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1화- 눈 뜨니 고3
2024년 2월 16일.
인천의 한 부둣가.
[오늘까지 보험료 납부해야 한단 말이야!]
전화기 너머로 아내 정원의 목소리가 거세게 들려왔다. 민석은 이마를 붙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보육원을 나와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내내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에 지칠 대로 지친 목소리였다.
[고리구청장 한문중, 과거 재개발 건 투기 의혹]
[한성화 기자]
민석이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면서 아내의 말에 대답했다.
“신문사에서 내일 입금해 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래놓고 또 일주일 있다가 입금하려고!]
[응애- 응애-]
정원의 목소리와 함께 아기 우는 소리도 들렸다. 민석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월급 날짜가 되었는데 신문사에서 입금을 미룬 것이었다.
“오늘 지나면 연체료 붙는 거야?”
[당연하지! 어떡할 거야! 애기랑 병원도 가봐야 하는데.]
“오늘 중에 어떻게든 해볼게. 너무 걱정 마, 여보.”
[몰라. 진짜 걱정 돼. 아오!]
정원이 한껏 푸념을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민석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차량 조수석이었다. 거뭇거뭇하게 수염이 올라와 있었지만 각진 턱선에 지적인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는 더벅머리처럼 지저분했고 옷은 노숙자들처럼 더러웠다.
“형수님이 바가지 긁어요?”
운전석에 앉은 민석의 후배, 영호가 물었다.
“이게 왜 바가지냐. 팩폭이지.”
“이거 월급 밀리는 거 노동청에 신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월급도 쥐꼬리만 한데 그나마도 제때 넣어주지도 않고. 2020년대에 이런 회사가 어디 있어요.”
“야. 그래도 줄줄이 도산하는 회사가 몇 개인데 안 망하고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안 망하는 회사들도 천지빼까리에 차고 넘쳤거든요?”
“아이, 새끼. 오늘따라 까칠하네.”
민석이 장난치듯 팔을 올리며 말했다. 영호가 배시시 웃었다.
“그나저나 선배님. 그때 설분제지에 주식 넣은 건 어떻게 되셨어요? 안 그래도 그거 와이프 몰래 넣었다고 걱정 많이 하시더니.”
“에이, X발. 전에 말한 적 있지 않냐? 그 고등학교 동창 중에 그쪽 분야에 있는 애가 있다고.”
“네, 네. 기억나요.”
“뭐, 이건 작전주 아니라고 그렇게~ 그렇게 강조하면서 지금이 꿀빨기 딱이라고 해서 넣었더니-”
“넣었더니?”
영호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민석을 보았다.
“폭망. 젠장.”
“아이고.”
“지금 빼지도 못하고 있다. 다음 달 용돈까지 가불 받아서 한 건데. 심지어 회사에선 월급 입금이 늦어. 와. 진짜 이거 걸리면 내 목숨은 8시 45분에 하늘나라로 가게 될 거야.”
“하하하. 농담하시는 거 보니까 생존 가능성 있으신가본데요?”
“생존 가능성은, 젠장. 야. 나는 왜 내가 넣는 주식마다 망이냐?”
“음. 직업 때문 아닐까요?”
“직업이 왜?”
“우리는 뭔가 사건이 일어난 곳에 가서 취재를 하잖아요. 사건이 일어날 곳에 가서 취재를 하는 게 아니라.”
“일리 있는 개소리다.”
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이 지금 말아먹은 게-”
“닥쳐.”
민석이 영호의 뒤통수를 툭 때렸다. 영호가 웃으면서 민석을 보았다. 그런 영호를 보며 민석도 피식 미소가 나왔다.
“야. 그런데 웃긴 건 내가 아파트 산 것도 지금 2억이 떨어졌다?”
민석이 덧붙였다. 영호도 같이 웃었지만 그리 유쾌한 웃음은 아니었다.
“엇! 선배님! 저기! 저기!”
영호가 몸을 낮추며 앞을 가리켰다. 민석도 본능적으로 몸을 낮췄다. 둘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살짝 고개를 들어 앞 차창 밖을 보았다. 부둣가 컨테이너 사이로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서있었다. 그 사이에는 중년의 남자들도 있었다.
“한문중 고리구청장. 저 인간이 다음에 서울 시장 출마한다는 거지? 저 인간 때문에 내 아파트가 2억이 떨어졌다고.”
