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른 새벽.
안개 낀 바다를 작은 통통배 하나가 바다를 가로지르듯 유영했다.
해가 뜨지 않아 거무죽죽한 바다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사내 뒤통수가 영 이상한지 선장이 말을 걸었다.
“근데 총각! 거긴 무인도고 뭐 아무것도 없는디 뭣하러 가는 겨? 총각도 뭐 유튜브인지 뭔지 찍으러 가남?”
“... 하하, 네. 그렇죠.”
“그려~ 요새 많이들 뭐 무인도를 찾더라고. 저가 그, 땅은 넓은데 뭐 할만한 위치가 못돼서 계속 무인도로 있는 곳인디, 영상 찍기는 좋을 거여.”
“감사합니다.”
거짓말이다.
유튜버가 아니다.
영상을 찍을 생각도 없다.
큼직한 캐리어 세 개에 들어 있는 건, 삽과 침낭. 약간의 캠핑용품들.
그리고 농약이 전부다.
덜컹덜컹! 쿵!
“음? 총각, 뭔 소리 못 들었남?”
“캐리어가 쓰러졌네요.”
“그려? 파도 때문인갑네.”
흔들리는 캐리어 위에 앉은 채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래, 해! 이혼하자고!’
서른넷.
순탄한 삶을 살았다.
남중, 남고, 공대.
어려서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했고 알바를 병행하며 살았다.
그 순탄한 삶에 마가 낀 건 어릴 적부터 가지고 싶었던 가정.
즉 결혼이었다.
그러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비록 빚이 있었지만 사랑만 있으면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혼인신고부터 하고 빚을 갚기로 했다.
가족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사랑하니까.
함께하면 마냥 행복할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투잡을 뛰었다. 낮엔 직장에, 밤엔 대리운전이나 배달 알바로 차곡차곡 빚을 갚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집에 돌아가면 와이프가 있었고, 조금씩 변제되는 빚을 보며 행복을 위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힘낼 수 있었다.
‘배달 갔던 모텔에서 전 와이프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지.’
“후우...”
왜 그랬느냐 물으니 기분 전환이라고 했다. 남자는 소개팅 어플로 만난 나와는 다른 양아치 같은 놈이었다. 모델 일을 한다던가.
빚 갚느라 일만하고, 여행도 제대로 못가고 자길 방치했다며 피해자인 척 눈물을 보였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빚을 갚고 있는데! 네가, 네가 어떻게 이래!!’
‘누구? 우리 빚이라며! 당연히 갚아야 하는 건데 왜 내 탓을 해!?’
이혼했다.
순탄치는 못했다.
외도의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 와이프는 도리어 날 폭력 남편 등으로 만들었다.
여자의 눈물 몇 방울이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할 줄 알았던 법도 등 돌린단 사실을 이때 뼈저리게 느꼈다.
내 재산은 반토막이 됐다.
아니, 잃었다고 보는 게 맞는 표현일 거다.
그래서.
“읍! 읍읍!!”
“읍읍읍!!”
아무도 피해 끼치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죽기로 했다.
푹, 후두둑. 푹, 후두둑.
왕년에 해봤던 삽질은 나이가 들어 어색하기만 하다. 숨은 차오르고 단련되지 않은 근육은 땀을 쥐어짰다.
그래도 팔다리가 묶인 채 발버둥 치는 응원하고 있는 두 연놈을 보니 제법 힘이 난다.
"하, 이 정도면 됐나."
적당한 깊이. 사람 두 사람 누울 정도의 크기다.
“아... 배고프다.”
곧 죽을 건데 배는 또 고프다.
사람 몸이란 게 참 신기하고 번거롭고 귀찮다.
배 채울 밥을 꺼내는 대신.
난 가방에서 우유라도 담겼을 것 같은 농약을 꺼냈다.
그라목손. 사람 하나쯤은 순식간에 죽이는 걸로 유명한 놈이다.
이거 한 병이면 ㅈ같은 인생도 끝.
