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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1. 브로커, 회귀하다(1)

2023.04.05 조회 27,503 추천 398


 서장
 
 
 “이혁준씨, 당신을 체포합니다.”
 
 새벽에 자다가 일어난 이혁준은 난데없이 자신을 체포한다고 하니 정신이 없었다. 검사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있지만 자다가 깨어난 상황이라 잘 들리지도 않았다.
 
 “소환조사도 없이 곧바로 체포입니까? 내 죄가 뭡니까?”
 
 통상적으로 피의자를 소환조사하여 혐의사실을 확인한 연후에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는 게 보통인데 그런 절차도 없이 곧바로 체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말했지 않습니까? 잘 이해되지 않으면 여기 체포영장을 보십시오.”
 
 검사가 체포영장을 제시했다. 온갖 죄목이 나열되어 있었다. 나열된 법조문이 수십 개이고 연관된 죄목만 해도 수십 개였다. 거기다 도주와 증거 인멸의 위험이 크기에 긴급으로 체포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마저 명기되어 있었다.
 
 정당하게 법원에서 발급된 체포영장이기에 물리적으로 저항할 수조차 없어 그저 변호사에게 연락하는 게 고작이었다.
 
 “귀하는 몇 번이나 증인을 회유하고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있기에 사전에 소환조사를 하지 않고 이렇게 체포하게 되었습니다. 법원도 그걸 인정했기에 바로 체포영장을 내준 것 아닙니까?”
 
 체포영장을 집행하러 온 김유성 부부장 검사가 조롱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온갖 사기와 불법을 자행하는 이혁준이지만 워낙 사후 처리가 철저해서 몇 번의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항상 모든 일을 할 때는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실제로는 증거가 남지 않도록 말끔히 처리했다.
 
 그 때문에 몇 번의 사건에서 심증은 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어떤 경우에는 판결문에 그렇게 판시한 경우가 있었다.
 
 실제 탈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교묘하게 일을 추진했다. 그렇기에 사후에 이혁준의 혐의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래금융그룹에서 아주 작정을 한 것 같군요.”
 
 미래증권의 경영권을 놓고 미래금융지주의 회장인 박현식과 대립했는데 경영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종결이 되었다.
 
 그와 같이 일을 추진한 대호증권에서 배신을 하고 말았다. 물론 엄밀히 말해 배신이 아닌 쌍방 합의였지만 경영권을 획득하지 못했으니 패배한 거나 다름없었다.
 
 다 끝난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번 일에 앙심을 품고 미래금융그룹에서 증거를 취합하여 고발했고 어느 순간 같은 편이었던 대호증권마저 저들 편에 서고 말았다. 물론 그 이면에 재벌, 특히 칠성그룹이 존재했다.
 
 “전에는 어떻게 빠져나갔지만, 이번에는 어려울 겁니다. 증거가 워낙 명확해서 말입니다.”
 
 “그거야 조사하면 다 나오겠지요.”
 
 이혁준은 검사가 할 소리로 대꾸하고 변호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사실 탈법이라고 나열된 사안 대부분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일이고 법리적으로 이견의 여지가 많았다. 재판으로 가면 유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건들이었다.
 
 “은밀히 알아보니 대호증권에서도 수사에 협조한다고 합니다. 칠성의 박영창 회장이 개입했다고 합니다.”
 
 조사를 하는 과정에 변호사인 황지만이 탄식하듯이 사건의 배후를 전했다. 이렇게 일이 진행된 배후에 대호증권의 배신이 있었다. 대호증권이 협력하지 않았다면 알기 어려운 일이었다.
 
 칠성그룹의 박영창 회장은 이혁준과 앙숙이나 마찬가지인 인물로 이혁준에게 몇 번이나 당한 전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보복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었다.
 
 같이 일을 추진한 대호증권을 움직여서 협조하게 만든 것도 박영창의 수작으로 보였다. 이번에는 무사히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걸로 보였다.
 
 “재벌들이 나서서 어떻게든 회장님을 잡으려는 것 같습니다.”
 
 이혁준은 평생 온갖 로비에 관여하고 이권 쟁탈전에 나서고 각종 회사의 M&A에 개입하여 이득을 취했다. 그 때문에 재벌들도 이혁준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재벌들의 계열사 간의 순환출자의 취약한 고리를 노려서 M&A를 시도하여 이득을 취한 게 문제였다.
 
 “불법의 여지는 사전에 차단한 것 아닙니까?”
 
