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수능 실패, 배우가 되다

01화

2023.03.30 조회 49,126 추천 740


 01
 
 우리 집안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가장 중요시했다. 사실 딱히 드문 환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21세기가 아닌 20세기의 끝자락, IMF가 충격이 아닌 일상으로 자리 잡았던 시기. 평범한 집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성공의 수단이란 공부 외에는 없었을 테니까. 하물며 아버지가 공부로 성공해서 교수로 집안을 일으켰기에 더더욱.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이런 말을 달고 사셨다.
 
 “공부해야 사람이 된다. 그래야 성공도 할 수 있어.”
 
 그 참뜻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것.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들보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걸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다만 불행이 있다면 나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뻔했다. 내 위의 형과 누나가 공부를 워낙 잘했기 때문이다.
 
 “시험은?”
 “만점이요.”
 “하하! 그래, 내 아들이면 응당 그래야지. 민아는 어땠냐?”
 “만점은 못 받았어요. 그래도 학년에선 1등이에요.”
 “저런. 시험이 너무 어려웠나?”
 
 학교에서 시험을 본 후 결과가 나오면 이런 대화가 언제나 일상이었다. 형과 누나는 언제나 부모님의 기대를 배반하는 법이 없었고, 그건 곧 막내아들인 나에게까지 이어졌다.
 
 “도현이는?”
 “저, 그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던 아버지의 얼굴이 조금 흐려졌다.
 
 “음. 그래, 아직 어리니까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지.”
 
 그래도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
 
 아버지가 따로 나에게 크게 무어라 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도 크게 압박을 받지는 않았다.
 
 “열심히 할게요.”
 “그래, 그러면 된다. 열심히만 해. 그러다 보면 결과가 있을 거다. 적어도 공부만큼은 노력을 배반하지 않아. 과외가 필요하면 부담 없이 말하고.”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 공부 머리가 없었다는 것. 그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결과가 늘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
 
 고등학교 1학년 마지막 기말고사가 결정적이었다.
 
 “······.”
 
 허탈해서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자부하기로 고등학교 1학년 내내 정말로 열심히 했다고 여겼다. 그건 나를 지켜보던 형과 누나를 비롯한 친구들, 학교 선생님, 과외 선생님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심지어 아버지조차 내 노력을 부정하지 않았다.
 
 ‘돈도 엄청나게 쏟아부었는데.’
 
 투자한 것들을 생각하면 나 자신도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차라리 돈이 모자라거나 시험 당일의 몸 상태가 나빴다거나. 그런 이유라도 있었으면 몰랐을까.
 
 ‘오히려 컨디션은 좋았어.’
 
 그 때문에 자기 합리화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집안이······.’
 
 그래.
 
 집안이 어려웠다면. 혹은 집안에서 공부하는 데에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면. 그러나 집에서는 공부, 공부, 공부. 그놈의 공부 타령이 끊이지 않았으며 지원은 충분했고 스스로도 욕심이 있었다.
 
 “단순히 엉덩이만 붙이고 공부한다고 해서 성적이 오르는 게 아니다. 집중하고 머리를 써야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를 타박하는 아버지의 말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상처를 받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여겼다.
 
 “네 형과 누나의 반만 따라갔어도······! 휴, 아니다.”
 
 이런 어머니의 말 또한. 차라리 형과 누나가 나에게 못되게 굴었다면 원망의 화살이라도 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아니었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형은 내가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있을 때면 항상 뭔가 늘 뭔가 챙겨줬다. 그리고 때때로 미안해했다. 그건 나에게 공부를 알려 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거라도 먹고 해.”
 
 동생으로서 공부를 잘하는 형에게 질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사이가 나빴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형은 진짜배기 천재였다. 그래서 그런지 공부는 잘했으나 설명에는 재주가 없었다.
 
 “이거 수식 좀 알려줄 수 있어?”
 
 이런 질문을 하면.
 
 “그건, 어, 음.”
 
 더듬더듬 형은 설명했고.
 
 “그게, 그러니까······.”
 
 나는 주의 깊게 들었으나.
 
 “······이해돼?”
 
 이해할 수 없었다.
 
 “미안.”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형에게 질문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설명을 잘 못 해서. 좀 더 노력해볼게.”
 
 사실 형이 미안할 건 없는데.
 
 “너무 어렵네.”
 
