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균이 취권으로 영의정 -
이제 작가는 끝장이다.
날로 발전하던 인공지능이 이제는 소설까지 쓴다고 한다.
그림쟁이들 대가리가 깨지는 걸 비웃는 척하며 두려워 한 게 어젯일 같은데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특히 빔샤벨 태종이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인문대를 나와 사학, 그중에서도 군사사를 주로 공부한 내 입장에서 빔샤벨 태종은 AI 작가의 소설이 인간보다 재밌고 흥미로울 수 있다는 증거로 보였다.
“태종이 애용하던 병기인 ’빔샤벨‘은 검과 단창의 결합체인 무기로, 조선 초기에는 살아있는 적을 상대하는 병기로 사용되다가, 후에는 훈련용 무기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남들이 다 웃을 때, 난 웃을 수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인간이 이겨야만 한다!
AI에 대한 공포와 수십 년 학업에 대한 억울함에 술을 잔뜩 마신 나는 새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름하야 ‘빔샤벨 원균’
AI 따위가 이성계, 태종으로 인기를 끈다면 난 원균으로 이기리라!
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속도보다 AI의 진화는 빨랐다.
불과 한달 새 터무니 없는 답변 대신 정확한 정보를 늘어놓으며 점차 사람을 닯아가고 있었다.
결국 난 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늘어난 건 술과 술 때문에 불어난 뱃살 뿐.
참담했다.
“젠장, 내가 원균이었으면 마 다 했어!”
열이 난다.
“AI가 시발 왜 지금 나와서..”
슬프다.
“하다못해 완벽하기라도 했으면 일 안 하고 살았을 텐데..”
억울하다.
그래서 나는 거제도 칠천량으로 향했다.
빔샤벨 태종을 빔샤벨 원균으로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원균과 수천 명의 조선 수군이 몰살당했던 칠천량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마침 칠천교라는 다리가 놓여있어 뛰어내리기도 딱 좋았다.
그렇게 칠천교에 도착해 남은 돈으로 산 소주 5병을 연거푸 들이켜던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리석다’
울림있는 목소리에 머리가 쨍하게 아팠다. 아무래도 술을 너무 마셨더니 환청까지 들리는 것 같다.
‘고작 술로 날 부정하니, 괘씸하다.’
그러나 부정해도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커졌다.
‘인간이 이러해 내가 외롭고 화가 나니, 그냥 편히 보내지는 않겠다. 축복과 저주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커지는 소리와 반대로 나는 술기운마저 사라진 채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웹소설 작가로 활동한 수년 중 가장 편하게 잠이 든 것이었다.
그리고 깊고 깊은 잠 속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원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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