민석이 카메라를 들어 컨테[이너 앞에 있는 남자들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그 중 가장 나이든 사람의 가슴에는 금배지가 달려 있었다.
“취재할 땐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라면서요~”
“겸사겸사.”
민석은 차창 너머로 주변을 한 번 살핀 뒤 몇 번 더 셔터를 눌렀다.
“뭐. 출마는 한다는데 되겠어요?”
“뒤로 돈 엄청 쓰고 있다더만.”
둘은 속삭이든 대화를 나눴다. 뷰파인더 속 한문중 구청장은 누군가에게 007가방을 건네고 서류를 받았다. 그 현장이 고스란히 메모리 카드에 저장되었다.
―찰칵 찰칵 찰칵
“이번 특종만 터뜨리면 대박이다. 대박.”
민석이 씩 웃었다.
“국회의원이 조폭 사주해서 상대진영 뒷조사 하는 거야 흔한 거 아니에요? 특종이라 할 게 있나요?”
“야야. 네가 정치판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거지.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이어도 보도가 되냐 안 되냐는 달라. 그리고 한문중이 어떤 사람이야. 겉으로는 깨끗한 척-”
―퉁퉁퉁
그때 누군가 차창을 두드렸다. 민석과 영호가 깜짝 놀라 똑바로 앉았다. 옆을 보니 누군가 조수석 창문 앞에 서서 안을 보고 있었다. 선팅이 되어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지 연신 기웃거렸다.
“야. 너 뭐냐. 나와 봐. 안에 있는 거 안다.”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얼굴에 흉터가 있었고 덩치도 산만 했다.
“나오라고 이 X끼야.”
남자가 창문을 더욱 격하게 두드렸다. 그러자 멀리서 거래를 하고 있던 한문중 구청장도 민석의 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이잉
민석이 창문을 살짝 내리고 눈을 보여주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여기 주차를 하면 안 되는 곳이었나 보네요.”
“너 뭐냐. 내려 봐.”
남자가 뒤로 한걸음 물러서더니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하하. 저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도록 할게요.”
“나와 보라고.”
“그럼 안녕히 계세요.”
민석이 창문을 올렸다. 동시에 영호가 시동을 걸었다. 헤드라이트가 밝게 앞을 비췄다.
“뭐야! 짭새야? 잡아! 잡아!”
남자가 차량으로 몸을 던졌다.
―쿵
둔탁한 소리가 났다. 차량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차 앞으로 돌진하다가 옆으로 틀며 차에 매달렸다. 몇몇은 마구 창문을 두드렸다.
―끼이이익
검은색 세단이 앞을 막았다. 영호가 재빨리 운전대를 돌려 방향을 틀었다.
―콰아앙
영호와 민석의 차가 옆으로 틀다 다른 구조물에 뒷좌석 문이 부딪쳤다. 창문에 금이 갔다.
“이거 회사차지?”
민석이 손잡이를 꽉 붙잡고 물었다. 영호는 부두 출구를 향해 속도를 올렸다.
‘좀만 더. 좀만 더. 좀만 더.’
민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리게이트를 보았다.
―화아악
순간 민석의 옆쪽으로 강한 불빛이 들어왔다. 헤드라이트 불빛이었다. 민석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빠르게 달려오던 검은색 세단이 영호와 민석의 차를 강하게 들이 받았다. 엄청난 충격의 민석과 영호의 고개가 좌우로 격하게 꺾였다. 동시에 차량 파편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차가 붕 떠버렸다.
동시에 몸도 마음도 붕 뜬 느낌이 들었다.
‘나- 죽은 건가?’
거칠었던 운전과 뒤흔들리는 몸. 영호의 외침. 그 모든 것은 사라져 있었고 아득할 정도로 하얀 공간과 소름이 끼칠 정도의 섬뜩한 침묵이 가득 차있었다.
‘한문중, 이 X발 빌어먹을 인간.’
‘비리를 일삼는 국회의원의 뒤를 쫓은 결과가 고작 이런 건가?’
‘와이프한테 제대로 된 선물 한 번 못하고 근사한 외식 한 번 못해줬는데.’
‘내가 이렇게 되면 정원이랑 채연이는 어떡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순간 마치 구멍 난 물병에 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민석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 * *
“으앗!”
민석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허억. 허억. 허억.”
숨이 차올랐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민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옆을 더듬었다.
“여보. 소리쳐서 미안해. 어우.”
민석이 눈을 질끈 감고 계속 더듬었다. 아내 정원이 없었다.
