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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터치 1권

2015.05.15 조회 8,856 추천 95


 Prologue
 
 사람들은 흔히 천재와 노력하는 자를 비교하곤 한다.
 그런가 하면 노력하는 자보다 더 뛰어난 이가 즐기는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모두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면 즐거워하고, 그게 노력으로 발전하니 말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이곳에서 그에 해당하는 한 동양계 소년이 있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에스테반.
 한국에서 입양해 온 아이.
 그런데 성장하고 나서 자신의 이름이 반디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그 이름을 다시 찾고 싶었다.
 “반디? 그게 좋단 말이야?”
 “네, 엄마. 그걸로 하고 싶어요.”
 밝게 웃는 미소 천사.
 그 웃음에 껌뻑 넘어갈 수밖에 없는 반디의 부모.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누가 보더라도 어색한 발음의 이름이었다.
 일단 집에서만 부르기로 하고, 에스테반이라는 이름을 바꾸지는 않았다.
 반디는 어렸을 때 입양 왔지만, 매우 긍정적인 아이였다.
 사실 부모의 노력이 컸다.
 친 핏줄을 키우는 것처럼 사랑을 베풀었으니.
 
 이제 나이가 열 살, 한국 나이로는 열두 살인데도 벌써 키가 155cm이다.
 타고난 것은 둘째 치고, 축구를 즐기는 자세가 하루가 다르게 그의 실력을 키워 주고 있었다.
 신체적으로 약간 큰 키와 탁월한 재능.
 거기다가 즐기며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승부욕과 ‘하면 된다’라는 긍정적인 마인드.
 축구로 대성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더 나이가 들어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중간에 성장이 멈추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다만 그가 축구를 재미있어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사실 그의 아버지, 레오나르도 덕분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반디와 함께 공을 차며, 더 재미를 붙여 주었으니 금세 축구에 빠졌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디가 속해 있는 마드리드의 유소년 축구 클럽 코치가 말했다.
 “마드리드에서 반디를 키우고 싶어 합니다.”
 “마드리드라면?”
 “신기하게도 마드리드 두 팀이 다 반디를 데리고 가고 싶어 해요. 하하하.”
 반디의 부모는 이 말을 듣고 믿을 수가 없었다.
 프리메라리가 산하의 유소년 팀에 들어가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특히나 재능 있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
 마드리드 클럽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스테파노의 말이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또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게, 그는 오랫동안 옆집에 살아온 이웃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그 두 팀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는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그들은 반디에게 물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니?”
 “네.”
 “쉬운 길이 아닐 수도 있단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하고 싶어요.”
 힘들지만, 자신을 인정해주는 곳에서 다른 소년들과 경쟁하고 싶어 한 반디.
 레오나르도와 벨라는 아들이 이 정도로 재능이 있다는 사실보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라주었다는 것에 더 기뻐했다.
 “그래, 넌 어디로 가고 싶니?”
 “레알 마드리드요.”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라고 하던데. 레알 마드리드는 워낙 스타 선수가 즐비해서 그것을 뚫고 가기 힘들다고.”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로 가보려고요.”
 그래서 간다?
 레오나르도는 약간 놀라서 반디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한없이 어린 반디가 아니었다.
 물론 어리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헌데 그의 눈빛이 보이는 것은 ‘선택’을 당하겠다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하겠다는 의지였다.
 그것을 보고 부모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래, 네 선택을 존중하마.”
 그들의 말을 듣고 반디는 아름다운 미소를 내비쳤다.
 그렇게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그의 매력이 뿜어내는 농도가.
 남자조차도 빨려 들어가게 하는 웃음.
 아직은 어렸지만, 아름다움과 남성미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Chapter 1.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시스템이 바르셀로나의 그것과 다른 것은?
 팔기 위해서 선수들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진짜 그래?’ 라고 물어본다면 아무도 쉽게 대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클럽 1군에는 골키퍼를 제외한 전 선수가 외부에서 영입되었으니.
 사실 내부에서는 다 알고 있다.
 유소년은 잘 키우면 돈이 되고, 이 돈을 모아 목돈으로 스타 선수를 영입하는 게 현재 회장의 정책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이가 나온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한직으로 밀려났다.
 이렇게 클럽의 하비에르 회장은 갈락티코의 신봉자였다.
 더불어 그는 1군의 감독과 코치는 물론 각 연령대의 지도자들도 웬만하면 자신의 사람으로 배치하려고 했다.
 
 10세를 지도하는 발다노 역시 회장의 충실한 개였다.
 그는 항상 들어오는 선수 중 돈이 될 만한 재능을 골라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마침 10세 이하의 유소년 팀에서 활약하다 월반한 선수의 공백이 있었다.
 그곳이 바로 포워드 자리였다.
 이 비어있는 자리를 스카우트가 데리고 온 동양인 선수가 메우게 되었다.
 그렇게 반디의 첫 훈련이 발다노의 앞에서 실행되었다.
 그런데 이맘때의 소년이 그러하듯이 그는 꽤 긴장했으며, 제 기량을 내보이지 못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그와 기존 선수들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이 첫날이었으므로.
 
 “뭐지, 저 동양인 꼬마는?”
 “아, 이번에 빈센트 스카우트가 데리고 온 아이입니다. 골을 넣는 재능이 비상하다고.”
 “골을 넣는 재능이라… 씨나우두쯤 되나?”
 “…….”
 미구엘 라티나.
 이제 서른다섯 살의 젊은 코치는 할 말을 잃었다.
 꼭 비교해도 클럽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선수와 비교하다니.
 그는 마드리드를 사랑했고, 마드리드의 선수로 은퇴할 때까지 있었다.
 물론 그 기간이 긴 것은 아니었다.
 선수 시절 2군 무대에서 몇 차례 출장한 그저 그런 시절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조기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때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마드리드 대학에서 그의 논문을 보고 감탄하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다.
 그를 가리켜 다른 코치들은 ‘이론만 빠삭한’ 미구엘이라고 숨죽여 이야기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 이론으로 중용되어 1군의 코치까지 갔었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 살.
 유명 선수가 아닌 무명이었던 그가 감독까지 꿈꾸었던 시기가 바로 그때였었는데.
 ‘어, 어?’ 하다가 어느새 여기까지 밀리고 말았다.
 뭐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정책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점 빼고.
 “저거는 나중에 돈 주고 팔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빈센트도 실수할 때가 있다니, 쯧쯧쯧.”
 애꿎은 스카우트를 비난하며 그는 훈련을 종료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발다노는 반디에게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느덧 연습 경기가 있었고, 다른 유소년 팀과 맞붙었을 때 반디는 여전히 제 몫을 해내지 못했다.
 결국, 이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패하고 말았다.
 경기하다 보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었다.
 스페인 축구의 특징은 축구를 재미있게 배운다는 점.
 따라서 무조건 승리가 아닌 앞으로의 발전에 대한 토의는 경기 후에 필수적으로 행해졌다.
 당일의 플레이와 앞으로 자신의 장점을 어떻게 살리는지, 또한 단점은 어떻게 메우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
 그게 바로 스페인 유소년 클럽의 힘이었다.
 발다노 역시 마찬가지.
 한껏 웃음을 지으며 선수들에게 질문하는 것도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여러분들은 스페인, 아니 세계에서 최고들이다. 그렇지 않나?”
 “네!”
 소년들은 크게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힘차게 하는 것을 보니 이미 그들은 발다노를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의 별명은 폭군이었다.
 그를 잘 모르는 반디.
 그랬기에 다른 선수들이 하는 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거기 오늘 처음 온… 에스테반인가?”
 “네, 맞아요.”
 “오늘 너의 플레이는 어땠다고 생각하니?”
 반디는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생각해도 오늘 그의 플레이는 미숙했다.
 잦은 실수를 했으며, 득점을 넣을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의 첫 경기였다.
 자신을 지도했던 미구엘 코치는 자신에게 그냥 몸을 푸는 정도로 움직이라고 말했다.
 득점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지 말고 그저 게임을 즐기라고.
 그러나 반디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첫날부터 그는 자신에 대한 인상을 강하게 심어놔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몸에 힘이 들어갔고, 그게 실수를 연발하게 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그래도 위축되지 않은 밝은 표정.
 그는 발다노에게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일까?
 발다노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맞다, 실수였다. 오늘은 네가 경기에 뛴 첫날이었지. 사실 처음은 그냥 몸을 푸는 정도로 뛰는 게 좋았다. 하지만 너는 무리한 욕심을 부렸다. 인정하느냐?”
 “네…….”
 반디는 그의 부드럽지만, 약간 고압적인 음성에 대답했다.
 여전히 그는 주눅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승부욕이 불탔다.
 “다음에는…….”
 “다음에는 좀 더 밑에서 뛰게 하겠다. 골잡이로 너를 데리고 온 것은 맞지만, 꼭 그 자리만 고수하라는 법은 없다. 어렸을 때에는 여기저기서 뛰어봐야 자신의 자리를 발견해낼 수 있단다.”
 그의 말을 끊으며 더 고압적인 눈빛으로 말하고 있는 발다노.
 보통 이 정도로 끝이 난다.
 레알 마드리드로 오는 수많은 유소년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에.
 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다른 유소년 팀으로 가거나, 가끔은 축구를 그만두기도 한다.
 그게 전혀 아쉽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그 자리를 메울 또 다른 선수가 수혈된다.
 레알 마드리드라는 이름값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소년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것도 돈과 함께.
 그런데 반디는 이 정도로 끝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아니, 그것보다 그의 성격은 이미 능동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선택하는 삶을 살 거라고 다짐했었다.
 벌써 그 다짐이 꺾이기는 싫었나 보다.
 그의 입에서 나온 당당한 음성이 이 감정을 대변했다.
 “다음에 다시 기회를 주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
 다른 유소년들이 놀라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제 할 말 다 하는 스페인의 유소년들이었지만, 감독의 말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할 말 다 한다는 것은 플레이의 과정에서 토론방식으로 이루어질 때나 가능한 것이다.
 포지션에 대한 이의 제기는 이들에게 있어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폭군이라 불리는 발다노 앞에서.
 고작 열 살짜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다음이라… 만약 다음에도 그 자리에서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때에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됐다. 그게 바로 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불과 경기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다 평가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드리드에서는 아니다. 기회는 단 한 번. 너는 그것을 살리는 데 실패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반디는 그다음을 말하려 했다.
 선수와 선수 사이에는 호흡이라는 게 있고, 그와 기존 선수들의 호흡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
 그래서 당연히 그는 기회를 더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문제는 그의 나이가 불과 열 살이었다는 점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말로 표현하는 것이 일치할 수 없는 나이.
 아무리 그가 어른스럽더라도, 지금은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눈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발다노 역시 자신의 눈에 힘을 넣기 시작했다.
 “네가 잘 모르는 게 있구나.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팀은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한가한 곳이 아니다. 축구는 재미있어야 하지만, 결국 자신의 가치를 내보이지 못한다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 또한 찾을 수가 없단다. 알겠느냐, 에스테반?”
 그는 이렇게 말하고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의 눈으로 반디를 바라보았다.
 결국, 기회를 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반디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보여주겠다고…
 다시 기회가 찾아온다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그 눈빛에 쏙 빨려들어 간 것은 감독이 아니라 미구엘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다시 또 개인 훈련을 하던 반디에게 그는 말했다.
 “보여주고 싶나?”
 가타부타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왜 모르겠는가?
 행간에 숨어있는 그 뜻을.
 반디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배워라. 혼자서 할 수 있는 훈련은 한계가 있다.”
 무슨 소리일까?
 살짝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배우고 있지 않은가?
 최고 수준의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시스템에서 말이다.
 반디의 그 생각을 알아챘던 것일까?
 미구엘은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나한테 배우란 말이다. 알려주겠다, 최고가 되는 방법을.”
 
