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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강화

2023.03.09 조회 118,281 추천 1,894


 처음엔 내 눈이 이상한가 싶었다.
 모니터 안, 게임 속 인벤토리 창. 그곳에 내 ‘안경’이 들어가 있었다. 분명 책상 위에 뒀었다.
 그런데 지금 2D 아이콘으로 변해 있었다.
 
 “······이게 뭔-”
 
 게임을 많이 해서 정신이 이상해진 걸까.
 
 딸깍.
 
 클릭해봤다.
 안경 아이콘이 커서에 붙으며 정보가 떠올랐다.
 
 [백서진의 뿔테안경(보통)]
 : 집구석 게임 폐인 백서진의 높은 도수의 안경. 지문과 기름의 콜라보로 쓰면 쓸수록 시력이 안 좋아질 수 있다.
 * [시력 저하]
 
 “······.”
 
 할 말을 잃었다.
 진짜일까.
 
 ‘진짜일 리가 없잖아.’
 
 잠을 좀 자야 하나.
 [월드 오브 더 와일드(WOW)]라는 게임이다. 몇 년 동안 파고든 게임이며 이번에 새로운 에피소드가 나왔다고 해서 만렙 캐릭터 하나 더 만들었다.
 그게 벌써 40시간.
 
 딸깍.
 
 다시 클릭했다.
 [백서진의 뿔테안경(보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에 굳건히 반짝이고 있다.
 
 ‘강화를 해볼까.’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시스템을 뽑자면 [강화]라 할 수 있다. 보통의 강화와는 다르게 일정 강화 수치에 도달하면 새로운 옵션이 붙고, 기존의 옵션이 변하기도 한다.
 
 ‘[보통] 등급이니 5강까지는 무리 없을 거 같은데.’
 
 어차피 만렙도 찍었고 에피소드 끝판도 깼다. 돈도 많고 강화석도 넘친다. 몇 번 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그리고 궁금했다.
 
 ‘3강에 옵션 하나 5강에 옵션 하나 더.’
 
 뭐가 나올까.
 ‘안경’이라는 아이템은 이 게임에 없기에 궁금했다.
 
 딸깍.
 
 강화창을 열었다.
 왼쪽에 강화할 아이템을 넣는 곳이 있었고 중간 아래엔 강화 확률을 높이는 칸. 위쪽엔 각 강화 수치에 맞는 강화석을 넣는 칸이 있다.
 오른쪽은 결과물이 나오는 칸.
 
 ‘1강은 100%, 2강은 90%, 3강은 80%.’
 
 여기까지는 무난하다.
 
 딸깍.
 
 -뚜루루루루!
 -강화 성공!
 
 번쩍이는 이펙트와 함께 강화 성공 메시지가 떴다. 1강에서는 특별할 게 없지만, 설명을 확인했다.
 
 [백서진의 뿔테안경(보통)(+1)]
 : 집구석 게임 폐인 백서진의 높은 도수의 안경.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오.”
 
 [시력 저하]가 사라졌다.
 역시 강화는 긍정적인 옵션이 상승한다. 강화석 넣는 곳에 [마이너스 강화석]을 넣으면 부정적인 효과가 강화되기도 한다.
 
 딸깍.
 
 두 번째 강화.
 이번에도 90%의 확률.
 당연히 성공이다.
 
 [백서진의 뿔테안경(보통)(+2)]
 : 집구석 게임 폐인 백서진의 높은 도수의 안경. 깔끔하게 정리되어 시력 보정률이 상승한다.
 
 “이거 재밌네.”
 
 일반 아티팩트였다면 공격력이나 방어력이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 이 안경이라는 건 시력 보정률이 올라간단다.
 이런 걸 쓰면 훨씬 잘 보이려나.
 
 “······하긴, 깨끗하게 닦기만 해도 잘 보이긴 했겠어.”
 
 이번엔 3강이다.
 이걸 성공하면 옵션이 생긴다.
 뭐가 생길까.
 
