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천재여야만 한다 -1
나, 요즘 깨달은 게 하나 있다.
거짓말에 관한 이야긴데.
뭐냐면, 거짓말은 눈덩이와 비슷하다는 거다.
왜, 눈밭에서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처음엔 주먹만 했던 눈덩이가 어느새 사람만 해지는 것처럼.
거짓말도 똑같다는 얘기다.
처음엔 사소한 거짓말이었다고 해도, 그걸 숨기려다 보면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별것 아니었던 거짓말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커져 버린다.
내가 이걸 왜 깨닫게 됐냐면.
하아··· 나도 깨닫고 싶지 않았다.
시작은 정말 사소한 거짓말이었다.
-거긴 어때? 지낼 만해?
“응. 좋아.”
-친구들은 좀 사귀었고?
“친구? 많지.”
-스읍, 거짓말 같은데. 진짜야? 밥 혼자 먹는 거 아니고?
“내가 거짓말을 왜 해. 암튼 잘 지내고 있다니까.”
나에겐 소꿉친구가 한 명 있다.
여자애고, 이름은 김지우.
내 유일한 친구였다.
13살 때 내가 축구 유학을 오게 되면서 다 연락이 끊겼는데, 얜 워낙 오래된 친구라 유학을 온 뒤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거든.
뭐, 내가 얘를 좋아하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워낙 어릴 때부터 붙어 다니던 친구라 연락을 이어간 것뿐이다.
어쨌든 얜 어릴 때부터 좀 특이한 애였다.
지가 무슨 내 누나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던 아이랄까.
맨날 밥 먹었냐 물어보고, 이상한 애들이랑 놀지 말라 그러고, 친구랑 다툴 일이 있으면 지가 와서 대신 싸우기까지 하는.
뭐라더라.
자기 아니면 내가 이 험한 세상을 못 헤쳐 나갈 것 같다나 뭐라나.
암튼 지우는 이런 희한한 애라.
내가 유학을 온 뒤로도 누나 행세를 엄청 했다.
뭐 외국 생활 힘들지 않냐, 이탈리아어 공부는 잘하고 있냐, 친구는 많이 사귀었냐···
무슨 걱정이 그리도 많은지.
전화할 때마다 물어보길래, 난 항상 잘 지내고 있다, 여기 애들이 잘해준다, 나 인기 많다며 안심시키기 바빴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너 목소리 왜 그래?
“뭐가?”
-왜 힘이 없냐고.
“피곤해서 그래.”
-너 진짜 잘 지내고 있는 거 맞아?
“잘 지내고 있다니까 그러네. 내가 진짜 너 없으면 못사는 줄 아냐.”
-하, 씨. 이상한데.
뭐냐면, 지우에게 했던 잘 지내고 있다는 말들이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다.
사실 난 이탈리아에 온 뒤로 잘 지내지 못했다.
적응이 쉽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난 낯섦과 두려움이 비슷한 감정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거리의 간판, 사람, 음식, 심지어 공기마저도.
모든 것이 낯설었고 그게 난 무서웠다.
안 그래도 소극적인 나였는데.
그렇게 위축이 되다 보니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인기 많고, 친구도 많이 사귀긴 개뿔.
난 외톨이였다.
괴롭힘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나날들이었달까.
하지만 지우에겐 이 사실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축구는 잘하고 있어? 어때?
“잘하고 있지.”
-진짜? 이탈리아 축구 잘한다고 들었는데.
“다 나보다 못하던데. 나보고 다 축구 천재래.”
축구 얘기도 마찬가지였다.
축구 천재 소리를 듣긴 개뿔.
모든 게 두려운 환경에서 축구가 잘 될 리가 있나.
사실 나, 한국에 있었을 땐 축구 꽤 잘했었다.
천재··· 라는 소리도 가끔 들었었지.
물론 내가 진짜 천재라는 소리는 아니고, 그런 소리도 가끔 들을 만큼 열심히 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기 온 뒤로는 축구에 제대로 집중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흥미도 잃었고,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남들보다 열심히 하는 게 내 장점이었는데, 열심히는커녕 거의 손을 놔버렸으니.
천재 소리를 듣긴 무슨.
매일 지적받고 혼나는 게 일상이었고, 결국 팀을 옮기기까지 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지우에겐 솔직하게 털어놓기가 어려웠다.
그랬다간 잔소리 폭탄이 쏟아질까 봐 그렇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했다.
-요즘은 어때? 골 넣었어?
“응? 당연하지.”
-몇 골 넣었는데?
“안 세봤어. 너무 많이 넣어서.”
그래서 항상 허세를 부렸다.
맨날 천재 소리 듣는다고, 골 넣는 것도 이제 지겹다고, 조만간 티비에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되도 않는 허세를 부렸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짓말을 했던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부릴 자존심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그냥··· 뭐랄까.
지우에겐 이런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얠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정말로.
뭐··· 아무튼.
이런 상황이었다.
적응도 못 하고, 축구도 못하고.
그런 와중에 이상한 자존심은 있어서 거짓 축구 천재 연기나 하고 있는.
하지만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래도 내 거짓말이 들킬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며칠 전이었다.
-야! 나 이탈리아 간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연락을 받았다.
지우가 이탈리아로 온다는 소식이었다.
“···뭐라고?”
-나 이탈리아 간다고!
“너, 너가 왜?”
-난 가면 안 되냐? 너 보러··· 가는 건 아니고. 나 교환학생 뽑혔어!
아니··· 무슨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언제부터 그리 잘되어 있었다고.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얘긴 들었는데, 거기서 교환학생에 뽑혔다는 것이 아닌가.