 ‘이론만 빠삭한’ 미구엘이라는 말은 유소년들한테도 종종 듣고 있는 말이었다.
 반디 역시 그 말을 들었다.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들과는 달리 미구엘에게 호기심이 생겨났다.
 자신에게 배우면 최고가 된다?
 반디는 그의 말을 그렇게 이해했다.
 진짜일까?
 그런데 호기심이고 뭐고 미구엘은 바로 무언가를 가르쳐줄 심산인 것 같았다.
 10m의 거리. 멀지도 않았지만,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에서 그는 강하게 공을 찼다.
 텅!
 “헛!”
 반디는 깜짝 놀랐다.
 빠르게 자신의 발로 다가오는 공.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튕겨내고 말았다.
 “스트라이커가 되고 싶다고 했지?”
 반디가 처음 왔을 때 한 말을 미구엘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자신이 찬 공이 그물을 출렁이게 하면, 기분이 좋다고…….
 반디는 당시에 그렇게 말했었다.
 “골망에 거기 있는 공을 꽂아 넣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 이전에 넌 공을 정지시켜야 한다.”
 반디는 눈빛을 빛냈다.
 벌써 미구엘은 자신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공을 정지시키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넌 최고의 골잡이가 될 거야. 알겠니?”
 
 시간은 유수와 같이 지나갔다.
 그동안 반디는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
 그나마 그가 버티고 있는 이유는 노력과 집념 덕분이었다.
 또한, 그의 곁에 미구엘이라는 훌륭한 코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설명하는 게 불가능한 인연.
 미구엘은 반디에게, 그리고 반디는 미구엘에게 그 인연이라는 강이 흘렀다.
 소외된 자들이 뭉쳤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 가르치는 스승과 진지하게 그것을 배우는 제자.
 어느새 반디는 공을 정지시키는 법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일취월장이라는 말은 그를 가리키는 데 쓰는 말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에 미구엘은 비로소 제자 키우는 보람을 제대로 느꼈다.
 그렇다 할지라도 반디가 제대로 된 기회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편견과 선입견으로 무장한 발다노의 밑에서는 더더욱 어려웠다.
 이럴 때에는 시간이 보약이리라.
 
 그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였다.
 그래도 재능은 속일 수 없었던지 그는 월반했다.
 그런데 그가 월반한 레알 마드리드 인판틸 B(13~14세) 유소년 팀은 참혹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11인제 축구를 처음 하는 시기인 인판틸 B(infantil) 리그.
 진짜 재능이 여기서 걸러진다고들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는 반디가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 시기였다.
 그렇지 못한다면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시스템에서 필요 없는 선수가 될지도 몰랐다.
 계속 연령대별 유소년 하위 팀을 전전하다가 하부리그에서 은퇴하는 순서.
 그게 반디의 앞에 그려질지도 몰랐다.
 그만큼 냉정한 곳이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시스템이었다.
 사실 레알 마드리드의 비교 대상은 항상 바르셀로나였다.
 ‘라 마시아’라고 불리는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시스템.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라는 표현을 들어가며 세계 유소년 시스템의 정상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곳을 거친 선수들은 현재 1군에서 최고의 선수들로 성장하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출신 선수들은 그들이 부럽다는 말을 종종 해왔다.
 그럴 만도 했다. 최근 십 년 넘게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출신 선수 비율은, 아니 비율이랄 것도 없었다.
 단 한 명.
 바로 골문을 지키고 있던 골키퍼 하나가 갈락티코 2기의 구성원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유일한 유소년 출신 1군 선수가 단 한 명이라니.
 그나마 그도 나이가 점점 들어감에 따라서 주전에서 밀릴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상황이니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들은 점점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실력으로 직결되었고, 올해 유소년 리그에서 참혹한 성적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반디는 이때쯤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수비수였다.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그러다가 볼키핑 능력을 인정받으며, 좀 더 앞쪽으로 나아갔다.
 리그 후반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가끔 소화할 수 있었다.
 기회가 왔던 때가 바로 이 시점이었다.
 발렌시아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반디는 선발 출전했다.
 전반전은 0-0득점 없이 지나가 현재는 후반을 맞고 있었다.
 “여기야, 여기!”
 반디에게 손을 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포워드, 알레한드로.
 반디는 바로 그에게 전진 패스를 넣었다.
 그런데 촤악 하며 슬라이딩 태클이 들어왔고, 알레한드로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더 뛸 수 있어요, 더 뛸 수 있단 말이에요.”
 “그래, 더 뛸 수 있어. 뛰어도 돼. 축구 인생 끝나고 싶으면.”
 팀 주치의의 말을 듣고 실려 나가는 알레한드로.
 시즌 막판, 뛸 수 있는 마지막 포워드가 부상당하고 말았다.
 올 시즌 레알 마드리드 인판틸 B 팀이 고전하는 이유도, 제대로 된 포워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포워드가 없기도 하거니와 있는 포워드까지 병상을 끼고 사니 잘 될 턱이 없었다.
 “반디, 올라가. 일단 네가 오늘의 임시 포워드다.”
 반디는 눈을 빛냈다.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을 증명하는 법이다.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왔고, 증명할 방법은 그동안 갈고닦아 온 득점 감각이었다.
 물론 그는 이번 시즌 득점포를 몇 차례 내뿜었다.
 모두 다 중거리 포로 만든 득점이었다.
 전반기에는 수비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전방으로 나아갔다가 생긴 찬스에서 여지없이 꽂아 넣었던 그 득점.
 후반기에 그를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뛰게 한 강력한 무기였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더 많은 기회가 생겼다.
 최전방 포워드의 득점을 돕는다지만, 수비형과 공격형 미드필더는 득점 기회부터 차이가 있었기에.
 “후우…….”
 그는 심호흡을 쉬었다.
 
 “후우…….”
 같은 심호흡이 관중석에서 터져 나왔다.
 오늘 휴가를 낸 미구엘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으며, 어느새 그는 반디에게 동화되었다.
 그는 아직도 7인제 축구를 하는 U-10 팀의 코치를 맡고 있었다.
 그가 모셨던 감독, 발다노는 카데테 A의 감독으로 올라갈 동안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이론만 빠삭한’ 미구엘의 한계였을까?
 여전히 레알 마드리드의 계파는 갈락티코 정책이 우선시되고 있으니, 그가 파고들어 갈 틈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 울분을 요즘 반디를 통해 풀어나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일부러 맹연습을 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연습벌레 반디가 원했다.
 그가 원했기 때문에 자신의 시간을 쪼개가며 그를 단련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온 기회.
 
 중앙으로 열심히 달려가는 반디.
 자리 찾는 싸움이 한창이었다.
 왼쪽 윙이 드리블하며 상대를 한 차례 벗겨 냈고, 공이 반디를 향해 날아왔다.
 그때 그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공을 정지시키는 방법을 아는 자가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될 것이다.
 ‘알아요, 그게 바로 지금이라는 걸!’
 그는 맘속으로 외쳤다. 작지 않은 목소리를 내면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공을 왼쪽 발등으로 살짝 얹었다.
 “……!”
 느낌표를 표시하는 상대 수비수의 얼굴.
 공이 튕기지 않았다.
 설마 공이 튕기지 않았을까마는, 그만큼 공이 다른 곳으로 튕기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고정된 물체를 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반디의 왼발이 공을 허공에 정지시킨 후 바닥으로 내려와 디딤발이 되었고…
 쾅!
 오른발은 떨어지는 공을 강타했다.
 출렁!
 골키퍼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공.
 그물이 춤을 추었다.
 반디의 눈빛이 춤을 추었다.
 
 관중석에서 보고 있는 미구엘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섰다.
 “반디야……!”
 
 벤치에 있는 사무엘 감독의 얼굴에도 경악이 떠올랐다.
 “저건!”
 
 필드에 뛰는 선수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
 지금 이 장면은 그만큼 뜻밖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연습을 하더니, 결국 해내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미구엘이 좋아하겠는데요?”
 “더 지켜보자고. 우연이 두 번이면 실력에 가까운 것이니.”
 사무엘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인정하기는 싫었다. 이게 반디의 실력이라고.
 왜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론만 빠삭한’ 미구엘을 인정하기는 싫으니까.
 여기서 미구엘과 반디가 개인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평범한 선수에 특별하지 않은 코치가 함께하는데, 그래 봤자라는 마음이 짙게 깔렸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개인 훈련은 꽤 오랫동안 진행되었다고 한다.
 반디가 10살 때부터니까 벌써 3년.
 반디가 인반틸 B에 올라온 이후로도 그 훈련은 그치지 않았다.
 그게 사무엘의 불쾌감을 자극했다.
 그가 발다노와 다른 유형이기는 했다.
 그래도 인간인 이상 자신이 아닌 남이 가르친 제자가 잘하는 게 질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최소한 자신이 지휘봉을 잡을 때, 미구엘의 결실을 눈으로 확인하기는 싫었다.
 그의 눈에 저 멀리서 반디를 응원하는 미구엘이 보였다.
 사람들이 얼마 없는 관중석에서 앉아 있지를 못하고 있었다.
 좋기도 할 것이다. 중거리 슈팅이 아니라 자신이 가르친 기술로 득점을 뿜어내는 반디를 보았으니.
 사무엘은 다시 필드에 눈을 고정했다.
 그는 최소한 객관적이었다.
 미구엘도 싫었지만, 현재의 레알 마드리드 회장의 정책 역시 좋아하지 않았다.
 유소년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매년 팔리는 것은 마치 자신의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느낌이었기에.
 
 반디는 포워드 자리에 고정되고 나서부터는 어슬렁거렸다.
 전반전에 마구 뛰어다녔기에 체력을 아끼는 것이리라.
 뭐라고 할 필요도, 사람도 없었다.
 그는 스트라이커이며, 이미 골을 넣은 맹수였기에.
 사실 올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인판틸 B 팀은 빈곤한 득점력으로 수많은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니 득점 잘하는 선수는 인정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한 번으로 평가하기 힘든 상황.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은 다시 한 번 그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완벽한 수비조직력으로 발렌시아의 공격을 봉쇄한 후 만들어진 역습 기회.
 속공이 시작되었으며, 반디는 여전히 어슬렁거렸다.
 
 “저놈이 안 뛰네요.”
 코치가 다급한 마음에 원망하는 말을 하고.
 “뛰어 봤자 오프사이드니까.”
 정확한 눈으로 사무엘이 뛰지 않은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수비수가 반디가 세운 라인을 넘어갔을 때…
 파팟!
 달리기 시작했고,
 텅!
 긴 패스가 날아왔다.
 발렌시아의 수비진이 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골키퍼가 나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빠르게 반디가 짓쳐 들어갔다.
 맹수의 눈이 보였다. 반드시 득점하겠다는 의지가 그 안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골키퍼는 떨고 있었다. 이미 그 투지에서 반쯤은 지고 들어갔다.
 상황이 이러니 수동적이 될 수밖에.
 그는 골문을 지키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반디는 드디어 공 앞에 당도했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는 무주공산.
 이미 기회는 열려 있었고,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왼발 인사이드 킥.
 발 안쪽에 정확히 맞으며 공은 오른쪽 골문을 향했다.
 통.
 그가 찬 공은 한 번 바닥에 튕긴 다음에 다이빙한 골키퍼의 손끝을 스쳐 지나갔다.
 다시 한 번 골망이 출렁거렸다.
 
 “놀랍군요. 운이 정말 좋은데요?”
 “운이 아니야. 저건 실력이지. 두 번의 운은 없어. 안타깝군. 저런 것을 시즌 초에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아니야, 오히려 지금 보여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계속 묻혀 있어야 저 선수를 노리는 사람이 없지.”
 잘했어도 묻히는 경우는 부지기수였다.
 인판틸 B의 좋지 않은 시즌 성적.
 마지막 한 경기에서 반디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활약으로 인해 그는 인판틸 A로 가는 티켓을 얻어냈다.
 