 딸깍.
 
 -뚜루루루!
 -강화 실패!
 -4강 이하에선 아이템이 파괴되지 않습니다.
 
 3강에서 실패하다니.
 오늘 일진이 안 좋은 모양이다.
 그래도 80%의 확률인데 말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5강까지는 아이템이 파괴될 일은 없으니까.
 
 ‘보통 등급 아이템이 깨질까 걱정하는 것도 웃기네.’
 
 당연하게도 이게 몽롱한 상태에서 꾸는 자각몽이거나 착각이겠지만······.
 
 ‘안 돼. 완전히 자각하면 깬 단 말이야.’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자다 깬 거 같은데, 꿈은 꾸는 상태. 여기서 더 정신을 차려버리면 꿈에서 쫓겨나기에 억지로 그 상태를 유지할 때.
 지금이 그런 상태인 듯했다.
 
 딸깍.
 
 -뚜루루루!
 -강화 성공!
 -새로운 옵션이 부여되었습니다.
 
 궁금했다.
 그래서 지체없이 확인했다.
 
 [백서진의 뿔테안경(보통)(+3)]
 : 집구석 게임 폐인 백서진의 높은 도수의 안경. 깔끔하게 정리되어 꾸준히 착용할 경우 시력이 영구히 상승한다.
 * [하급 시력 상승]
 
 ‘차고만 있어도 시력이 상승한다니, 좋은데?’
 
 이런 걸 현실에서 팔면 얼마나 할까.
 수술 말고는 낮아진 시력을 올릴 방법은 없다. 라식이나 라섹. 혹은 렌즈 삽입술이 전부다.
 렌즈 삽입술은 5백만 원 이상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건 쓰기만 해도 시력이 올라간다. 얼마면 살까. 800만 원? 1,000만 원?
 어떤 사람에게 파는지가 중요하겠지.
 
 피식.
 
 쓸데없는 상상이다.
 이런 걸 망상이라고 한다.
 
 딸깍.
 
 한 번 더 해보자.
 5강이 되면 무슨 옵션이 붙을까.
 깨지지만 않으면 좋겠다. 깨지는 걸 방지하는 [파괴 방어석]이 있지만, 이건 만렙 캐릭터를 가진 서진에게도 귀한 물건이다.
 
 -강화 성공!
 
 이번에도 성공이다.
 4강에서는 별거 없다. 3강에서 붙은 옵션이 조금 강화되는 것뿐. 그것도 좋긴 하다. D등급 옵션이 C등급이 되는 거니까.
 
 ‘이번에 성공해야지.’
 
 4강 성공률은 75%.
 5강 성공률은 60%.
 이때부터 실패 횟수가 확연히 상승한다. 체감상 열 번 중 절반은 실패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파괴 확률 3% 남짓, 강화 수치가 낮아질 확률은 10% 미만.
 
 ‘성공해보자.’
 
 이럴 때 또 승부욕이 발동된다.
 별거 아닌 아이템이긴 하다만, 강화라는 게 도박이랑 비슷해서 성공할 때의 짜릿함이 있다.
 특히, 5강으로 갈 땐 더욱 그렇다.
 3강의 옵션보다 몇 배는 좋은 옵션이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 등급이 [희귀] 등급으로 오른다.
 
 -뚜루루루루루!
 .
 .
 .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5강부터는 뜸을 들인다. 그래서 쪼는 맛이 있다.
 
 -강화······!
 .
 .
 .
 
 그런데 쪼아도 너무 쪼긴 한다.
 이런 건 답답해서 몇 번 항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반응도 없었다. 어차피 싱글 게임이고 이제 인기도 없는 게임인데.
 
 -성공!
 -5강에 성공하였습니다!
 -등급이 상승하였습니다.
 -새로운 옵션이 부여되었습니다.
 
 “성공이군.”
 
 등급도 올랐고 옵션도 생겼다.
 이제 확인해볼 때다.
 
