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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뉴욕천마의 아메리칸 드림

뉴욕천마 1.

2023.04.24 조회 66,262 추천 1,212


 아메리칸 드림.
 기회의 땅,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이루겠다는 외국인들의 희망으로 점철된 이상적인 목표.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성공을 보장할 것만 같은 꿈만 같은 단어.
 하지만 장담할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단어를 만든 사람을 결코 제대로 된 미국을 경험하지 못 한 사람임을 말이다.
 아니, 하다 못해 21세기의 미국을 겪진 못했을 게 분명했다.
 
 기본적으로 인종차별.
 이제는 덜하다지만, 그렇다고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런데 웃긴 건 이게 이제 백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거다.
 과거엔 백인이 흑인을 차별했는데, 이젠 흑인들도 다른 인종을 차별한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지.
 라티노는 라티노대로, 히스패닉은 히스패닉대로.
 결국 여기서 제일 박터지는 건 자신과 같은 아시안들이다.
 지금 이 상황도 그것에 연장선이었다.
 
 “Hey, chink! 제대로 계산한 거 맞아? 내가 봤을 땐 이거 분명 2달러 짜리라고 써있었어.”
 “두 개를 샀을 때 4달러로 세일을 해준다는 거지. 하나만 사면 2달러 50센트라고 분명히 적혀 있어.”
 “웃기는 소리! 어차피 다른 사람이 하나 더 사가면 그거랑 합쳐서 4달러 받으면 되는 거잖아? 그냥 2달러에 줘!”
 
 아시안들을 얕잡아부르는 단어를 거침없이 입술에 올리면서 열을 올리는 히스패닉 남성.
 마음 같아선 되도 않는 논리를 펼치며 에너지 드링크를 흔드는 저 면상에 캔음료를 박아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감정을 잃고 손을 뻗는 순간 새벽마다 일용 노가다를 뛰며 쌓은 실전 압축 근육에 도리어 턱이 돌아갈 게 분명했으니까.
 이럴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맥스!”
 “무슨 일이야? 또 너야, 로드리게로? 가게에 올 때마다 소란 좀 그만 피우라고 했지?”
 “소란이라니! 나는 어디까지나···!”
 “2달러 50센트를 내든지, 그걸 원래 자리에 얌전히 내려놓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
 “¡Mierda!(젠장할!) 여기 있다고, 2달러 50센트. 어이, 칭크. 밤에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가게 주인, 맥스가 나서자 단번에 상황이 해결됐지만, 떠나는 순간까지도 곧게 뻗은 검지로 나를 향해 경고를 날린 멕시칸 타코 자식.
 저런 협박에 기가 죽으면 오히려 더 달려들 것이란 거리의 법도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만큼, 나도 눈빛 만큼은 녀석에게 지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평화를 찾은 가게 안에서 맥스는 손을 턴 뒤 걱정스런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진호. 이런 일이 생기면 나야 항상 네 편이지만, 그래도 요령껏 봐줄 수도 있잖아?”
 “봐주는 것도 하루이틀이죠. 다른 사람들은 바보라서 그 돈을 다 내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또 그렇긴 해. 쩝, 하여간 알아서 잘 처신하라고. 잘할 걸 믿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Hood잖아, 여기.”
 
 빈민촌 중에서도 질이 나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을 칭하는 약어, Hood. 특별히 이곳 뉴욕에선 브롱스에서도 끝자락에 몰린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을 일컬었다.
 그런 곳에서 24시간 운영 중인 편의점인 만큼,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는 가게였다.
 일주일을 일하면 꼭 하루쯤은 권총을 보고, 한 달에 한 명은 그 총에 맞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동네.
 이런 곳에서 구한 정상적인 알바생을 잃고 싶지 않았던 맥스는 진심 어린 걱정으로 진호에게 한 차례 위로한 뒤 다시 가게 뒤편으로 사라졌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간단한 음식들을 요리해 파는 가게의 주방장인 맥스였다.
 한창 저녁 준비로 바쁠 시간이었으니, 아마 한동안 주방에서 나오는 일이 없을 거다.
 