 훈련 후 미구엘의 가르침은 단지 축구 기술에 국한되지 않았다.
 사실 그게 더 어려웠다.
 그래서 반디의 질문 세례는 이때 이어졌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축구선수가 축구만 잘하면 되지 않나요?”
 “그렇지. 축구만 잘하면 된다. 문제는 시기다, 지금 말고 나중에. 축구만 잘하면 될 수 있는 시기.”
 “지금은 아닌가요?”
 “지금은 축구도 잘해야 하고, 동료도 만들어야 한다.”
 “전 이미 동료가 있어요.”
 “그들은 이제 너를 경쟁자로 인식했다. 사람은 말이다, 안 좋은 점인데… 나랑 비슷하거나 못했던 사람이 치고 올라가는 것을 가히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럼…….”
 “지금보다 더 웃어라. 너에게는 매력적인 미소가 있지 않니? 그 웃음으로 사람들을 네 편으로 만들어라.”
 미구엘은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반디에게 주문했다.
 
 원래 잘 웃던 반디였는데, 더 헤플 정도로 웃고 다닌 것은 그때부터였다.
 사실 이전에는 약간 웃음이 줄긴 했었다.
 아예 안 웃는 것은 아니었지만, 승부욕으로 무장된 그의 미소가 좀 덜 빈번해졌던 것은 사실.
 미구엘이 말하는 미소란 동료들에게 붙임성 있게 다가가라는 말이나 다름없었고, 반디는 그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집에서는 부모님이 있었지만, 밖으로 나와서는 미구엘이 있었다.
 다만 어린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정치성이었다.
 뛰어난 사람이 알맞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자신을 가르치는 미구엘은 여전히 한직이었다.
 그랬기에 동료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스승의 말을 흘려듣지 않는 반디였다.
 인판틸 A에서 보내는 시즌 초반은 그렇게 동료들의 환심을 사는 데 노력했다.
 그의 자리는 다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인판틸 A에는 뛰어난 포워드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자신이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선입견이란 매우 무서운 것이었다.
 그와 같이 인판틸 B에서 올라온 미드필더 마리오가 어느 날 그의 예전 멋진 슛을 언급하자, 이를 반박하는 선수 하나가 있었다.
 “에이, 동양계는 골문 앞에서 골 넣는 능력이 상당히 부족하던데…….”
 “아냐, 반디는 안 그랬어. 당시에 깜짝 놀랐어. 특히 마지막 경기에서의 첫 골을 넣을 때에는 공이 잠시 정지해 있는 것 같았어.”
 “뭐, 그의 트래핑은 나도 봐서 알기는 해. 연습할 때 몇 차례 보여줬지. 잘하더라고. 매우 잘해. 그러나 트래핑을 잘한다고 꼭 득점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 그런가?”
 “득점은 말이야, 정말 동물적인 감각이 있어야 해. 그리고 슛을 때리는 순간에 ‘아, 이거다.’ 이게 가슴에 와 닿아야 하지. 말로는 설명 못 해.”
 마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판틸 A의 부동의 스트라이커 알레한드로가 한 말이다. 믿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긴 연습 때 잘하는 애들이 경기 나가면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니. 실제 경기를 잘하는 선수가 진짜인 거지, 뭐.”
 “맞아. 내가 연습 때 화려하게 골 넣은 적 있어? 진짜 연습은 실전처럼 하는 거야.”
 계속 옳은 말만 한다. 반박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다만 반디가 지나가다가 그 말을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연히 그를 본 마리오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당연한 인간의 심리였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이야기란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반디는 미소를 지었다.
 “맞는 말이야. 너 진짜 실전에서 잘하더라.”
 알레한드로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 있었는가? 어디서부터 들었을까?
 ‘뭐, 못 할 말 한 것도 아닌데…….’
 그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기에.
 연습할 때 반디가 잘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알고 있었다.
 가끔 기가 막힌 골도 넣었다.
 그러나 그는 미드필더였고, 그가 맡은 역할은 패스가 우선이었다.
 그 위치에서 특화되었다고 판단했기에, 감독이 그 자리에 계속 반디를 집어넣는 것이리라.
 어쨌든 자신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말.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역시 나름대로 덕담하듯이 이렇게 한마디 했다.
 “언젠가 너도 빛을 볼 날이 있을 거야. 득점 능력이 있는 미드필더는 귀한 법이거든. 하하하.”
 그렇게 말하고 가버리는 알레한드로.
 
 그때 마리오는 보았다.
 표정은 웃고 있었는데, 그 안에 눈동자는 달라 보였다.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처럼.
 그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승부욕. 승부욕이라는 이름이 적당할 것이다.
 마리오의 가슴에 기대감이 솟구쳤다.
 
 그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는 반디.
 정말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했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주전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인판틸 A.
 안타깝게도 아직 반디는 미드필더로서 자신의 자리를 굳히지 못했다.
 패스에도 뛰어나고, 수비 능력도 있으며, 시야도 넓었다.
 하지만 팀 내에서 최고가 아니었다.
 그보다 패스 잘하는 이, 수비 잘하는 이, 시야 넓은 이는 차고도 넘쳤다.
 그래서 그런가?
 인판틸 A를 맡은 알폰소 감독은 그를 중용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다른 선수를 더 보고 싶었기에.
 그들의 재능을 더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팔방미인이 손해 본다고 했다.
 애초에 미드필더 자원으로 분류된 반디.
 이제 그가 경기에 들어서서 득점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는 미드필더로서 평범하게 성장하리라.
 그렇다면 한 번 나왔을 때, 게임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는 게 해답일 수도 있었다.
 다만 미드필더로서 득점‘만’을 노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한 번의 기회에서 감독에게 진한 인상을 주어야 하는 게 진정한 해답이었다.
 
 기회는 아틀레티고 마드리드와의 라이벌전에서 찾아왔다.
 한 지역을 나누어 쓰는 지역 더비.
 이들은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라이벌 의식이 시작된다.
 맞대결에서 격렬한 응원전.
 때로는 폭력까지 불러올 정도로 후폭풍이 대단했다.
 그만큼 더비전에서는 상대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포효가 더 큰 목소리로 터져 나왔다.
 이들 두 클럽도 마찬가지.
 호랑이는 다른 호랑이를 절대 자신의 영역에 들이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두 팀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도 끊임없는 충돌을 해왔다.
 한 세기가 넘게 끊임없이 싸워왔다.
 결과는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좋은 선수들을 성장시키면서 꽤 잘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누가 뭐래도 스페인 최고의 팀이 되기에는 약간 손색이 있었다.
 그런데 성인 팀이라면 모르겠지만, 유소년 팀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훨씬 잘나갔다.
 최근에는 그 정도가 심해서 유소년 리그에서는 바르셀로나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절대 강자라는 말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은 이름값을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좀 잘한다 싶으면 과감하게 팔아버렸으니 말이다.
 당장 유소년들의 유출이 있다는 게 아니다.
 나중에 팔리는 것을 보면, 상대적으로 동기부여가 약해진다는 의미였다.
 누가 나중에 자신이 있지도 않을 팀을 위해서 열정을 태우겠는가?
 아무튼, 현재의 전력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다툰다는 것.
 승리가 요원한 일이라는 것을 그 누구라도 알았다.
 질 것 같은 게임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절대 아니었다.
 아니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 두 팀은 뼛속까지 라이벌이기에.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양 팀 모두 베스트 일레븐을 내보냈고, 안타깝게도 반디는 그 안에 끼지 못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포워드, 알바로의 융단 폭격에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수들이 고전하고 있었다.
 어릴수록 팀보다는 개인기에 침몰당하기 쉬웠다.
 알바로는 아틀레티코가 기대하고 있는 어린 재능.
 심지어 나이도 이제 열셋이었는데, 부동의 최전방 공격수였다.
 포워드를 잘 기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와는 달리 유소년이 아니라 다 성장시켜 놓고 팔았기에, 더 아쉬운 팀이기도 했다.
 그래서 최강이 되지 못한 비운의 팀이었다.
 어쨌든, 전반 30분까지 알바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거기다 마지막 한 골도 그의 도움이었고.
 그렇게 전반은 4-0의 점수 차이로 종료를 맞이했다.
 
 잘하고 있다, 또는 이게 뭐냐? 라는 말조차도 하기 힘든 점수 차이.
 라커룸의 분위기는 매우 가라앉아 있었고, 감독조차도 속칭 멘붕이 왔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래도 변화가 필요했다.
 “알레한드로는 오늘 더 뛰지 마라. 그리고 그 자리에는…….”
 감독은 쭉 둘러보았다.
 뛸 만한 자원은 누가 있을까?
 그런데 아무도 자신의 눈을 보지 않았다.
 나가기를 꺼린다는 의미였다.
 여러 가지 의미로 후반전에 뛰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첫째, 나간다 할지라도 뒤집을 점수 차이가 아니라는 점.
 둘째, 오히려 더 실점하면, 그 오욕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점.
 셋째, 패전 처리용으로 전락했다가는 다음 경기에서도 계속 그 쓰임새로 될 수 있으니, 지금은 안 뽑히는 게 나았다.
 거의 모두가 그런 이유로 감독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그가 바로 반디였다.
 
 ‘저를 봐주세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반디는 끊임없이 눈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해보겠다는 투지.
 이런 것이 섞이면서 그의 눈빛이 불타올랐다.
 그 눈빛을 알폰소가 드디어 포착했다.
 
 “에스테반, 후반전에 뛰어줄 수 있느냐?”
 사실 감독도 마찬가지의 생각이었다.
 패전 처리를 누구에게 맡길 거냐?
 이게 한참 동안 머리에 맴돌았다.
 내보낼 선수들은 많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단 하나 눈을 빛내는 소년이 있었고, 그게 바로 반디였다는 점이 그의 결정을 쉽게 만들었다.
 척 보면 안다. 이 소년은 무언가 증명하고 싶어 했다.
 심지어 이런 말까지 물어보면서 그의 의문을 해소해주기도 했다.
 “포워드의 자리에서 말이죠?”
 “그래.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네가 포워드까지 소화할 수 있다고.”
 “소화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원래 포워드였어요.”
 “…….”
 “아, 그리고… 잊어버리셨나 봐요. 저를 부르실 때에는 반디로 불러달라고 했는데. 하하하.”
 늘 그랬다. 그 이름이 좋았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는 꼭 그 이름을 상기시켰다.
 알폰소 역시 이제는 잊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라커룸에서 나오는 반디의 눈빛.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를 닮았다.
 “후우…….”
 필드에 나오자마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휘익, 휘익.
 팔을 한번 휘저어 보며…
 빙글, 빙글, 빙글.
 발목을 돌렸다.
 컨디션은 매우 좋아 보였다.
 이제 남은 것은…
 “자, 이제 한번 시작해볼까?”
 골문을 향한 반디의 질주였다.
 
 패색이 짙게 깔렸을 때 선수가 교체되기도 하지만, 승리의 확신이 강하게 들 때도 선수는 바뀐다.
 물론 이 모든 게 감독의 선택이었다.
 아틀레티코의 감독은 후자를 선택했다.
 전반에 해트트릭한 선수가 후반에 더 득점 기록을 올리도록 배려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굳이 더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아틀레티코에서 포워드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수비부담이 훨씬 줄어든 레알 마드리드.
 그렇다 해도 4점이라는 점수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어 보였다.
 더구나 한결 여유 있는 플레이를 하는 아틀레티코의 경기력에 레알 마드리드의 그것이 미치지 못했다.
 
