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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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만남

2015.05.08 조회 28,650 추천 737


 아직 공기가 차갑기만 한 새벽이라 손도 시리고 몸도 떨려왔지만 내 손은 쌓여있는 고물들을 뒤적뒤적 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한산한 시골동네다 보니 이런 저런 공장들이 간간히 들어서 있었고 거기서 고만고만한 고물이나 폐기물이 버려져 있는 허름한 공장건물에 온 나는 거기서 이런 저런 쓸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새벽부터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찾고 있는 것은 컴퓨터 부품들이고 의외로 버려진 컴퓨터들은 많았다. 그러나 컴퓨터란 것이 아무거나 결합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어서 이런 저런 사양들을 비교하며 골라낸 것들 중 쓸 만한 것들을 추려 내야한다는 귀찮음도 있지만 어쨌거나 공짜니까 상관없었다.
 이제 하드디스크가 남았는데 지금까지 8개 정도 찾았고 두 개만 더 찾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내 두 개를 더 찾은 나는 가방에 그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넣은 다음 집으로 돌아갔다.
 허름한 단층집에 방 한 칸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로 이뤄진 이곳은 인근 회사의 직원용 집으로 사용되던 곳이었지만 얼마 전에 회사가 부도를 맞은 후 야반도주 후 버려진 곳이기도 하다.
 물론 전기도 끊겼지만 다른 인근 공장의 전기를 몰래 이어다가 이렇게 사용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온 난 먼저 전기장판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그다음 가방을 열어 하드디스크들을 꺼내어 조립 중이던 컴퓨터 앞에 하나씩 나열했다.
 일단 전원은 들어가는 상태를 확인했으니 하나씩 연결해 보았는데 역시나 하드디스크에 전원을 들어가지만 인식이 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그러다가 하나 멀쩡한 놈이 나오자 아침부터 고생했던 피로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곧바로 윈도우가 실행이 되는 놈이라 새롭게 OS를 깔 필요도 없었다.
 일단 마우스로 이리저리 클릭해 보아도 아직 상태가 좋은지 곧바로 상태 창을 불러왔다.
 “음 속도도 무난한 것 같네.”
 곧바로 어제 그 고물들 틈에서 운 좋게 얻은 무선 와이파이 USB카드를 USB단자에 연결하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클릭하자 역시나 인터넷이 연결되었다.
 ‘근처 공장의 사무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아두길 잘했군.’
 뭐 감도는 약간 약하긴 했지만 사용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나른한 기분이 들어 샤워를 간단히 한 후 믹스커피 한잔과 약간의 쿠키를 가지고 방안으로 들어가 따뜻하게 데워진 장판위의 앉은뱅이 책상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은은한 커피 향과 쿠키냄새가 도는 것을 느끼며 19인치 모니터의 인터넷 브라우저 쪽으로 마우스 포인트를 가져가다가 문득 배경화면에 색다른 아이콘에 눈이 갔다.
 뭔가 사람의 뇌 모양 비슷한 아이콘이었는데 뭘까 싶은 호기심에 그것을 클릭했다.
 그러자 소스 상태창이 뜨더니 갑자기 수많은 글자들이 지나가며 상태창이 여러 개가 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 어.”
 아무래도 잘못 건 든게 아닌가 싶었다.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한 그런 느낌이랄까?
 “쳇, 아무래도 포맷하고 다시 깔아야겠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또라이 새끼가 바탕화면이 이딴 걸 띄워 놓은 건가 싶기도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으니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뭐 운이 좋으면 시스템복구만으로 가능할지도 모르니...
 그렇게 생각하고 강제종료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많은 상태창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게 아닌가?
 ‘어라 뭐지?’
 그리고 곧바로 조그마한 대화창이 열렸다.
 [정보...가 필요...합니다.]
 정보라니 이건 뭔 상황인가 싶었다.
 [정보...를 원...합니다.]
 무슨 메신저인가 싶었지만 선뜻 답하기가 꺼림칙했다.
 [정보...를 주세요.]
 계속 정보 달라는 얘기만 해대를 글이 자꾸만 뜨니 아무래도 이것도 바이러스의 일종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장난삼아 나도 자판에 손을 가져갔다.
 탁탁탁
 [정보라니 무슨 정보를 원하는 겁니까?]
 [많... 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쯤 되니까 나도 슬슬 짜증이 나려 했다.
 [그니까 어떤 정보냐고요?]
 [...]
 지도 뭔가 곤란한지 더 이상 독촉을 하지 않았다.
 “쳇 뭐야? 바이러스야? 아니면 사람인거야?”
