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3.5층
“권 주사님, 하자담보 책임 기간 만료일 전에 청사 하자검사를 진행하지 않으셨군요. 인정하시죠?”
“예··· 제가 그랬군요···.”
잘못을 추궁하는 감사관. 그들 앞에 준희가 앉아있다.
멍한 표정의 준희가 묵묵히 잘못을 시인한다.
“이뿐만 아닙니다, 권 주사님. 올해 계약한 무인경비 시스템 유지보수 용역 원가산출 시 관리 비율을 11%로 적용하셨어요. 일반용역은 원가계산 시 일반관리 비율을 5% 초과 반영할 수 없는 거 아시죠?”
“네. 제가 그랬네요.”
아무 변명도 하지 않는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고개를 끄덕였고, 마른 솔잎처럼 건조한 대답만 한다.
‘인정합니다.’
‘제가 그랬군요.’
‘맞네요.’
경기도청에 안치된 행안부 감사장. 그 안에 고요한 적막만이 감돈다.
준희의 태도가 일반적인 수검자와 달랐기 때문일까? 감사관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다시 준희를 불렀다.
“권주사님. 변경 계약서를 보니 청사 하자 담보 기간이 조금 남았군요. 저희가 착각했습니다.”
“예, 그런가 보네요.”
“흠흠··· 주사님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니 할 말 있으면 하시기 바랍니다.”
“후···.”
감사관의 눈썹이 휘어진다.
감사를 받는 수검자라면 시답지 않은 변명이라도 늘어놓아야 맞다.
그런데 잘못이 아닌 일에 잘못을 인정하다니.
그들의 눈에 준희는 자신의 업무에 애착 따위 없는 공무원. 혹은 돈이 많아 직장 따윈 때려치워도 되는 금수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할까···.’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준희가 아랫입술을 말아 넣는다.
예전 같았으면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았겠지.
감사관이 지적한 업무에는 그럴만한 속사정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 무슨 소용일까.
벽에 걸린 아날로그 시계는 무심한 듯 계속 돌아갔고, 준희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그런 준희의 반응을 견디다 못한 감사관이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권주사님. 권주사님 하실 말씀 있으시면 편하게 하세요. 이 정도 안건이면 주사님의 말에 따라 주의 정도로 끝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됐습니다. 직위 해제도 상관없어요.”
“예?”
“크흠···.”
초연함이 묻어나는 말에 무안해진 건 감사팀이다.
자신의 배려 아닌 배려를 이런 식으로 받아치다니.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적 사항에 대한 징계 수위를 정할 때가 왔다.
준희에겐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것 말이다.
***
‘징계를 받을 거면 차라리 파면이 좋겠군. 잔정이라도 남지 않게···.’
경기도청 회계과 6급 주사 권준희.
15년의 공무원 생활을 했으며 예산회계팀에서만 15년의 반을 근무한 그는 회계팀 내에서도 제일 바쁘다는 공사·용역 계약 업무를 담당했다.
공사용역 계약 담당자.
이 업무 뒤엔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계약부터 완공까지 챙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닌 업무 폭탄 자리.
업무에 딸린 법규가 많고, 변수도 많아 늘 감찰대상 1순위인 자리. 일의 비해 담당 인력이 적어, 비선호 1위로 꼽히는 자리.
그러니 공사용역 담당자로 인사가 나면 하루 만에 육아휴직을 쓰고 도망가는 이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곳에서도 준희는 7년을 근무했다. 아니 버텨온 게 맞았다.
‘나 말고 할 사람이 없으니까··· 사정이 안 되니까···’
싫은 소리 하나 없이 그가 7년 동안 곱씹은 말이다.
그렇게 그가 머문 7년이란 세월 동안 옆자리에서 함께 일해야 할 직원은 10명이나 바뀌게 되었다.
정적이 흐르던 감사장에 침묵을 깬 건 뜻밖에도 무관심한 표정만 짓던 준희였다.
“공무원이··· 편하단 말은 누가 한 걸 까요?”
뜬금없는 그의 말에 감사관들이 눈을 치켜뜨고 되물었다.
“권주사 뭐라고 했죠?”
“남들처럼 평범해지고 싶어서 한 공무원 생활인데 말이에요.”
상황에 맞지 않는 준희의 말이다.
이에 감사관들이 맹랑하다는 듯 눈에 쌍심지를 켰다.
“권주사님. 주사님은 지금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감사를 받고 있으십니다. 그런 소린 밖에 나가 담배나 피우면서 하세요.”
그의 말에 준희의 입이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당연지사 감사장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담배, 지금 피우면 안 됩니까?”
“뭐라고요?”
감사관 포함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인상을 쓴다.
