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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2023.03.23 조회 68,617 추천 1,084


 - 각성자들이 연일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오고 있지만, 협회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입니다. 유례없는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상황을 '메세지'를 통해 확인한 각성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을 내놓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의······.
 
 불꺼진 집안.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불빛만이 번뜩인다.
 마치 천둥이 사라진 번개 같다.
 
 - '초월체'가 강림할 것입니다. 여러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본 바, 결코 인류에게 호의적인 존재는 아닐 터. 우리는 유례없는 위기를 대비해야만 합니다.
 
 나는 그런 불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무기력하게 소파위에 널브러진 채였다.
 화면 너머에는 각성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확신에 찬 말투와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대비를 한단 말입니까. 각성자들이 모두 '메세지'를 보고 입을 모아 엄청난 존재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는 줄은 아무도 모르면서 어느 누가 대비를 할 수 있단 말이냐 이 말입니다.
 
 몬스터가 활개치고 각성자가 영웅이 된 세상에서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내 가족, 내 친구들은 모두 죽었다.
 누구는 몬스터가 착지하면서 튄 돌멩이에 머리를 맞아 죽었고 누구는 각성자가 싸우며 내뿜은 힘의 여파에 휩쓸려 죽었다.
 아, 몬스터에게 잡혀 갈가리 찢겨 죽은 이도 있었지.
 
 한데 나는 살아남았다.
 아무런 능력이 없었음에도.
 
 - 일반 시민부터 대피시켜야 합니다. 대피소든 지하 쉘터든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대피해야 합니다!
 
 ······부럽다.
 저렇게 의견을 말하고 대책을 논할 수 있어서.
 나 같은 힘없는 인간은 그저 저들이 만든 대책에 따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고, 그러다 재수 없으면 죽는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재수가 없었고 나는 재수가 있었다.
 
 ···아니, 이게 정말 재수 있는 건가?
 
 -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내기 전까지 섣불리 움직이는 건 오히려 독이 될 겁니다!
 
 문득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잘게 떨었다.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지 않은 집이어서일까.
 
 - 지금 이러는 와중에도 귀중한 시간이 가고 있단 말입니다! 메세지가 직접적으로 각성자들에게 경고한 일이에요! 협회는 이 사안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는 거 아닙니까!
 
 티비 속 목소리가 격해졌다.
 사회자가 중재를 시도했지만, 이미 두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번 사안에 가장 긴장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협회입니다! 그러는 각성자님이야 말로 별다른 대책도 없으면서 불안감만 다짜고짜 키워대면 어쩌자는 겁니까!
 
 - 뭐라고?
 
 떽떽거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 그대로 티비를 꺼버렸다.
 
 푸른 불빛마저 흩어지고 적막에 휩싸인 집 안.
 
 끔찍하리만큼이나 조용한 이곳이 너무 싫어, 다시 티비를 켜야하나 고민하던 바로 그 순간.
 
 「각성하셨습니다.」
 「상태창이 생성됩니다.」
 「고유 특성 : '만질수록 강해짐'이 부여됩니다.」
 「특성 스킬이 생성됩니다.」
 
 
 나는 각성했다.
 
 
 
 
 * * *
 
 
 
 
 세간에 알려지기로 각성에는 아무런 조건도, 전조 증상도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누워서 티비보다 말고 각성하다니.
 
 "상태창."
 
 
 【이름】
 - 박민혁
 
 【능력치】
 - 근력 : E / 15
 - 민첩 : E / 13
 - 체력 : E / 13
 - 마력 : E / 08
 
 【고유 특성】
 - 만질수록 강해짐
 
 【특성 스킬】
 - 아, 함만 만져보자! - 1Lv
 - 마구마구 만져보자! - 1Lv
 
 
 ···진짜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신기해서 손을 뻗어보았지만, 그대로 글자를 통과한다.
 
 "잠깐만······. 근데 이거 특성 이름이 왜 이래?"
 
 만질수록 강해짐?
 
 만져?
 뭘?
 
 그런 의문을 품은 채 특성창에 손을 가져다 대자 이번에는 반응하는 상태창.
 
 
 
 【만질수록 강해짐】
 - 만지고야 말겠다! : 그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만지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 특성 스킬과 연계하여야 하는 고유 특성입니다.
 
 
 
 ······?
 
 이번엔 스킬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 함만 만져보자!】 - 1Lv
 - 만져야 하는 부위를 표시합니다.
 - 표시된 부위를 최소 5초간 손으로 만져야 합니다.
 - 5초 이상 만지는데 성공할 시, 고유 특성에 의해 만져진 상대의 능력을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 재사용 대기시간은 168시간입니다.
 
 【마구마구 만져보자!】 - 1Lv
 - 스킬 시전 후 처음으로 만지는 대상은 시전자의 손길에 거부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 '아, 함만 만져보자!' 스킬과 연계할 경우, 상대는 '약간 기분 좋음'을 느낍니다.
 
 
 
 나는 최대한 신사적으로 감정을 내뱉었다.
 
 "x발."
 
 이딴게······ 내 상태창?
 
 각성의 순간과 조건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그저 무작위로 각성한다는 게 정설.
 
 하지만 각성의 순간 받게 되는 고유 특성과 스킬 만큼은 그 각성자의 삶과도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가령 한평생 태권도를 연마한 도장이 각성을 한다면 그와 관련된 특성과 스킬을 얻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내게 이런 특성과 스킬이 생겼다.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들 앞에서 이딴 스킬을 어떻게 쓰라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팔을 감싸 안았다.
 
