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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유격수가 홈런을 너무 잘침

불운을 타고난 야구선수

2023.05.10 조회 57,583 추천 690


 1. 불운을 타고난 야구선수
 
 
 유행운은 유망주였다.
 맞벌이였던 부모님이 바쁘다는 이유로 리틀 야구단에 아들을 맡겼다.
 그 나이가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7살이었다.
 생각보다 유행운은 야구를 잘했다.
 투수를 시작으로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아예 타자로 전향했다.
 마른 체구였지만, 어깨가 강하고 손목 힘이 좋아 장타를 생산하는 좋은 타자였다.
 
 야구로 유명한 목운중학교에 입학한 유행운은 유격수는 물론, 포수를 제외한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능력을 갖췄다.
 발이 빠르고 출루율이 좋아 주로 테이블세터로 경기에 출전했지만, 타격감에 따라 중심타선에 서기도 했었다.
 그는 당연히 계속 야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계속 야구를 해도 될 만큼의 재능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엄마, 이게 다 뭐야······?”
 
 어느 날, 유행운은 집안 곳곳에 붙은 빨간 딱지를 목도했다.
 그 나이가 15살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 주로 나오는 빨간 딱지가 의미하는 바를 유행운이 모를 리가 없었다.
 
 “우리 망했어······?”
 
 집이 망했다.
 유행운의 모친은 유서를 보고 있었다. 얼굴은 버석하게 말라붙었고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있다.
 구겨진 종이가 유행운에게 전달된다.
 떨리는 손으로 유서를 받아 든 유행운은 그 내용을 보기 무섭게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 미안하다 내가 다 짊어지고 갈게
 
 정갈한 필체가 아니었다.
 제정신으로 쓴 글이 아니라 이성을 잃은 채, 정신없이 휘갈겨 쓴 유서였다.
 유행운은 유서를 든 채로 엄마를 보았다.
 깊은 한숨과 함께 소파에 털썩 앉은 엄마의 주름이 그날따라 깊게 팬 듯 보였다.
 
 “엄마, 장난이지?”
 
 장난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상황이 모두 거짓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유행운은 모든 게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아들의 떨리는 목소리에도 모친은 대답이 없었다. 그 순간, 거실 테이블에 놓인 모친의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정적.
 요란하게 벨은 울리는데, 그 누구도 아무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유행운을 덮쳤다. 심장이 크게 뛰어 귀에 쿵쿵 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전화벨은 멈추지 않고 지독하게 울렸다.
 
 - 목운 경찰서입니다. 이선영 씨 맞으시죠?
 
 엄마 핸드폰 너머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경찰서’라는 말에 유행운의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 이런 불미스러운 소식을 전해 드려 죄송합니다.
 
 차라리 핸드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유행운은 최선을 다해 이 상황을 회피했다.
 뒤늦게 엄마에게서 고개를 돌렸고 일부러 한 걸음 크게 물러서기도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귀는 낯선 음성을 듣기를 원했다.
 
 - 유성욱 씨가 오늘 아침 사망하셨습니다.
 
 유행운이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엄마가 말라비틀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살했나요?”
 
 모친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미 이런 상황을 예측했다는 투였다.
 유행운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6회 말, 7점 차. 호크스 대타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유행운은 지난날을 회상하면 인생이 진창에 빠진 순간은 바로 그때부터였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보증을 서서 빚더미에 오르던 그 순간.
 타의로 야구를 그만둬야만 했던 그 순간.
 
 [이 선수, 오랜만이죠? 작년 1군 무대에 올라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던 유행운 선수입니다.]
 
 유망주였던 자신의 인생이 시궁창에 빠졌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 아니 경기 던졌냐? 이 상황에 유불운을 대타?
  └ 감독 꼴찌 하고 싶어서 환장함
  └ 유불운 이제 그만 긁어도 되지 않냐;;
  └ 아니, 세금 먹여야 할 타망주가 몇 명인데 유불운??
  └ 꼴칰다운 대타 기용임;
  └ 이 팀은 대타감도 없어 죄다 1할 타자뿐임
  └ 현실은 유불운 1군 올라오자마자 턱뼈 골절로 시즌 아웃 ㅋ 1군에서 긁어본 적은 없ㅋ음ㅋ
 
 6회 말, 7점 차로 승부의 추가 기울은 상황에 호크스는 대타를 기용했다.
 어느새 1아웃을 적립했고 주전 선수 일부를 교체한 상황이었다.
 
 “바짝 붙지 마라. 그러다 대가리 또 날아간다?”
 
 타석에 선 유행운은 바짝 약을 올리는 상대 포수를 보았다.
 선을 한참 넘은 도발이었다.
 유행운은 부상에 민감했다. 이미 작년에 강속구 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턱뼈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유행운이 잠시 타석에서 물러나 항변하는 의미로 심판을 보았다.
 주심도 귀가 있다.
 포수 뒤에 서 있는 그의 귀에 비도덕적인 언행이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포수, 지나친 신경전은 삼가도록.”
 “네, 장난이었어요. 장난.”
 
