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두에게 연락이 온 건 한 달 전이었다.
[정훈아, 이번엔 진짜다! 믿어줘. 우리 예전처럼 같이 한번 해보자··· 난 그때가 신나고 좋았었다.]
미친놈!
강상두 이놈은 10년 전 나와 함께 투자회사를 만들어보자며 5평짜리 원룸에서 의기투합했던 녀석이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상두의 말만 믿고는 있는 돈, 없는 돈을 탈탈 털어 1억 원을 마련했고, 그 돈으로 함께 주식을 사고팔았다. 하지만 상두는 현물 주식으로는 수익률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고, 결국은 선물과 옵션까지 손을 댔었다.
젠장!
그때 발을 뺐어야 했는데······.
결국 선물 옵션에서 큰 손실을 봤고, 단돈 200만 원의 증거금으로 선물 거래를 할 수 있다는 FX마진 외환거래에까지 뛰어들었었다. 그때라도 멈췄다면··· 결국 마지막 200만 원까지 날린 후에야 나는 완전히 판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상두는 여전히 판에서 일어나지 않았었다.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나도 내 돈 1억을 전부 잃은 상두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돈 벌고 싶은 마음에 같이 뛰어든 것이니까···.
남겠다는 그를 술기운을 빌려 설득해봤지만, 애초부터 상두는 내 말을 들을 놈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최선을 다했고, 포기하지 않았지만··· 투자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게 내 결론이었다.
하지만 10년 만에 연락해 온 그는 여전히 자기 환상에 빠져있었다.
[내가 확실한 매매기법을 찾았어! 너도 보면 좋아할 거다! 하하핫!]
지나치게 긍정적인 놈.
난 판을 떠난 후, 그와 반대로 의심이 많아지고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게 됐다. 솔직히 세상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니까.
[상두야, 됐다. 나 이제 주식 같은 거 안 해··· 미안하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예전 같으면 술을 먹자고 했을 텐데··· 그사이 나는 변했다. 한 여자와 결혼했다가 아이를 낳았으며 10년째 다니고 있는 직장이 생겼다.
이젠 뭔가를 섣부르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밥 정도는 빈말이 아니고 정말 같이 먹을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왜 난 그때 바로 상두를 만나러 나가지 않았을까?
지금에 와선 그게 가장 후회된다.
***
일산장례식장.
상두의 빈소에는 화환이 한 개도 없었다. 쓸쓸한 광경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환이라도 하나 먼저 보내놓는 건데···.
주변을 둘러보니 아는 얼굴이 몇몇 보였다.
대학 경영학과 동기들. 그나마 상두와 친분이 있던 놈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학연으로 얽힌 동기의 죽음이라 자리를 채워주러 온 것뿐이었다.
“야! 정훈이 왔냐? 영업한다며?”
앉자마자 말을 건넨 녀석은 금융감독원에 들어간 엄기태였다. 녀석은 대학 시절부터 남다른 스펙을 쌓으며 결국엔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꿈의 직장인 금융감독원에 들어간 놈이었다.
그나마 상두와 친했던 놈이었다. 하지만 상두가 잘 다니던 증권회사를 그만두던 무렵부터 둘 간의 사이가 벌어졌었다.
엄기태의 눈에는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고 허황된 꿈이나 찾는 상두가 좋아 보일 리는 없었을 테다···.
[너희는 아직 철이 안 든 거 같다.]
당시에 녀석이 우리 둘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종로의 한 노가리 집이었나? 갑자기 그때 먹었던 맥주의 씁쓸한 맛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 식품회사 영업한 지 꽤 됐다. 잘 나가는 너랑 비교가 되겠냐마는···.”
마음과는 달리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녀석이 잘못한 건 없지만 그래도 친구가 죽었는데, 얼굴 보자마자 그런 속물적인 질문이나 해대는 꼴이라니!
열등감인가? 아니면 계층 간 위화감?
그래 그게 맞겠네. 기태 녀석은 금융감독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대출을 끌어당겨 강남의 아파트를 장만했었다.
당시 나는 굳이 그렇게 무리하며 강남 아파트에 집착할 필요가 있겠냐고 말을 했었지만··· 그가 옳았고, 내가 틀렸다.
기태의 강남 아파트는 이제 20억을 넘어서 30억을 향해 가고 있었다. 똑같은 대학 동창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영림동의 빌라촌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녀석과의 대화는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상두는 왜 이렇게 된 거냐?”
동기회장 양민철이 날 보고 물었다.
모여있는 동기 중에 상두의 사인을 아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나도 어젯밤 양민철에게 상두의 부고를 문자로 전달받았을 뿐이었다.
“···나도 모르는데···?”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순간 동기 놈들이 일제히 내 얼굴을 바라봤다.
“나도 연락 안 한 지 몇 년 됐어. 다들 왜 알면서 모른 척이야? 그때 투자회사··· 아니 주식 한다고 같이 있다가 헤어진 이후로는 나도 상두 소식 잘 몰라.”
“가족도 없던데··· 이게 뭐냐? 우리 없었으면··· 휑할 뻔했네···.”
한탄하듯 동기 놈 한 명이 무심히 말했다. 그러고 보니 빈소에 사람들은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두 테이블밖에 없었다.
상두는 부모님이 없었다. 아래로 여동생 한 명이 전부였기 때문에 지금 와 있는 문상객은 여동생의 직장 동료들이거나 그나마 연락하고 지냈던 친척일 터였다.
“정훈아 네가 한번 슬쩍 물어보고 와라···.”
동기회장인 양민철이 나를 종용했다. 여동생은 상두의 영정사진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도 상두의 여동생과 말을 섞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뭐라고 입을 떼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저기···.”
“·········.”
