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방출된 2군 투수는 메이저로 간다

001 방출과 기적 1

2023.04.17 조회 49,406 추천 686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좌측 펜스를 그대로 넘어간 홈런이었다.
 
 주먹을 불끈 쥔 20살의 신인 타자는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몰린 135km/h의 패스트볼을 홈런으로 만든 후 천천히 다이아몬드를 돌기 시작했다.
 
 “타임.”
 
 포수인 하승연이 마운드 위에 서 있는 최강토를 향해 다가왔다.
 
 “형. 지금은 코스가 너무 쉬웠어요. 잊어버려요.”
 
 “그래.”
 
 말은 알겠다고 했지만, 분한 마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분한 마음이 스스로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강토 본인도 알고 있었다.
 
 몸쪽 낮은 코스를 보고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밋밋하게 들어갔으니 홈런을 맞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따악!
 
 이번엔 낮은 코스로 떨어지는 커브를 얻어맞아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뚫는 깔끔한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프로야구에 몸을 담은 지 벌써 8년.
 
 사이드암과 좌완이 많은 서울 파이터스는 189cm라는 큰 키의 우완 정통파 강속구 투수인 강토를 드래프트 2차에 지명했다.
 
 그 덕분인지, 1군 무대도 생각보다 빠르게 설 수 있었다.
 
 시즌 중반 불펜진이 부상에 시름하며 완전히 무너진 서울 파이터스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2군 투수 몇 명을 1군으로 불러올렸다.
 
 강토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최고 구속 150km/h의 패스트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신인의 패기 덕분에 데뷔 첫해의 성적은 20경기 0승 2패 5홀드 방어율 3.01로 나쁘지 않았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성공하는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꿈도 꾸었다.
 
 하지만, 이러한 꿈은 프로 데뷔 3년 만에 산산이 무너졌다.
 
 부상.
 
 살아남기 위해 언제나 전력 피칭을 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도 마운드에 올랐다.
 
 프로 3년 차까지 1군과 2군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했지만, 시즌이 끝나고 참가한 마무리훈련에서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 부위에 이상함을 처음 느꼈다.
 
 하루가 지나자 사라진 통증에 별일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훈련을 모두 소화했지만, 몸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 스프링캠프에서 폭탄이 터졌다.
 
 어깨는 회전근개 미세 파열 진단이라 수술까지 필요하지 않아 그나마 괜찮았지만, 문제는 팔꿈치였다.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 파열을 진단받은 강토는 결국 스프링 캠프 중간에 수술대로 향했다.
 
 토미 존 수술.
 
 부상당한 팔꿈치 인대를 다른 부위의 힘줄로 교체해주는 수술로 많은 야구 선수들이 이 수술을 받고 재기에 성공했지만, 야구의 신은 강토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수술 이후 약 1년 반의 재활 기간을 버티며 재기를 노린 강토였지만, 150km/h가 넘는 패스트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재활 이후 1군과 2군을 몇 번 왔다 갔다 했지만, 최근 2년 동안은 1군 무대는 구경도 해보지 못한 상태였다.
 
 “타임!”
 
 6회 말, 1 대 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 중간 계투로 올라온 강토가 아웃 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 채 홈런과 연속 안타를 얻어맞자 보다 못한 벤치가 움직였다.
 
 주심에게 야구공을 하나 받고 마운드로 올라오는 2군 투수 코치의 모습이 강토의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구나.’
 
 마운드에 올라온 투수 코치가 강토를 향해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었지만,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강토는 이미 알고 있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강토는 감독석에서 가장 먼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체 저 퇴물을 왜 자꾸 나 다음에 기용해서 내 승리를 날려버리는 거냐고.”
 
 “쉿. 들리겠다.”
 
 선발 투수였던 김연수의 말을 급히 끊는 불펜 포수였지만, 바로 뒤에 있던 강토가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다 들린다 이 새끼들아!’
 
 당장이라고 저 어린놈들에게 한소리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서울 파이터스에서 선발 투수로 키우고 있는 22살의 좌완 투수인 김연수는 강토와는 달랐다.
 
 구단에서 공을 들이는 좌완의 젊은 투수와 당장 방출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장 난 2군 투수의 차이는 상상이상으로 컸다.
 
 데뷔 3년 차인 김연수는 허리 부상 때문에 잠시 2군에 내려와 있었지만, 분명 1군 선발진의 한 명이었다.
 
 그런 선수에게 퇴물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분했지만, 이것이 강토의 현재 위치였다.
 