 역시 반격의 실마리는 반디였다.
 오늘은 미드필더 출신 포워드라고 해야 하나?
 그는 공이 최전방까지 공급되지 않자 더 아래로 내려왔다.
 어렸을 때부터 포워드로만 뛰었다면, 이게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에게는 지금까지의 여러 포지션 이동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현대 축구에서 전통적인 9번 스트라이커는 살아남지 못했다.
 특히나 제로톱이 성행했을 때에는 가짜 9번까지 나타나며, 스트라이커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반디가 공을 받으러 내려왔다는 것은 매우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여기, 여기야!”
 그는 손을 들어 동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동안 동료들과 친해지기 위해 많이도 웃고 다녔다.
 그래서 한 번쯤은 공을 줄 만한 사이 이상이 되지 않았던가?
 턱. 마리오가 연결한 공이 자신의 발밑에 왔다.
 “앞으로 나가! 앞으로!”
 주고받자는 의미였다. 굳이 그 말을 듣지 않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리턴 패스. 그리고 다시 리턴.
 “좋아, 고마워!”
 적절한 표현. 동료와의 의사소통할 때에는 미구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때쯤 되니 벌써 중앙선을 훨씬 넘어 아크 에어리어 정면까지 두 명이 치고 나아갔다.
 아틀레티코의 수비수들은 뭐했는가?
 그들 역시 수비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한 발자국 빠른 패스였다.
 어차피 중앙은 밀집되지 않았다.
 그리고 촘촘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진 리턴 패스가 이루어지다 보니 여기까지 허용하게 되었다.
 
 “거기까지야! 거기까지만! 가서 막아!”
 골키퍼의 지시에 따라 중앙 수비수들이 움직였다.
 “젠장, 왜 이렇게 빨라?”
 수비를 튼튼히 하고 적의 역습을 막는 상황이 후반전에 이루어졌다.
 더 득점을 올려서 레알 마드리드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필요도 있었지만, 여기서 참은 이유는 간단했다.
 실점을 내주지 말자. 그러다 보면 기회는 또 열리리라.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반디에게 간 공이 사이드로 빠졌을 때였다.
 
 욕심을 부려볼 만도 한데 더 부리지 않은 이유는 뭘까?
 잠시 후 골키퍼는 그 의도를 알았다.
 달려오는 레알 마드리드의 윙이 그대로 크로스를 하고, 반디가 성큼성큼 앞으로 뛰어왔다.
 러닝점프. 이 얼마나 탄력적인가?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맛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날아오는 공.
 반디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다시 앞으로 다가올 때에는 강한 힘을 동반했다.
 텅!
 정통으로 이마에 맞은 공.
 같이 뜬 수비수들을 무색하게 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 공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면서 골문 구석으로 가서 꽂혔다.
 출렁!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골문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넣은 공을 주워 오면서 그는 크로스를 올려준 페드로에게 엄지를 들어 올렸다.
 “페드로! 고마워, 페드로! 네 덕분이야! 좋은 크로스였어!”
 그것으로 끝나면 서운한 사람이 있었다.
 “마리오, 너 역시 훌륭했어. 패스가 정확했으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하하하.”
 마리오의 눈에 기쁨이 서렸다.
 이맘때의 소년들은 이랬다.
 말 한마디로 하루가 달라지는 나이였다.
 벌써 이런 심리를 이용할 수 있단 말인가?
 영리했다, 그것도 매우.
 머리가 좋은 것보다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했다는 점에서 그는 동료를 얻을 수 있으리라.
 
 단 한 골이었지만, 분위기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나이의 소년들은 바뀐 분위기에 더 빨리 빠지며, 때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만들기도, 그리고 그 일에 당하기도 한다.
 두 번째 골 장면이 나왔을 때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밀착이 된 수비수들.
 반디는 한 골 넣으면서 이제 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더 실점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게 가능할까?
 그럴 수도 있었다.
 반디 이외에 다른 선수가 침묵한다면.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팀이 약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스페인에서, 때로는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거치고 있는 곳,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팀.
 그들 중 좋은 기회에 골망을 뒤흔들 능력이 없는 이가 있을까?
 레알 마드리드의 오른쪽 윙 포워드, 빅토르가 쇄도했을 때, 그들은 깜짝 놀랐다.
 막아야 할 반디가 아니라 그에게 공이 공급되었기에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연출했던 것이다.
 한 번의 실점이 또 일어나며, 경기는 4-2.
 
 “이거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어요.”
 코치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모르겠는 게 아니라 난 알겠어.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그 흐름을 바꾼 이가 누구겠는가?
 반디.
 등번호 위에 이름은 에스테반이라고 불리지만, 자신을 반디라고 불러달라고 말한 그 소년이 변화시킨 일이었다.
 그리고 변화의 시작도 그였지만, 끝을 내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었다.
 최전방에서만 머무르지 않는 행동.
 오히려 수비수 노릇도 해보고, 미드필드에서도 활약했었다는 점이 보약이 되었을까?
 그의 행동반경은 감독이 딱 좋아할 만큼 넓었다.
 왼쪽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더니, 오른쪽으로 다가가서 패스의 진행을 도왔다.
 그런가 하면 가끔 밑으로 내려와서 중앙에서 수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플레이하니 자신의 쓰임새가 꽤 높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기회는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동료가 만들어준 기회를 살리기도 했다.
 첫 골이 자신이 만든 기회였다면, 이번에는 동료들이 열어준 공간에 들어가 기회를 얻었다.
 한 골이 반디의 득점, 그리고 다른 한 골이 빅토르의 득점이니, 누구를 막아야 할지 고민이 되는 상황에서…
 빅토르가 빠른 움직임으로 중앙으로 들어갔다가 왼쪽으로 나갔다.
 그에게 딸려간 수비수 한 명.
 동시에 마리오가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오면서 또 한 명을 끌고 내려갔다.
 텅 빈 중앙에 들어간 반디.
 이때 스위칭을 했던 왼쪽 윙이 오른쪽에서 전달한 스루패스.
 턱!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멈춰 세웠다.
 득점의 확률이 가장 높은 정중앙에서 그가 찬 슛이었으니, 골키퍼는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더구나 얼마나 세게 찼는지 골문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또 한 골을 추가한 레알 마드리드.
 이제 4-3이 되었고, 경기는 아직도 20분도 더 넘게 남아있었다.
 향방은 오리무중.
 처음에는 아틀레티코의 완벽한 승리가 예측되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20분도 더 남은 상황에서 버티기만 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두려울 수도 있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결과.
 4-4는 5-4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게 된다면 여기서 뛰는 모두의 기억에 자리할 것이다.
 대역전극이라는 네 글자가.
 트라우마는 괜히 생기는 게 아니었다.
 오늘 경기.
 하마터면 레알 마드리드 선수의 머릿속에 생길 트라우마였다.
 이제는 바뀔 수 있었다.
 그 시발점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반디였다.
 
 “저 녀석을 막아야 한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인판틸 A.
 현재 바르셀로나를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팀 구성으로 장래를 밝게 하는 재능들을 가지고 있었다.
 전반전에 뛰던 포워드가 나왔다 한들, 이렇게 쉽게 무너질 팀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분위기를 만드는 게 반디라는 것을 알았을 때, 상대 감독의 조치는 수비수 교체였다.
 지역방어 속에 개인 방어를 섞었다.
 미드필더 하나를 줄이고, 수비를 늘렸다는 말이다.
 
 그렇게 새로 들어오는 수비수를 보고 반디는 느꼈다.
 자신을 밀착 마크하러 왔다는 것을.
 스위칭이 가끔 이루어질 때 반디를 놓쳤던 많은 수비수와는 달리, 지금 나온 선수는 어디를 가도 따라갈 가능성이 높았다.
 ‘특별할 것은 없다…….’
 반디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구엘은 말했다. 반디가 잘하면 잘할수록 더 집중 견제를 받을 것이라고.
 그런데 고작 한 경기였다.
 오늘 한 경기로 집중 견제라는 생각은 자신도 상대방도, 그리고 심지어 동료들까지 생각하지 못하리라.
 
 “집중 견제라는 말이 불가능하지.”
 “…….”
 “스타일을 잘 모르잖아.”
 미소를 지으면서 코치에게 말하는 레알 마드리드 인판틸 A의 감독.
 그의 말마따나 반디가 스트라이커로 나왔던 경기는 올해 한 번도 없었다.
 수비하러 왔다지만, 반디의 스타일은 오늘 처음 알려졌는데, 집중 마크가 잘 안 될 것으로 내다본 발언이었다.
 그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봐야 했다.
 확실한 것은 하나.
 달려가는 반디의 몸에는 망설임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
 누가 막든 그렇지 않든, 상대에 맞춰서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플레이를 선택하고 있는 그였다.
 그래서 그를 보고 있는 감독의 표정에는 물음표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어째서 발견하지 못했는가?’
 그는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왜 그를 발굴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을지도 몰랐다.
 축구가 아닌 축구 외적인 것으로 반디를 판단했었다는 것.
 그렇다.
 그가 인종차별주의는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런 울림을 들었던 것 같았다.
 동양계 선수가 스트라이커의 위치에 선다는 게 가당키나 할 소린가?
 ‘부끄럽다…….’
 반성은 사람을 달라지게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지만, 특히 축구에서 편견 없이 살아갈 첫날이 오늘이 되기를 그는 기원했다.
 
 그리고 그 편견을 없애줄 반디가 또 한 번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공간이 나왔고 침투했다.
 그 자리에 공을 넣어줄 훌륭한 공급자들이 레알 마드리드에는 풍부했고.
 다만 그를 막으러 나온 수비수가 어디를 가도 그의 곁에 따라다녔다.
 그래서 이번에는 골문 방향이 아니라 등지고 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반디.
 “돌지만 못하게 해! 뒤돌아보지만 못하게 하란 말이야!”
 침투까지는 허용했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골키퍼의 말.
 그 말을 들은 수비수가 골문을 막고 있는 골키퍼와 반디 사이에서 재빠르게 위치했다.
 그 찰나의 순간…
 반디의 오른쪽 어깨가 움직이는 게 그의 눈에 띄었다.
 왼발을 사용할 때 오른쪽 어깨가 미세하게 움직인다.
 그가 지금까지 생각한 상식은 그랬고, 또 그렇게 교육받았다.
 그렇다면 오른발을 축으로 하며 턴을 예고한다는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수비수의 예비동작은 오른쪽으로 쏠리게 되었다.
 휙.
 그런데 왼쪽으로 돌았다.
 1초도 안 걸린 순간적인 그 동작에 완전히 속으면서 한쪽을 내주었으니 그가 취할 수 있는 것은 빠르게 발을 내민 것이다.
 투각!
 반디의 발이 그의 발과 부딪혔다.
 공은 이미 반디의 발에서 쏘아져 나간 상태.
 그가 넘어졌다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이 골문 안으로 들어가며, 오늘 뛰는 선수 중 두 번째 해트트릭의 주인공이 되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쓰러졌다는 점.
 걷어차였기 때문에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났다.
 통증보다 더 시원한 쾌감.
 드디어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4-4였다.
 반디는 인상을 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약간 쩔뚝이며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걷기 시작했다.
 그때 동료들의 축하와 우려가 그의 귀에 들려 왔다.
 “야아아, 해트트릭. 하하하. 근데 괜찮아?”
 “반디, 오늘 멋지다. 다리 괜찮니?”
 “우와 오늘 네가 살려주는구나. 킥킥킥. 아프면 들어가라. 이제 우리한테 맡기고.”
 이제야 반디의 얼굴에 인상이 풀어졌다.
 “고맙다, 모두. 다 너희 덕분이야.”
 “…….”
 