 처음엔 무던히 노력했던 모양이다. 설명이란 걸 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 노력은 의미가 없었다. 형이 힘들게 설명해도 나는 이해를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질문 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고 형 또한 설명을 위한 노력을 포기했다.
 
 “야! 이도석!”
 
 반대로 누나의 경우는 공부를 정말 잘 가르쳐 줬다.
 
 “죽을래?!”
 “오빠한테 죽을래가 뭐냐, 죽을래가?”
 “이 화상이!”
 “화상? 내가 화상을 입었나?”
 “야!”
 
 항상 형과는 투덕거리며 험하게 말했으나 나에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내가 질문하면 항상 웃으며 설명해줬다. 그건 누나가 수재였기 때문이다.
 
 ‘나 못지않게 노력하니까.’
 
 그래서인지 누나의 설명은 대부분 이해하기 쉬웠다. 그런 누나는 내 목표이기도 했다. 안타까운 점은 누나에 비하면 내 공부 머리가 많이 모자랐다는 것. 누나는 수재 중에서도 수재였고 나는 범재. 아니, 범재라고 하기도 그랬다. 공부에 관해서는 평균 이하. 그걸 뼈저리게 느낀 것은. 아니, 인정하게 된 것은 삼수째 수능 가 채점을 하면서였다.
 
 “······.”
 
 다른 시험은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다못해 작년 시험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지 않았나.
 
 ‘X발.’
 
 절로 욕이 나왔다.
 
 작대기가 하나하나 그어질 때마다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아로새겨졌다.
 
 “너무 부담가지지 말 거라.”
 “그래, 못 보면 재수하면 되지. 우리 집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미영이 알지? 걔도 네 누나 못지않게 잘하는데 이번에 너랑 같이 시험 보잖니.”
 
 첫 수능 때 부모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었다.
 
 “이번에 못 보면 인생 끝나는 거 아니다. 재수는 흔해. 재수가 뭐냐. 내 대학 동기 중에서는 삼수, 사수해서 온 애들도 널렸어.”
 
 형에게도.
 
 “내 동기들도.”
 
 누나에게도.
 
 아마 그건 내 부담과 긴장을 덜어주려는 응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첫 수능의 결과가 별로였음에도 생각보다 담담했었다.
 
 ‘다음에는.’
 
 그래, 수능을 한번 보라는 법은 없었다. 이후 계속 노력했고 시간이 흘러 재수해서 결과가 나름대로 괜찮았다. 아버지도 내심 만족했던 모양인지 이런 말을 넌지시 건넸다.
 
 “한 번만 더 보는 게 어떻냐? 조금만 성적이 올라가면 괜찮을 것 같다만.”
 
 그래서 삼수를 보았다.
 
 “하.”
 
 마지막 시험이라 생각하고 공부에만 모든 걸 집중했는데.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아주 가끔 읽던 소설도. 이따금 몰래 했던 게임도. 모든 걸 끊고 공부만 했는데.
 
 ‘그것도 한 달에 서너 시간 정도였지만.’
 
 수면 시간도 줄였다. 체력을 위해 하루에 한 시간씩 투자하던 운동도 멈췄다. 심지어 친구들과의 연락도.
 
 “공부도 체력이 있어야 하는 건데. 운동은 그래도 하는 게 낫지 않아?”
 
 걱정스러운 누나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었다.
 
 “일 년 정도야 뭐. 수능은 더 보기 싫기도 하고.”
 “······그래, 일 년 정도라면야.”
 
 하지만 삼수의 결과는 처참했다. 부모님이 원했던 국내 최고의 대학인 S대는커녕 내심 목표로 잡았던 Y대나 K대에도 들어갈 수 없는 성적. 기껏해야 J대 정도일까. 남들이 보면 부럽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겐 아니었다.
 
 “그러다가 몸 상해. 쉬엄쉬엄해라.”
 
 심지어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원래도 게을렀던 적은 별로 없었지만 올해는 더 그랬다. 누나와 형이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죽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그래, 정말로 열심히 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그래, 조금만. 아주 조금만. 그렇다면 부모님도 나를 칭찬해주지 않을까. 형과 누나가 항상 내게 보내던 근심 어린 표정도 환하게 바뀌지 않을까. 그러나 내 기대는 무너졌다. 심지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죽을까.’
 
 가 채점을 하면서 그어진 작대기가 너무 아파서. 마치 심장에 칼로 난도질을 당한 것처럼 느껴져서.
 
 “쯧.”
 
