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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2023.05.09 조회 892 추천 9


 제1화
 
 
 2020년 4월 5일.
 프랑스.
 국제형사경찰기구, 통칭 인터폴의 본부가 있는 리옹시.
 
 론강을 따라 길게 나 있는 샤흘르 드 골르 가(Quai Charles de Gaulle) 옆에 있는 멋대가리 없는 사각형 건물에 인터폴 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건물 3층의 무기 밀매 전담반 사무실.
 사무실 한쪽에 있는 방 안에서, 검은색 머리에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인 장신의 동양인 남자가 박스에 물건을 챙기는 중이다.
 와이셔츠 아래로 보이는 각진 가슴팍과 잘 발달한 어깨, 셔츠 팔 부위의 울퉁불퉁한 굴곡, 그리고 터질듯한 바지의 허벅지가 그 동양인이 하드 트레이닝을 받은 육체의 소유자임을 여실히 알려 주고 있었다.
 특히, 짙은 눈썹 아래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서릿발 같은 눈빛은 제대로 훈련받은 정예 군인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 동양인은 지난 몇 년간 탁월한 머리와 뛰어난 정보 분석력으로 극비리에 진행되는 대규모 무기 밀매 거래를 수십 차례나 잡은 업적을 거둔 남자로, 인터폴 직원들 사이에서는 존중의 의미를 담아 본명 대신 『The Art of War(손자병법)』의 저자에게서 따온 별명인 손추(Sun Tzu: 손자의 영어식 발음)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멀리 뒤쪽에서 손추가 짐을 싸는 걸 보고 있던 한 인터폴 직원이 다른 동료에게 물었다.
 
 “왜 능력이 뛰어난 손추가 다른 곳으로 파견 가야 하는 거지? 근래 특별히 실수한 것도 없잖아?”
 “이봐. 마약 팀에서 근무하면서 뭘 안다고 떠들어? 손추가 파견을 자원한 거라고.”
 “정말이야? 인터폴에서 동양인이라고 인종 차별한 건 아니고?”
 “나 원 참······. 현 인터폴 총재가 누군지 몰라? 한국 경찰 출신의 킴이야. 손추랑 같은 동양인이라고. 그리고 손추는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 출신이지만, 손추 부모님들은 한국 태생이라고 들었어. 그런데 차별 대우를 받을 일이 있겠어?”
 “그래? 그럼 어디로 가는 거야?”
 “아시아.”
 “아시아 쪽이면······ 싱가포르로 가는 건가? 거기에 인터폴 아시아 지부가 있잖아.”
 “아니.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으로 바로 간다고 들었어.”
 “거길 왜? 지부도 없어서 가 봐야 할 일도 없을 건데?”
 “이봐. 정 궁금하면 네놈이 직접 가서 물어보라고. 나도 그 이상은 잘 모르니까.”
 “왜 짜증을 내는 거야?”
 “짜증 안 나게 생겼어? 능력이 뛰어난 손추가 떠나 버리면 우리 팀 전체가 힘들어진다고. 제길······. 어떤 멍청한 놈이 부임해서 사람 힘들게 만들지 걱정이 돼 죽겠구만······.”
 
 그때, 손추라 불리던 짐을 싸고 있던 동양인이 허리를 쭉 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 빠진 거 없지?’
 
 한국명 추송우, 영국명 제임스 추가 박스를 들고 자신의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밖에 있던 직원들이 파견 가는 추송우에게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무거운 박스를 양손으로 든 추송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한 다음,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 * *
 
 2020년 4월 13일.
 한국.
 
 새로운 한 주를 맞은 월요일.
 서울경찰청 외사국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업무 회의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회의가 끝나자 외사국에 소속되어 있는 외사기획과, 외사정보과, 외사수사과, 국제협력과의 과장들이 국장실에서 나가기 위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외사국 국장인 정성호 치안감이 조용호 총경을 호명했다.
 
 “어이, 조 과장. 조 과장은 잠깐 나 좀 보고 가지.”
 
 다른 과장들과 함께 국장실을 나서려던 국제협력과 과장인 조용호 총경이 화들짝 놀라 뒤로 돌아섰다.
 