 핑-
 
 현기증이 돌았다.
 
 ‘뭐지?’
 
 그의 시야가 올라갔다. 천장이 보이며 뒤로 쓰러졌다. 그래, 그럴 때가 됐지. 40시간을 풀로 집중했으니 쓰러질 수 있다.
 이참에 한숨 자야지.
 
 쿵.
 
 
 * * *
 
 
 “야, 백서진! 안 일어나?”
 
 찰싹.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
 
 “나 어제 늦게 잤어.”
 “늦게는 무슨. 그 거대한 몸덩이 떨어지는 소리가 40시간 만에 들렸다. 못 잔 거냐? 안 잔 거지.”
 “······5분만.”
 “으휴, 장남이 방구석 폐인 히키코모리에 게임 오타쿠라니!”
 “······.”
 “넌 이런 거에 상처도 안 받냐?”
 “맞는 말인데, 뭐하러.”
 “에이, 화라도 좀 내라. 와서 밥이나 먹어. 네 동생 왔다.”
 “서우?”
 “응, 길드에서 레이드 다녀왔잖아. 휴가받았나 봐. 이럴 때 얼굴이나 보고 얘기도 좀 해.”
 
 백서진은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눈도 퍽퍽하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하다.
 
 ‘너무 무리했어.’
 
 알지만 멈출 수가 없다.
 그가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느끼고 자존감을 채우는 곳이 게임 속이기 때문이다. 100kg이 넘는 몸무게. 화농성 여드름에 흉터 가득한 피부, 반쯤 벗겨진 머리.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외모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환영받지 못하는 외딴섬이었다.
 
 “······.”
 
 백서진은 침대에 앉았다.
 아직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는다. 그는 자연스럽게 책상 한쪽에 올려둔 안경을 집어 들었다.
 큼지막한 몸집을 일으키며 엄지와 검지로 눈 안쪽을 비볐다. 그래도 오랜만에 본가에 온 동생인데 얼굴 한 번은 봐야겠지.
 
 ‘보고 싶진 않지만.’
 
 어릴 때부터 동생과 비교 당했다.
 뚱뚱한 몸에 흉한 외모를 지닌 백서진과는 너무나 다른 백서우의 화려한 외모. 어떤 여자든 고개를 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또렷하고 완벽한 이목구비.
 그는 마법에 재능이 있었다.
 어릴 마법 영재 교육을 받았고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해 마탑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박사 학위까지 딴 후에 삼현 그룹 직속 길드인 [여명의 검]에 들어가며 승승장구했다.
 겨우 28살이라는 나이에 말이다.
 
 “왔어?”
 
 백서진은 식탁에 앉으며 물었다. 그는 백서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숟가락을 놀렸다. 어머니는 그런 서우와 서진의 눈치를 봤다.
 백서진은 안경을 썼다.
 습관이었다.
 그런데.
 
 “······?”
 
 잘 보였다.
 아니, 안경을 썼으니 잘 보이는 건 당연하겠지. 그런데 이건 잘 보여도 너무 잘 보였다.
 시금치에 올라간 볶음 깨. 더덕구이 소스에 올라간 간 마늘, 다진 고추, 아직 녹지 않은 설탕 입자까지.
 그 정도였으면 이렇게까지 당황하지 않았을 거다.
 
 “······서우야. 그 목걸이. 원래 빛나는 거야?”
 “뭐래.”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보였다. 은색 목걸이에 흐르는 푸른 선들. 마치 반도체의 회로를 보는 듯했다.
 
 ‘뭐지? 원래 빛나는 게 아닌가?’
 
 백서진은 고개를 갸웃하곤 밥을 먹었다. 이상했지만, A등급 헌터이자 5성급 마법사진 백서우다. 당연히 비싼 아티팩트를 착용했겠지.
 그런데 문제는 몇 분 후였다.
 밥을 먹으면서 목걸이를 몇 번 봤다. 그런데 푸른 선만 보이던 목걸이에서 희미한 글자가 떠올랐다.
 
