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최대 잔여 수명이 182일 남았습니다.]
갑자기 들려오는 알림에 강혁은 깜짝 놀랐다.
‘잔여 수명?’
앞으로 남은 수명을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어떻게 죽을 날을 미리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정확히는 죽을 날이 아니라 최대 수명을 의미한다.
무조건 182일 안에 죽는다는 것!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고, 100일 후에 죽을 수도 있지만, 182일을 넘겨 살 수는 없다는 얘기다.
‘각성자 A급 이상이 되면 자신의 최대 수명을 알 수 있다더니 정말이었어.’
하급 헌터였던 자신이 비로소 A급 헌터가 됐다는 건 감개무량한 일이지만.
잔여 수명이 6개월이라니 이게 뭔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강혁은 넋빠진 표정으로 한동안 말없이 투명한 정보창을 바라봤다.
* * *
“대체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죠? 갑자기 길드를 탈퇴하신다고요?”
“예.”
검은 색 뿔테 안경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20대 후반의 여성 김은아.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길드인 여명의 인사 최고 책임자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신장 187cm의 훤칠한 신장에 배우를 방불케할 만큼 잘생긴 얼굴.
흠이 있다면 언제나 한결같은 차가운 인상이지만 워낙 잘생긴 외모다 보니 그조차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차강혁.’
올해 28살.
10년 전 고등학교 때 각성 후 일반 대학이 아닌 국가수호원 휘하 전투 헌터 과정 수료.
각성 당시 최하급으로 판정됐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10년이 지난 지금은 전도유망한 여명 길드의 최상위 헌터 중 하나가 되었다.
괴력(怪力)과 강체화(强體化)를 활용한 근접전의 전투 능력은 이미 A급을 넘어서 AA급에 준할 정도다.
‘전투 능력이 E급에서 A급으로 승급한 극히 희박한 케이스.’
한 달 한 번만 참여해도 되는 게이트 공략을 매주마다 참여한 것도 모자라 매일 극한의 수련까지 병행하는 독종.
수련에 미친 괴물!
그렇게 처절하게 인생을 갈아넣었으니 E급에서 A급 전투 헌터로 인정받을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왜 갑자기 탈퇴를?
‘틀림없어. 청룡이나 북두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거야.’
김은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강혁은 여명 길드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최상급 인재인 만큼 그녀는 곧바로 협상에 들어갔다.
“원하시는 연봉을 말씀해보세요. 그쪽에서 어떤 대우를 약속받았는지 모르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강혁은 탄식하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오늘 보니 시한부 6개월이더군요.”
“시한부라니 그게 무슨?”
“저의 잔여 수명 말입니다. 182일 남았다고 하네요.”
“잠깐만요! 그럼 설마?”
김은아가 다시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 또한 A급 각성자다.
전투력이 A급에 도달한 각성자의 상당수가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최대 잔여 수명을 알게된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이름】 김은아
【잔여수명】 28,652일
이대로라면 그녀는 앞으로 대략 78년 정도 더 살 수 있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거나 하지 않는 한 105세까지 살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A급 각성자가 되면 무난하게 100세를 넘기는데?’
일부 과도하게 마나를 소모한 각성자의 경우 수명이 줄어들긴 해도 10여년 정도일 뿐, 강혁처럼 30세도 되지 않아 요절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
“잘못 보신거 아닌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저도 잘못 본거라면 좋겠군요. 그런데 아닙니다.”
곧바로 강혁은 오른손을 스캔 장비에 대고 자신의 잔여수명 창을 스크린에 띄웠다.
【이름】 차강혁
【잔여수명】 182일
“맙소사! 정말이군요.”
강혁의 잔여 수명을 확인한 김은아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다시 쳐다봤다.
“이해가 안 되네요.”
“아무래도 제가 그간 너무 몸을 혹사해서 그런 거겠죠.”
강혁은 씁쓸히 웃었다.
그냥 분수에 맞게 최하급 헌터로 만족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지 않을까?
위로 올라가보겠다고!
최상위 헌터가 되겠다고!
미천한 자질을 노력으로 극복하겠다며 몸을 갈아넣었는데.
결국 그게 수명을 갉아먹은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김은아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의 운명이 여기까지라는데.”
“병원이라도 가보시는게 어때요?”
“그게 무의미한 일이라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어쩔 줄 몰라하는 김은아를 보며 강혁은 큭 웃었다.