내가 다가가자 여동생은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피로해 보이는 눈빛은 상대의 마음을 더 읽기 힘들게 했다.
“혹시··· 구정훈 오빠세요?”
난데없이 여동생은 나를 알아봤다.
“···네,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오빠가 정훈 오빠 얘기를 자주 했어요. 자기를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라고요.”
“···아··· 그랬군요···.”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1억 원을 털어먹고 난 이후로는 상두를 믿지 않았다.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런 기대는 내 머릿속에서 점점 흐려졌었다.
아니 반대로 섣부른 기대 따위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는 독이라며 애써 비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왔던 나였다.
“잠깐 만요··· 오빠가 쪽지를 남겼어요.”
갑자기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찾는 여동생은 막 공책에서 찢어낸 것 같은 쪽지 하나를 내게 전했다.
-정훈아, 보아라!
넌 잊어버리고 있겠지만, 증권사에 우리 계좌 아직 남아 있다. 거기 들어가 보면 내가 진짜라고 말했던 게 뭔지 알 거다!
인마! 그리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웃으면서 보자고!
from. 상두-
잠깐! 이 새끼가 안 죽었나? 나는 순간 그런 의문이 든 채 상두의 여동생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여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빠가 한강에서 실족사했어요··· 제가 시신 확인도 했고요···.”
“아···그럼···?”
“자살은 아니에요. CCTV를 확인해보니까 오빠가 술 취해서 비틀대다가 한강 다리 난간에 매달렸었거든요. 경찰도 출동했고···.”
“···많이 힘드시겠군요···.”
내 말이 참고 있던 감정을 건드린 건지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는 여동생이었다. 하지만 끝내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빤··· 항상 웃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이제는 꽃길만 걷자고 했는데···.”
하긴 그러고 보니 마지막 가는 길의 영정 속 상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바보 같은 자식···!
“제 명함입니다.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일 있으시면 연락하세요. 그래도 상두하고 젤 친한 놈이 저였는데···.”
말없이 내 명함을 받는 여동생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동기 놈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웠고, 운구할 사람도 모자라 보이게 빈소는 휑했다. 유쾌하게 웃고 있는 상두의 영정과 빈소의 휑함은 묘한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다음날 새벽.
발인이 시작됐고, 나와 양민철. 그리고 여동생의 회사 동료 몇몇이 상두의 관을 들고 화장장까지 동행했다.
한 시간이었을까? 상두는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두 분 정말··· 고마워요.”
“아니에요. 상두가 우리한테 얼마나 좋은 놈이었는데··· 좋은 곳으로 갔을 겁니다.”
양민철은 뻔한 말로 여동생을 위로했다. 나는 여동생에게 뭔가를 묻고 싶었지만, 이내 말을 삼켰다.
상두가 한 달 전 내게 연락해왔다는 것과 그가 발견했다던 불패의 매매기법. 그리고··· 쪽지의 뒷면에 인쇄된 QR코드.
난 여동생이 뭔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단념했다. 상두는 이미 죽었고, 상두가 발견했다는 뭔가에 대해서도 마음에 두지 않기로 했다.
잘 될 수 있다는 허튼 희망. 난 그딴 희망 따위에 다시는 휘둘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
난 어쩔 수 없는 구제 불능이었다.
희로애락의 감정 덩어리··· 인간은 역시나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존재다.
다만,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계좌의 잔고는 확인해야 했다. 휴면계좌의 짤짤이 돈도 돈은 돈이니까.
사실 나는 쪽지 뒷면에 있던 QR코드에 더 호기심이 동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한번 의미를 부여하면 할수록 더 거기에 매몰된다는 게 확증편향의 법칙이었나?
어쨌든 나는 그 QR코드를 스캔했고, QR코드의 정체가 증권사의 앱 다운로드 코드라는 걸 알아냈다.
10년 전 상두와 함께 주식투자를 하던 시절 쓰던 계좌라면··· 나는 류앤케이로 시작하는 아이디를 입력했고, 그다음으로 입력해야 할 비밀번호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밀번호는 상두와 함께 의기투합했던 날짜였기 때문이었다.
RNK0803···.
비밀번호를 입력하자마자 접속이 된 동시에 메시지 창이 떴다.
[새로운 버전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증권사 앱의 버전 업그레이드는 흔한 일이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스마트폰이 환해지더니 액정 전체로 불빛이 쏟아져나왔다.
뭐지? 혹시 상두가 뭔가를 발견했다는 게 이건가? 나는 울대를 꿀렁이며 침을 삼켰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
뭔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
상두가 남긴 엄청난 돈이 남겨져 있는 건가? 스마트폰이 몇 차례 끄고 켜진 이후에 미래투자증권의 앱이 다시 작동됐다.
나는 앱이 작동되자마자 계좌의 잔고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계좌 잔액은 0이었다.
“그럼 그렇지! 시이발~ 내가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내가 병신이지 병신이야! 구정훈! 인마! 뭐라도 있을 줄 알았냐? 정신 차려라! 구정훈!”
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서 침대 위를 뒹굴었다. 애초에 희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던 건지도 몰랐다.
그때 스마트폰의 전화벨이 울렸다.
-자기야, 오늘 혜빈이 만나러 올 거야? 우린 외출할 준비 다 끝냈어.
“어, 지금 나가려고”
-알겠어. 기다리고 있을게.
이혼한 아내의 전화였다. 오늘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10살 난 딸 혜빈이를 만나는 날이었다.
나는 텅 빈 잔고로 인한 충격을 뒤로 하고 얼른 옷을 챙겨입었다. 잔고와는 상관없이 인생은 계속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업그레이드된 내 스마트폰에서 새로운 알람이 도착했다는 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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