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Tango Down
크로스 플래넷(Cross Planet)
혜성처럼 나타난 게임회사 퓨처 인터네이션이 만든 풀프라이스(65000원) 가격의 실시간전략게임(RTS)이다.
자원을 먹고 유닛을 뽑으면서 진행하는 게임방식.
게임세계관을 이해시키기 위한 시나리오모드와 다른 유저와 즐길 수 있는 PVP 컨텐츠가 있는 여느 RTS게임과 다를 바가 없는 구조다.
당연하지만 포화상태가 된 게임시장에서 기존과 완전히 같았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다.
다른 RTS와 크로스 플래넷의 차이점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건 플레이어 스킬이다.
고성능 AI로 움직이는 강습병 투하와 함대포격은 기본적인 RTS의 재미에 더해 플레이어의 순간 판단능력을 시험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이 게임의 성공을 말할 수는 없을 거다.
히든 스토리 모드.
1주년부터 시즌별로 래더 랭킹 100위권에 진입한 유저들에게만 오픈되는 특별한 스토리 모드였다.
함선부터 각 유닛까지 모두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AI로 구성되고, 유저마다 다른 스토리를 부여받는 이 히든 스토리 모드가 크로스 플래넷만의 특별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크로스 플래넷이 오픈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한 플레이어가 히든 스토리 모드의 최초 클리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제발···!’
한신우는 간절한 마음으로 강하하고 있는 강습병을 바라봤다.
과금으로 강해질 수 없는 게임이다.
오로지 게임플레이로 얻은 재화로 뽑은 병사들을 고르고 골라 키운 정예병들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엄청난 노가다의 세월이었다.
그렇다고 허송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다.
그는 이 게임을 사랑하고 또한 게임영상을 너튜브에 올려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크로스 플랜트 랭킹 1위.
RTS의 제왕.
그를 부르는 이름들이었다.
그러니 이 ‘최초 클리어’를 자신의 명성에 걸 맞는 업적으로 만들고도 싶었다.
[레이널드 : 사령관, 둥지 진압을 완료했다.]
스크린 하단에 있는 프로필이 움직이면서 AI의 대사가 출력됐다.
레이널드.
그가 가장 아끼는 병사로 함선에서 가장 뛰어난 강습병이다.
[레이널드 : 젠장 기분 나쁘게 생겼군.]
‘그러게 말이야.’
한 번 죽으면 되살아나지도 않는 수많은 병사들을 넘고 넘어 도달한 외계종족, 사하칸의 여왕.
그녀는 방사능에 피폭된 인간처럼 생긴데다가 등 뒤에는 수많은 촉수와 알집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문어인간처럼 보였지만 다시 보면 여왕개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놈들의 행동패턴을 생각하면 여왕개미에 좀 더 가까울 거다.
한신우는 떨리는 마음으로 사살명령을 클릭했다.
핑!
붉은 색 조준점, 어택핑이 미니맵에 찍히고 강습병들이 여왕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많은 알집들이 보여주듯 여왕은 전투능력이 전무하다. 문어다리 같은 촉수조차 그저 알을 돌보기 위한 신체기관에 불과하다.
그녀를 지키는 개체는 이미 다 정리가 되었다.
여왕은 마치 사람 같은 눈으로 다가오는 강습병들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이 화면에 클로즈업 된다.
강습병들은 강력한 슈트를 입었고 헬멧까지 착용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레이널드 : 이걸로 이 행성은 구원받는다.]
리더, 레이널드를 시작으로 강습병들의 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총에 걸 맞는 대구경탄환이 알집과 함께 여왕의 몸에 바람구멍을 뚫어줬다.
강습병들은 죽은 동료들을 추모하듯 한참동안이나 총알을 발사했다.
[레이널드 : ···.]
[규드라 : 죽어! 죽어!]
그 대사를 끝으로 화면은 점점 어두워져갔다.
[The end.]
"···?"
이걸로 끝이라고?
적어도 여왕이 죽고 행성을 테라포밍해서 평화롭게 사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한신우는 어이가 없어져 마우스를 클릭했지만 더 이상 다른 화면이 출력되지 않았다.
