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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암시] 아무래도 내게

2023.05.10 조회 91,038 추천 1,351


 [제목] 코코넛시스템의 갑질을 고발합니다.
 
 "씨발. 등록만 누르면 니들은 x되는 거다."
 
 어디든 피라미드 제일 하층의 삶이란 비참한 법이다. 이 업계라고 다르지 않다.
 
 하지만 쥐도 고양이를 물 수 있다.
 
 그간의 비인간적 대우와 횡포.
 
 쓰다보니 3페이지를 넘어갔다. 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올리기 전 마지막으로 글을 점검했다.
 
 술이 들어가서인가?
 아주 술술 읽히고 힘이 느껴진다.
 유일한 취미인 웹소설 덕분인 것 같다.
 
 요즘 참고 버티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난 정말 오래 참았다. 그러니까 나처럼 순한 사람을 왜 여기까지 오게 만드냐고.
 
 가장 악질인 박성훈 팀장이 떠올랐다. 그의 분량만 2페이지. 마우스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식은 컵라면 국물을 목구멍으로 들이 부었다. 소주는 바닥이 났다. 딱 한병 더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내일 출근 못할 것 같다.
 
 난 커서를 옮겨 등록 버튼을 눌렀다. 제일 상단에 내 글이 위치했다. 묘한 흥분이 느껴지며, 한편 반응도 궁금했다.
 
 새로고침을 했더니, 웬걸?
 조회수가 폭발적이다.
 
 익명의 달달함이란 이런 거구나.
 
 무섭게 달리는 댓글도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ㄴ [데미안] 코코넛시스템. 개 쓰레기네. (좋아요 78)
 
 난 몇번 더 새로고침을 해보고는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꿀잠이 될 것 같았다.
 
 
 
 ####
 
 
 
 다음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난 출장을 가고 있었다. 보통 서버 점검은 원격으로도 가능하지만, 유지보수 업체가 직접 내부망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회사들도 있었다.
 
 이번 케이스가 그랬다. 그래서 경기도 남부에 있는 고객사 데이터센터에 직접 방문하는 길이었다.
 
 내가 맡고 있는 권역은 경기 강원 충청. 진짜 졸라게 넓다. 이렇게 출장을 다니다보니 2년 만에 내 똥차는 30만 킬로를 넘었다.
 
 회사 지원은 쥐꼬리만한 유류대가 전부.
 
 이것 말고도 한숨이 푹푹 나오는 일은 더 많지만, 다음달 인사에 과장 승진을 앞두고 있다.
 
 관리직으로 전환이 되면 좀 낫겠지.
 
 중소기업이지만, 회사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무엇보다 사장님이 날 개국 공신으로 여기고 있다.
 
 프린터 카트리지 영업으로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내가 1호 영업 사원이거든.
 
 내 기구한 가정 형편부터 고졸이라는 별볼일 없는 학력까지. 그걸 모두 품어주고, 현재는 과장이란 타이틀까지 달아주려고 하는 고마운 분이다.
 
 마음 속으로는 피를 나눈 형님으로 생각한다. 그 힘들다는 중소기업을 일군 것으로 모자라 올해 생체 인증 관련스타트업도 론칭할만큼 사업 수완도 남다르다.
 
 앞으로 나아지겠지.
 
 희망회로를 돌리며, 난 고객사와 미팅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달리는 차 유리창으로 파란 하늘이 들어왔다.
 
 "날씨 한번 기가 막히네."
 
 이 일은 장애나 이슈가 언제 발생할지 몰라 사실 주5일제는 사치에 가깝다. 그러나 이번 주는 반드시 머리 좀 식혀야겠다.
 
 제발 아무일 없어라.
 그동안 너무 달렸어.
 
 네비에선 도착 5분전이란 안내가 나왔다. 그때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사장님."
 "너 어디야?"
 "외근 나왔습니다. 서버 점검건이 있어서요."
 
 .
 .
 .
 
 약 3초 간의 정적.
 느낌이 싸했다.
 
 "너 정신이 있는 새끼야? 여기 밥줄 다 끊기면 니가 책임질거야?"
 
 불길한 예감이 든 난 얼른 갓길로 차를 댔다. 비상등을 켰다. 그 짧은 순간, 손바닥이 땀에 쩔었다.
 
 "사장님. 무슨 말씀이신지..."
 "이 새끼 봐라. 너 진짜 몰라서 그래? 와... 씨발. 내가 개새끼를 회사에 들였네. 거지 같은 걸 받아줬더니 내 등에 칼을 꽂아?"
 
 세상은 비정했다. 씨발, 개새끼, 거지, 등에 칼 꽂는 비열한 인간이 되는 건 한 순간.
 
 "네가 당한 일 가지고 그런 똥글을 올릴 정도면 난 벌써 한강에 몇번 뛰어 내렸어. 너 지금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어? 아침부터 코코넛 본사에 기자들이 쫙 깔렸어. 거기 법무팀도 연락 왔다. 명예 훼손, 허위 사실에 거래 다 끊고 법적 대응한댄다. 어떻게 할거야. 씨발롬아. 어떻게 할거냐고!"
 