 "왜 이렇게 추워?"
 
 ······춥다.
 아직 이렇게 추울 정도의 날씨가 아닌데 춥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온다.
 
 "뭐지?"
 
 기껏해야 초가을인데 지금 느껴지는 추위는 한겨울 아니, 그 이상이었다.
 
 이상기후현상이라도 발생한 것일까.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내딛자, 소름 끼치는 추위가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온다.
 
 그대로 창문으로 다가가 흑색의 암막 커튼을 확 젖히자.
 
 "······뭐야 이게 대체···."
 
 창밖에 보이는 풍경은 얼어붙어 버린 마을이었다.
 
 
 「특성 '만질수록 강해짐'이 발동됩니다.」
 
 
 
 
 * * *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사람이 많지 않은 시골이었다.
 조그마한 강이 마을을 관통하는 조용한 마을.
 
 그 마을이 지금 온통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뭐야 이게!"
 
 집밖으로 뛰쳐나온 나는 믿기지 않는 그 광경에 동화되어 얼어붙었다.
 
 마을 전체가 얼어버릴 정도의 추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마을 사람들은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어르신들만 남은 마을.
 
 갑자기 불어닥친 이 혹한이 결코 괜찮을 리가 없었다.
 
 '가만, 나는 왜 멀쩡한 거지?'
 
 분명 바깥으로 드러난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추위이긴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마을 전체를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혹한에 고작 이 정도의 추위를 느낀다는 건······.
 
 "특성효과 때문인가?"
 
 고유특성에 붙은 효과, '만지고야 말겠다!'
 어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만지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더니.
 
 진짜 개 같은 소리를 잘도 적어놨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추위에도 말짱한 걸 보면 효과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어째됐건 마을 사람들은 결코 견딜 수 없는 추위임은 확실했다.
 
 내가 해야 한다.
 이런 시골 마을에 각성자가 있을 리가 있나.
 
 그런 생각으로 걸음을 막 옮기려는 찰나.
 
 
 「초월체 <혹한의 마녀>가 강림합니다.」
 「위치는 각성자 기준, 북쪽으로 10m 안팎입니다.」
 
 
 돌연, 앞쪽에 허공이 깨져 나가더니.
 
 "흐음···. 역시 쓰레기 같은 곳이구나."
 
 
 난데없이 최종 보스가 튀어나왔다.
 
 
 
 
 * * *
 
 
 
 
 한국 길드랭킹 3위.
 
 길드 <화련>의 사옥 내.
 
 "팀장님! 보셨습니까!"
 
 정신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일순간 뚝 멈춰 서서는 허공을 응시하다가 긴장된 얼굴로 한 사람을 쳐다봤다.
 
 빠른 시간에 능력을 인정받고 치고 올라와 화련 공격 3팀의 팀장 자리까지 꿰찬 인물.
 
 3팀장, 한아름.
 
 멈춰서 허공을 응시하던 한아름이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으로 331km."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메세지를 확인했을 것이다.
 
 근 한 달 동안 전세계를 불안에 떨게 했던 메세지.
 
 「불가해한 초월체가 강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메세지가 이렇듯 직접적으로 경고를 준 적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번째는 대격변이 일어나던 그때.
 세상에 처음 몬스터가 등장하고 각성자가 생겨나던 그날 뿐이었다.
 
 사상자는 정확한 집계를 내릴 수 없을 정도였고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었다.
 
 그리고 그 지옥에 이어 두 번째로 경고의 메세지가 뜬 것이다.
 
 전세계가 극도의 두려움에 휩싸였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는 것 또한 사실.
 이 드넓은 세상의 어디에, 언제 나타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결국 오늘 나타난 것이다.
 남쪽으로 331km나 되는 곳에.
 
 "분명 멀지만······ 너무 가까워."
 
 한아름이 중얼거리듯 뒷말을 이어갔다.
 
 331km.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임은 분명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결코 먼 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가까운 거리.
 드넓은 지구에서 하필 한국에 강림한 것이다.
 
 "우선 저희가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길드장께서 회의를 소집하실 테니 준비하세요. 남쪽이면 <부산>길드의 영역이니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아마도.
 
 튀어나오려는 말을 애써 집어넣으며 한아름이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남쪽으로 331km······.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튀어나오려는 불안한 생각도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그리고 그 시각.
 
 
 "아! 함만 만져보자!"
 
 
 나는 혹한의 마녀 앞에서 그런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댓글(49)

NPain    
각성자를만져야지 ㅋㅋㅋㅋㅋㅋㅋ
2023.04.18 16:59
g2**************    
그냥 더러운글이었구나
2023.04.22 14:54
묘한인연    
헌데//(그러)한데
2023.04.24 07:24
CENTER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3.04.24 20:47
풀땡    
ㅋㅋㅋ
2023.04.25 07:42
tk****    
노벨피아 가야하는거 아냐?
2023.04.26 11:59
슬립나이트    
노벨로 가버려~~
2023.04.28 10:45
사ㅅ    
이거 노벨가면 참 좋겠는데ㅋㅋㅋㄱㄲ
2023.04.28 23:54
두비두비    
이거 재밌는데?
2023.04.29 08:11
sk****    
각성사유는 변태라서냐
2023.04.3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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