3년간의 여정이라기에는 너무 허무한 결말이었다.
“X같네.”
엔딩의 여운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생방송이 아니라 편집본만 올리겠다고 공지를 올렸었다.
그런데 결말이 이렇다니.
찝찝한 건 둘째 치고 어떻게 편집해서 올려야 될지 머리가 복잡해진 한신우는 의자에 등을 붙이고 한참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The end.]
모니터에 보이는 건 여전히 검은 바탕에 허망한 흰색 메시지 한 줄이 끝이었다.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키보드를 눌러도 화면이 넘어가지 않자 한신우는 녹화버튼을 끄고 크로스 플랜트를 재 시작했다.
그러자 모드를 선택하는 평소와 다르게 장문의 메시지가 출력됐다.
[당신은 히든 스토리 모드를 클리어함에 따라 자격을 입증했습니다. 당신의 아이디 ‘콩은싫어콩은싫어’는(은) 명예의 전당에 등록될 것입니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플레이어를 위한 특전 모드가 있습니다.
플레이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오···.”
이건 이슈가 될 만하다.
최초 클리어였기 때문에 최초로 얻을 수 있는 정보였다. 커뮤니티에 올린다면 꽤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이러면 엔딩이 찝찝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아마 이 특전 모드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스토리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한신우는 다시 녹화버튼을 누르고 예 버튼에 마우스 커서를 올렸다.
[예(선택)/아니오]
딸깍.
마우스의 버튼이 눌리는 소리가 울리는 순간, 모니터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단순히 밝은 화면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손전등이라도 킨 것처럼 빛이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왔다.
불길함을 느끼기도 전.
그 빛을 그대로 맞아버린 한신우는 머릿속이 타들어가는 감각과 함께 정신을 잃어버렸다.
곧 방에는 축 늘어진 그의 몸과 짧은 메시지를 출력한 모니터의 빛만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사령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붉은 빛이 점멸하면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뺨을 때리는 감각도 작지만 확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뺨을 때리던 손길이 다시 한 번 느껴지기 직전, 한신우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신병! 정신이 드나!”
“푸하핫! 아무리 그래도 슈트를 입다가 기절하다니. 이 녀석 강습병 맞아?!”
사이렌 소리에 묻히지 않으려는 듯, 큰 소리로 외치는 사내들이 몽롱한 눈동자에 비쳐졌다.
한신우는 잔뜩 인상을 쓰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강철로 된 내벽, 게임에서나 봤던 장비들, 때가 잔뜩 낀 몰골로 스패너나 망치를 들고 다니는 사내들.
“격납고···?”
“이 녀석 상태가 이상한데? 내보내도 되는 것 맞아?!”
스패너를 들고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
정비병, 오본의 외침에 모니터 속 AI가 메시지창으로 대답했다.
[강습병, 빈 포테이토 하사. 건강상태 이상 없음. 작전 수행 가능.]
AI의 진단을 확인한 오본은 망치를 들어 철을 두드렸다. 기계가 입혀주던 슈트의 벌어진 틈이 정확히 닫혔다.
그제야 자신이 기묘한 장비를 입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한신우.
아니, 빈은 자신의 장비를 내려다 봤다.
금속근육이 엮인 형태의 슈트 위에 덮여있는 방탄금속. 모니터 너머로 봤던 강습병들의 외골격 강화슈트였다.
그것도 아무런 개조가 되지 않은 초기형.
그는 처음 히든 스토리 모드를 진행할 때 이 슈트를 본 적이 있다.
“잠···!”
다급하게 외치는 빈의 머리에 헬멧이 쓰여 졌다. 기다란 기계는 AI의 인도에 따라 차근차근 빈에게 슈트를 착용시켰다.
‘이게 뭐야?!’
꿈인가?
그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꿈이라면 당연히 느껴져야 할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다.
이곳이 현실이라는 걸 인지한 순간.
빈은 원래 이 몸이 가지고 있던 기억들을 일부 인지했다. 어렸을 때부터 혹독한 훈련과 수술, 약물을 투여 받는 것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게 된 강습병 빈 포테이토의 기억이었다.