“그래서 그냥 6개월 동안 여행도 하고 맛있는 것 실컷 먹어보려고요.”
그동안 여행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사치로 여기고 오직 수련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죽음이 얼마 안 남은 지금 생각해보니 그저 허무할 뿐이었다.
대체 무엇을 얻겠다고 그리 수련에만 집착했던 것일까?
“아무튼 저는 더 이상 각성자니 헌터니 하는 건 관심없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최대한 즐겨보려고요. 오늘, 가능한 빨리 탈퇴 및 퇴사처리 부탁합니다.”
“알았어요. 바로 처리해드릴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일은 비밀로 해주세요. 알려지는 것 원치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잊혀지고 싶네요.”
“네.”
김은아는 사무실 밖으로 사라지는 강혁의 뒷모습을 딱하다는 듯 바라봤다.
* * *
다음 날.
강혁은 간단하게 짐을 꾸려 건물 밖으로 나왔다.
‘후...’
고개를 돌려 높이 30층의 화려한 건물을 올려다 본 그의 입가에는 순간 뿌듯한 미소가 피어나기도 했다.
‘내가 정말 열심히는 살았지.’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열심히 정도가 아니라 처절할 정도로 노력했다.
E급 헌터에서 A급 헌터로 승급한다는 건 불가능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놀랍게도 그는 그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지만.
‘그런 미친 노력이 미래의 수명을 갈아넣는 거라는 걸 알았으면 절대 안 했을 거다.’
강혁은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2년의 헌터 과정 수료 후 무려 8년 가까운 시간을 근무해온 회사에서 나오니 기분이 좀 많이 우울하긴 했다.
‘이제 나는 잊혀지겠지.’
길드에서도.
세상에서도.
그는 완전히 잊혀지게 될 것이다.
오직 수련에만 집중한 미치광이로 살다보니 사무적인 관계의 동료들은 몇 있지만 실제로 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련은 없어.’
나왔으니 뒤돌아보지 않는다.
[Web 발신]
XX은행.
은행 702,042,230원.
‘벌써 들어왔네.’
퇴직금이었다.
김은아가 빨리 처리해준다더니 정말이었군.
7억이 넘는 돈.
그러나 그의 재산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게이트를 돌며 번 돈들. 틈틈이 게이트에서 획득한 진귀한 아이템들을 팔기도 했고, 주식에 투자하기도 했다.
‘다 팔자.’
곧 죽는데 주식과 집이 다 무슨 소용일까?
그는 고아 출신에 결혼도 하지 않아 돈을 남겨줄 존재도 없었다.
그 동안 부자가 되겠다며 악착같이 모았는데.
‘억울해서라도 다 쓰고 죽어야지.’
다음 날부터 며칠에 걸쳐 그는 보유한 주식과 주택 등을 모조리 처분했다.
그것들을 퇴직금이랑 합치니 103억 정도.
‘내 재산이 이렇게 많았나?’
불우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제법 부자가 된 것이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인가?
수명이 이제 반 년 정도 남았을 뿐인데 말이다.
모든 게 허무할 뿐이지만 그가 전재산을 현금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S급 장병기인 백룡대도(白龍大刀).
소설 삼국지의 관우가 사용하던 청룡언월도와 유사한 형태의 병기다.
국가수호원 소속 각성무기연구소에서 괴물같은 무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이보다 대단한 무기들도 있다. SS급 중에는 수천억을 넘어 조단위 무기도 있다 했으니까.
그런 건 꿈도 꾸지 못하지만.
백룡대도는 가격이 딱 100억이었다.
보통 때는 팔찌의 형태로 착용하고 있다가 전투 시 마나를 주입하면 거대한 대도의 형태로 바뀐다.
S급 각성무기인 만큼 그 위력은 게이트의 3성급(★★★) 보스 괴물도 단번에 조각내버릴 만큼 강력하다 들었고.
‘드디어 그걸 살 수 있겠구나.’
어차피 죽으면 못 쓸 돈.
마지막으로 갖고 싶은 무기를 사는 거다.
그러고도 3억이 남는다.
그걸로 여행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으면 되리라.
* * *
5개월 후.
강혁은 강원도에 위치한 산에 들어왔다.
지난 5개월 동안 소원대로 세계 여행도 하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었다.
그러다 보니 들어간 비용이 대략 1억.
아직 2억이 남았다.