 혹시 그거?
 그러나 의문이 앞섰다.
 
 익명인데 어떻게 알았을까?
 
 정말 의외인건, 기자들이 난리란 사실이다. 믿기지 않았다. 이 정도 파장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코코넛시스템은 국내 독보적 지위의 메신저 업체. 커뮤니티엔 내 글말고도 더 자극적인 글들이 넘쳐 난다.
 
 왜 내 것만 유독 집중적 이슈가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깊은 빡침이 치밀었다.
 
 ...왜 욕하고 지랄이야.
 내가 없는 이야기를 했어?
 틀린 이야기를 했냐고!!
 
 사장은 다 안다. 진짜 코코넛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한게 한, 두번이 아니다. 툭하면 애들이 나가니까 코코넛 같은 악덕 고객사는 내가 자진해서 전담했었다. 그걸 다 알면서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사장님. 욕하지 마세요."
 "뭐, 뭐라고?"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이 새끼 진짜 개새끼네."
 "욕 그만 하시라구요. 그리고 사장님 모르는 이야기 있어요? 다 아시잖아요."
 "야.... 씨발롬아. 너 해고야. 당장 짐 챙겨 꺼져. 이 씨발새끼야. "
 
 뚝.
 
 내 인생 어쩌면 유일한 인간적 신뢰가 지금 막 절단났다. 허나 상관 없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올라가지 못할 곳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는데, 애초부터 나에게 승진, 성공, 안정된 삶은 맞지 않는 옷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그때, 고객사 담당자에게 문자가 왔다.
 
 [왜 안 오세요? 한대리님]
 .
 .
 .
 .
 [저 방금 짤렸습니다]
 
 
 
 
 
 ####
 
 
 
 
 
 
 "정구야."
 
 회사 근처 커피숍.
 
 회사 후배가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는 날보자 사색이 되어 벌떡 일어났다.
 
 "한대리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무릎 꿇고 싹싹 빌고 글 삭제하세요. 안 그럼 일 더 커져요."
 "됐고. 키보드는 왜 없어?"
 "아 그거.. 사장님이 체육대회 상품이라고 안된다고 하셨어요."
 
 어휴..
 치졸한 인간.
 
 후배에게 짐을 좀 챙겨달라고 했다. 상품으로 받은 무소음 키보드부터 내 자리에 전담 충전 케이블까지. 새로 살려면 그거 다 돈이거든.
 
 쇼핑백에는 딴 거도 있었다. 상복 겸 딱 한벌 밖에 없는 정장. 그걸 보자 장장 8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경조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챙기자. 회사에서 준 충전 케이블까지 챙겨 달라고 할 만큼 짠내 나는 삶이지만, 거기에 돈 아껴본 적은 없었다.
 
 고객사
 거래처
 자주 가는 밥집에 술집까지.
 
 날 기억할 것이다.
 언젠가 돌아올 것이다.
 
 개뿔.
 뭘 기억해.
 또 돌아오기는.
 그 돈이면 중형차 한대는 샀겠다.
 
 "근데 정구야. 내가 쓴 글이란거 사장님이 어떻게 알았대?"
 "대리님. 소문 모르셨어요? 개인들 준 노트북 있잖아요. 거기 영업 사원들 감시하는 무슨 코드 심어 놓았다고 한참 말 많았어요. 그때 누구더라. 맞아요. 형식이가 나가면서 그랬거든요. 사장이 개수작 부리고 있다구요."
 "진짜?"
 "음.... 뭐... 대리님은 사장님한테 착 붙어 있었으니까.. 몰랐을 수도 있겠네요."
 "내가 그랬다고?"
 
 동네 형처럼 모두에게 잘 대해 주었는데, 평가는 사장 프락치였다니.....
 
 "어휴. 근데 대리님은 건드려도 왜 그런 놈을 콕 찍으셨어요."
 "뭔 말이야? 박성훈 팀장 이야기 하는거야?"
 "네. 박팀장 오너 막내 아들이래요."
 
 그 싸이코패스가 재벌 금수저였단다.
 
 차츰 모든게 이해되었다. 그래서 기자들이 개떼처럼 몰려간거구나. 사장도 저 지랄을 떤거고.
 
 하긴 내가 쓴 글이 꽤 리얼하고, 분노를 자극하긴 하지. 이 정도면 기업 차원의 재발 방지 대책이 나와야 할걸?
 
 어차피 엎지러진 물이다. 그리고 내 역할은 여기서 끝이다. 어쨋든 조금이라도 뭔가 나아졌으면 좋겠다.
 
 "담배나 한대 피자."
 "그러시죠. 대리님."
 
 문을 열고 나가는데, 그레이 정장 차림의 단발머리 여자가 내 앞을 가로 막았다.
 
 "한대수씨 맞죠?"
 "네. 누구시죠?"
 "고앤진 법률사무소에 주시아 변호사에요. 제 클라이언트이신 박성훈님께서 한대수씨를 고소하셨습니다."
 