 그렇게 맥스가 사라지자 진호도 덮어두었던 책을 다시 펼쳤다.
 다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진호도 그 허무맹랑한 꿈을 믿고 비행기에 오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면, 그의 부모님이 그랬다.
 이젠 흔한 스토리였다. 치열하게 한국에서 버티느니, 돈을 싹 긁어 모아 미국으로 건너간다면 10년정도 고생했을 때 궁궐 같은 저택과 그럴 듯한 직장을 부리며 살게 될 거란 스토리 말이다.
 그 흔한 스토리에 코가 꿰인 부모님은 진호가 12살일 때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미국에 도착한 뒤로 이어진 이야기는 더 뻔했다.
 한국에서 긁어 모은 돈은 그대로 사기를 당했고, 남들이 이야기한 10년이 지난 그들의 삶은 여전히 반지하 단칸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정도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어디서 떠드는 게 미안할 정도다.
 미국까지 와서 사기 한 번 안 당한 사람이 오히려 희귀종일 테니까. 영주권이라도 받은 그들의 삶은 사실 그 중에서도 나은 편인긴 했다.
 
 여기까지가 과거의 이야기였고, 이제 현재로 돌아온다면. 나는 노력을 믿는다.
 어떤 환경에서든 노력을 한다면 적어도 최악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을 믿었고, 노력을 통해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도 믿었다.
 그게 지금 이 순간, 진호가 대학 서적을 열심히 훑고 있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감사하게도 아직까진 무난하게 보상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의학을 2년, 그리고 생활체육 관련 기능학 석사로 이제 3년차.
 3년차지만 석사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을 만큼 진호는 열을 올린 공부에 나름대로의 결과를 만들고 있었고, 졸업과 함께 치르게 될 NCCAOM 시험만 통과한다면 당당하게 한의사로서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미국에서 또 무슨 한의사냐고 따질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론 침술과 재활과 관련된 병동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나름 전망이 나쁘지 않은 종목이었다.
 물론, 잘만 풀린다면 말이다.
 사실 어느 직업이든 잘 풀린다면 뭐가 문제겠냐만은···.
 
 —지이이잉!
 “아, 맥스! 저 나가요!”
 “음, 고생했어. 내일 또 봐.”
 
 알람을 맞춰둔 휴대폰이 진동하자 서둘러 짐을 챙겨 카운터를 빠져나왔다.
 하루의 반나절을 편의점 알바로 일을 한 다음 진호가 향할 곳은 그가 인턴으로 일하는 한의 사무실이었다.
 인턴이라고 미리 언질을 주는 건, 당연히 무급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인턴을 무급으로 쓴다는 소리가 놀랍나?
 놀랍지만 이것 또한 현실이었다.
 실습 시간은 필요하고, 자리는 모자라니. 결국 여기서도 노동불균형으로 발생한 무급 열정 페이가 산발해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190가를 통과한 진호가 시계를 살핀 뒤 속도를 조절했다.
 이만큼 달려서 벌써 190가라면 늦지 않게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으니.
 
 “Hey, chink! 내가 밤길 다닐 때 조심하라고 했지!”
 “이, 시발!”
 “야, 잡아!”
 
 진호가 달리던 방향을 바꿨다.
 멕시칸 타코에 이어 스리라차 핫소스와 나초칩같은 놈들까지 등장해 그를 쫓은 탓이었다.
 잊지 않은 멕시칸 타코의 50센트의 원한. 아주 꼼꼼한 원한이다.
 빌어먹을 쿼터 2개가 대체 뭐라고 야밤에 이 지랄인지.
 억울하기보다 열불이 났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내가 대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다고 이놈의 세상은 항상 지랄인가?
 
 “인생 엿같네!”
 