그게 어떻게 하필 이탈리아일 건 또 뭐고.
정말 운명의 장난 같았다.
-야! 너 반응이 왜 그러냐? 이 누나가 간다는데 반갑지도 않아?
“아니, 그게···”
사실 반가워야 할 일이었다.
어쨌든 나에게 유일한 친구가 지우인데.
그런 지우가 온다니 당연히 반가워야 할 일이고, 실제로 반갑기도 했다.
근데···
-경기 보러 갈게!
“뭐, 뭘 보러 와. 안 와도 돼.”
-야, 당연히 이 누나가 보러 가야지 무슨 소리야.
“아니···”
-와, 벌써 기대되는데? 우리 축구 천재,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다 내가 저지른 거짓말들이 문제였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짓말들은 이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지우가 도착한다는 날짜는 불과 2주 뒤였다.
내 거짓말이 들키지 않으려면, 그 2주 사이에 미친 듯이 훈련해서 일단 코치님들의 눈에 들고.
거기서 더 잘해서 주말 경기 명단 안에 든 다음.
그 경기에 운 좋게 출전해, 기적처럼 골이라도 넣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게 말이 되냐고.
저 모든 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능할 리가 있냔 말이다.
한마디로, 난 뭐 됐다는 얘기였다.
“으아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게 왜 그런 거짓말을 해서.
아니, 실은 지금이라도 그냥 거짓말이었다고 말하면 끝이긴 하지만···
아, 몰라.
이런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주긴 싫단 말이야.
“에휴.”
한숨을 내쉬며 욕실로 향했다.
출근할 시간이었다.
ㆍㆍㆍ
철컹-!
열쇠로 문을 잠그고, 잘 잠겼는지 한번 당겨본 뒤 돌아선다.
요즘 세상에 도어락 없는 집도 있나 싶겠지만, 이 동네는 다 이렇다.
그놈의 전통을 워낙 좋아하는 동네라.
“휴우.”
온통 주황색 벽돌로 가득 찬 골목을 걸어나간다. 이 벽돌집들도 지어진 지 수백 년은 됐을지도 모른다.
골목을 걸어나가면 작은 광장이 나온다.
오늘도 날씨는 쓸데없이 좋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가로이 앉아 커피를 마시며 햇살을 쬐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빠른 걸음으로 광장을 가로질러 걷는다.
걷다 보면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놈의 동네는 대체 성당이 몇 개인지.
시선이 닿는 곳이면 어김없이 성당이 보이는데, 웃긴 건 진짜 별거 없어 보이는 성당도 최소 100년은 넘었다는 거다.
참 여기도 신기한 동네다.
어쨌든 그렇게 수많은 성당과 광장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흙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엔 향긋한 포도 내음이 섞여 있다.
쪼그려 앉아 신발 끈을 꽉 묶는다.
여기서부터는 뛰어서 간다.
목적지까지는 대략 2km.
길이 좀 구불구불하긴 하지만 제법 뛸만한 코스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내 타이머를 키고 다시 주머니에 넣은 뒤 뛰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계속해서 뛴다.
온전히 호흡에만 신경 쓰며 계속해서 달린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드넓은 포도밭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아무도 없는 이 길을 뛸 때가 난 가장 자유롭다.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된 기분.
“후우, 후우.”
그렇게 뛰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가 보인다.
저기, 저 멀리.
언뜻 봐선 주변의 포도밭과 분간이 안 되는 저곳.
저곳이 이 출근길의 끝이자 나의 직장이다.
ACF 피오렌티나.
이게 내 직장의 이름이고, 이곳은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예술의 도시 피렌체다.
*
“도미니코?”
“넵.”
“지노?”
“예.”
“엔초?”
“네.”
“오케이. 다 왔구만.”
16살인 내가 속한 U17 팀의 훈련은 언제나 출석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 역시 아이들 사이에 서서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니, 잠깐만.
“저, 코치님?”
“어?”
“저, 이름 안 부르셨는데요.”
“엉···? 아, 그래. 미안하다. 지안 리.”
“···예.”
손을 들고 얘기하자 그제서야 날 발견한 코치가 내 이름을 체크한다.
···내가 아무리 평소에 지각을 밥 먹듯 한다고 해도 그렇지.
이게 현재 우리 팀에서 나의 위치다.
투명인간에 가깝다고 할까.
애들은 물론이고, 코치님들도 내게 별 관심이 없으시다.
사실 난 이런 취급이 오히려 좋았다.
차라리 없는 사람 취급하고, 내게서 관심을 끄는 것 말이다.
난 작년까지 토리노에 있는 팀에서 축구를 했었는데, 거기 애들은 나한테 관심이 엄청나게 많았다.
관심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내 라커에 쓰레기도 버리고, 내 신발을 숨겨 놓기도 하고···
다만 이곳, 피오렌티나의 아이들은 내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들 지꺼 하기에 바쁜 느낌이랄까.
이중엔 내 이름을 모르는 애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날 신경 쓰지 않았고, 나도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그게 편했다.
다만··· 코치들마저 내게 관심이 없다는 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이제는 말이다.
지금의 난 어떻게든 다다음 주 경기에 나가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러려면 일단 코치님의 눈에 들고 봐야 하는데···
“자, 훈련 준비합시다.”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일단은 해봐야지.
지우 앞에서 개망신당하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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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창작 이야기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집단, 지명 사건 등은 실존하는 것과 아무 연관이 없으며, 작품 내 등장하는 지식은 작품에 맞추어 재구성 및 각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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