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지옥에서 돌아온 게임 디렉터

나는 틀리지 않았다

2023.05.10 조회 118,329 추천 2,196


 #1화
 
 곰곰이 생각했다.
 친구라 생각했던 놈의 진짜 얼굴을 알게 된 걸 좋아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그 형은 글렀지. 고집이 너무 세잖아. 뭐라더라, 예술병? 명작병? 너무 순수하잖아. 게임성으로 밀어붙이면 수익이 오를 거라는 걸 아직도 믿어. 사업부에선 천연호 이름 석 자만 나오면 그렇게 학을 뗀다니까?”
 “와, 팀장님 너무 신랄한데?”
 “사실인 걸 어떡하냐. 하여튼 귀찮게 됐다. 또 새 프로젝트 들어가야 해.”
 “아, 천 팀장님이 맡기로 했던 거요?”
 “어쩌겠냐, 나보고 해달라는데. 그 형이 이번에도 대차게 말아먹었잖냐.”
 
 끝내 내린 결론은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였다.
 저놈은 대형 프로젝트만 3개를 성공시킨 이사 후보였고, 나는 맡는 프로젝트마다 애매한 성적이나 남기는 천덕꾸러기였으니까.
 
 예컨대, 나서봤자 추해지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 * *
 
 
 항상 듣던 말이 있었다.
 
 -연호야, 대체 거래 불가 시스템은 무슨 생각으로 제안하냐? 어? 인 게임 재화만으로 흘러가는 게임을 우리가 어떻게 운영해? 개발비는 땅에서 솟냐?
 
 내 게임에 상업성이 모자란단 말.
 
 -코어 유저? 좋지! 목장이 넓어야 캐시 카우도 튼튼해지는 법이니까. 근데 이 목장엔 캐시 카우가 못 살아. 왜? 돈을 처바르고 싶어도 바를 수단이 없으니까! 여긴 잡초밭이니까!
 
 게임이 유저의 니즈를 모른다는 말.
 
 -이게 고친 거냐? 확률형 아이템 넣을 구석이 안 보이잖냐. 다시 수정해!
 
 회사의 방침에 맞추라는 말.
 
 나는 기꺼이 따랐다.
 내가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었고, 또한 프로젝트를 이끌 책임자였으니까.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후우··· 연호야, 이번 프로젝트는 여기까지 하자. 적자다.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맨날 열심히만 하지. 잘 좀 할 것을.
 
 입맛대로 맞춰줬더니 그게 맛없다고 밥상을 엎는다.
 
 언제나 참았던 말이 있었다.
 
 ‘게임이 재미가 없으니까 안 팔리죠.’
 
 기획부터 완성까지 어떻게 더 팔아먹을지만 생각하는 게임에서 대체 어떤 재미를 느끼란 말입니까?
 돈 쓰는 재미? 돈 쓰는 것도 재미가 있어야 쓰죠.
 기껏 생각해서 기획서를 내도 죄다 뜯어고쳐 결제창만 남기는데 제가 어떡할까요?
 그쪽들이 게임을 헤집어 나온 결과물이 이건데 슬슬 누구 잘못인지 알 때도 되지 않았어요?
 
 차라리 그 말을 했어야 됐던 걸까.
 이젠 잘 모르겠다.
 
 무엇하나 내 뜻대로 한 게 없음에도 책임은 내 것이었다.
 게임으로서 기본을 지키려 했던 말들은 나를 예술병자, 명작병자로 만들었다.
 
 그냥, 그런 생각만 든다.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취급, 이런 환경에 둘러싸여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문득 내가 살아온 생, 그동안 만들었던 게임들, 그리고 그 게임의 평가를 돌이켜봤다.
 
 좋은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잘 팔리기만 하는 게임이 아니라, 그 게임을 하는 동안은 다른 세상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 있는 게임을.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이 즐거움을 느낄 만한 그런 게임을.
 
 그게 회사의 방침과 달랐던 것 같다.
 맞추려고 해도 맞춰지지 않았다.
 내 게임은 정체성을 뒤틀어야 겨우 회사의 입맛에 맞는 결과물이 됐으니까.
 