 조그만 얼굴에 여러 분위기 느껴지는 미인이 날 뚫어지게 쳐다보며 고소라고 했다. 악마 같은 박성훈 그 개자식이 자신의 클라이언트라고.
 
 "바..방금 고소라고 하셨어요?"
 "네. 고소요."
 
 달랑 나 혼자.
 대기업의 슈퍼 로펌과 맞붙게 되었다.
 
 X됐네.
 여자가 눈 앞에 빳빳한 명함을 내밀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그 명함을 인터셉트했다. 빨간 매니큐어가 발린 하얗고 긴 손가락.
 
 "훗, 고앤진이군요. 그 갑질 팀장이 클라이언트?"
 
 주시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상대는 웨이브를 준 긴 금발.
 찰랑찰랑하고 눈이 부실 정도다.
 게다가 만만치 않은 혼혈 미인.
 온 몸을 명품으로 휘감았다.
 
 이게.. 무슨 상황?
 도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왔고?
 
 허나 내 의문 따윈 상관없었다.
 
 "한대수씨는 앞으로 우리 조킬&헤이든에서 케어합니다."
 "네에?조.. 조킬&헤이든이라구요?"
 
 주시아의 표정을 보니 지들끼리 체급차가 있는 것 같았다. 주시아가 믿기지 않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진이 난 듯 흔들리는 동그란 눈동자.
 마치...
 당신 다 계획이 있던 거야 하는 눈빛으로.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는 표정.
 
 미친.
 그런게 있겠냐?
 흙수저 중 흙수저인데.
 그러니까 제일 황당한 건 나였다.
 
 "근데 누구시죠?"
 
 거짓말 같겠지만, 명품 여인이 나에게 깍듯이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한. 이게 무슨 일이지 궁금하실 겁니다."
 
 난 폭풍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미스터 한의 상속 프로젝트를 A부터 Z까지 전부 책임지고 맡은 조킬&헤이든 로펌에 안나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내 취미인 웹소설에서 한때 코인이 열풍이었다. 엄청난 변동성이 주제였지. 어느날 갑자기 돈벼락을 맞게 된 주인공의 꿈 같은 이야기. 나도 그런 생각을 가끔 해보았다.
 
 그런데 이건.. 뭐야.
 
 상속 프로젝트?
 코인과는 근본이 다르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셨다고 했고, 어머니는 몇해전 암으로 돌아가셨다. 내가 받은 상속은 10년 투병 생활 끝에 어머니가 남기고 간 빚 7,500만원.
 제 2금융권 이자 19%짜리 대출을 아직도 난 힘겹게 갚는 중이다.
 
 상속.
 뭔 건덕지가 있어야지.
 탈탈 털어도 나올게 없다.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
 
 혹시 나도 모르는 먼 친척이?
 
 그런 사람들 있지 않는가?
 혈혈단신으로 자수성가를 이룬다. 완벽할 것만 같은 삶. 그러나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 시한부 삶 같은 거 말이다. 마지막으로 가족의 정을 찾는다.
 
 그런데 유일한 혈육이 나 밖에 없는 것. 진짜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지. 하긴 스펙타클한 오늘을 떠올리면 불가능한 것도 아닐 터.
 
 해고당해.
 통수당해.
 고소당해.
 
 그래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안가고 난리야?
 
 “정구, 너 소문내지 마라.”
 “대리님. 제 별명이 지퍼 마우스에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주고 받고.
 
 "그 고소 이쪽이랑 이야기가 하시면 되겠네요."
 "다시 연락 드리죠."
 
 뭐야.. 저 눈빛은.
 
 주시아는 고개를 훽 돌리더니 가버렸다.
 
 이제 안나와 단둘의 시간.
 가까이서 보니까 미모가 숨이 막힌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미스터 한. 처음 1년 동안은 매일 1억. 그 다음 2년부터는 매일 2억. 3년 차는 매일 3억. 마지막 클라이언트의 조건을 모두 이행하면 10조. 전체 상속 스케쥴입니다. 여기 싸인하시면 내일부터 통장에 매일 1억씩 꽂힐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내게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 같다.

댓글(97)

ni****    
1년차 365억 2년차 730억 3년차 1095억 이후 10조 총 10조2190억? 좋군요~~
2023.05.13 06:45
천지의발호    
존나 부럽다
2023.05.13 16:13
라라.    
대수는 오대수가 짱이지
2023.05.14 00:18
우키히    
변호사가 저런 얘길 공개된 자리에서 한다고?
2023.05.14 00:56
불근늑대    
일본 열혈만화 보는것 같네.
2023.05.14 01:37
김영한    
오오오옥!!
2023.05.14 07:51
성냥깨비    
잘 봤습니다.
2023.05.14 12:20
tonbo    
이게 뭐냐...
2023.05.14 14:00
옐로이    
재밌게 보고갑니다^^ 대박나세요!
2023.05.14 14:51
덕귀    
지퍼마우스 이 ㅈㄹ ㅋㅋ
2023.05.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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