 기분이 묘했다. 아까부터 들은 것이었는데, 반디라는 친구는 골을 넣은 후 계속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잘했다는 것은 내세우지 않았다.
 이걸 겸손하다고 해야 하나?
 최소한 비교가 되었다.
 먼저 들어간 팀의 주포, 알레한드로와.
 그는 한 번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아니 있긴 했겠지만, 선수들의 머리에 기억이 없으니 제대로 된 표현이라고 할 수 없었다.
 반면 지금의 반디는…
 예의가 묻어 나왔다.
 그게 차이였다.
 말 한마디가 달라 보이는 차이.
 “내가 넣은 거겠어? 팀이 넣은 거지, 안 그래? 하하하! 자, 역전 가야지!”
 “그… 그래, 이거 기분 좋은데. 꼭 우리가 넣은 것 같네.”
 “그러게. 왠지 모르게 나쁜 기분은 아니잖아. 누군가 넣으면 꼭 내가 넣을 것을 빼앗긴 기분이었는데.”
 
 마지막에 한 빅토르의 말이 선수들의 심정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한 번은 건드리지 않아도 골문으로 들어갈 것을 알레한드로가 건드려서 자신의 득점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
 고맙다는 말 대신 그는 골 세레머니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 게 끝이었다.
 그게 앙금에 남았나 보다.
 빅토르가 지금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니.
 
 “자, 다시 시작. 앞에 봐봐. 저 녀석들 완전히 뿔난 얼굴이야. 하하하.”
 반디가 그렇게 말하고 정면을 가리켰다.
 표정이 굳은 아틀레티코 선수들이 거기에 있었다.
 이윽고 다시 시작된 경기.
 분위기는 완전히 레알 마드리드 쪽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이제 아틀레티코 선수들은 제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한 골만 더! 한 골만 더 가자! 이겨야지. 응?”
 반디는 이 말과 함께 어디서든 있었다.
 중앙에서도 보였고, 양옆에서도 뛰었다.
 후반전에 들어와서 체력이 남아서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전반부터 뛰었더라도 신이 나는 날은 지치지 않는 법이다.
 오늘 그는 신바람을 받았다.
 세 골과 하나의 도움.
 한 경기에서 그가 해낸 것은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오늘 경기는 비록 무승부로 끝이 났지만, 새로운 스트라이커의 등극을 알리는 날이기도 했다.
 
 반디에 대한 팀 내 대우가 달라졌다.
 그것도 눈에 띄게.
 일단 세계에서 세 대밖에 없는 풋보노 견습.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훈련 기계가 아니었는데, 인판틸 A에서는 반디가 뽑혔다.
 연습이 아닌 견습이었다.
 몇 차례 시험 작동을 할 수 있는 견습.
 그래도 설렐 수밖에 없었다.
 알레한드로가 몇 번 그 시설을 이용하고 으스댔었는데, 이번에는 입장이 뒤바뀌었다.
 그는 살짝 짜증을 냈었다고 한다.
 그래도 알폰소는 반디에게 한번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씨나우도와 칸제마, 그리고 가일을 만났다는 것.
 어린 소년의 마음을 들뜨게 할 수밖에 없었다.
 반디 말고 연령대별 유망주들이 뽑혀서 왔기에, 이들은 덕담 한마디 하고 지나갔다.
 “하이.”
 “열심히 해라.”
 “미래의 꿈나무들인가? 하하하.”
 각자 한마디씩 하고 지나가는 유명 선수들.
 “와, 포스가 느껴진다.”
 “저 사람이 1억 유로의 발이야?”
 “나도 저렇게 되어야 할 텐데.”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누군가를 동경한다는 것은 축구영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라서 반디의 마음도 매우 설레었다.
 하지만 곧 풋보노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빼앗겼다.
 인간보다 기계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훈련할 수 있다면, 미구엘이 말한 공을 정지하는 기술을 더 확실히 습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독일에서 발명된 이 축구교육 도구는 도르트문트와 호펜하임이 소유했고, 스페인에서는 유일하게 레알 마드리드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풋보노는 세계에서 세 대밖에 없는 연습 도구.
 이것을 이용하는 선수들의 트래핑과 시야가 매우 높아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드디어 들어간 반디.
 14 X 14m의 인조 잔디 위 중앙에 서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후우…….”
 그는 깊게 심호흡했다.
 잠시 후 기계가 구동하기 시작했다.
 턱, 하는 소리와 함께 45도 각도 우측 위에서 붉은 사각형의 빛이 켜지며 공이 날아왔다.
 탁, 하고 가슴으로 받는 반디. 그리고 청록색의 사각형 하단에 공을 밀어 넣었다.
 물 흐르는 듯한 동작이었다.
 머리, 가슴, 허벅지…
 그 어느 곳으로도 공을 정지시키는 동작은 매우 훌륭했다.
 이어지는 슛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마치 풋보노를 계속 해왔던 느낌을 주는 반디.
 잠시 후 반디의 훈련은 끝이 났다.
 그리고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느낌이 달랐다.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은?
 ‘굳이 이곳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미구엘 코치님이 계신다.’
 그렇다. 기계는 훌륭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매우 좋았다.
 하지만 기계가 인간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아무리 랜덤이라도, 몇 번 해보고 다 파악했다.
 그래서 미구엘에게 드는 마음이 더 고맙기만 한 반디였다.
 ‘이론만 빠삭하다고? 잘못 알고 있다. 미구엘, 제가 그것을 증명할게요.’
 어느덧 그는 반디의 스승이 되었고, 그에게도 반디는 하나밖에 없는 제자가 되었나 보다.
 
 “풋보노보다 내가 더 낫다는 말이냐? 하하하. 기분 좋은 말을 해주다니. 아부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진심입니다. 기계는 기계일 뿐이에요. 코치님이 더 낫다는 것은 괜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네 실력이 늘고 있어서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약간 서운하기도 했거든. 언젠가 더 못 가르칠 때가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그 시기가 빨라지지 않을까? 이렇게 여겼지. 그런데 내가 더 필요하다니?”
 “더 필요한 정도가 아니에요. 될 수만 있다면 제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저만 가르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오호라, 이것 봐라. 스승을 고용하려고 드는구나.”
 “그런 말이 아니라…….”
 “농담이다. 하하하. 무슨 말인지 다 알겠다. 어쨌든 배움에는 끝이 없는데, 멈추지 않는 네 모습이 좋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30분 더 하는 거다.”
 “헛, 저 지쳤어요.”
 마지막에 하는 반디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미구엘은 공을 들고 나가서 반디에게 올리기 시작했다.
 특별하게 겨냥하며 공을 차는 게 아니었다.
 내키는 대로 하면, 반디가 알아서 뛰어 나가며 받아야 했다.
 트래핑, 또는 논스톱 슛.
 그의 일취월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인판틸 A의 팀전술에 변화를 주게 했다.
 원래 감독인 알폰소는 윙 포워드인 페드로와 빅토르를 좌우에 놓고, 중앙에 마리오 아니면 반디를 놓았다.
 모두 스트라이커인 알레한드로에게 패스를 집중시키기 위한 포진이었다.
 그러나 반디가 해트트릭하던 날부터 전술은 바뀌었다.
 투 톱을 놓았다.
 반디와 알레한드로의.
 4-3-3이었던 것이 4-4-2로 변했으며, 득점력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나빠졌다는 게 아니라 그 반대였다.
 두 배 이상의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는 말이다.
 거의 모두가 기뻐했다.
 승리만큼 좋은 영양제는 없을 테니까.
 
 다만 ‘거의’에 포함되지 않은 알레한드로는 이 같은 변화가 싫었다.
 전술 훈련 때 짜증이 부쩍 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기도 했다.
 “뭐 하는 거야, 마리오!”
 “…….”
 목소리가 커졌다. 마리오는 그가 이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일으키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더 짜증이 났다.
 구차하게 설명까지 해야 했기에.
 “내가 더 좋은 위치에 있었단 말이야. 왜 이쪽으로 패스하지 않지?”
 “그거야 위치는 네가 더 좋지만, 오른발 바깥쪽으로 차야 하잖아.”
 “그럼 그렇게 하면 되잖아?”
 “부정확한 패스를 할 필요는 없는걸?”
 “그렇다고 수비수를 달고 있는 애한테 패스할 상황은 더더욱 아니잖아!”
 목소리는 더더욱 커지고 있었다.
 
 “저 녀석들 또 싸우네요.”
 “저 녀석들이 아니지. 저 녀석이지.”
 복수가 아닌 단수로 교정해주는 알폰소.
 그는 자율적인 자정작용을 매우 좋아하는 지도자였다.
 그래서 하는 말.
 “알아서 정리될 테니 지켜보자고.”
 “에… 싸울 텐데요.”
 “싸워야지, 언제까지 저러고 있나? 그럼 경기에 나서서 폭발하는 꼴을 보고 싶나? 해결할 일이면 계속 부딪히면서 융화되어야지. 아니면 누구 하나가 떨어져 나가거나.”
 일리는 있지만, 천하태평인 말이었다.
 사춘기를 맞이한 소년들이었다.
 이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코치진이 있는 것인데, 알아서 싸우게 놔두란다.
 그리고 진짜 그 방침으로 갈 모양이었다.
 팔짱까지 끼고 가만히 서 있는 감독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코치.
 그의 눈에 점점 더 뜨거워지는 필드가 보였다.
 그 뜨거움이 열정적인 훈련을 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게 유감이었지만.
 
 “그만해, 마리오. 그만.”
 이들의 말다툼에 끼어든 반디.
 드디어 라이벌이 나서니 눈에 불을 켠 알레한드로였다.
 “이봐, 넌 끼지 마. 마리오와 나의 문제니까.”
 그 말을 듣고 반디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 그럼 마리오가 나에게 패스하는 거에 너도 끼지 마.”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못 들었어? 그럼 됐고. 자,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자. 감독님 노려보신다.”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실패한다면, 굳이 달랠 필요는 없었다.
 반디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선의의 라이벌을 상대가 원하지 않을 때에는 철저히 실력 차이를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상대를 건드리는 말을 했다.
 “그럼 패스를 받을 위치에 서든지. 그냥 빈 공간에 들어가는 게 무조건 좋은 줄 아네.”
 혼잣말인 것 같았지만, 상대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알레한드로의 뚜껑이 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촉즉발. 총이 있었다면 방아쇠를 당기기 전이었다.
 “그만!”
 절묘한 타이밍에서 감독이 나섰다.
 씩씩거리는 알레한드로.
 반면, 반디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동료들이 알레한드로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들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친절한 반디와 잘난 체하는 알레한드로의 차이를.
 “알레한드로와 반디는 잠시 나를 따라와라.”
 알폰소가 그들을 불러냈다.
 남은 인원들의 훈련은 코치에게 맡기면서.
 “잘못을 누가 먼저 했는지는 따지지 않겠다. 너희 둘은 오늘 싸웠고, 그것은 규정을 위반한 행동이었다.”
 둘 다 말이 없었다.
 다만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알레한드로는 잔뜩 부어 있었고, 반디는 궁금해하는 얼굴로 알폰소를 쳐다보았다.
 마치 빨리 어떤 조처를 내려 달라는 표정이었다.
 알폰소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반디의 지금 모습.
 시간이 흐르는 게 아깝다는 눈빛이었다.
 그것을 왜 못 알아보겠는가?
 ‘대단한 놈이 되겠군, 대단한 놈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는 지도자였으며, 앞에 있는 이들은 아직 어렸으니 말이다.
 “화해하라는 말도 하지 않겠다. 다만 앞으로 이런 모습을 더 보일 때에는 정식으로 징계하겠다.”
 “안 하겠습니다.”
 바로 대답하는 반디. 그런 그를 분노에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알레한드로.
 자신을 보는 그의 시선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눈을 돌린 반디.
 그렇게 둘의 눈빛이 마주쳤다.
 불꽃이 튀기는가?
 전혀 아니었다.
 반디는 웃음으로 그의 뜨거운 시선을 받았다.
 “이봐, 표정 풀어. 하하하. 설마 같이 징계를 먹자는 것은 아니겠지? 뭐, 너도 잘못했고, 나도 잘못했다. 여기서 끝내자. 내가 미우면 당분만 말 시키지 말든지. 나도 너를 건드리지 않을 테니.”
 “…….”
 알레한드로의 표정이 멍해졌다.
 반디가 이렇게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것은 사과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조언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다만 이런 것도 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흥! 내가 너를 의식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잘됐네. 그래, 잘됐어. 그럼 서로 신경 쓰지 말자고. 사생활에서는 말이야. 그런데 축구를 할 때에는 그러면 안 되잖아. 네가 잘하면 자연스럽게 너에게 패스가 몰릴 테고, 내가 잘하면 그 반대겠지. 그게 선의의 경쟁 아니겠어. 우리 둘 때문에 팀워크가 깨지는 것은 보지 말자고.”
 “혼자 멋있는 척하지 마라. 마치 내가 승부욕 때문에 경기를 망쳐놓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으니까.”
 “아니면 됐어. 이제 그만하고, 가서 훈련하자. 감독님, 그래도 되죠?”
 감독 알폰소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둘러 뛰어가는 반디와 그에 질세라 뒤따라가는 알레한드로를 보면서 잠시 후 미소를 지었다.
 “이거 내년에 반드시 카데테 B로 올라가서 지도해야겠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코치는 갑자기 그가 이런 말을 하자 궁금한 눈빛을 보였다.
 그동안 13-4세의 연령대를 맡는 게 가장 보람 있다고 말한 알폰소였기에.
 15-6세부터는 거의 준프로나 마찬가지의 나이.
 이미 순수함을 잃어버리기 시작하는 소년들을 꼴 보기 싫었다.
 그런데 마음을 바꿨다.
 카데테 A는 발다노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지만, B는 올해 계약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감독이 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다.
 그는 클럽에 정식으로 신청서를 냈고, 클럽의 전무이사인 로메오가 놀랍게도 그것을 승인한 것이었다.
 그다음 시즌 카데테 B를 맡는 알폰소는 현재의 구성원들과 거의 함께 올라갔다.
 제자들과 같이 단계를 밟아간다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들과 같이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정책 때문이었다.
 