“여보. 채연이 맘마 주고 있어?”
민석이 이마를 붙잡고 눈을 뜨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있는 곳은 민석이 15년 전, 보육원에서 쓰던 방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며 학업을 위해 독방을 주었던 것이다.
컴퓨터와 모니터에 수능 대비 문제집들이 가득 보였다. 그 지겨웠던 EBS 문제집들도 잔뜩 꽂혀 있었다.
“이건 꿈이야.”
민석이 침대에 걸터앉은 채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짝
강렬한 통증이 전해졌다. 털이 곤두설 정도였다.
“꿈이 아니라고?”
탁상 달력을 보았다. 2009년 달력이 놓여 있었다. 그 옆으로는 당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샀던 DSLR 카메라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정-원아? 채연아?”
현실이라고 믿지 않은 민석이 읊조렸지만 당연히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옆에 보니 그때 쓰던 폴더폰이 놓여 있었다.
[굿모닝! 사랑해!]
[정원애기님♥]
문자가 와있었다. 저 애칭은 민석이 정원과 사귄지 일주일이 안 되었을 때 저장해두었던 이름이었다.
“헐?”
민석이 핸드폰 달력을 보았다.
[2009년 2월 2일]
민석은 달력을 가만히 보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을 해봐야 했다.
눈을 감고 천천히 명상을 해보았다.
“호접몽. 나비 꿈을 꾸다 깨어났으니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나의 꿈을 꾼 것인가.”
혼자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여전히 보육원의 방이었다.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창밖을 보았다. 옆에 있는 야산의 나무와 나뭇잎이 보이는 바로 그 집. 자취방 현관에 놓인 신발과 슬리퍼. 한 쪽에 걸려있는 교복. 이불. 속옷. 양말. 노트. 펜. 필통.
“진짜야, 이거?”
민석이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민석의 기억에 있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있었다. 심지어 기억에 없던 사소한 것들조차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것처럼 기억나기 시작했다.
“2009년이면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란 말이지. 그때 신문방송학과 가겠다고 면담하고 갈 수 있는 대학 정리하고. 2월이면 딱 그때인데.”
민석은 기억을 더듬으며 핸드폰 일정을 보았다.
[담임샘 면접. 야자 있음. X발.]
핸드폰 달력에 일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내일 신방과를 가겠다고 면담을 하는 날이었다. 물론 기자를 꿈꾸며 신방과를 가고 싶다는 이야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도 해오긴 했었다. 하지만 이 때 면담에서 말한 대학과 학과가 진로가 되었고 대학교 4학년 때 ‘상식일보’라는 신문사에 취업하며 기자 일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 참나.”
민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2009년으로 온 것이 사실이라면 민석은 아내인 정원과 막 사귀기 시작할 때이면서 ‘기자’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바로 전 날로 온 것이었다.
“상식일보. 하하.”
회상을 하다 보니 첫 직장이 떠올랐다. 상식일보는 메이저 언론사는 아니었지만 자체 잡지사를 두고 있을 만큼 나름 자본력이 있는 언론사였다. 하지만 인터넷 신문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그때, 시류를 타지 않고 옛날 방식만을 고집하다가 민석이 채 1년을 다니기 전에 망한 회사였다.
“그땐 그런 데에 입사해야 많이 배울 줄 알았지.”
민석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 신문사의 기사들은 너무 가벼운 느낌이라 민석은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옛날 방식의 언론사를 지원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백수 이민석’을 만드는 꼴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잘못된 선택으로 입사했다가 백수가 된 민석은 무려 2년 동안 취직을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했었다.
여보. 보험금은?
선배님. 주식 또 말아 드셨죠?
아직 애 유모차 할부도 안 끝났는데 벌써 안 맞으면 어떡해.
아파트 값이 2억이 떨어졌다고요?
야. 미안하다. 나도 주식 그거,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음에 좋은 정보 있으면 다시 알려줄게.
민석이 눈을 부릅뜨고 중얼거렸다.
“이번엔 다르지.”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컴퓨터를 켜 ‘한문중’을 검색해 보았다. KJ그룹에서 상무로 근무 중이라고 나올 뿐, 국회의원 ‘한문중’은 검색되지 않았다.
‘어디 고개만 내밀어 봐라.’
당장은 이 자를 공격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가 정계 진출을 하고 세력을 확장할 때 공격을 해야 진정한 복수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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