까.
 주름이 전혀지지 않은 손. 단단하게 근육이 잡힌 팔뚝.
 그리고 솜털처럼 가벼운 어깨.
 
 이거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소설이나 영화에서보던 과거로 회귀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 같다.
 
 “자, 이상으로 테스트를 마치겠다. 다들 돌아가도 좋아.”
 
 그렇다면.
 만약 정말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것이 맞다면.
 지금 나에게 인생을 뒤바꿀 터닝포인트가 온 건지도.
 
 “코치님.”
 “응?”
 “저 다시 해보겠습니다.”
 “다시 해보겠다고?”
 
 문 코치는 잠깐 고민하는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항상 열성적인 것을 강조했던 코치였다.
 호기로움에 만족한 듯 웃으며 그가 내던진 공을 낚아채듯 받았다.
 
 - 턱!
 
 나는 공을 쨍한 태양 위로 내 던졌다.
 그리고 활처럼 휘어 트로피 자세를 취했다.
 손을 떠나간 볼이 하늘에서 뱅글 돌고 있었다.
 
 이곳엔.
 지긋지긋한 어깨 통증도, 궂은 날씨도, 거지같은 현실도 없었다.
 눈이 부시게 빛나던 한보름의 환한 미소를 바라보며.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아래.
 
 ‘이런 게 천국인가?’
 
 나는 온 힘을 다해 강 서브를 날렸다.

작가의 말

오랜만의 연재라 무척 떨리네요.

이번에도 열심히 연재 하겠습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댓글(27)

영점    
일단은 선작하고 정주행 갑니다
2023.02.11 23:20
귀욤둥이    
여기 변명중에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천재들이랑 경쟁하지 않았다면 이부분 보고 흠...? 거기 천재들도 신계에 있는 사람 3명 못넘어 서는데 그 애들도 못이기고 애매한 재능 주인공이 회귀한다고 더 잘해질까? 이게 의문임 어느정도 까지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벽이 나올듯 회귀하면서 이능 생기나?
2023.02.13 00:32
부용화    
테니스? 못참지
2023.02.18 10:55
의설    
노오오력으로 지난 과거보다 나아지길 바래요
2023.02.19 15:16
OLDBOY    
잘 보고 있습니다.
2023.02.24 12:40
대태사로    
환생트럭으로 시간역행 인가요.
2023.03.05 23:10
끈적하게    
속도 표기한 단위 전부틀렸음
2023.03.06 06:57
Powerpuff    
앞 차가 미끄러졌는데 내 차 브레이크를 밟아 도는 걸 멈추려고 한다? 이게 뭔 상황인지..
2023.03.06 07:49
고리타분    
히로인은 없거나 정하지 않는게..
2023.03.06 22:20
n3***********    
차웅재라는 놈 대가리를 테니스체로 깐다음 사지를 부러뜨려서 선수생활 못하게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한다음 주인공 자살했는데 회귀했다는 식으로 변경되면 어떨까요? ㅋㅋ
2023.03.0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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