남은 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몽땅 털어서 강원도에 위치한 이곳 산을 구매한 것이다.
도로와 인접하지 않은 맹지(盲地)인데다 지형도 무척이나 험악했지만 왠지 이 산이 마음에 들었다.
‘시세보다 꽤 비싸게 샀어.’
급하게 매입하느라 1억도 안 되는 산을 2억이나 주고 샀다.
물론 후회는 없다.
어차피 곧 죽을 상황인 그에게는 재산가치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냥 조용히 죽을 장소를 찾았는데.’
고민 끝에 산으로 선택했다.
사실 아무 산에나 들어가 죽더라도 무슨 상관일까?
그러나 그는 남의 땅에서 죽는 건 민폐라는 생각에 산을 구매한 것이다.
마지막 사치라면 사치였다.
‘여기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지금은 팔찌로 변환된 백룡대도와 함께 말이다.
강혁은 자신이 죽었을 때 누군가 와서 백룡대도를 챙기는 걸 원하지 않았다.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로서는 저승이라는 곳이 있다면 평생의 재산을 다 털어 구매한 S급 장병기인 백룡대도도 가져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팔에 차고 죽으면 혹시 모르잖아.’
아닌 걸 알면서도 강혁은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이름】 차강혁
【잔여수명】 28일
‘이제 딱 4주 남았네.’
강혁은 산의 가파른 절벽 쪽으로 향했다.
천길 낭떠러지까지는 아니어도 엄청나게 높은 절벽.
신기하게도 그 중간에 수풀에 가려진 자그만 동굴의 입구가 하나 보였다.
‘저기가 딱이야.’
최후를 맞이하기에 딱 적당한 장소.
누구든 쉽게 접근하기 힘든 험악한 지형에 위치해 있었지만 강혁은 망설임없이 절벽을 타고 올랐다.
“후... 이제는 이런 것도 힘이 든다.”
본래라면 이보다 더 험악한 암벽도 가볍게 기어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체력이 쉽게 고갈되는 것은 물론이고 마나조차 적지않게 소모되었다.
‘고작 이 정도에 지치다니. 내가 정말 죽기는 죽는 모양이구나.’
잔여 수명 기간이 줄어들수록 이전보다 쉽게 지치고 회복도 느려진다고 했다.
그런 현상이 점차 진행되다가 수명이 한 달 남았을 때부터는 더욱 급격히 체력과 마나가 고갈되고.
마지막 10일은 각성의 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물론 일반인의 체력에도 미치지 못한 채로 무력하게 누워있다가 사망에 이르는 식이었다.
‘더 늦지 않게 산에 들어오기 잘했어.’
강혁은 저 동굴을 자신의 무덤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동굴까지 기를 쓰고 올라갔다.
‘의외로 큰 동굴이네?’
동굴 입구는 다리를 쭈구린 채 앉은 걸음으로 이동해야 할만큼 비좁았고 심지어 기어가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다행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는 구조였다.
‘근데 웬 솥이?’
동굴은 어두컴컴했지만 입구를 통해 들어온 햇빛이 비치는 장소에 다리가 세 개 달린 괴상한 솥이 하나 놓여 있었다.
외부로는 특이한 동물의 문양이 양각되어 있어 마치 박물관에서 보던 고대 유물 같아 보였는데.
‘신기할 정도로 깨끗해.’
특이하게도 솥은 누군가 닦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매끈했다.
‘이 솥에다 라면 끓여 먹어도 되겠는데?’
배낭에 약간의 식량은 준비해왔다. 죽을 때까지 그냥 굶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당연히 식량 중에는 라면도 몇 봉지 있었다.
냄비도 챙겨오긴 했지만 강혁은 이 다리 세 개 달린 괴상한 솥이 마음에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마치 오래 전에 잃어버린 솥을 다시 찾은 듯한 친근한 느낌.
‘진짜 라면을 끓여?’
엉뚱한 생각이지만 왠지 끌렸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프던 참이었는데.
‘못 할 게 뭐냐.’
곧바로 물을 부은 후 솥 아래 버너를 배치해 불을 켰다.
부글부글.
잠시 후 물이 끓기 시작하자 라면과 분말수프를 넣었다.
‘냄새 좋고.’
배에서 꾸루룩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라면이 완전히 익으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약 2분이 지났을까?
화악!
갑자기 솥 안에서 정체불명의 빛이 뿜어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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