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억울한 죽음
서울 종로경찰서 포토라인 앞.
어디서 몰려왔는지 기자들이 나를 에워쌌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마이크가 쇄도했다.
“피해자들에게 할 말 없습니까?”
“범행을 인정하시나요?”
팍!
파팍!
파바박!
빛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불구속으로 풀려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구속영장이 다시 발부될 거라고 보시나요?”
그만 좀 물어. 판사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변호사는 우선 48시간을 벌었으니 그동안 유상범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반드시 찾으세요. 유상범 씨 몫까지 옥살이하기 싫으면 찾는 게 좋을 겁니다.”
안 찾고 싶어서 안 찾는 게 아니다. 신출귀몰 미꾸라지 새끼라 문제인 거지.
베트남에서 오전에 봤다는 제보를 듣고 가보면 누군가 뉴질랜드에서 점심 먹는 유상범을 보았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태국의 형무소에서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킹와이(King Y)가 실제로는 유상범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위조된 여권으로 이미 실형을 살고 있어서 이렇듯 꼬리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제보의 핵심은 유상범은 어디서든 플렉스 중이라는 데 있다.
이번 생은 이렇게 저물어 가나보다. 남의 똥이나 닦다가 아예 싸질러놓은 똥까지 치워야 하는 팔자라니.
나는 엊그제까지 암호화폐 거래소 대표이사였다. 거래소라고 해서 여러 종류의 암호화폐를 파는 게 아니라, ‘테라코인’이라는 잡코인 딱 한 종류만을 팔았다.
수사반장이 혀를 찼다.
“테라코인이 어떻게 암호화폐냐? 그냥 포인트지. 솔직히 게임머니만도 못한 거잖아!”
“가상화폐란 게 뭡니까. 말 그대로 가상이란 말이잖아요. 가상화폐는 구름 같은 거라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거예요.”
“좋게 말할 때 그만 하자?”
수사반장이 책상에 결재판을 두드리며 화를 냈다.
“투자자는 살 수만 있지 정작 팔려고 하면 거래를 못하는데 그게 어떻게 제대로 된 돈이란 말이야?!”
거래자 간 전자지갑 시스템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테라코인은 매매가 불가능하다.
투자자는 바보라서 당하나?
암호화폐가 뜬다,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니까 투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골치 아픈 걸 좋아하지 않는다. 다들 경제에 빠삭한 것 같아도 블록체인이나 전자지갑 시스템 같은 기술적인 이야기에는 벽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럴 때 신뢰감을 주는 사람을 만나면 고수익을 바라는 투자자들은 쉽게 지갑을 연다.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마침 나는 그런 투자자들을 모아 놓고 설명회를 열던 중이었다.
“이건 테라코인에 투자한 분의 실제 계좌입니다. 자, 여기 뭐라고 쓰여 있죠?”
계좌에는 수익률 800%라는 숫자가 도드라지게 찍혀 있었다. 장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방청석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지목했다. 바로 유상범이다. 그는 투자자라 속이고 일반인들 사이에 끼어있었다.
“이건 저기 저분의 통장입니다!”
내 손가락이 가는 곳에 개미들의 눈동자가 모였다.
“유 사장님, 지금 몰고 있는 차가 뭐죠?”
“마이바흐입니다.”
유상범은 세상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그겁니다! 마이바흐는 벤츠에서도 가장 상위 클래스죠. 유 사장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다는 팰리스타워에 사십니다. 거기다 하루 숙박비가 500만 원이 넘는 반도호텔 펜트하우스를 별장처럼 사용하고 있고, 투자전문가도 200명이나 거느리고 계시죠. 그게 다 테라코인에 투자하고 난 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개미들은 진실을 보려 하지 않았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게 뻔한데도 수익률 800%라는 신화만을 철석같이 믿고 싶어 했다.
“여러분은 노다지를 캔 겁니다! 노다지! 자,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세요.”
그것은 집단 최면과도 같았다.
***
아직 손목에는 태그호이어 시계가 반짝거렸다. 아르마니 양복, 구두는 구찌···.
이게 나를 말해주는 지표다.
인생은 롤러코스터가 맞는지 조만간 이 모든 걸 내려놔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의 정범 유상범을 잡지 못하면 종범인 내가 싹 뒤집어쓸 판이다.
“어떻게든 구속은 막았는데 이게 길지는 않을 거예요. 유상범이랑 연락 닿으면 구슬려서 잡던지, 아니면 은신하고 있는 곳이라도 불어야 감경 처분을 받을 거예요. 저는 말했습니다!”