 이혁준은 안전을 중시하기에 무슨 일을 추진하건 법적으로 하자가 없도록 진행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사후에라도 철저하게 보완하거나 증거를 인멸하여 뒤탈이 없도록 했다.
 
 “차단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소소한 절차상의 하자는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조금만 뒤틀어서 진술하면 문제가 될 여지가 큽니다. 더구나 대호증권의 직원들이 움직인 상황인데 그들의 행위 중에 불법행위가 없을 수 없고 그들을 최종적으로 지휘한 것은 회장님이지 않습니까?”
 
 주식을 매집하거나 주주의 위임장을 받는 과정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회유와 설득이 이루어졌는데 그걸 조금만 뒤틀면 협박이 되고 매수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배임이나 알선수재 같은 혐의를 씌우는 것도 가능했다. 거기다 증권거래법이나 각종 자본시장 관련 법률마저 위반한 경우가 허다했다.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직원들이야 시킨 대로 한 것이고 위반한 건수가 한두 건이지만 그걸 모으면 수십 가지 위반이 되었다.
 
 결국 십시일반이라는 말처럼 사소한 위반도 모으면 눈덩이처럼 죄가 커졌다. 법리적으로 그런 일을 총괄적으로 지휘한 이혁준의 죄가 되었다.
 
 적당히 직원들을 구슬리거나 압박하면 원하는 모양의 진술이 나올 수가 있고 그게 쌓이고, 쌓이면 결국 하지 않던 일도 한 것처럼 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대호증권의 최연석 회장이 배신한 것 같습니다. 이번 일로 이득을 봤지만, 회장님이 중간에 매도차익을 한 번 챙긴 것을 알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주식을 매집하는 단계에서 미래금융그룹에서 그 사실을 알고 방어에 나섰을 때 주가가 오르자 아예 그동안 모은 주식을 매도했고 그렇게 하자 주가가 폭락했다.
 
 그걸 다시 낮은 가격으로 매집한 이후에 본격적인 작업을 했다. 그 과정에 막대한 이득을 챙겼는데 그건 대호증권과 연합하기 전이라서 이익을 배분할 사안이 아닌데 그것마저 이익 배분에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보면 대호증권의 최연석 회장을 끌어들인 일 자체가 패착이었다. 그런 인물인 것을 알았다면 다른 사람과 협력해야 했는데 금융권과 협력하는 게 시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자신의 업보인 것 같아 할 말이 없었다. 그렇기에 검찰의 추궁에도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했던 일 대부분 약간의 뉘앙스가 다른 방식으로 증언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물증으로 혐의를 입증할 수 없기에 삼인성호의 방식으로 증인을 회유하여 사실관계를 미묘하게 뒤틀려고 했다.
 
 짐작한 것처럼 상황이 흘러가자 진술을 거부했다. 그렇게 되니 검찰은 그걸 이유로 하여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조사도 하지 않고 바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없기에 이렇게 순서를 밟는 것 같았다.
 
 “당장 복용할 약이 필요해.”
 
 유치장에서 구속영장 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면서 평소 복용하던 몇 가지 약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알고 약을 가져다 달라고 했지만, 엄살로 들었는지 제때 조치해주지 않고 있었다.
 
 체포 대상자인 이혁준이 겉으로는 건장해 보이는 상황이라 체포할 때 지병이 있는지 살피지 않았고 지병으로 장복하는 약을 챙기지 못했다. 검사나 체포영장을 집행을 담당하는 사람이 챙겨야 했지만 놓친 부분도 있었다.
 
 막상 조사받을 때는 긴장한 탓에 느끼지 못했지만, 여유가 생기자 지병이 점점 나빠진 걸 알 수가 있었다. 평소에 혈압도 높고 당뇨도 있고 지방간에 위장병까지 있는데 아침부터 약을 먹지 못했으니 오후가 되자 견딜 수가 없었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어지러움이 느껴졌고 조금 지나자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조금 지난 후에 누군가 유치장에 들어와서 그런 상황을 발견하고 외쳤지만, 이혁준은 이미 정신이 가물가물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은데. 김유성 프로 어떻게 된 거야?”
 
 담당 검사들까지 다가와서 뭐라고 한마디를 했다. 영장 심사가 결정되면 바로 데려가기 위해 검사들도 대기 중이었다.
 
 “이거 골치 아픈데. 어떻게든 살려야 해. 여기서 죽게 할 수는 없어. 죽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가 되고 말아. 이 새끼야 일어나. 씨발, 누굴 죽이려고 맘대로 뒈져?”
 