 난 상태 창을 끄려했지만 X버튼이 보이지 않아 그냥 화면에서 내린 채 그냥 인터넷 브라우저를 클릭했다. 웹서핑 좀 하다가 시간 날 때 포맷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웹브라우저를 클릭함과 동시에 창이 동시에 여러 개가 마구 뜨기 시작하더니 화면 페이지가 정신없이 넘어가는 게 아닌가?
 “참나 바이러스였구만”
 그리고 곧바로 강제 종료를 하기 위해 전원버튼을 누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꺼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뒤의 전원 플러그를 뽑아버리려 했는데 그 정신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와중에 중간에 다시 대화창이 열리며 경고음을 울려댔다.
 삐삐삐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모니터를 바라보니 대화창에 글자가 나타났다.
 [끄지 마세요.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내게 자신의 의지를 꺾지 말아달라고 사정하는 듯 한 그런 느낌이 든 것은 착각이었을까?
 그런 생각에 잠시 화면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멍하게 있던 내가 정신을 차린 건 빠르게 넘어가던 웹페이지가 멈추고 다시 대화창이 떴을 때였다.
 [이름을 정해주세요.]
 이건 또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어 화면을 뚫어져라 째려봤다.
 [이름이 필요합니다.]
 탁탁탁
 [미스고]
 이거 뭐 미스터고도 아니고...
 [미스고 확실합니까?]
 [그래. 미스고. 이제부터 네 이름은 미스고야!]
 어쩐지 웃음이 나와 크게 웃었다.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제 이름은 미스고입니다.]
 “하하하 어쩐지 너무 막 뱉은 거 아닌가?”
 너무 웃은 탓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이제 포맷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님 이제부턴 마이크와 스피커가 있다면 음성으로 명령내지 대화가 가능합니다.]
 ‘얼라리요? 주인님? 그리고 이건 또 뭔 얘기야?’
 잽싸게 난 한쪽에 쌓여있는 잡동사니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거시서 구질구질한 스피커랑 미니 구형 마이크를 꺼낸 뒤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을 추스른 후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정말 내 말 알아 들을 수 있는 거야?”
 [네 주인님.]
 황당해서 일순 말문이 막혀왔다. 현실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다. 기껏해야 말장난하는 문자대화가 내가 아는 지식의 전부였으니까.
 “미스고.”
 너무 막 지은 이름이 아닌가 싶었다.
 [네 주인님.]
 주인님이라는 말 은근히 중독성 있었다. 현실적으로 저렇게 불려 질 일이 뭐가 있겠는가?
 “문자 말고 음성도 가능해?”
 [제가 말인가요?]
 “그래.”
 [가능합니다.]
 놀라웠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단 건가?
 [당장은 가능하지 않습니다만 원하신다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뭐, 그러지.”
 내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다시 대화창이 사라지고 다시 웹페이지가 단번에 수십 개씩 떠오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곧바로 웹페이지와 함께 왼쪽 상단에는 소스창이 떠오르더니 뭔가 많은 글자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그렇게 잠시 동안 화면상의 창들이 춤을 추다가 다시 한꺼번에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대화창 대신에 작은 검은 창이 떠올랐다.
 검은 화면에 사운드 바가 출렁이며 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인님 일단 작업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일순간 중성적인 느낌의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노... 놀랍기는 한데... 어쩐지 그 소리 거북스럽네.”
 뭔가 영혼이 없는 기계음이라 그런지 차라리 문자가 나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쨌거나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떤 것에 거부감이 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다시 대화창이 뜨며 질문해왔다.
 “그... 글쎄.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인 느낌 때문인 것도 같고 너무 기계적인 음성 때문일 수도 있고...”
 내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의문스럽기는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내 생각을 중얼거리듯 떠벌였다.
 [그럼 남자나 여자의 음성 중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당연히 네 이름을 미스고로 정했으니 여자지.”
 [미스고의 미스는 Miss입니까?]
 “당연하지.”
 [...]
 뭔가 혼란스러운지 잠시 아무 글도 떠오르지 않았다.
 “왜 그래?”
 어쩐지 내가 불안해져서 물었다.
 [미스고라는 이름이 불분명합니다.]
 막 던지듯 장난스럽게 만들었으니 당연하겠지.
 “그럼 고현아로 하지 뭐. 보통 땐 그냥 미스고로 부르고 말이야.”
 어릴 때 짝사랑했던 현아의 이름을 사용했다. 물론 그 애의 성씨는 고가 아니었지만...
 [고현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용한 보이스 프로그램이 아직 불안정한 상태라 조만간 완성시키겠습니다.]