 “네, 국장님. 부르셨습니까?”
 “딴 게 아니라, 인터폴 본부에서 파견 나오기로 한 친구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미리 부서에 이야기도 다 해 놨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친구랑 통화를 해 봤는데, 사람이 제법 눈치가 있더군요. 한국말도 잘하고요. 자신은 한국 경찰 업무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생각도 없고, 남의 구역에서 함부로 나댈 생각도 없다면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다 갈 생각이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조용히 지내게 하다가 돌려보낼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지금 인터폴 총재가 누군지 알지?”
 “네. 전 경기지방 경찰청장을 지내신 김정양 선배님이시잖습니까?”
 “그 선배가 경찰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고 들었네. 파견 오기로 되어 있는 친구가 인터폴에서 제법 활약한 친구인가 봐. 능력이 괜찮으니 잘 활용해 보라고 추천한 모양이야. 어차피 국제협력과에는 그 친구가 맡을 만한 일도 없잖아?”
 “네. 그렇긴 하죠.”
 “경비국에서 그 친구를 빌려달라는 요청이 왔어. 경비국에서 요즘 역점을 두고 있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지?”
 “대테러 위기관리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잘 알고 있군. 잘 풀리고 있는 남북 관계를 방해하려는 테러가 있을까 봐 다들 노심초사하고 있어. 그러니 그 친구를 경비국 위기관리 센터로 보내게. 소속은 국제협력과로 해 두고 말이야.”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국내 수사권이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인터폴은 대테러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아닌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정도는 나도 알아. 그 친구에게 수사나 대테러 업무를 맡기겠다는 게 아니야. 인터폴 본부에 다년간 있었으니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 눈이 우리보다는 밝을 거 아닌가? 국제 정보를 분석하는 쪽에서는 나름 도움이 되겠지. 국정원도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고······.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잘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가 봐.”
 
 잠시 후,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간 조용호 국제협력과 과장이 간략하게 정리된 추송우의 이력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국 태생으로 나이가 서른셋이라. 젊군, 아직 한창때야. 영국 특수부대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동료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온몸에 총알 세 방을 맞았어? 의리가 있는 친구로군. 그런데······ SAS가 아니라 SBS 출신이라고? SBS는 영국 해군 특수부대일 텐데 왜 아프가니스탄에 간 거지? 거긴 바다도 없는 내륙 국가인데······. 의문점이 많은 친구로군.’
 
 조용호 과장이 이력서를 한 장 넘겼다.
 
 ‘전역 후 부상을 회복한 다음 인터폴에 투신했고, 5년째 계속 근무하는 중이라 이거지? 주 임무는 국제 무기 밀매 쪽을 담당했었고. 이 친구 이거······ 혹시 인터폴 본부에서 우리가 모르는 특수 임무라도 받고 오는 거 아냐? 그럼 골치 아픈데.’
 
 -똑. 똑. 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국제협력과에서 일하는 이민호 경위가 손님을 한 명 대동하고 들어왔다. 단정하게 깎은 짧은 머리에 185㎝가 넘어 보이는 장신의 남자였다.
 떡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가슴팍,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이 잘 벼려진 칼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과장님, 인터폴에서 파견 나온 추송우 씨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자네는 나가 보게.”
 
 이민호 경위가 문을 닫고 나가자, 조용호 과장이 의자에서 일어나서 추송우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한국 경찰청 외사국 국제협력과를 맡은 조용호 총경이라고 합니다.”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파견 근무하게 될 제임스 추라고 합니다. 추송우 또는 손추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편하게 말을 놓으시죠.”
 “말을 편하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제가 나이가 많지 않습니다.”
 “고맙네. 소파에 편히 앉게나.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네.”
 
 소파에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통화할 때도 느꼈지만, 생각보다 한국말을 잘하는걸?”
 “부모님이 한국 분이시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는 한국어로만 대화했습니다. 집 밖에서는 영어를 사용했지만요.”
 “내가 솔직하게 물어봐도 되겠나?”
 “네. 그러시죠.”
 