 누군가 상황을 수습하는 가운데 담당 검사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체포하여 조사하던 피의자가 죽는다면 그 책임은 담당 검사가 질 수밖에 없었다.
 
 피의자가 죽으면 수사한 공은 사라지고 사람을 죽게 만든 그의 잘못만 부각이 될 판이었다.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잘못이 컸다. 지병을 앓는 경우 약을 끊으면 바로 부작용이 생길 위험이 있었다. 그걸 주의해야 했는데 놓치고 말았다.
 
 김유성 부부장 검사가 책임을 질 걱정에 고함을 치면서 발광했지만, 돌이키기에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이혁준은 이미 숨이 넘어간 상황이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으니 이제 김유성도 검사로서의 생명은 끝이었다.
 
 이혁준은 더 이상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죽어가는 가운데 주마등이 보이고 있었다.
 
 ‘사기꾼처럼 살지 않고 남들처럼 착실하게 살았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1. 브로커, 회귀하다
 
 
 이혁준은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자신이 있는 공간, 갓 대학을 졸업할 때의 본가 자기 방을 뒤져 각종 정보를 획득한 후에야 상황을 인식했다.
 
 배불뚝이 중년이 한순간 호리호리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186cm에 달하는 미남이 거울에 보이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 모습에 회귀 전의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평생 브로커 같은 한량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지금 대학생인 이혁준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보다 한탕을 노려서 어떻게 하면 놀고먹을지만 궁리하고 있었다.
 
 50대 중반의 아저씨가 30년을 거슬러 올라와 20대 중반이 되었으니 그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더구나 범죄 피의자로 몰려 체포가 되었고 구속영장 심사를 받기 전에 유치장에서 대기하다 지병이 발작하여 죽었는데 난데없이 회귀하고 말았다.
 
 이런 사실을 깨닫자 다시 젊어져서 오래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지만, 전에 살던 세상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심지어 자신이 여전히 꿈을 꾸는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증권회사의 경영권을 놓고 벌어진 인수전에서 패배한 직후 벌어진 각종 고소, 고발에서 불법행위가 드러났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그게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조사를 하니 사기, 배임, 자본시장법 등의 위반이 드러났고 그런 혐의로 체포가 되었고 매일 복용하던 약, 고혈압, 당뇨 등의 약을 건너뛰면서 쓰러졌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꿈인가 해서 꼬집기도 하고 온갖 것들을 다 실험했지만,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본격적인 한량의 생활을 시작하는 시기로 다시 돌아온 상황이었다.
 
 혹시나 꿈을 꿨던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매일 진행되는 일들을 보면서 꿈이 아닌 현실이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팔방미인’, ‘만능스포츠맨’, ‘게으른 천재’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니는 사람이 이혁준이었다.
 
 유치원에 들어가서는 뛰어난 학습 능력으로 인해 천재이니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태권도를 배울 때는 태권도 천재로, 피아노를 배울 때는 피아노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
 
 일례로 초등학교 1학년 나이로 각종 태권도 경연대회나 광문시 초등학교 피아노 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돈을 써서 받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실력으로 수상했다.
 
 단, 진득한 성격이 아닌 탓에 자리에 앉아서 뭘 해야 하는 미술은 영 소질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재능이 아예 없지는 않아 학교에서 하는 미술 정도는 어느 정도 하는 편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덩치가 크고 달리기를 잘해 육상대회에 나가서 달리기 선수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또한 키 크는데 좋다는 말에 수영도 배웠다. 수영장을 다니면서 수영선수가 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물론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어린이 축구교실에 다니면서 축구 선수로 활약했고 5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초등부 축구대회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댓글(19)

borislee    
오랜만에 신작을 보게 되어 기쁘네요. 열심히 읽겠습니다
2023.04.08 00:57
殺人微笑    
잘보겠습니다
2023.04.08 23:16
아슬아슬한    
새 작품 시작하셨네요.. 오늘 봤습니다. 이번에도 즐겁게 따라가겠습니다..
2023.04.23 20:18
大殺心    
이렇게 읽기 힘든 글을 또
2023.04.25 22:16
雲祖    
그 밥에 그 반찬..
2023.04.28 09:32
가을감시    
신작 기다리고 있었어요. 건필하세요
2023.05.04 16:37
허전함    
잘보고갑니다
2023.05.05 10:12
태양광    
문체가 건조한 설명문형태임. 너무 건조해서 주인공에 대한 몰입이 힘듭니다.
2023.05.07 13:13
세비허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2023.05.08 11:39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3.05.1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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