변호사는 좀 기다려주는 듯 하더니 내가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자 혼자서 휘적휘적 걸어갔다.
“빨리 안 와요? 집까지 태워 달라면서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가 먼 데 있는 게 아니다.
변호사가 스마트키를 누르자 링컨 컨티넨탈에서.
삐비빅―
소리를 냈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이거 다 수임료에 포함됩니다. 코인은 안 받으니 그리 알고요.”
툭!
차까지 단 세 걸음만 떼면 되는데, 어디선가 계란이 날아와 얼굴을 정통으로 때렸다.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가 고무통에 잔뜩 든 분뇨를 쏟아 부었다.
걸쭉한 설사똥이 살짝 벌리고 있던 입안으로 들어왔다.
함께 있던 변호사까지 똥세례를 맞았다.
마침내 참고 있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나도 피해자라고요! 억울해, 진짜!”
이게 다 유상범 때문이다.
그 새끼는 항상 내게 엿을 먹였는데 왜 자꾸 까먹는지 모르겠다.
돈을 떼인 투자자들이 참새떼처럼 짹짹댔다.
“평생 모은 돈이야! 내 집문서 내놔, 이 사기꾼아!”
“맞아!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놈!”
격앙된 사람들이 발길질을 해댔다. 억울하다고 외쳐봤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함께 분뇨를 뒤집어쓴 변호사가 서둘러 자신의 고급 SUV에 나를 구겨 넣었다.
“입 쳐 닫고 곱게 타쇼! 당신이 나불댈수록 사람들이 더 흥분하잖아. 아 진짜 재수 옴 붙었네···. 수임료 두 배로 받아낼 거야! 세차비는 별도라고!”
변호사는 부들부들 떨며 운전했다.
그의 얼굴에도 내 얼굴에도 똥 국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지갑에 있는 돈을 다 털었다.
오만 원 권 지폐가 20장.
운전하는 변호사의 허벅지에 돈다발을 뿌렸다.
“세탁비.”
노려보는 변호사.
그럼 어쩔 텐가.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주울 거면서.
부웅―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가 지체 없이 집 앞을 빠져나갔다.
세상엔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유상범.
날 이렇게 만든 놈이지만 인생 선배이기도 하다.
무턱대고 남을 믿었다가는 나처럼, 모든 테라코인에 투자한 다른 이들처럼, 그깟 얄팍한 속임수에 놀아난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다 나는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모르겠다.
대학 시절만 해도 남들 등이나 처먹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스타트업 CEO를 꿈꾸며 미래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딛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돈에 대한 열망뿐.
그런데 그게 문제인가?
돈이 없으면 존중받지 못하고, 돈이 있어야 대접받는 시대에 사는 게 문제인 거지.
나는 주먹을 꾸욱 쥐었다.
스무 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는 이런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다.
***
치익!
샤워를 하고 맥주캔을 땄다.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으로 콸콸 쏟아지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무의식적으로 TV를 켰다.
8시 뉴스가 한창이다.
- 테라코인 거래소 김무한 대표이사가 오늘 불구속으로 풀려났습니다. 경찰은 은닉재산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추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뉴스 화면에 낯익은 남자가 등장했다. 사장님답게 불룩 튀어나온 배, 활동하기 편하도록 짧게 깎은 머리. 비싼 양복을 걸친 양아치 스타일의 저 남자.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
바로 나니까.
- 유상범 씨가 진범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지만, 현재 유상범 씨는 국내에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 (형사반장 인터뷰) 범죄자는 잡히기 마련입니다. 수사망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국제 공조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습니다.
측근이었던 나도 연락이 안 되는데 인터폴이 찾을 수 있다고?
개구라 치긴!
나는 맥주를 쉬지 않고 들이켰다.
꺼억—
취한다.
나는 턱을 긁다가 TV 받침대에 놓여 있는 돌덩이에 눈이 머물렀다.
보자마자 화딱지가 났다.
유상범이 잠적한 사이 나는 돈이 될 만한 게 없는지 그의 사무실을 뒤졌다.
그러다 기억이 났다. 유상범이 자기 책상 위에 있는 돌덩이가 감정가만 오천만 원이 넘는다고 지껄여댄 게. 이른바 수석이라고 불리는 비싼 돌이다.
돌에는 멋진 황금 소나무가 새겨져 있다. 시원하게 뻗은 솔가지가 황금 송진을 뿌리면서 굽이친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선이 굵고 웅장하다.