 회상이 이어질수록 고민은 깊어져 마음의 병이 되었다.
 병의 이름은 의혹이었다.
 
 ‘진짜 내가 틀린 건가?’
 
 정말 게임의 궁극적 목적은 상업에 있는 건가?
 BM이 게임의 시스템보다 위에 있는 건가?
 나만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건가?
 사실 내가 정상인 마을의 외눈박이였던 건가?
 
 -게임성으로 밀어붙이면 수익이 오를 거라는 걸 아직도 믿어.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반박할 말이 그리 많았음에도 쉬이 하지 못했다.
 꿈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는 철없는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일평생 믿고 나아갔던 길 끝이 낭떠러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리도 나를 좀먹었다.
 
 나는 결정해야 했다.
 이대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수용할지, 끝까지 나를 믿을 것인지.
 
 와중 깨달은 것은, 나는 그놈 말대로 고집불통이라는 사실이었다.
 
 “퇴사?”
 “예.”
 “그래, 이유나 좀 들어보자. 왜?”
 “1인 개발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아, 1인 개발. 좋지. 낭만도 있고. 넌 잘할 거다. 응원하마. 발매하면 꼭 소식 알려주고.”
 “예.”
 
 퇴사를 말하는 순간 언제나 묘한 거슬림을 담은 채 나를 흘기던 눈이 반가움을 띤다.
 그 눈이 말하는 듯했다.
 
 -딱 봐도 망하겠구만.
 
 그에 발악하듯 속으로 되뇌었다.
 
 ‘아니야.’
 
 나는 틀리지 않았어.
 라고.
 
 
 * * *
 
 
 그래도 일해온 햇수가 있어 퇴직금이 든든했다.
 따로 모아둔 돈도 있었고, 결혼도 하지 않아 앞으로 돈 빠질 구석도 그리 크지 않았다.
 
 쌓아온 노하우가 있고 체득한 기술이 있다.
 애초에 프로그래밍 전공으로 시작해 기획자로 전향한 것이니 기술 문제로도 크게 발목 잡힐 게 없었다.
 
 마침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었다.
 구현하고 싶은 시스템이 있었고,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개발을 시작했다.
 기획부터 시작해 디자인을, 프로토타입 제작과 본격적인 개발까지 나는 조금도 쉬지 않았다.
 
 -게임성으로 밀어붙이면 수익이 오를 거라는 걸 아직도 믿어.
 
 그 말을 떨쳐내려 했다.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울분이었다.
 
 ‘···뭐가 나쁜데.’
 
 대체 뭐가 나쁜 거냐.
 게임에서 게임성을 추구하는 게 뭐가 나쁜 거냐.
 세계관에 디테일을 더하는 게, 인물에 깊이를 더하는 게, 시스템의 치밀함을 더하는 것과 게임성에 대해 고찰하는 게 대체 뭐가 나쁜 거냐.
 
 도리어 당연한 것 아닌가?
 게임이라면 게임다워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언제부터 게임이 재력을 과시하는 분재였나.
 언제부터 잠시 즐기다 버리는 일회용품이었으며 무지성적인 반복 행위를 강요하는 노동이었나.
 
 애초부터 게임의 본질은 체험이었다.
 새로운 세계를 겪으며 그 속에서의 수행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을 추억으로 남겨 오래도록 간직하는 것이었다.
 부차적인 것들을 모두 치우고 보면 그것만이 진실이었다.
 
 -우리 현실적으로 보자.
 
 틀렸다.
 그건 현실 직시가 아닌 타협이다.
 그놈들은 실패를 두려워해 도전을 포기한 것이다.
 성공을 답습하고 그에 매몰되면서도 매출액이라 표기된 숫자에 눈을 가려버린 것이다.
 
 ‘내가 맞아.’
 
 나는 틀리지 않았어.
 타협하지 않았고, 물러서지도 않았어.
 너희들은 그런 내가 아니꼬운 거잖아.
 너희들이 못하는 걸 하려는 나를 깎아내리고 싶을 뿐이잖아.
 