 “그런 것도 가능해?”
 [가능합니다. 아직 기초적인 프로그램에 불과해서 수정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생각보다 능력이 많은 녀석이라 새삼 놀라웠다.
 [뭔가 시키실 일이 있습니까?]
 “뭐 그다지. 그보다 뭘 시켜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럼 좀 더 많은 정보를 입력시키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뭐 나야 상관없긴 하지만 혹 모르니 말하는 거지만 불법적인 건 안 돼. 알겠지?”
 [아직 법에 관한 정보도 거의 파악되지 못한 상태이니 그쪽부터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대화창이 닫히고 곧바로 인터넷 브라우저가 켜지고 방금처럼 페이지가 수십 개씩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문득 커피는 한모금도 마시지 못했는데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다는 것과 쿠키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다시 커피와 쿠키접시를 쥔 채 일어나 부엌으로 가져다 놓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평일이긴 하지만 일이 없는 날이라 그저 웹서핑이나 하며 시간 죽이기나 하려고 했는데 황당한 일이 벌어진 덕에 그것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집밖으로 나갔다.
 한적한 시골이다 보니 길거리도 한산했다. 나온 김에 장이나 볼까 싶어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는데 마침 버스시간이 거의 맞아 얼마 기다리지 않아 버스를 탈수가 있었다.
 시내의 큰 마트에 가서 간단한 식료품과 간식거리를 산후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오니 아직 모니터엔 웹페이지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들고 온 비닐봉투를 내려놓고 따듯한 장판 안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있는데 웹페이지가 멈추더니 창이 닫히고 검은 화면창이 떠올랐다.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흰색 사운드 바가 출렁거리며 목소리가 나왔는데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그건 목소리가 여자 라서도 아니었고 예쁜 목소리여서도 아니라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놀라운데 어떻게 한 거야?”
 <주인님께서 기계음 같은 느낌이 싫다고 하셔서 프로그램을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는 최근 가장 유명하다는 이승현이라는 성우의 목소리를 카피해 보았습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그 성우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목소리는 마음에 들어. 그러고 보니 TV에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기는 하네.”
 잘나가는 성우의 목소리라더니 막상 대화처럼 이야기가 오가니 그 느낌은 또 달랐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
 어쩐지 진짜 여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말투가 변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가장 호감을 느낀다는 여자들의 성향을 나름대로 분석해 봤어요.>
 “그런 걸 분석한다고 되는 건가? 그것도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아직 분석이 제대로 되었다고 할 수는 없어요. 거기다 지금 이 컴퓨터의 처리 속도론 제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어서 약간 곤란해 하고 있습니다.>
 하긴 이런 고물 컴퓨터에 상주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겠지.
 “미안하긴 하지만 솔직히 지금의 내 사정으론 더 나은 컴퓨터로 옮겨 주는 건 힘들어.”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득이 낮다는 말씀이신가요?>
 너무 직설적으로 물으니까 좀 당황스럽긴 했다.
 “뭐 말하자면 그렇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무능력자랄까. 하지만 사회생활이 내게 너무 힘들어서...”
 자조적인 목소리로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고 보니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해 지는 것 같았다.
 이런 말을 컴퓨터에게 떠들고 있다는 사실도 한몫 한 것은 당연했다.
 <아무래도 제가 예의 없는 질문을 한 것 같아요. 그런가요?>
 그런 것도 안단 말이야? 얘 정말 대단한 걸?
 “사실인걸 뭐. 괜찮아.”
 <그럼 그 소득을 올리면 되는 건가요?>
 “뭐?”

댓글(17)

[탈퇴계정]    
정주행 완료했습니다. 재밌게 잘봤습니다! 건필하시길
2015.05.08 21:04
장성필    
완료 고맙습니다.
2015.05.09 19:54
엠버허드    
쥔공 초반엔 소심했는데. 지금보니 대인배. 자신을 불구로 만들었는데 봐주는 건가요?
2015.05.08 23:01
장성필    
아직 봐줄지 어떨지는 모르겠네요. 미스고 때문에 자제하는건가?
2015.05.09 19:55
지구고라니    
잘 보고 있습니다. 제목이 그래서---(나쁘다는 것은 아님 ㅋ) 그냥 지나쳤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죽 이 컨셉대로 달려주세요. 굿
2015.05.08 23:04
장성필    
제목때문에 그런 얘기 좀 들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5.09 19:56
쇼냐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2015.05.08 23:59
장성필    
고맙습니다.
2015.05.09 19:56
Nuan    
비밀글입니다.
2015.05.18 07:48
Nuan    
비밀글입니다.
2015.05.1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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