 [수호의 신념(희귀)(Lv.03)]
 
 옅은 글자다.
 마치 게임 아이템의 설명창처럼 목걸이 옆에 둥둥 떠다니는 홀로그램.
 
 ‘내가 드디어 미쳤나.’
 
 게임을 많이 하긴 했다.
 반평생을 게임만 하면서 보냈으니까. 엊그제부터 40시간을 내리 한 것도 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슥슥.
 
 그는 눈을 비볐다.
 그러자 계속 차갑게 있던 서우가 물었다.
 
 “어디 안 좋아?”
 “아니, 괜찮아.”
 “게임 좀 그만해.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야? 내가 마탑에 알바 자리 하나-”
 “괜찮아.”
 “······형.”
 “신경 쓰지 마.”
 
 백서진은 숟가락을 내려놨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 좀 더 잘게요.”
 “밥 좀 더 먹지-”
 “아니요.”
 
 백서진이 등을 돌렸고 어머니와 서우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알아. 나도.’
 
 못난 형인 거.
 못난 아들인 거.
 남들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가족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이 살과 피부. 그리고 벗겨진 머리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자존감이 바닥이라는 거?
 안다. 변명인 거.
 몸이 안 좋다는 거?
 그것도 변명이다.
 노력하라면 할 수 있겠지. 뛰는 건 못하는 몸이지만, 걸으라면 걸을 수 있다. 집을 나갔다가 들어오는 게 눈치 보이지만, 그 정도는 감내해야겠지.
 
 ‘그런데 다 나 싫어하잖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그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그런데 서우가 소개해주는 알바 자리를 간다? 이 외모에 이 안 좋은 몸으로? 소문이 날 거다.
 
 ‘나 때문에 가족이 피해 보는 건 싫어.’
 
 지금도 잘난 건 없다.
 못났겠지.
 
 “후.”
 
 백서진은 책상에 앉았다.
 이곳만이 그의 안식처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꿈일까. 현실일까.
 드디어 죽을 때가 된 걸까.
 
 “······.”
 
 그는 안경을 벗었다.
 시야가 확 흐려진다.
 그리고 홀로그램 하나가 떠올랐다.
 
 [백서진의 뿔테안경(희귀)(+5)]
 : 집구석 게임 폐인 백서진의 높은 도수의 안경. 깔끔하게 정리되어 꾸준히 착용할 경우 시력이 영구히 상승하며 하급 아티팩트에 한하여 하급 감정이 발동한다.
 * [하급 시력 상승]
 * [하급 아티팩트 감정]
 
 백서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댓글(97)

[오월]    
잘 읽히네요
2023.03.09 13:30
찰찰떡    
ㅜ ㅜ
2023.03.09 21:45
g2**************    
여동생.....하...하차
2023.03.12 13:49
g2**************    
진짜 이게 문피아 특이지 오빠는 개찐따에 사회성 제로인데 여동생은 이쁘고 능력좋고 거기다 오빠까지 생각함 그러다 주인공빨로 능력생기면 없던 얼굴과 사회성이 생김 그리고 모든일에 여캐가 엮이고 갑자기 어떤길드장이 섭외했다가 안되니까 화내고 여길드장이 찡찡거리면 받아줌 그러다 갑자기 흑막나오고
2023.03.12 13:51
풀땡    
문피아 특이라기엔 소설 설정중 하나이죠 요즘은 색다른 설정을 좋아해서
2023.03.12 16:50
다크스나    
4강이하면 5강부턴 깨지는거 아닌가
2023.03.14 18:54
다크스나    
다이어트 약 강화하나
2023.03.14 19:13
다크스나    
남동생인데 수정한건가??
2023.03.14 19:32
검파    
여동생에서 하차
2023.03.14 20:35
양마루    
아... 건필
2023.03.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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