소나무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식물로 유명하다. 그래서 조선 시대 임금도 꼭 잠자리에 소나무 그림을 두었다지 않는가.
이놈이 내게 수호신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돌덩이 하나쯤 사라졌다고 해서 시끄러워질 것 같지는 않았다. 까닥하면 십 년 이상 감방에서 썩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깟 돌 따위가 중요할까.
유상범이 며칠간 지방에 내려간 사이 나는 수석을 우리 집 거실로 옮겨왔다.
돈이 될 만한 실물이기도 하니 여차하면 팔아치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귀차니즘이 발목을 잡았다.
수석 판매상을 찾아 가격을 흥정하고 현금화할 생각을 하니 벌써 피곤해졌다. 감정가만큼 받으려면 전문 수석상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투자자들이라면 내 이동을 수상하게 여길 터.
그건 모험이 아니라 내 돈을 그냥 가져가쇼! 라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갑자기 커다란 우울감이 나를 침범해왔다.
될 대로 되라지.
그럴 바에는 그냥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나는 수석을 움켜쥔 채 베란다로 나갔다.
저 멀리 던져버릴 테다. 내 앞에서 유상범의 흔적을 치워버릴 거다!
밖으로 던지려다 말고 문득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가는 젊은 엄마가 보였다. 아들은 엄마와 떨어질세라 거의 팔에 매달려 있다시피 했다. 나도 어릴 때는 저렇게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갔었지. 엄마 품은 언제나 따뜻했다.
바쁘게 걷는 50대 남자도 보였다. 저 남자도 한 가정의 가장이겠지. 우리 아버지도 항상 우리를 먹여 살리시느라 바쁘셨다.
저들이 돌에 맞는다면?
[수십억 사기로 개미를 울리더니, 이번엔 희대의 살인마?]
불미스러운 일로 또다시 뉴스 화면을 장식할 게 뻔했다. 흠칫 몸이 떨려왔다.
그냥 현관에 내놓지 뭐.
나는 슬그머니 현실과 타협했다.
아파트 현관을 열자 복도 불이 켜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다들 아직 집까지 쫓아올 생각까지는 못 했나 보다.
재활용 쓰레기더미에 돌을 올려놓고 문을 닫았다.
잠깐 머리를 숙였다고, 술기운이 확 끼쳐 올랐다.
이제 맥주 몇 캔에도 술에 취하는군.
오늘 하루는 참으로 길었다.
나도 모르게 소파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
쿵!
어디선가 굉음이 나는 바람에 눈을 떴다.
아직 티비는 틀어진 채였다. 리모컨을 찾아 끈 후 소파에서 일어났다.
소리는 분명 바깥에서 난 것 같았다.
갑자기 집 안의 불이 싹 꺼져버렸다.
칠흑 같은 어둠이 덮쳐왔다.
“에이 씨, 배전반이 내려갔나.”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현관을 열었다. 두꺼비 집이 복도에 있기 때문이다.
파밧!
복도 불이 켜지자마자 마스크를 쓴 사내와 마주 보게 되었다. 그는 머리 위로 수석을 치켜든 모습이었다.
쩌어억—
순식간에 수석이 내 왼쪽 머리를 가격했다. 뜨끈한 핏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내와 몸싸움이 벌이게 되었다.
드디어 수석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도망가는 사내를 향해 강력한 돌팔매질을 했다.
X발.
아주 제대로 빗나가기만 했다.
수석은 사내의 얼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복도를 환히 밝히는 오묘한 빛.
“헐, 이게 뭐야!”
수석이 호두가 까지는 것처럼 쩍— 하고 갈라지더니 산수화가 새겨졌던, 산과 강이 흐르던 문양에서 갑자기 빛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로라 빛을 뿜으며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수석.
갑자기 동공 안으로 강한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내가 잠깐 눈을 못 뜬 사이에, 사내의 손에는 어느새 수석이 들려 있었다.
퍼억—
“넌 죽어도 싸!”
사내의 다급하고 슬픈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는 그 빛을 뿜어대는 수석으로 내 얼굴을 때려 박았다.
퍼억—
퍼퍼퍽—
내 안면을 마구 강타하는 돌덩이.
어마어마하게 아프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꽉꽉 채워갔다.
사라져가는 의식.
죽어가고 있다는 희미한 감각만이 저릿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허탈하게 죽을 거면 뭐 하러 그리 아등바등 살았던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제기랄.
진짜 죽은 거야?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