 다행히 9회 말 상대 투수의 폭투로 3루에 있던 파이터스의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며 경기에 승리했지만, 강토는 웃을 수 없었다.
 
 “최강토. 감독님이 보자고 하신다.”
 
 경기가 끝나고 짐을 정리하는 중 투수 코치가 강토에게 다가와 말했다.
 
 올 것이 왔다.
 
 며칠 전, 투수 코치로부터 조용히 전해 들은 내용이 있었다.
 
 이날 경기 내용을 보고 방출이 결정된다는 말이었다.
 
 2군 감독실 앞에 선 강토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앉아라.”
 
 감독실에 놓여있는 낡은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은 강토는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올해가 프로 몇 년 차지?”
 
 “햇수로 8년차입니다.”
 
 “8년이라······ 20대 대부분을 파이터스에서 보냈네. 그건 그렇고 요즘 팔꿈치는 어때?”
 
 “통증은 하나도 없습니다.”
 
 거짓말이었다.
 
 공을 던질 때마다 미세 통증이 있다는 말을 차마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라도 말을 해야 방출이라는 단어에서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지난 시즌 평균 구속이······.”
 
 “132km/h였습니다. 오늘은 135km/h까지 나왔습니다.”
 
 135km/h를 말한 순간 강토는 아차 싶었다.
 
 홈런을 맞은 패스트볼이 바로 135km/h의 패스트볼이었다.
 
 “음······.”
 
 2군 감독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이후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알다시피 원래 이건 운영팀에서 말해줘야 하는데, 네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서 직접 불렀다.”
 
 “방출······입니까?”
 
 “아쉽지만······ 그렇게 되었다.”
 
 이미 예상했지만, 방출이라는 단어는 강토의 가슴을 휘어 파기 시작했다.
 
 8년간 몸담았던 구단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막막함이 강토의 머릿속을 채웠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아침에 나가도 된다고 하더라.”
 
 “아닙니다. 오늘 나가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2군 감독은 강토의 등을 토닥인 후 강토에게 그동안 수고 많았다는 말을 해주었다.
 
 ‘8년이면 많이 버텼네.’
 
 감독실을 나서는 강토는 자신의 야구 가방을 들고 2군 숙소로 향했다.
 
 “강토 형!”
 
 2군 포수였던 하승연이 강토를 발견하고 급히 달려왔다.
 
 “형. 진짜예요?”
 
 “뭐가?”
 
 “방출 말이에요. 진짜냐고요?”
 
 “그래. 지금 감독님이 직접 말씀해주시더라.”
 
 생각보다 덤덤하게 대답하는 강토의 모습과 달리 오히려 하승연이 더욱 화가나 보였다.
 
 “형 요즘 폼도 올라오고 있고 구속도 지난 시즌보다 더 올라오고 있잖아요. 시즌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인데, 방출이라뇨?”
 
 팀 훈련이 끝나고 룸메이트였던 하승연과 함께 개인 투구연습을 해오던 강토였다.
 
 5살이나 어린 포수인 하승연은 신인 때부터 군말 없이 강토의 연습을 도와주었다.
 
 최근 강토의 패스트볼 구속이 130km/h 후반까지 올라와 140km/h도 눈앞에 왔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하승연이었지만, 구단의 결정에 일개 2군 선수가 무어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어쩔 수 없지. 넌 나처럼 되지 마라. 특히 어디 아픈 곳이 있으면 바로 코치님들과 상의하고.”
 
 강토의 입버릇이었다.
 
 “네.”
 
 숙소로 들어선 강토는 몇 안 되는 개인 짐을 꺼내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 나가시게요? 벌써 6시가 다 되었는데요.”
 
 “내일 아침에 나가도 된다고 하는데, 지금 나가나 내일 나가나 뭐가 달라지겠냐?”
 
 여행 가방을 펼쳐놓은 강토는 서울 파이터스의 유니폼과 운동복을 깔끔하게 접어 가방 안에 넣기 시작했다.
 
 “너 야구화 사이즈가 어떻게 되지?”
 
 “285mm인데요.”
 
 “그래? 그럼 이거 가져라.”
 
 강토는 신발 상자 하나를 하승연의 앞으로 내밀었다.
 
 “네? 이건 형 여동생이 이번 시즌에 사용하라고 사준 야구화라면서요? 아끼고 아끼다 1군에 올라가면 신겠다고 하셨는데.”
 
 “괜찮으니까 네가 써. 내 개인 연습 도와준 보답이라고 생각해.”
 