 고함 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세상을 욕해서일까?
 갑자기 세상이 뒤집혔다.
 아니, 제대로 보니 뒤집힌 건 세상이 아니었다.
 
 —쿠우우웅!
 —꺄아아아악!
 “Holy shit! 사람이 치였어!”
 “세상에, 몇 미터를 날아간 거야? 못해도 10미터는 날았겠는데?”
 “911! 누가 911 좀 불러 봐!”
 
 비명이 한 번, 이유 모를 욕설이 한 번, 캐스터마냥 상황 설명을 떠벌거리는 목소리가 한 번.
 그런 복잡한 대화 끝에 또 다른 누군가가 911에 구급차를 소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 그거 타면 안 되는데.
 엉덩이 걸치는 순간 1,000달러.
 응급실로 넘어가면 또 1,000달러.
 진통제 한 알에 250달러, 링거라도 꼽히면 그 즉시 2,000달러. 그 외 항목을 쭉 따지면 다섯 자리는 가볍게 넘어갈 병원비.
 사지가 멀쩡해지면 콩팥 하나 떼내는 정도로 병원비를 어떻게든 맞출 수 있으려나?
 아파서 병원을 가는데 콩팥부터 뗄 생각을 하다니. 아주 빌어먹을 나라다.
 
 그렇게 아득히 끊어졌던 기억이 다시 이어진 건 어느 정체 모를 세계에서였다.
 그곳을 사람들은 무림이라 불렀고, 난 거기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나를 사람들은 여러 이름들로 불렀다.
 한 때는 방랑검존으로, 또는 파천검으로, 혹은 무결패검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부른 이명은 천마.
 
 천마로 살길 50년, 다시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림에선 본적이 없는 합판 천장이었다.
 
 “진호야, 진호야! 아이고, 우리 진호가 드디어 눈을 떴어요!”
 “간호사, 아니. 의사 선생님 좀 불러 봐요! 우리 아들이 드디어 눈을 떴어요!”
 
 그리고 들리는 그리운 목소리들.
 듣고 싶었지만 들을 수 없었고, 오랫동안 꿈에서나 요원하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들.
 그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유를 알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목, 어깨, 손, 다리 등등.
 전신에 둘러진 깁스를 보면 고개를 돌리고 싶어도 돌릴 수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무림에서 50년, 트럭에 치인 후로는 3일.
 그렇게 마침내 돌아왔다, 뉴욕으로.

댓글(75)

페라스트    
다음편 기다릴께요!
2023.04.24 20:22
산중지왕    
미국에도 반지하가있나요?
2023.04.27 09:40
포히나    
법적으로는 금지됐었는데 있죠 재작년에 뉴욕시 폭우 내렸을 때 반지하 아파트 침수로 사망자 나오고 해서 우리나라에도 기사 꽤 나왔어요
2023.04.29 13:41
김영한    
살생부 1. 50센트 타코즈
2023.04.30 09:42
코뮤니티    
뉴욕천마 김링컨 ㄷㄷㄷㄷㄷㄷ
2023.04.30 20:36
행운빨    
미국천마 나왔으니까 이제 남미천마, 유럽천마, 호주천마, 아프리카천마, 남극천마 나오면 되는건가? ㅋㅋㅋㅋ
2023.05.06 23:31
무부치    
뉴욕천마 신선해 내용도 신선하면 좋겠는데 아무튼 잘되면 다른 천마들도 나오겠네요 ㅋ 이런 발살의 전환 아주 좋아요!
2023.05.07 21:20
고지라가    
한국인도 인종차별 심해요. 잘사는 애들한텐 피해의식 느끼고, 못사는 애들은 외노자 취급하져. 사실 한국인 인성이 짱깨 인성이에요. 똑같아여.
2023.05.08 03:32
블라체슈넛    
아시발꿈
2023.05.08 06:38
쿠사나가    
오 시간 개꿀.근데 치료비는 많이 청구되겠네 미국이라
2023.05.08 11:26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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