 포수가 실실 웃는다.
 유행운은 작게 한숨을 쉬고 크게 스윙을 한 번 한 후에 다시 타석에 섰다.
 그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유행운은 반드시 출루에 성공해야 한다.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의 나이는 어느새 서른이었다.
 타의로 야구를 그만둬야 했던 유행운은 쉽게 야구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야구에는 돈이 필요하다.
 아버지가 남긴 빚은 상속 포기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집에는 이제 남은 게 없다는 점이었다.
 엄마는 은행원으로 계속 일했지만, 둘이서 벌던 벌이에 비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명의가 모두 날아간 상황에서 집을 구하는 일도 벅찼다.
 대출을 받아 다 쓰러져 가는 빌라로 이사 가는 상황에 야구는 사치였다.
 
 ‘맞아서라도.’
 
 성인이 되자마자 군 문제를 해결했다.
 군 제대 후, 사회인 야구를 시작으로 다시 야구에 발을 들인 유행운은 재능이 있다면 있는 선수였다.
 독립 리그를 거쳐 육성 신분으로 호크스 입단까지 성공했다. 그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다.
 2군에서는 제법 실적을 냈다.
 홈런도 간간이 쳤고 수비도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전문가가 달라붙어 교정을 해 주니, 뒤늦게나마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저는 정말 이 선수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번 2군 스프링캠프에서 유행운 선수를 봤는데, 정말 열심히 해요. 제일 늦게까지 연습하고 인생에 야구밖에 모르는 선수거든요.]
 
 해설이 정말 안타깝다는 듯 유행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럴 만한 재능도 있죠?]
 
 캐스터의 질문에 해설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죠. 야구를 중도에 그만두고 성인이 돼서 다시 시작했는데, 지금 여기가 어딥니까? 아무리 만년 하위 팀이라고 해도 1군 무대는 아무나 설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다.
 유행운은 재능이 있었다.
 재능에도 급이 있다면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지만, 뒤늦게 야구를 다시 시작해 프로에 진입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재능이 있다는 건 인정받았다.
 
 [계속 야구를 했었다면 아마 정말 대단한 선수가 됐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유행운이 인생에서 가장 뼈아팠던 순간이 바로 집이 망했다는 것.
 아버지가 유서를 남기고 책임감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
 야구를 중간에 그만둬야 했다는 것이다.
 
 [초구, 보더라인에 꽉 차는 슬라이더를 꽂아 넣습니다.]
 
 상대 투수는 신인이었다.
 부산 마린스의 1차 지명을 받은 선수였고 당연히 유망주였다.
 
 [배터리 사인을 교환합니다.]
 
 유행운이 배트를 짧게 쥐었다.
 배터박스에 바짝 붙어 투수를 노려본다.
 맞아서라도 출루에 성공해야 한다.
 어떻게든 1군에서 실적을 내겠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다.
 
 상대 투수가 와인드업을 한다.
 타격 자세를 취한 유행운이 날아오는 공을 바라본다.
 
 “어-”
 
 지나치게 출루에 몰두했다.
 상대 투수의 손에서 빠져나온 공이 머리를 향해 매섭게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말았다.
 
 “악!”
 
 유행운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진다.
 제구 난조로 타이트한 상황이 아니라 심적 부담을 덜 수 있는 상황에만 등판하는 투수가, 기어코 또다시 몸에 맞는 공을 던진 것이다.
 그것도 유행운에게.
 작년에 턱뼈가 부러져서 시즌을 마감해야 했던 불운의 타자 유행운에게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 운도 지지리도 없지... 이름이 행운이면 뭐하냐... 또 맞냐.. 이제 내가 다 안타깝다
  └ 왜 1군만 올라오면 다치냐고 진짜 불쌍함
  └ 부모가 이름을 잘못 지은 듯
  └ 하 진짜 마린스가 마린스했다
 
 유행운은 또다시 쓰러졌다.
 1군 콜업 소식을 듣고 희망에 부풀었던 모든 것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삐이이이이-
 귀에 이명이 울렸다.
 지독한 통증보다 다시는 야구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박탈감이 먼저 찾아왔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먹구름이 낀 하늘을 보며 유행운은 생각했다.
 부모님은 행운이 가득한 사람이 되라고 이름을 ‘유행운’이라 지었지만, 현실은 불운만 가득한 인생이었다.

댓글(42)

fe******    
잘보고갑니다
2023.05.10 14:34
KS0731    
노숙자 천재배우되다.쓰신 작가님이네요~그 작품 되게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건필하세요~
2023.05.11 15:35
옐로이    
재밌게 보고갑니다^^ 대박나세요!
2023.05.14 14:58
태극산수    
읽어보겠습니다
2023.05.16 16:35
물물방울    
연재시작을 축하합니다. 시작은 미미해도 끝은 창대하리라. 믿고 출발합니다.
2023.05.17 17:01
jo****    
엄마가 아들에게 " 우리 망했어 " 이런식으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중학교 다니는 자식에게는요 .
2023.05.18 16:54
김영한    
유! 격!!
2023.05.19 16:11
보고파아    
그냥 야구! 네요. 읽을만 하네요. 현재까지는요. ㅋㅋㅋ
2023.05.20 08:18
노잼이면움    
이야 이정도면 투수포수가 노리고 몸쪽으로 던진건데 그냥 회귀할거 포수 나 투수 강냉이좀 털어버리면 안되나요?;;ㅋ
2023.05.22 11:08
무료.    
초등학생에 입학->초등학교, 중학교도 아니고 초등학교 입학하고 타자로 전향했다니까 뭔가..
2023.05.2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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