여기까지 아무에게도 피해 끼치지 않고 죽으려고 왔다. 더 거리낄 것도 없고 주저할 것도 없다.
“이제, 죽을까?”
“으으읍!!”
“읍읍!!”
심호흡 한번. 두 번.
농약을 든 손은 통의 무게를 느끼고, 두 눈은 땅 구덩이에 내던져진 한 쌍의 남녀가 보인다.
“그냥, 재수가 없었을 뿐이지. 여보, 그렇게 울지마. 여보가 먼저 저놈이랑 짜고 내 보험금 노렸잖아. 나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 아, 이젠 여보가 아닌가. 이혼했으니까.”
여자는 이혼하면 재산의 절반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을 죽이면 전부 가질 수 있다. 덤으로 보험금까지.
그렇기에 전 와이프도 내 목숨을 노렸다.
저 양아치 새끼랑 같이.
“읍읍!!”
“으으으읍!!”
손이 떨렸다.
이 떨림은 농약 통이 무거워서일까.
아니면 내 눈앞에서 떨고 있는 두 연놈 때문일까.
“농약을 먹으면 식도부터 장기까지 전부 깔끔하게 녹아서 죽는대. 조금 고통스럽겠지만... 다른 사람 죽이려고 했으면 대가는, 치러야 하잖아.”
찌익.
입가에 붙은 테이프를 뜯어내자 가장 먼저 날아든 건 애원이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내, 내가 미쳤었나 봐!! 이 자식이 날 꼬셨어!! 정말이야! 정말!! 그, 그러니까 제발...!”
스윽, 내연남을 바라보자 자기는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읍! 읍읍읍! 으으읍!!”
난 뜯어냈던 테이프를 다시 전 와이프의 입에 붙였다.
그런 말이 듣고 싶은 건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 차례대로 죽여줄 테니까.”
그래서 가져온 농약이다.
원래는 하고픈 게 많았다.
내가 겪은 아픔이나 고통을 맛보여주며 철저하게 후회하게끔 해주려 했다.
“하아......”
하지만 이젠, 저 꼬락서니를 보고 있는 거 자체가 괴롭다.
끝내자. 이대로 끝내는 게 맞다.
이 꼴을 더 안 보는 게 날 위한 일이다.
“읍! 읍으브읍!!”
“으읍읍읍읍!!”
농약을 들고 연놈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뭔가를 보고 소릴 내지른다.
“뒤에 뭐가 있는... 왁!”
화악! 뭐가 덮쳤다.
철제 덫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짐승인데 날개가 달려 있었다.
“저게 뭐... 어, 어! 내 농약!”
농약을 뺏겼다.
갈고리 같은 손이 농약을 낚아챘다.
뭔지 모를 괴물이 농약을 입에 물고 있었다. 콰작! 콰직콰직! 과즙처럼 터지는 농약통을 씹어먹었다.
“아니, 그거...”
내 건데.
크아악!!
끼긱. 괴물이 돌연 피를 검은 피를 토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놈은 잔뜩 피 흘리며 몸 가누지 못하고 여기 박고 저기 박고 난리를 치다 고꾸라졌다.
《축하합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그렘린을 처치하였습니다.》
“죽었... 뭐야 이 글자는.”
《보상이 주어집니다.》
《사용자가 사용한 무기와 전투 상황을 측정, 기록합니다.》
《조우한 시각 00시 23분. 전투 종료 시각 00시 23분. 전투 시간 9초가 랭킹에 기록됩니다.》
[랭킹 1위 9초]
《축하합니다. 대한민국 최초 토벌 랭킹 1위를 달성하였습니다.》
《‘1위 특전 보상 상자’를 획득합니다.》
《전투 상황을 측정하여 가장 알맞은 기프트를 생성합니다.》
《결정되었습니다.》
《기프트가 주어집니다.》
“... 뭐야 이게.”
[데몬시드 Lv. 1]
모든 걸 포기 하고 죽으려던 그날. 난 죽지 못했다.
대신.
세상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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