불성실한 태도에 불편했던 감사팀의 앞에 도발이란 방아쇠를 당겨버린 것이다.
그가 말한 담뱃불이란 방아쇠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 무슨!!”
최고 상위부서인 행안부와 그 소속 감사팀.
간부급 공무원들에겐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게 그들이다.
그런 그들의 앞에 말도 안 되는 일을 자행한 준희.
어디서 그들이 이런 일을 겪어 보았겠는가.
자부심과 허영심으로 가득 찬 그들이었기에, 아마 이 일을 빌미 삼아 철저한 감사로 준희가 소속된 경기도청에 앙갚음 할 것이 분명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공사용역 업무만 7년 했습니다. 일 년에 제가 집행한 예산만 200억이 훨씬 넘었죠.”
준희가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저라고 이 일이 좋아서 했겠습니까? 저도 하기 싫었습니다. 다만 남보다 싫은 소리를 못 하니 같은 월급 받고 지금까지 일한 겁니다.”
하지만 이내 준희의 입가가 떨렸고, 목소리엔 물기가 차기 시작했다.
“맨날 인력충원이나 업무분장을 새로 한단 말만 하지··· 막상 소음 없이 일 처리 하면··· 말만 고생했다고··· 속으론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치부하면서··· 그동안 저는 수십억이 되는 공사 건 때문에 단 하루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준희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감사팀 여러분 중 저보다 예산 많이 써본 사람 있습니까? 업무분장은 보셨나요? 제 업무가 다른 시, 도에선 셋 이상의 팀으로 근무하는 건 알고 있습니까? 일을 많이 하니까 지적도 받는 건요? 그리고!! 법률이나 지침에 적히지 않은 상황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나요? 크흑···!”
준희는 마음에만 묵혀두었던 말을 눈물과 함께 내뱉었다.
이미 7년 동안 묵힌 말이라 시원할 법도 했지만, 가슴은 더욱더 갑갑해지는 기분이었다.
얼빠진 모습으로 아웃사이더처럼 지낼걸.
다른 직원이 넘기는 일은 과감히 자를걸.
싫은 티 좀 내고 살 걸···
그랬다면··· 그랬다면···
“시발···.”
욕을 시원하게 뱉으며 두 번째 담배의 불을 댕겼다.
“권주사!! 미쳤어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당신 지금 감사받는 중이야!”
더는 준희의 행동을 간과할 수 없던 감사팀이 소리쳤다.
하지만 준희는 그런 그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쾅!
준희가 표독스러운 얼굴로 벌떡 일어서자, 그가 앉은 의자가 큰 소리를 내며 뒤로 엎어졌다.
이윽고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친 준희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나 폐암 말기야. 스트레스로 인한! 폐암! 말기! 알아? 석 달도 안 남았어. 해임이든 파면이든 맘대로 해. 그러니까 내 앞에서 소리치지 마. 앞으로 내 심기 건드리는 놈은 귀신이라도 돼서라도 괴롭혀줄 거니까!!”
“···.”
그렇게 준희는 자신의 품속에서 있는 서류를 꺼내 땅바닥에 던지며 감사장을 빠져나갔다.
오늘 제출하기로 했던 진단서와 거기에 적힌 의사소견서.
그것을 집어 든 감사팀의 얼굴이 붉어졌고, 모두가 철퇴로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하니 준희가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
뜨거운 햇볕이 비추는 오후.
준희는 수험생 시절 공부했던 대학 도서관을 찾았다.
“오랜만이네···.”
이미 죽음의 5단계 중 마지막 수용의 단계에 접어선 준희다.
더는 감정싸움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로 결심한 그는, 나름의 버킷리스트를 완수하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버킷리스트도 이제 두 개 남았군.”
지워진 버킷리스트 사이로 대학 도서관 다시 가기와 유럽 여행만이 남아있었다.
그중 대학 도서관은 오늘 방문할 예정이니, 남은 건 유럽 여행 가기 밖에 없었다.
돈을 벌면 먼저 하려했던 유럽 여행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뤄왔던 게 이렇게 후회될 줄은 몰랐다.
당연히 지금 몸 상태로 유럽 여행은 무리다. 유럽여행은 영원히 버킷리스트에서 지우지 못할 거다.
‘헙···.’
교정을 거닐던 준희가 갑자기 찾아온 통증에 가슴을 부여잡고 휘청거렸다.
그날이 다가온다는 게 몸에서 느껴진다.
아파 올수록 수첩에 적힌 ‘유럽여행’ 이란 마지막 버킷리스트가 눈에 밟힌다.
무신론자이지만, 신이 유럽여행을 한 번만이라도 떠날 수 있게 시간과 힘을 준다면 전 재산을 헌금으로 바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이어가던 발길이 대학도서관 앞에 다다랐다.