 조용호 과장이 손추의 이력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인터폴 본부에서 자네가 한국까지 파견 나온 이유를 모르겠어. 대규모 무기 밀매 단속이 주 임무라고 하던데······. 한국에는 대규모 무기 밀매 사건 자체가 없네.”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끽해야 러시아나 일본에서 토카레프 권총 정도를 밀수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실제 총기가 사용된 사건도 거의 일어나지 않고요.”
 “그런데 왜 파견을 나온 건가? 혹시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임무 같은 게 있는 건가?”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사실은 제가 인터폴에 1년간 휴직 신청을 했었습니다.”
 “휴직?”
 “네. 어머니께서 현재 많이 아프십니다. 3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영국 런던에서 혼자 지내시면서 극심한 허탈감과 향수병에 시달리셨습니다. 제가 프랑스에 살다 보니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얼마 전에야 겨우 알았습니다. 그래서 휴직을 하고 어머님을 한국으로 모시려고 했었습니다. 한국에는 이모님들이 몇 분 살고 계시니까요.”
 “아······. 그런 이유였군.”
 “네, 특별한 임무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제 말을 믿으셔도 됩니다. 이번에 오면서 어머니도 함께 모시고 왔으니까요. 휴직하고 제가 1년 정도는 어머니 옆에서 계속 모실 생각이었습니다만······. 제 상사께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한국으로 파견을 가라고 하시더군요. 어차피 한국에는 테러도 없고, 대규모 무기 밀매 같은 것도 없으니 장기 휴가라고 생각하라면서요. 그동안 제가 인터폴에서 제법 성과도 내서······. 일종의 보너스 같은 거로 생각하라면서 보내 줬습니다.”
 “이제야 좀 이해가 가는군.”
 “통화할 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한국 경찰 업무에 함부로 끼어들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남의 구역에서 함부로 설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의문이 풀려 마음이 좀 편해진 듯, 조용호 과장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알겠네. 자네는 오늘부터 경비국 위기관리 센터 쪽에서 일하게 될 걸세.”
 “위기관리 센터에서 말입니까? 경찰청 외사국 국제협력과에서 자문 업무를 하는 게 아니라요?”
 “소속은 여기가 맞네. 단지 이쪽에서는 자네가 할만한 일이 없어서 그래. 자네의 경험을 살려서, 그쪽에서 정보 분석하는 걸 좀 도와주면 될 거야. 안전은 걱정하지 말게나. 현장에서 직접 뛰는 일은 전혀 없을 테니까.”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추송우가 입을 열었다.
 
 “도와드리는 건 상관없습니다. 놀고먹는 것보다 맘도 편하고요. 하지만 보고 체계를 확실히 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보고 체계?”
 “네. 정보 분석이야 저도 자신이 있으므로 한국 경찰 쪽에 제법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보안이 필요한 정보를 취득하게 될 게 뻔하지 않습니까? 제가 취득한 정보를 국제협력과 과장님께도 보고를 드려야 되는 겁니까? 이런 문제는 미리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얼굴 붉히는 일이 생겨서요.”
 “이것 참······.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친구로군. 걱정하지 말게, 나에게 보고할 필요 없으니까······. 내가 물어볼 일도 없을 테고. 어차피 대테러 임무는 나하고 관련이 없어.”
 “잘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그쪽으로 가면 됩니까?”
 “그러게나. 내가 좀 전에 같이 들어온 이민호 경위에게 일러두겠네. 그 친구가 안내해 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추송우가 인사를 하고 문을 닫고 나가자, 조용호 과장이 전화기를 집어 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공(公)과 사(私)의 구별이 확실해. 말은 한국어로 하지만, 마인드 자체가 우리나라 쪽이 아니야. 능력도 제법 있어 보이고.’
 
 잠시 후 이민호 경위와 함께 위기관리 센터로 가던 추송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대테러 정보 분석에 자문하게 생겼군. 뭐 이왕이면 한국 경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게 낫겠지. 눈칫밥도 덜 먹을 테고 말이야.’
 
 그렇게 추송우가 경찰청 경비국 위기관리 센터에서 자문 업무를 시작한 지도 벌써 이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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