인격이 합쳐지는 감각에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지만 빈은 이를 악 물고 버텨냈다.
그리고 구토대신 속으로 되새겼다.
‘나는 한신우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빈은 울렁거림이 잦아들 때까지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바이커스 슈트 착용 완료]
[전용 전투보조시스템 로딩 중···.]
[완료]
[주의, 강습병 전용 슈트입니다. 강습병이 아닐 경우 심각한 육체손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용자 확인 중···.]
[유니온 소속, 빈 포테이토 하사. 확인 완료되었습니다.]
헬멧 한편에 초록색 메시지창이 순식간에 출력되며 올라갔다. 빈은 멍하니 그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뺨 안쪽을 살짝 깨물었다.
‘게임 속으로 들어온 건가?’
어떻게 된 일인지 의문이지만.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던 환한 빛과 머리가 타들어가는 고통뿐이었다.
애초에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크로스 플랜트는 PC플랫폼으로 하는 게임이지 가상현실게임도 아니었다.
“이봐, 신병! 정신 안 차리면 죽는다!”
“에···?”
오본이 큰 소리로 외쳤지만 빈은 그를 바라보지 않고 있다. 빈은 차가운 강철로 덮여있는 천장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히든 스토리 모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퇴근빌런님.]
[곧바로 튜토리얼이 진행됩니다.]
알고 있는 닉네임이다.
랭킹 101위. 언제나 시즌 말에 아슬아슬하게 100위에 들지 못했던 유저의 닉네임이었다.
‘튜토리얼이라면···.’
오래된 기억을 억지로 꺼내오던 빈은 경악하면서 손을 뻗으려고 했다.
“잠···잠깐! 속이 안 좋아! 내려줘!”
누가 들으면 생명이 경각에 달했다고 생각할 만큼 절박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오본은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웃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엄지손가락을 들면서 말했다.
“누구나 처음은 그렇다고 하더라고.”
“야이 개X끼야!”
“어허, 입이 험한 친구구만. 자네는 하사고 나는 중사야! 아무리 강습병이어도 상관한테 그래서 쓰나.”
오본은 시선을 돌려 한쪽에 있는 붉은 버튼을 눌렀다.
“뭐, 살아 돌아오기만 하라고.”
말문이 턱하고 막힌 빈은 고정된 채로 레일에 옮겨져 이동됐다.
기계팔들이 지잉, 하는 기계 특유의 소리를 내면서 그의 몸을 옮겼다. 빈은 곧 원통형 기계 안에 안착되었다.
[사령관, 퇴근빌런님. 초고성능 AI로 움직이는 강습병들과 함께 튜토리얼 전투를 완료해주세요.]
[임무목표 : 거점 주변의 사하칸족 토벌.]
‘X발.’
가스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원통형 기계의 입구가 닫혔다. 어둠이 찾아오자 헬멧을 쓴 빈은 야간투시경을 쓴 것처럼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시야가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구속구 해제]
철컥.
몸을 구속하던 기계장치가 떨어져 나가고 빈은 드디어 몸의 자유를 얻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
왜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위를 올려다보면 ‘플레이어’가 모니터로 보는 화면이 보이고 있다.
퇴근빌런은 무자비하게 강습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이미 강습포드 안에 갇힌 빈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장에 포탄처럼 떨어질 신세였다.
빈은 천천히 숨을 쉬면서 주변을 살폈고, 곧 거대한 총을 발견했다. 설정집으로 읽었고, 빈의 기억으로 인해 사용법을 알고 있는 총이었다.
HSP-007.
‘머리를 쏘고 기도해.’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이 총은 몇 번이나 들어본 듯 손에 딱 맞았다. 이상한 슈트를 입고 있지만 움직임도 어색하지 않았다.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남아야 한다.
본능과 이성이 동시에 외치고 있었다.
[강습 시작까지 3···2···1]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빈은 포드에 있는 벨트를 몸에 묶었다.
투웅, 하는 소리와 함께 강습포드가 발사되는 충격이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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