 근래 친해진 미구엘과 그런 대화를 자주 나누는 이유도 같았다.
 이제는 키운 제자를 다른 곳으로 보내기 싫은 마음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쟤들의 발전을 누락시키자는 이야기야?”
 “그래야 해. 그러지 않으면 멧돼지 회장이 저 녀석들을 처분해 버릴 테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숨길 수 있겠어? 결국은 드러날 거라고. 당장 다음 시즌에는 좋든 싫든 카데테 A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알폰소의 말이 맞았다.
 그리고 이들이 반디가 카데테 A로 올라가는 것을 우려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팀의 지휘봉을 잡는 것은 바로 발다노였기 때문이다.
 현 회장의 충견인 발다노.
 그와 카스티야의 감독 아구스틴 등은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하비에르의 심복 중 심복이었다.
 유망주를 키워서 높은 가격으로 파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
 그랬기에 유소년에서 걸러진 유망주들이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를 거쳐서 타 팀으로 이적하는 게 그 순서였다.
 알폰소의 말을 받아치는 미구엘은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시간을 벌자는 뜻이야, 시간을.”
 “무슨 시간?”
 “우리가 로메오에게 접근할 시간.”
 “로메오라…….”
 로메오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무이사.
 현 회장의 갈락티코 정책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반대파의 수장이었다.
 클럽은 일정 정도의 유망주를 길러야 하며, 그들을 기반으로 특급 선수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알폰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데? 아니, 이론만 빠삭한 미구엘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이거 왜 이러지? 너도 나 못지않게 클럽에서는 왕따잖아? 그나마 내가 놀아주니까 다행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혼자 외로웠을 텐데.”
 “허어, 무슨 소리야? 자네와 나는 다르거든? 자네는 남들이 왕따를 시키는 거지만, 난 다른 사람과 말을 섞지 않는 거라고.”
 “그게 그거지 뭐, 하하하.”
 이 둘은 많이 친해졌다. 이렇게 스스럼없는 대화를 할 정도로.
 어쨌든 핵심은 하비에르 회장의 반대편에 있는 로메오에게 붙자는 것.
 나름대로 실현 가능성 있는 계획이었다.
 문제는 반디가 너무 폭발적인 득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생각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출전 경기를 조절해야 할 정도로.
 물론 그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모든 정보가 선수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었기에.
 잘못하면 플레이 도중에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 성장하다가 브레이크가 걸릴 수도 있고.
 
 이 때문에 반디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인가 그는 미구엘과 연습하다가 빨리 카데테 A로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예요. 차라리 발다노가 나을 것 같습니다. 일부러 출전시키지 않은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렇지 않아. 그는 쓰…….”
 쓰레기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참았다.
 아직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어른들의 세계였다.
 잠시 호흡을 조절한 뒤 미구엘은 타이르듯이 반디에게 말했다.
 “너, 혹시 그 말 들었느냐?”
 미구엘의 말에 귀 기울이려고 반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나 그렇지만, 너무나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여자 몇 명쯤은 그냥 후리고 다닐 것 같은 생김새.
 별생각을 다 한다고 생각하며 미구엘은 웃었다.
 그리고 하려던 말을 꺼냈다.
 “이론만 빠삭한 미구엘이라는 말.”
 “저… 전 그 말 안 믿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증명하고 있잖아요.”
 “짜식, 들었다는 소리를 그렇게 하는구나. 그 말이 맞다. 너는 나를 증명할 놈이다. 내 유일한 자랑거리지.”
 “하하… 쑥스럽게 왜 이러세요? 카데테 A에 간다는 소리는 그냥 해본 소리였어요.”
 “아니,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라는 것 다 알고 있다. 답답했겠지. 두 경기에 한 번 나가는 것. 알레한드로는 매 경기에 출전하는데 말이야.”
 핵심을 찔렸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자신이 알레한드로보다 못한 것 같지 않았는데, 출전이 적어서 서운했으니 말이다.
 “이론만 빠삭한 나에게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게 바로 네 감독이다. 그는 이론뿐만 아니라, 실전에도 강하지.”
 반디의 눈이 더 커졌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부러 둘이 친하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
 이런 경우 항상 그렇지만, 반디를 편애한다는 오해에 시달릴 수도 있으니.
 “내가 부탁했다. 경기에 많이 출전시키지 말아 달라고. 더 연습해야 한다고.”
 거짓이었다.
 논리적으로 약한 말이었다.
 그래도 반디가 반박하면 준비해 놓은 말이 있었다.
 그런데…
 “아아, 알았어요. 잘못된 습관을 배울까 봐 그러셨군요. 맞습니다. 동의해요. 요즘 알레한드로가 그러더라고요. 괜히 넘어지고, 그런 할리우드 액션까지는 안 해도 충분히 먹힐 실력인데. 하하하.”
 자신이 준비해 놓은 말을 내뱉는 제자는 그렇게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스승을 당황하게 하는 반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카데테 B의 마지막 경기는 바르셀로나 전이었다.
 현재 카데테 B의 순위는 4위.
 만약 바르셀로나를 이기면 단숨에 2위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주전 대부분이 벤치를 지켰다.
 아니 지금 뛰는 선수들은 자신들이 주전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벤치에 있는 선수들과 그들의 알력 다툼이 시즌 내내 벌어지기도 했다.
 
 팔짱을 끼고 경기를 지켜보는 반디의 뒤에서 마리오와 빅토르의 대화가 들렸다.
 “이건 말도 안 돼. 도대체 저기 뛰는 애들보다 우리가 못 한 게 뭐야?”
 “쉿, 조용해. 감독님한테 들리잖아.”
 “어차피 오늘 경기 끝나면 말씀드릴 거야.”
 “뭐라고? 빅토르, 너…….”
 “이러다가 카데테 A로 올라가지 못한다고. 알잖아, 진짜 카데테는 B가 아닌 A라는 이야기.”
 “그거야 그렇지만. 감독님이 보실 때, 우리가 모자란다고 생각하셨겠지, 뭐.”
 “모자라?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래, 좋아. 우리는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반디는? 누가 보더라도 알레한드로보다 반디잖아. 안 그래? 그런데 반디가 남고 알레한드로가 올라간다면, 이건 공평한 일이 아니야.”
 옳은 말이었다.
 다른 사람은 아니더라도, 팀 전체는 스트라이커로서 반디를 더 위에 놓고 있었다.
 알레한드로와 반디의 득점은 비슷했다.
 각각 20골과 19골.
 그런데 반디의 출전 수가 알레한드로의 3분의 2 수준이었다.
 그나마 반디는 교체 출전 숫자가 많았다.
 따라서 팀 내에 있는 대부분의 선수는 반디의 골 결정력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재 눈에 보이는 수치는 알레한드로가 더 높았다.
 외부에서 본다면 일단 그를 카데테 A로 올린다고 해도, 합당한 조치 아니겠는가?
 반디가 다쳐서 경기에 결장해서 발생한 결과가 아닌 한 분명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카데테 A의 승급을 중요시할까?
 카데테 B 대부분의 선수는 인판틸에서 갓 올라왔거나, 카데테 A에 올라가지 못한 선수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나중에 17세부터 뛸 수 있는 유소년 팀, 후베닐로 갈 때 후베닐 B에는 주로 카데테 B 선수들이 올라간다.
 반면 후베닐 A는 카데테 A 선수들이 올라간다는 게 선수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였다.
 한번 줄을 잘못 서면 클럽에서 키우는 유망주에 들어서지 못한다는 불안함.
 이런 이야기가 퍼지는 가운데 이들은 카데테 A로 올라가지 못할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반디 역시 그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 또한 좋은 기분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감독님에게 따질 수는 없었다.
 선수 선발은 그의 고유 권한.
 성인도 아니고 유소년 주제에 나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전반전에 알레한드로의 득점 하나를 뜬 눈으로 지켜만 보았다.
 신이 나서 웃는 알레한드로가 벤치로 달려와서 자신의 유니폼을 흔들었다.
 시선은 반디에 고정했다.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반디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저 자식 일부러 저러는 것 같아.”
 “그러게. 갑자기 짜증 나네.”
 그런데 선취골을 준 바르셀로나가 특유의 티키타카로 밀고 들어왔다.
 자연스러운 빌드업.
 이들이 바로 제2의 누구라고 불리는 재능들이 즐비한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카데테 B가 못한다는 게 아니라, 바르셀로나의 카데테 B가 더 뛰어났다.
 그것을 증명하는 동점 골.
 그리고 곧이어 역전까지 당했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나고 말았다.
 