 불안과 확신이 부딪쳤다.
 그래서일까, 어느덧 개발 중인 게임은 내 자아를 대변하는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홀린 듯 지어내는 것은 어떤 생애와 감정을 다루는 게임이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발을 내딛는 때마다 세상은 그를 부정한다.
 꿋꿋이 나아갈수록 더욱 강한 압박으로 내리누른다.
 나아가는 길을 의심하게 만들며, 자칫 발을 잘못 내디딘 순간엔 길을 되돌아가게 한다.
 불안, 분노, 절망, 고통 따위를 들이밀며 타협하길 종용한다.
 
 나아갈 방법은 확신뿐이다.
 꺾이지 않을 확신으로 몇 번이고 벽을 두드려 깨부수는 것뿐이다.
 
 그것은 도전의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였다.
 나는 그저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야 함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만든 게임은, 내 병이 몸을 좀먹기 시작할 즘에야 완성할 수 있었다.
 
 [아이덴티티.]
 
 세파에 휘둘려오면서도 끝까지 스스로를 놓지 않은 자가 행복해지는, 그런 이야기를 약 12시간 동안 체험하는 게임의 이름이었다.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그날은 몇 년 만에 술을 입에 댔다.
 
 탈력감이 전신을 내리눌렀다.
 한동안은 지난 몇 년을 곱씹기만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팀장님? 잘 지내세요? 이번에 발매하신 게임 수상하셨잖아요! 축하드리려고 연락했어요!]
 
 나는 증명에 성공했다.
 
 [플레이 해봤는데 엄청 좋더라구요! 뭐라고 해야 하지··· 진짜 피곤한 것도 모르고 주말 내내 붙잡고 있었지 뭐예요? 몰입감이 와···!]
 
 업계에서 가장 큰 상을 받았다.
 비록 1인 개발이라는 한계 탓에 인디 게임으로 가닥을 잡았고, 수상도 인디 부문에 그쳤으나 그럼에도 그것은 명백한 증명이었다.
 
 속으로 외쳤다.
 닿지도 않을 공허한 외침이었다.
 
 ‘봐봐, 내가 맞았잖아.’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BM이 아니라 본연의 재미다.
 게임성이었고, 달리 말해 완성도였다.
 잘못된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란 말이다.
 
 [시상식이 오늘이죠? 지금쯤 비행기 타러 가시겠네요!]
 
 끝까지 연락을 해왔던 팀원 놈의 목소리였다.
 듣고 있자니 머리가 징징 울렸다.
 
 생각해보면 근래는 내도록 그랬다.
 이놈 말대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고맙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피잉―!
 
 현기증이 돋았다.
 아니, 그것보다 더한 것이었다.
 눈앞이 하얘지고 숨이 멎는 감각은 분명 어떤 활동의 끝을 고하고 있었다.
 
 ‘아.’
 
 콰당!
 
 쓰러지는 몸뚱어리를 바로 잡을 수 없었다.
 바닥에 쓰러져 하는 일이라곤 숨을 헐떡이는 게 끝이었다.
 
 [티, 팀장님···?]
 
 목소리가 멀어졌다.
 시야가 검게 물들어갔다.
 정신이 침잠해갔다.
 호흡이 멎어갔다.
 이윽고 끝이 찾아왔다.
 
 [팀장님! 팀장님!!!]
 
 과로사.
 증명에 목매어 스스로를 혹사한 병신의 최후였다.
 
 
 * * *
 
 
 주마등, 뇌의 화학 반응으로 일어나는 환각 작용.
 그런 단어가 떠올랐으나, 이내 부정된다.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지옥에 떨어졌다.
 
 아아아아악!!!
 
 숱한 비명과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혼재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감히 내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세계였다.
 아무렴, 쉼없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그때마다 풍경을 변모시키는 세계는 내가 아는 차원 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붉은 땅 위로 꼬챙이에 꿰어진 채 널려있는 죄인들을 봤다.
 스스로 우상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리는 죄인을 봤고, 자신이 죽인 생명에게 무한히 죽임을 당하는 죄인을 봤다.
 걸신들린 아귀가 되어 서로를 뜯어먹는 죄인을 봤고 아득한 평온 속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죄인을 봤다.
 그 외의 수많은 것들을 봤다.
 