“여기도 변하긴 하네.”
공무원 합격을 위해 목숨 걸고 공부했던 곳.
건물 외벽만 그대로였지, 내부 인테리어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준희는 옛 기억을 더듬으며, 새롭게 변한 도서관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진짜 오랜만이다.”
그렇게 도서자료실 입구에 멈춰선 준희.
열람실보다 더 오랜 시간 앉아 공부했던 곳이라 그런지, 추억도 가장 많은 장소였다.
보통 학생은 열람실에 앉아 공부하지만, 4학년 1학기. 취업에 실패한 후로 같은 과 후배를 만날까 싶어, 사람이 없는 도서자료실을 이용했다.
도서자료실 입구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는 준희.
“학생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자료실 입구 서서 한참 동안 입맛을 다신다.
도서자료실에 있는 자주 앉던 책상과 거기에 새긴 낙서를 보지 못하면 도서관에 온 의미가 없다.
지나가는 학생이라도 붙잡아 학생증을 찍어달라 부탁하려던 순간이었다.
- 띠링. 문이 열립니다.
학생증을 대지도 않았는데 도서자료실 문이 활짝 열렸다.
“뭐지? 시스템 오류인가?”
하늘의 누군가가 자신을 도운 걸까? 그렇다 한들 암 말기 환자가 하늘에 감사함 따위를 느낄 리 없다.
무심한 얼굴로 자료실에 들어선 준희, 주위를 둘러보며 옅은 숨을 내쉬었다.
“여긴 그대로네.”
제일 자주 이용한 3층 구석 책상이다.
학생들이 오지 않는다는 자연과학 서적이 가득 꽂혀있는 곳이다.
‘여긴 알고 찾지 않는 이상 찾기 힘든 곳이지.’
“오호···.”
추억이 서린 책상에 복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한 명이 앉아있다.
아마 저 학생도 과거 자신과 같은 이유로 이곳에 앉아있겠지.
성공의 확실한 길은 크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 스텔링 실
자신이 책상에 새긴 낙서를 손으로 만진 뒤 버킷리스트에 줄을 긋는다.
잠깐의 추억 여행 후 도서관을 빠져나가려는데, 준희가 잠시 멈춰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3층으로 이루어진 도서자료실.
리모델링한 것 같지만, 층을 올리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3.5층?”
안내표지판을 본 준희는 한참 동안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4층이면 4층이지··· 3.5층은 뭐야?”
학창 시절 수십 번을 오갔던 곳이다.
그리고 그땐 이런 표지판과 계단이 없었다.
또 자신이 알고 있는 건물 구조상 절대 위로 공실이 나올 수 없다.
“불법 증축인가?”
준희가 건물 꼭짓점에 위치한 좁은 계단을 한참 바라봤다.
공사업무를 담당한 공무원으로서 그냥 지나치기 힘들 만큼 호기심을 주는 계단이다.
“굳이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
궁금증이 생기자마자 준희가 좁고 높은 계단을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끼익.
계단 끝의 낡은 문을 열자 이질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LED 조명이 아닌 기름 등불과 그 아래 놓인 작은 책상. 어림잡아 8평정도 되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등불 옆에 있는 책 한 권이 준희의 눈을 사로잡는다.
“고서인가?”
종이가 아닌 양피지를 엮어 만든 책이었다.
그 모습에 호기심이 동한 준희는 자리에 앉아 고서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그렇게 순식간에 50분이 지난다.
『데스트로이는 날개가 하나이며 말의 얼굴과 뱀의 긴 혀를 가졌다. 그의 자식들은 피를 갈구하는 이를 숙주로 삼으며 기생한 뒤, 결국 그들을 집어삼킨다···.』
“허무맹랑한 소리네.”
그랑드 대륙의 10대 악마.
고서의 이름이자 주제였다.
판타지 소설인지 설명문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책은 그랑드 대륙의 10대 악마에 대한 설명으로 내용을 채우고 있었다.
“괴서가 따로 없네.”
이런 괴서 쓴 작가보다 50분간 이 책을 읽은 자신이 더 대단하다.
헛웃음과 함께 넘긴 마지막 페이지.
『악마가 인과율을 어기고 인간사를 침범할 때, 조율의 힘을 가진 신의 사자가 나타날 것이다.』
고서의 마지막 문구다.
앞은 설명문 형식인데 마지막은 뜬금포 예언이다.
난잡한 내용에 책을 덮고 몸을 돌리려 할 때.
“어? 잠시만···.”
책 제목을 보던 준희의 눈이 크게 번득인다.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지?”
그제야 준희는 자신이 완독한 고서의 언어가 한글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게 무슨!!”
책에서 터져 나온 날카로운 섬광이 준희의 몸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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