 “젠장, 아깝네.”
 “그러게. 알레한드로의 한 골을 지켜주지 못해서 좀 미안하네.”
 들어오면서 말하는 이들이 빅토르는 얄미웠다.
 그래서 내던진 한 마디.
 일부러 그들의 귀에 들어가라고 한 말이었다.
 “지킬 생각만 하니까 그렇지, 한 골 더 넣을 생각을 안 하고.”
 그 말을 들은 선수들의 눈이 가자미눈이 되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카데테 B의 선수 구성원은 요즘 자연스럽게 두 파가 형성되어 있었다.
 반디를 중심으로 한 선수들과 알레한드로의 주변에 머무는 이들.
 보통 실력은 전자의 그룹이 더 낫다고 평가받았는데, 신기하게 후자의 그룹이 경기 출전을 더 많이 했다.
 그래서 이들이 대립하는 것이고, 시즌 내내 이런 갈등이 이어져 왔다.
 그나마 충돌 없었던 이유는 반디 때문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참고 있었다.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니까 징징대는 꼴이라니.”
 “그러게, 그나마 쟤들이 안 나와서 2-1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더 큰 점수 차이로 지고 있었을걸?”
 “맞아, 맞아. 쟤들은 별로 수비도 안 하더라. 무조건 공격이야. 공격축구, 공격축구 하는데, 수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격이 제대로 되겠어? 뒤가 불안한데 말이야.”
 빅토르의 말에 알레한드로를 위시해서 한마디씩 하며 라커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꿈틀.
 빅토르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자신의 어깨를 잡은 누군가가 보였다.
 반디였다.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빅토르, 참아.”
 “참아? 왜? 가만히 있으면 더 무시한다고. 자기들이 더 잘난 줄 안단 말이야.”
 “당연히 아니지. 우리가 더 잘났지. 그럼 됐잖아.”
 “아니? 난 그걸로 안 되겠어. 경기에 출전도 못 하는데, 꼬장 좀 피워야겠어.”
 그렇게 말하고 들어가려는 빅토르의 팔을 다시 한 번 잡고 있는 반디였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그럼 내가 감독님께 이야기하고 올게.”
 “무슨 소리야? 고자질하자는 거야? 감독님 그런 거 안 좋아하잖아?”
 “그게 아니라, 후반전에 출전시켜 달라고. 기회를 달라고 말할게.”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반디가 기회를 달라면, 알폰소 감독이 ‘그래, 이제 너희 차례구나. 나가서 능력을 보여다오.’라며 교체한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빅토르가 아는 알폰소는 절대 그럴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차라리 갈등을 조장했다고, 징계라는 칼을 뽑으리라.
 그런 것을 실행할 때에는 가차 없었다.
 며칠 전 알레한드로 일파와 싸웠던 페드로가 아예 벤치에도 못 앉은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물론 페드로뿐만 아니라 상대방 역시 같은 징계를 받았다.
 그 공평함을 넘어 냉정한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일까?
 “나한테 수가 있어. 나만 믿어 봐. 응?”
 
 그리고 라커룸.
 믿어보라는 반디를 주시하고 있는 빅토르.
 전술 지시가 다 끝나고서도 아무 말 하지 않는 반디를 보며 조바심이 났다.
 ‘언제 이야기할 건데?’
 눈으로 신호를 보내는 그는 반디의 미소를 보았다.
 ‘이제 곧…….’
 그 웃음에는 이런 말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라커룸에서 나가는 감독을 반디가 불렀다.
 “감독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알폰소는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에서 밝게 미소 짓는 소년을.
 그리고 잠시 후 반디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귀를 의심하는 내용.
 그래서 다시 한 번 묻고야 말았다.
 “뭐라고?”
 “출전 횟수를 왜 조절하시는지 다 알고 있다고요. 카데테 A로 올려 보내 달라고 조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내보내 주세요. 하하하.”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반디와 빅토르는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마리오의 교체를 제외하고 변화는 없었기에 빅토르는 옆에 앉은 반디에게 말했다.
 “뭐라고 말한 거야? 여전히 벤치에 앉아야 하잖아.”
 “조금만 기다려.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냐?”
 “무슨 말을 했어?”
 “기회를 달라고 했지.”
 “그래서? 뭐라고 하셔?”
 “오늘 기회를 주면, 경기 끝나고 약속 하나만 해달라고 하시더라고.”
 “무슨 약속?”
 “말씀 안 하셨는데, 나는 대충 눈치챘어.”
 “그게 뭔데?”
 이번에 반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을 말해야 할 적합한 때와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런데 빅토르는 집요하게 묻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무슨 말로 그의 시선을 돌리나 곰곰이 생각했는데, 알폰소가 도와주었다.
 
 “빅토르, 몸 풀어라!”
 “네? 네,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하하하.”
 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불만의 표정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경기에 나설 흥분감이 자리 잡았다.
 
 그게 웃긴 나머지 반디의 얼굴에 ‘빙그레’가 그려졌다.
 그러다가 감독의 눈과 우연히 부딪혔다.
 남자끼리 눈이 마주치면 멋쩍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 멋쩍음을 집어 던지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알폰소가 의미심장한 표정과 함께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뭐하냐? 너도 같이 몸 풀어라.”
 “넵! 당연하죠! 누구 말씀이라고? 제가 가서 역전시키고 오겠습니다. 하하하.”
 
 알폰소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몸 풀러 옆줄 근처로 나가는 반디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도대체 저 녀석 캐릭터는 뭐지? 종잡을 수가 없군.”
 
 후반전 약 25분 남은 상황.
 드디어 동반 출전이다.
 잠시 후 교체의 순간.
 반디를 향해서 알레한드로가 차갑게 말했다.
 “이봐, 교체선수. 잘 좀 해라. 더 실점하지 말고.”
 “그럴게. 아, 경기 결과도 바꿔 놓을게.”
 이죽거리면서 하는 말에 당당하게 대응하고 뛰어가는 반디.
 서두른다기보다는, 드디어 자신이 왔다고 선언하는 움직임 같아 보였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알레한드로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안 되길 간절히 바라는 시선이랄까?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변화는 매우 빨리 찾아왔다.
 바로 후반전 교체의 시작인 마리오로부터.
 그는 손발을 꽤 오랫동안 맞춘 선수였다.
 ‘앞에는 반디, 오른쪽에는 빅토르…….’
 이미 어디에 갈 건지 시선을 돌리지 않고도 알 수 있으니 패스 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틱, 탁, 틱, 탁.
 순식간에 세 번의 볼 터치가 세 명의 선수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센터라인을 달궜다.
 ‘앞으로 갈게.’
 마주친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며…….
 
 반디는 이제 중앙에서 키핑을 완전하게 해주는 마리오의 동의를 얻어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런 것이 분위기이고 알게 모르게 필드에서 뛰는 모든 선수에게 전염되었다.
 
 “뒤로, 뒤로! 조금 더 뒤로!”
 중앙에 있는 바르셀로나의 2선이 좀 더 밑으로 내려갔다.
 압박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리오와 함께 마드리드의 2선이 올라오니 그에 대한 대응이었다.
 워낙 마리오가 키핑력이 좋아서 쉽게 공을 빼앗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에게 둘 이상이 붙으면 공간을 내줄 수 있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러니 일단 후방으로 물러서는 것을 택할 수밖에.
 이게 마드리드의 좀 더 공격적인 운용이었고, 올 시즌 필승전략이기도 했다.
 같은 전술이었는데, 패스와 키핑이 좋은 마리오와 발 빠른 좌우 윙어 빅토르, 페드로가 있었기에 다른 전술처럼 보였다.
 물론 오늘 페드로는 나오지 못했지만, 좌측에서 뛰는 빅토르만으로 충분히 속도감이 붙었다.
 
 중앙에 포진한 원톱, 반디는 어떤가?
 그는 활동반경이 매우 넓었다.
 그리고 패스받기 가장 좋은 장소로 이동할 줄 알았다.
 위협적인 지역에 머무른다고 치명적인 스트라이커가 되는 게 아니었다.
 어느 위치에 서더라도 골을 넣을 수 있는 이가 바로 위험한 스트라이커였고, 반디는 바로 그에 해당하는 맹수였다.
 “이쪽으로!”
 그래서 그가 포효를 날리며 중앙으로 들어갔을 때, 옆에 붙는 수비수들은 둘 이상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난 1차전도 반디가 나오지 않았었는데, 마치 그가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움직인 것이니 말이다.
 분위기가 다른가 보다.
 반디가 공을 잡으면 안 된다는 본능이 그들을 위협하고 있으니.
 
 그런데 반디의 주변에 두 명의 수비수가 있음에도, 마리오는 그에게 전진 패스를 시도했다.
 눈에 읽히는 공의 흐름이었다.
 그게 비록 가로채기까지 가지는 않을지라도, 반디가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바깥에서 뒤돌지 못하도록 하는 수비의 정석을 이들이 취하고 있었다.
 쉬이이익!
 단 한 가지 특이한 점.
 패스가 매우 강하게 왔다는 것.
 저래서는 받는 이가 불편하리라.
 수비수들의 머리에는 그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반디는 아니었나 보다.
 “좋아!”
 라고 외치며, 오른발을 들었다.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는 수비수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다만 공이 반디의 발밑에 정확히 들어와서 꺾여 들어가는데…
 흔히 공을 흘렸다고 말하는 그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로?
 반디 그 자신이 잡으려고 한 것이다.
 자신이 흘린 공을 잡기 위해서 그는 0.5초도 안 되는 그 순간에 판단했다.
 그리고 공의 속도를 늦춰서 대각선 뒤쪽으로 흘리고 턴 하는 움직임은 그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것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나?
 인간이 아닌 동물적인 움직임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이 장면을 보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이 멍할 지경이었다.
 수비수들은 잘 모를 것이다.
 아니 지금 이 장면을 정확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반디가 쓴 기술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바르셀로나 감독은 알았다.
 그게 단순히 그저 공을 흘린 게 아니었다는 것을.
 정지하고 오른쪽 바깥 발로 차 낸 것이었다.
 그게 물 흐르듯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공을 흘린 것처럼 보였다.
 
