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이 되지 못한 시간.
그러니까 흔히들, 새벽이라 부르는 시간.
평범한 학생이나 직장인들이라면 등교나 출근을 위해 자야 할 시간이지만. 그런 것과 연관이 없는 내겐 한창 때의 시간이다.
불을 꺼서 어두운 방, 유일하게 빛을 내뿜고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모니터 화면에선 10년째 유행하고 있는 게임이 나오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합류하라니까? 왜 안 내려 오냐고.”
어둡게 변한 화면, 죽어있는 캐릭터를 바라보며 짜증스럽게 말한다. 그러자 상대방이 답답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씨발. 넌 탑이 합류하는 거 봤어? 그런 건 나약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야.
듣기만 해도 감탄이 나온 맑고 고운 여성의 목소리, 허나 그 내용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아오, 저 목소리에 홀려서 같이 게임하자고 한 내가 병신이지.
“누가 탑신병자 아니라고 할까봐.”
-그냥 버티기만 하세요. 그러면 이겨 줄 테니까.
미친 소리를 무시하며 다시 살아난 캐릭터를 조작한다. 집 앞까지 몰려온 적들을 향해 스킬들을 쏘아내며 밀어내고 평타로 마무리.
“이게 피지컬이지.”
-뭐래, 딸칵딸칵 해놓고.
“개소리 말고 빨리 끝내기나 해.”
내 말에 상대방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상대방의 집을 터트렸다. 좋아. 끝났다. 화면 가득히 [승리]라는 두 글자가 떠오르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이아 가기 진짜 더럽게 힘드네.”
-숟가락 자식 버스 태워주기 힘들다, 힘들어.
“시끄럽고. 더 할 거야?”
-아니, 나 이제 쉴래.
그 말에 게임을 종료하고 음성 채팅만 켜두었다. 음성 채팅에 연결 되어 있는 상대방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실패작이래]
참으로 말을 걸기 싫은 닉네임. 저 닉네임의 유저와 알게 된 건 한 커뮤니티였다. 커뮤니티에서 키배를 뜨다가 1:1을 하게 됐고, 그러다가 이상하게 죽이 잘 맞아서 같이 게임을 하는 사이가 됐다.
다만, [나는실패]의 경우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바빠서 같이 게임을 하는 건 1주일에 많아야 3, 4판 정도다.
-뭐해?
“그냥 멍하니 쉬는 중.”
-아, 맞아. 나 앞으로 2개월은 게임 못 들어와?
“뭐?”
갑작스러운 [나는실패]의 말에 나는 당황하며 물었다. [나는실패]는 집밖에 나가기를 거부한 내게 있어 유일한 친구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갑자기 2개월이나 게임에 못 들어온다니.
“왜?”
-아이구, 목소리에 아쉬움 뚝뚝 묻어나오는 것 봐. 누나 못 봐서 아쉬워 죽겠어?
“꺼져.”
-농담이고. 일 때문에 해외에 가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나는실패]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일이라.
역시, [나는실패]도 일을 하는구나.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실패]가 멀게 느껴졌다. 내가 집 밖에 나가기를 거부한지 어느새 8개월이 지났다.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 박히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남들 자는 시간에 게임을 하고, 취미 생활을 깔짝이다가 남들 일어난 시간에 잠을 잔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내게는 집 밖에 나갈 용기가 없다.
-그렇게 아쉬우면 노래나 들려줘.
“뭐?”
-저번에 그 노래 말이야. 그거 틀어달라고.
[나는실패]의 말에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 [나는실패]가 말하는 노래란 다름 아닌 내가 만든 노래니까. 그렇다고 내가 전문적으로 노래를 배웠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단순히 취미로 만든 노래다.
여태까지 남들에게 한 번도 들려준 적이 없었는데. 한 번 음성 채팅을 끄는 걸 깜빡하고 노래를 만들다가 그걸 [나는실패]가 우연히 들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실패]는 틈만 나면 내게 노래를 들려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그 부탁을 나는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냥, 뭐.
쪽팔리잖아!
전문적으로 노래를 배운 적도 없고, 그냥 유튜브 영상 같은 거 보면서 혼자 취미로 만든 노래인데.
그걸 어떻게 들려줘.
-오늘 아니면 2개월 후에나 보는데? 그래도 안 들려줄 거야?
“그래도 그건 좀.”
-그거 들려준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아, 그래. 들려주면 내가 2개월 뒤에 돌아올 때, 선물 사다줄게. 어때?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나는실패]의 말에 한숨을 내뱉는다.
-거참, 쪼잔하고 치사하게. 그러니까 숟가락이나 하지.
“냅두셔.”
-쓰읍, 그러면 이번에 나온 게임 한정판 사줄게. 어때?
“이번에 나온 게임?”
-응. 너 가지고 싶다는 거 있잖아.
마치, 이래도 안 넘어올 생각이냐는 듯이 [나는실패]가 음흉하게 말했다. 내가 가지고 싶다고 말한 게임.
그게 뭐였더라, 고민을 하다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스토리로 전 세계를 울리며 명작이라 불리는.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생존을 위해 뛰어다니던 게임의 후속작.
하고 싶긴 했지만 예약 구매가가 7만원이라 포기했었는데. 그걸 사준다고? 심지어 일반판이 아니라 10만원짜리 한정판으로?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무료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했다.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10만원이 어디 허공에서 떨어지냐?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한 나는 마이 페이지에 들어갔다. 지금 내가 접속한 사이트인 클라우드는 회원가입만 하면 무료로 음악을 업로드하고, 들을 수 있는 사이트로 게임을 하면서 이곳에 있는 음악들을 듣는 게 나의 몇 안 되는 취미다.
나는 그 사이트에다가 [나는실패]가 들을 수 있도록 음악을 업로드 한 뒤에, 그 링크를 [나는실패]에게 보냈다.
“약속 지켜.”
-확인해 봐.
[나는실패]의 말에 음성 채팅방을 확인하니 [예약구매완료]가 적힌 사진과 선물 확인이라 적힌 링크가 적혀 있었다.
이야, 10만원이나 하는 걸 노래 하나 들려준다고 사주다니. [나는실패]는 뭐냐? 부자인가? 집이 잘 사나?
아니지.
일을 한다고 했으니 설마 대기업 직원?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단, 2달이나 해외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가 않다. 사실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그냥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약에 내 생각이 정답이라면.
통탄스러운 일이로군.
대기업의 직원-이미 내 머리에선 [나는실패]는 대기업 직원이라고 확정을 내렸다-이 인터넷에서 그런 짓이나 저지르다니.
그래도 게임을 사줬으니까 넘어가도록 하자. 원래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런 곳이 필요한 법이다.
나중에 정식 오픈을 하면 게임을 즐길 생각에 함박 미소를 짓고 있는데 [나는실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물 보내줬으니까 나 다시 돌아올 동안 노래 지우면 안 된다?
“뭐? 지금만 듣는 거 아니었어?”
-어허, 그런 게 어디 있어. 10만원이 우스워? 땅 파면 나와? 싫으면 환불을 해주던가.
유감스럽게도 이 사이트에는 한 번 받은 선물을 환불 해주는 기능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치사한 년 같으니라고.
-그건 싫다고? 그러면 그렇게 알게. 나중에 보자!
해맑은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실패]는 음성 채팅에서 나갔다. 아이콘이 접속 종료로 변경 된 것을 확인한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뭐.
10만원짜리 사줬는데 그 정도도 못해주겠냐.
댓글(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