 결과를 듣고 아버지가 가볍게 혀를 찼다.
 
 “······.”
 
 어머니는 아예 말씀이 없으셨다.
 
 “그, 음. 그게 말이지.”
 
 형은 나에게 무어라 위로를 해줬던 것 같다.
 
 “내가 요새 시간이 좀 나니까 과외 전담해 줄게. 안 그래도 일 년 정도는 휴학할까 싶었거든. 네 공부 봐주면서 사시 준비 좀 할까 싶어서.”
 
 누나는 내게 공부를 가르쳐 준다고 했었다. 우리 집안에서 사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하지만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공부가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한 것이. 그리고 포기란 단어가 떠오른 것이.
 
 “이건 있지.”
 
 또 누나의 친절한 설명도.
 
 “이거 먹고 해. 그러다 진짜 몸 상한다니까?”
 
 형의 위로도.
 
 “요새 열심히 하고 있느냐? 벌써 사수다, 사수.”
 
 아버지의 말도.
 
 “윗집 수현이 들었지?”
 
 어머니의 잔소리가.
 
 모든 게 싫어졌다.
 
 ***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티를 내지 않았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좋았기 때문이다. 형의 어설픈 위로는 힘이 되었고, 누나의 친절한 도움은 항상 고마웠다. 아버지의 타박과 어머니의 잔소리도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이 모든 게 내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공부를 더 잘하지 않으면.’
 
 더불어 내가 공부를 못하는 것. 그거 하나를 제외하면 가정은 평화로웠으며 행복했다. 그놈의 공부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도.’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니까.
 
 ‘내가 이번 수능만 잘 보면 모든 게 잘 될 거야.’
 
 그렇게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자신을 속였다. 아직은 괜찮다고. 좀 더 힘을 내면 결과가 나올 거라고. 그러나 지쳐도 너무 지쳤던 모양이다.
 
 사수를 준비하던 어느 날.
 
 “너만 없었으면 우리 집에 근심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쯧쯧.”
 
 술을 잔뜩 마신 아버지의 한 마디.
 
 “아버지!”
 
 형이 소리를 질렀다.
 
 “얘는! 밥상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사실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잖니.”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엄마! 무슨 말씀을 그렇게······!”
 
 누나가 화를 냈다.
 
 ‘아.’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없으면.’
 
 그래, 나만 없으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도, 누나도. 이렇게 싸울 일이 없었겠지. 무척 행복했겠고.
 
 “그럼 제가 없으면 되겠네요.”
 
 그러니까 근심거리가 없어진다면.
 
 나만 없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고 충동적인 감정에 몸을 맡겼다.
 
 “어?”
 
 창문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도현아!”
 
 어머니였던가.
 누나였던가.
 아니면 둘 다였나?
 누군가가 당황했다.
 
 “야!”
 
 형이 소리를 질렀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던 주마등은 경험할 수 없었다.
 
 ***
 
 알베르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이런 말을 했다. 깊이 반성한 끝에 자살을 시도하는 일은 드물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 거의 언제나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자살의 발단이 된다. 여러 매체에서는 흔히 실연이니 불치의 병이니 떠들어대지만 이와 같은 설명은 그럴듯해 보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바로 그 날이다.
 
 절망에 빠진 친구에게 누군가가 무관심한 어조로 대꾸한 적이 없는지와 같은 것들. 왜냐하면 그자가 바로 죄인임으로. 그 한 마디만으로도 유예 상태에 있었던 모든 절망과 권태가 한꺼번에 밀어닥치기에 충분하다.

댓글(75)

타르소스    
리메작?
2023.04.11 01:16
쟈니야    
언젠가 읽어 봤던 내용 같네요. 식탁부터 뛰어내리는 장면까지가 기억에 있군요.
2023.04.11 14:43
방랑은령    
이거 비슷한 내용 뉴스로 본거 같은데..
2023.04.12 09:33
크크모    
리메작이네
2023.04.12 17:53
g9************    
재연재인가?
2023.04.12 18:55
.마이구미    
세번째 리메 같은데
2023.04.12 21:19
무부치    
리메작이군요
2023.04.12 22:47
tonbo    
리메작이네 유료공지뜨면 다시보러와야지
2023.04.14 11:34
대설    
무슨 말씀을 그렇게 >> 무슨 말을 그렇게
2023.04.15 21:45
항상후회중    
싱가포르...였었나?
2023.04.16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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