 “헉!”
 수비수들의 헛바람이 나왔다.
 순간적인 동작을 따라잡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미 2m 이상 반디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다.
 촤아아아악!
 움직임을 쫓기에는 늦어 버렸기에 한 명이 슬라이딩을 감행했다.
 사실 이렇게 슬라이딩을 하는 것은 반디의 슈팅 모션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인팅이었다.
 모션이 컸지만, 공을 한 번 접어주며 가볍게 슬라이딩을 헤쳐 나갔다.
 그런 다음 나오는 골키퍼를 보는 반디의 눈에 희열이라는 감정이 흘러나왔다.
 그를 지도하는 미구엘이 지금 그의 눈빛을 보았다면 확실히 알 것이다.
 그게 득점에 대한 확신이 생겼을 때 생기는 빛이라는 것을.
 오른발 인프런트 킥이었다.
 반디가 찬 슛은.
 그리고 전후방에 있는 모든 선수가 보았다.
 왼쪽 측면 45도에서 강하게 찬 슛이 커브를 그리고 있는 모습을.
 그것은 파 사이드로 감겨 들어가는 멋진 슈팅이었다.
 슬라이딩한 선수 말고 또 다른 수비수를 앞에 두고 한 슈팅이기도 했고.
 골키퍼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반디의 슈팅 타이밍을 읽지 못하면서 커브를 그리는 그 공을 멍하니 보다가 뒤늦게 몸을 날리는 일 정도?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안 순간에 공은 그의 손에 닿지 않은 곳으로 지나가 버렸다.
 출렁!
 “젠장! 젠장!”
 바닥을 치는 골키퍼.
 수비수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번 실점은 수비수에게 공이 가려진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미 반디가 그것을 노리고 쏘았을지도 모른다.
 ‘서… 설마…….’
 그는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 달려가면서 방금 골을 넣은 맹수가 마리오에게 안기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보면서 바르셀로나의 골키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끝이 아닌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2-2 동점이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20분이고.
 특이사항은…
 아직 반디가 필드 위에서 득점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승부는 이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뛰는 양쪽의 선수들이 달라졌다.
 장군을 부르니 멍군으로 받는 것처럼, 아니 외통수를 피하려고 바르셀로나의 감독 역시 장군을 부르려 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이 교체되었다.
 하나하나가 뛰어난 재능이었다.
 그렇기에 교체선수라고 할지라도 현재 필드에서 뛰었던 선수와 기량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완벽한 조직력에 뛰어난 개인기가 융합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지금 나오는 선수들이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 바로 그 때문에 드는 생각이었다.
 맞불에 맞불을 놓았으니 결과는 어떻게 될지 정말 흥미진진했다.
 오늘 카데테 B의 마지막 경기라서 특별히 참석한 레알 마드리드의 전무이사 로메오가 눈을 번쩍 뜰 정도였다.
 “저기 18번 선수의 이름이…….”
 “에스테반입니다.”
 그의 비서, 카프리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벌써 세 번째 질문한 것이다.
 그만큼 반디의 플레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흠, 지켜봐야 할 선수구먼.”
 “보호해야 할 선수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보호해야 할 선수이기도 하지.”
 “그래서 알폰소가 부탁했나 봅니다. 전 처음에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았습니다. 유망주이지만 신경을 쓰지 말아 달라고 하기에…….”
 그랬다.
 카프리는 얼마 전에 황당한 부탁을 받았다.
 카데테 B의 최종전을 로메오가 관전한다는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알폰소가 그를 만나자고 했다.
 유망주에 관해서 자주 의사소통을 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의문이 들었지만, 그와 만난 카프리.
 알폰소는 하비에르의 비선 계통도 아니고, 로메오에 호의적이지도 않았던 사람이라 만나자던 이유가 매우 궁금했다.
 “왜 그런지 알겠네.”
 “네?”
 “돋보이면 자꾸 파니까 화가 났던 거야. 그래서 관심을 아예 두지 말아 달라고 항의한 거지.”
 카프리는 이제야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직접 말하면 될걸, 알폰소는 왜 그렇게 차갑게 이야기했을까?
 그 답을 지금 알폰소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킬 힘이 없을 것 같아서지.”
 그나마 믿을 만한 코치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솔직히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있어. 저 아이들을 카데테 A로 올리는 사람은 바로 로메오거든.”
 그 말을 들은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폰소는 카프리에게 부탁을 하러 간 게 아니었다.
 경고한 것이다. 이번에도 올리면 레알 마드리드의 장래 10년 이상은 암흑기에 빠지게 될 거라고.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
 단순히 친정 팀에 골 폭격을 하며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우승 트로피와 득점왕 타이틀을 가져간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에 대한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비난, 그리고 상대 팀들의 조롱이 눈에 훤히 보였던 것이다.
 갈락티코 1기 이후에 모습이 그러했다.
 겉으로 나타나기에는 새로운 회장이 경영을 못 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게 아니었다.
 갈락티코 1기를 화려하게 성공하고 은퇴한 선수들을 대체할 자원들을 내부에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2기라고 부르는 이들이 은퇴한다면… 다시 암흑기가 올 수도 있지. 그걸 피하자는 거야.”
 여전히 냉소적으로 말하는 알폰소.
 그런데 그런 그를 요즘 가장 흥분하게 하는 친구가 다시 일을 저지르려고 했다.
 그래서 자리에서 다시 일어난 알폰소를 같이 따라가는 코치.
 그들의 눈에 반디의 플레이가 보였다.
 
 티키타카의 가장 큰 단점은 공 소유에 대한 욕심이었다.
 그리고 가끔 나오는 횡패스가 끊겼을 때, 아직 완성되지 못한 유소년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지금이 그랬다.
 빅토르의 압박, 마리오의 커팅.
 쉬이이익.
 공이 반디에게 연결되며 역습찬스를 만났다.
 바람을 가르는 적토마의 모습이 이와 비슷하리라.
 질풍처럼 상대 진영을 달리는 반디의 모습에 알폰소도 바르셀로나의 감독도 말을 잊었다.
 이미 포워드가 공을 받을 때 노려야 하는 곳을 잘 아는 반디.
 수비 라인의 뒷공간으로 적절히 돌아들어 갔을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의 공간에 아무도 없었다.
 오프사이드를 완벽하게 붕괴시키고 뒷공간을 차지한 자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골키퍼는 나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나가서 각도를 좁히는 짓 따위는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탁, 탁.
 차라리 두 손을 내밀며 스텝을 좌우로 밟았다.
 막겠다는 다짐이었다.
 차세대 바르셀로나의 1군을 지킬 것이라는 기대.
 그가 요즘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의 평가였다.
 그 자신감으로 확실하게 무장하며 반디의 강력한 슈팅을 막으리라.
 슈퍼 세이프.
 지금 여기서 저 맹수와 같은 자의 슛을 막으면서 보여주겠다는 강렬한 투지를 쏘아 보냈다.
 그게 통할까?
 그건 모르겠지만, 최소한 반디는 그가 무슨 짓을 하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맹수는 사냥감이 도망가는 것을 신경 쓴다.
 자신을 막겠다고 덤벼든다면 오히려 ‘웰컴’이라 외치며, 이후에 즐길 포식을 기대할 뿐이었다.
 그래서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들어와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슛을 쏘았다.
 방향을 잡은 골키퍼.
 제대로 예측하긴 했다.
 반디가 쏜 오른발 슛은 대각선으로 들어가서 왼쪽을 향했으니.
 그러므로 골키퍼가 공중에 떠서 공을 터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제대로 된 예측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장래의 최고 골키퍼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반디만 없다면 말이다.
 그의 앞에 있는 반디가 존재하는 한, 그는 천적이라는 말을 평생 들으며 트라우마에 휩싸이리라.
 지금 이 장면이 기억에 박히는 첫 순간일 것이다.
 툭.
 손에 닿았지만, 빠른 속도와 강력한 힘에 공은 더 밀고 들어갔다.
 굴절이지만 사실 속수무책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마저도 반디의 예측 범위에 있었을 것이다.
 정지 화면 몇 개가 지나간 것을 본 것처럼, 그물을 출렁거릴 때까지 선수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앞으로 지나간 영상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머릿속에 재생되고 있었다.
 특히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은 다시 리플레이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리라.
 끔찍한 기억일수록 끄집어내기는 싫을 테니.
 물론 누군가에게는 계속해서 되뇌고 싶은 이름일 것이다.
 지금 득점을 올리고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저 동양계 골잡이를 보면서.
 
 그게 바로 로메오였다.
 “에스테반! 에스테반이고 했지?”
 흥분한 로메오의 목소리에 카프리의 대답이 즉각적으로 들려왔다.
 “그… 그렇습니다, 이사님.”
 “에스테반이라고… 에스테반! 허허허.”
 로메오는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아직 치매가 올 나이는 절대 아니었는데.
 기뻐서 그랬다.
 얼마 만에 발견한 재능일까?
 아니 비교를 할 수 있을까?
 과거에 그 수많은 재능이 과연 지금 뛰는 반디의 재능과 비교나 될까?
 역대 최고라 부를 수 있으리라.
 지금처럼 쭉 성장해주고, 행운이 따라서 좋은 기회만 보장된다면.
 이 부분에서 그는 미소가 멈췄다.
 “좋은 기회라… 좋은 기회……. 이봐, 카프리.”
 “네, 이사님.”
 “그에게 좋은 기회를 주지 말라고 했다고?”
 “네, 알폰소는 그렇게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 말투도 전달식이었습니다.”
 “전달식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가 말한 것은 ‘좋은 기회를 주지 말라고 하더군요.’, ‘차라리 관심을 끊어주시는 게 좋겠다고 말하던데요?’와 같이 누군가의 말을 전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소년이 그렇게 말했다는 건가?”
 “그건 아니겠죠. 제 느낌으로는 저 소년을 키우는 누군가가 존재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왜 지금 하는 건가? 그렇다면 정말 훌륭한 지도자 아닌가? 그게 누군가?”
 살짝 역정을 냈다.
 그가 발견한 최고의 재능에 묻힌 지도자.
 반디가 성장하기까지 그 훌륭한 지도자가 함께했으리라.
 그렇다면 반드시 중용해야 한다.
 더 많은 재능을 키워낼 수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찾아내라, 누군지 알아내서 나에게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이사님.”
 이들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그리고 경기 역시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남은 것은 카프리의 새로운 목표.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늘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는 게 있었다.
 미구엘의 경우도 마찬가지.
 로메오와 카프리의 대화가 더 일찍 시작되어, 그를 빨리 만나봤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 반디의 놀라운 눈동자를 보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반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니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하하하! 녀석, 단단히 놀랐나 보구나.”
 “빨리 말씀해주세요. 떠나신다고요?”
 “그래, 너도 알다시피 올 시즌이 마지막 계약 기간이었잖아.”
 “재계약을 안 하셨다는 말씀인가요?”
 의문을 가득 담은 반디의 얼굴.
 조각미남인 것은 여전했지만, 웃음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바르셀로나 카데테 B를 꺾고 스승에게 자랑하려고 한달음에 달려왔건만…
 “재계약을 제안하지 않았는걸?”
 “그럴 리가요? 설마, 그럴 리가 없어요.”
 “하하하! 에스테반…….”
 그는 잠시 반디의 스페인식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눈빛 안에는 미묘한 감정이 남겨 있었다.
 무언가를 남겨두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나를 높게 평가해주는 것은 우리 반디밖에 없구나. 그런데 네가 아는 것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란다.”
 “아니요. 대단한 사람 맞습니다. 팀이 제대로 된 눈을 갖지 못한 것이라고요.”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단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이제 미구엘의 표정도 바뀌었다.
 진한 아쉬움. 자신의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좌절감. 그래도 키운 제자 하나가 제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안도감.
 이 모든 것이 섞여 있는 얼굴이었다.
 “계약 만료 6개월 전에 한국에서 연락이 왔단다. 올리케 감독님의 소개를 받았다며, 나를 기술 코치로 영입하고 싶다고. 신생팀이지만, 열정이 있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국이라고요?”
 “그래, 한국. 국가대표 감독이 예전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 생활을 하셨던 분이거든. 대단하신 분이지. 유소년에 대한 철학과 그것을 관철하는 능력. 내가 배울 분이야. 우연히 알게 된 것은 나에게는 정말 행운이었어.”
 반디는 이해할 수 없었다. 행운이라니? 그럼 자신은? 자신의 행운은 어쩌란 말인가?
 “저에게는 코치님이 행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신다니…….”
 “내가 가르칠 것은 다 끝났어. 이제 진짜 할 게 없다.”
 “아니요. 끝은 없어요. 코치님의 존재 자체가 바로 저에게는 배움의 연속이란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미구엘은 살짝 놀랐다.
 이제 십 대의 소년이었다.
 생각하는 것이 약간 다르다 느꼈는데, 확실히 점점 어른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것도 급격하게.
 어쩌면 이 소년은 이미 레알 마드리드의 팀 내 정책을 완전히 꿰뚫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까 알폰소에게 전화가 왔을 때 직감했다.
 다음 시즌에 카데테 A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단다.
 이미 자신들이 꾸미고 있는 일을 다 눈치챈 것 같다며,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그런데 말이다, 너도 너의 꿈이 있지만, 나도 나의 꿈이 있단다. 여기서 그 꿈을 이루려고 했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나의 최대 성과는 반디, 너잖니?”
 “하지만… 하지만…….”
 “앞서 말했지만, 이미 기술적으로 가르칠 것은 없단다. 나머지는 전술이나 멘탈과 같은 것인데, 그 부분은 오히려 알폰소가 나보다 더 낫단다. 그의 밑에서 축구 경기를 해라. 그리고 성장해서 보자. 내가 뭐 전쟁 나가는 것도 아닌데… 얼마 안 있어 다시 볼 거잖아. 하하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그리고 헤어짐이 있으면 다시 만남이 있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지만, 아무도 만나는 동안은 이별에 대해서 약속하지 않는다.
 때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헤어지는 것 자체를.
 지금의 반디가 그랬다. 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다짐했다.
 다시 만날 날을 반드시 앞당기겠다고.
 이게 반디의 인생에서 어떤 변수를 가지고 오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 자신조차도.
 
 <『퍼스트 터치』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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