 그 순간 중 단 한 번도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떠올리지 못했다.
 
 ‘봐야 해.’
 
 그저 이 모든 것을 눈에 담아야 한다는 기묘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기억력을 학대하기 바빴다.
 
 미쳐버린 것이 분명했다.
 과정의 무엇도 내 의지가 아니었음에도, 목도한 것 중 무엇 하나 끔찍하지 않은 것이 없었음에도, 인간이 상상하는 공포를 한없이 자극하는 형태였음에도.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마침내 다 눈에 담은 순간,
 
 “와···.”
 
 나는 공포도 두려움도 아닌 설렘을 느꼈으니까.
 
 쿵, 하고 심장이 뛰었다.
 이미 죽었음에도 살아있던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그것은 꼭 첫사랑을 다시 만난 듯한 설렘이었다.
 
 게임을 만들겠다고 나를 죽인 내게 내려진 벌일지도 몰랐다.
 아니, 그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피어나는 이 끝 모를 갈증이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그저 생각했다.
 
 ‘만들고 싶어.’
 
 이 세계를 게임의 형태로 담아내고 싶다고.
 게임으로 만들면 너무 재밌을 것 같다고.
 
 아이디어가 범람했다.
 일평생 그랬듯, 나는 뇌에 새겨진 정보에 게임적인 시스템들이 입혔다.
 그것이 거대한 해일처럼 내 이성을 뒤흔들었다.
 그러다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연호야! 그만 자고 일어나!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지옥에서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댓글(127)

원투쓰리..    
papapa 화이팅입니당
2023.05.10 16:14
돈치뿌    
^ㅅ^ 게임성 <- 이거 ㄹㅇ 허상임... 답은 화제성이었음...
2023.05.11 09:51
fa****    
잘봤습니다
2023.05.11 17:45
유동까마귀    
2023.05.13 21:10
타락글쟁이    
남의 돈으로 만들거면 남의 니즈에 맞춰야지
2023.05.14 07:37
k0****    
실시간 검색어 1등 뭐ㄴ
2023.05.14 13:11
LoveAuthor    
거래 시스템, 확률형 아이템 등은 과금 모델이고, 캐릭터의 깊이나 세계관의 완성도는 과금 모델의 충실함과는 별개의 문제죠.... 게임사에서는 과금 모델을 제대로 넣으라는 거고, 그건 게임성을 훼손하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데 주인공은 그냥 자기 아집이랑 고집에 사로잡힌 게.... 인디게임에서 상 탄 것도 자기 인생을 창작물에 담아서 성공하는 일종의 비기너스 히트에 가깝지, 과금 모델과는 별개의 문제고.... 주인공이 너무 비호감....
2023.05.14 17:06
LoveAuthor    
게임이 재미가 없었으면 그건 과금 모델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 자체의 문제입니다. 아예 과금 없이는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가 아닌 이상에야... 과금 모델에 충실하면서도 무과금 유저가 기본적인 스토리 진행이 가능한 그 밸런스를 잡는 게 디렉터의 역할이고요...
2023.05.14 17:08
ja**********    
근데, 거래 시스템이나 확률형 아이템도 게임에 있어 중요한 요소긴 함. 게임성이 좋은 진짜 재밌어서 하는 게임과는 다른 상업성 게임 유저들 중 일부는 시간을 돈으로 사고 싶어하거나 압도적인 강함을 돈으로 사고 싶어하기 때문임. 게임에 과금 요소가 들어가는 게 맘에 안든다? 그럼 내 시간을 기꺼이 소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재밌는 게임을 만들면 됨. 과금 모델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봄
2023.05.14 18:06
알건다알아    
게임성으로 성공할 수 있긴하지 그럼 그런 회사로 들어가야함. 프롬소프트나 닌텐도같은데
2023.05.1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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