 “네······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강토의 방출 소식에 생각보다 많은 선수들이 강토를 배웅하러 주차장에 나와 있었다.
 
 ‘그래도 내가 헛산 건 아닌가 보네.’
 
 강토는 이천 파이터스 파크의 전경을 눈에 담은 후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
 
 서울로 올라오는 길.
 
 평일 퇴근 시간에 딱 걸리며 도로는 완전히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까지 말썽이네.”
 
 잘 작동되던 내비게이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 고물.”
 
 강토가 손바닥으로 내비게이션의 옆을 한 대 툭 치자 다시 화면이 켜졌다.
 
 “응? 이런 길이 있었던가?”
 
 다시 켜진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100m 앞에서 샛길로 빠지라고 나와 있었다.
 
 이천과 서울을 오가면서 처음 보는 샛길이었지만, 강토는 꽉 막힌 도로보다는 낫겠지라는 생각에 얼른 샛길로 운전대를 돌렸다.
 
 “여기는 차가 한 대도 없네.”
 
 강토가 들어선 샛길은 작은 야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미 샛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온 강토는 다시 차를 돌릴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내비게이션을 따라 계속 달렸다.
 
 “이 길이 서울 가는 길이 맞는 거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던 강토는 잠시 차를 세워 다시 내비게이션을 설정해보았지만, 내비게이션은 똑같은 길로 안내를 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쿵!
 
 무언가가 강토의 차 뒷부분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뭐야?”
 
 차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차 뒤로 다가간 강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끼잉······.”
 
 “강아지?”
 
 새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강토의 차 트렁크 위에 쓰러져 있었다.
 
 “설마 내 차에 치인 건가?”
 
 강토는 조심스럽게 강아지에게 다가갔다.
 
 “으르렁.”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토의 기척을 느낀 강아지는 살짝 이빨을 보였지만, 도망갈 힘도 없어 보였다.
 
 강토는 더욱 가까이 다가가 핸드폰 플래시로 강아지의 상태를 살피며 천천히 손을 내밀던 그때였다.
 
 “왈! 왈!”
 
 어디선가 커다란 너구리 한 마리가 나타나자 강아지는 안간힘을 다해 갑자기 나타난 너구리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깜짝이야!”
 
 커다란 너구리를 발견한 강토는 새끼 강아지가 너구리의 공격을 피해 이곳까지 왔음을 직감했다.
 
 “왈! 왈!”
 
 강아지가 다시 너구리를 향해 짖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너구리 몇 마리가 더 나타났다.
 
 야생 너구리는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한 강토는 재빨리 강아지를 품에 안고 천천히 뒷걸음을 치며 운전석 쪽으로 향했다.
 
 강토가 운전석 바로 앞에 도달했을 때였다.
 
 “끼야아아!”
 
 갑자기 짖기 시작한 너구리 무리는 이내 강토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강토는 재빨리 운전석으로 들어간 후 차 문을 닫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휴······ 십년감수했네.”
 
 구불구불한 산길을 벗어난 후에야 차를 세우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강토였다.
 
 “끼잉······.”
 
 강토는 품에 안고 있던 강아지를 조심스럽게 들어 조수석에 내려놓았다.
 
 “이제 괜찮아. 너구리들은 이제 못 쫓아올 거야.”
 
 말을 알아들었는지 꼬리를 흔들던 강아지는 강토의 손길을 느끼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얘를 어쩌지?”
 
 잠시 고민하던 강토는 강아지를 다시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우리 집에 갈래?”

댓글(18)

날고싶다    
잘보고갑니다 화이팅
2023.04.17 01:43
fe******    
잘보고갑니다
2023.04.17 08:43
풍륭    
횟수로->햇수로
2023.04.23 07:40
bpolt    
너구리를 향해 짓기>짖기
2023.04.23 20:48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3.05.03 07:09
허무    
라면이 빠졌네.
2023.05.05 11:36
물물방울    
연재시작을 축하합니다. 시작은 미미해도 끝은 창대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정주행 출발합니다. 계속해서 승승장구 하시기를 바랍니다.
2023.05.09 10:38
레인Rain    
건필요
2023.05.12 07:57
에시드    
응? 울나라에 너구리가 떼거지로? 어느등네서 들어온 외래종일까나
2023.05.13 06:27
왕십리70    
최고구속 150이면 메이저 선발 평균구속이네요. 쳐고 말고 패스트볼 평균구속
2023.05.1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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