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시력을 잃었다'고 하면, 눈 앞이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경우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시력이 아주 심하게 나빠져서 형체를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뿐.
희끄무레한 무언가 정도는 보이기 마련이다.
진짜로 시야가 깜깜해져서 안 보이게 되면 운이 아주 나쁜 것이다.
불행히도 나는 둘 다 경험해봤다.
전자는 과거형으로, 후자는 현재형으로.
"로완 선배, 이쪽이에요!"
단발의 여자 헌터가 작게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제와서 후배의 힘을 빌려서 공략팀에 합류하다니.
솔직히 부끄럽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나, 임로완은 만년 C랭크의 헌터.
만년이라고 해봤자 경력은 꼴랑 6년.
그동안 쌓아둔 빈약한 인맥은 눈 수술과 입원 기간 동안 거의 다 날아가버렸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는 소중한 인맥 중 하나가 바로 눈앞의 후배님이다.
나는 조금 머쓱한 기분으로 인사했다.
"누구세요? 제가 눈이 잘 안 보여서..."
"아, 진짜.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라구요! 눈은 좀 괜찮은 거 맞죠?"
"괜찮아. 사람 눈은 2개니까."
병명은 망막박리.
사소한 건 대충 넘어가고, 결과만 말하겠다.
나는 지금 오른쪽 눈이 제대로 안 보인다.
시야가 반절 가까이 날아가서 왼쪽 눈을 감으면 글자를 읽는 것도 어려울 정도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안 보일 예정이다.
신기하게도 멀쩡한 왼쪽 눈이 알아서 시야를 보정해주기 때문에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던전에서의 전투라면 어떨까?
오늘은 그걸 알아보기 위해서 후배의 팀에 끼어들기로 했다.
내 자랑스러운 후배님, 서유림은 여전히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피차 바빴는지라 퇴원 후에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팀장을 만나기 전에 빠르게 안부를 확인했다.
"오른쪽 눈은 완전히 회복이 안 됐다는 거죠?"
"오른쪽은 치료가 늦어서 앞으로도 가망이 없대. 그나마 시야가 반절이나 남은 게 다행이지."
"치유 능력 같은 건 못 써준대요?"
"어림도 없대."
나는 병원에서의 대화를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헌터들의 치유능력이라는 게 놀랍긴 해도, 진짜 손만 대면 낫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수술과 비슷한 과정이 필요하다.
"병원에 대기자가 산더미라나? 나같은 경증 환자는 능력을 이용한 치료를 받을 수 없대."
"한쪽 눈이 안 보이는데 경증이라니..."
"그 병원에서 중증 소리를 들으려면 눈이 아예 뭉개져야 하더라고. 내 옆자리 환자가 그랬지."
수술이 어중간하게 성공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아예 실패를 해버려서 눈이 여전히 안 보였다면 의료계 헌터에게 조치를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원에는 나보다 훨씬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많이 있었고, 의료 헌터의 숫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국 완치되지 못한 채 퇴원하게 된 것이다.
"그... 그래도 헌터 활동은 계속 할 수 있죠?"
"글쎄. 이제부터 봐야지."
사실은 여기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결론이 나와버렸다.
나는 때마침 다가온 팀장과 즉석 면접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유림 씨의 대학 선배시라구요? 눈 때문에 입원하셨다고 들었는데, 이젠 괜찮으신 건가요?"
"안심하세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3번밖에 안 부딪혔으니까."
"... 예에?"
"선배!"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한쪽 눈이 안 보이면 균형감각에 문제가 생긴다.
공략팀장은 내 설명에 정중히 말했다.
"로완 씨는 염동력 헌터셨죠?"
"네."
"염동력은 조준이 중요할텐데... 죄송하지만 저희팀에서 활동하시긴 힘들 것 같습니다."
"이해합니다. 좋은 사냥 되세요."
나도 깔끔하게 포기했다.
만약 던전에서 실수를 저질러서 팀원에게 상처라도 입히면 어떻게 하는가.
이놈의 눈으로 전투는 무리인 것 같다.
적어도 제 몸은 가눌 수 있게 된 뒤에 해야겠지.
나의 후배님, 서유림은 울상을 지은 채 나를 붙잡고 성을 냈다.
"지금 장난해요? 이런 때엔 거짓말이라도 해야죠!"
"거짓말 했어. 사실은 5번 부딪혔거든."
"선배 진짜..."
"기껏 소개해줬는데 미안해. 내가 너한테 피해라도 주면 어떻게 해? 사냥은 좀 더 익숙해진 뒤에 해야겠어. 사냥 잘 해."
걱정스런 표정의 서유림을 놔두고 몸을 돌렸다.
사실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것저것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자 급격히 힘이 빠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안 부딪히려고 신경써서 그런가?
결국 아직 밤까진 한참 남아있는데도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회복 중에 하도 많이 자서 더 졸리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염동력으로 상하차라도 해봐?'
답도 안 나오는 고민을 하며 멍하니 누워있자 금방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미련없이 눈을 감았다.
@
"외신이시여... 일어나십시오! 외신이시여!"
뒤늦게 눈을 뜨자, 처음 보는 세계였다.
조금 거창한 표현이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무릎에도 미치지 않는 성벽과 발톱만한 사람들.
이국적인 복장의 사람들은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영문모를 언어로 지껄이고 있다.
마치 소인국 테마파크에 온 것 같은 기분에 기분이 멍해졌다.
"이건 또 뭐야?"
내가 자고 있던 사이에 집에 던전이라도 열린 건가?
이렇게 작은 던전은 지금껏 본 적이 없는데?
너무 놀라서 가만히 선 채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자, 성벽 위에서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녀석이 외쳤다.
다만 외국인이 어눌하게 말하는 듯, 발음은 썩 좋지 않다.
"한쪽 눈의 위대한 외신 로완이씨여! 부디 악룡을 물리쳐 이 나라를 구해주십시오! 그대의 미천한 종들이 간절하게 비나이다!"
다들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와중에, 특히나 이상한 복장이다.
나는 고개를 조금 숙여서 녀석을 똑바로 봤다.
얼굴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들만큼 작았다.
"악룡? 드래곤을 말하는 건가?"
"그... 그렇습니다! 그 놈은 마법을 터득하고 나서 난폭해져서 선량한 우리들은 곤란해졌습니다!"
"아니, 내가 드래곤을 어떻게 잡아?"
작게 코웃음을 치는 와중에 호흡이 살짝 막혔다.
하지만 나쁜 징조는 아니다.
이제야 눈치챈 건데... 이 던전, 마력 농도가 장난 아니다.
원래 헌터는 던전에 들어와야 성장이 가능한데 이곳은 던전 중에서도 특출난 수준이다.
'뭐지 이 던전? 소인국 던전이라고 불러야 하나?'
"한쪽 눈의 외신 로완이여! 우리들의 희망은 그대뿐입니다!"
"외신?"
"크롸아아!!"
생소한 단어에 망설이던 찰나, 어디선가 흉포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흑색의 용이 빠르게 날아오는 것을 보곤 그나마 잘 보이는 눈을 부릅떴다.
용족은 원래 예외없이 S급 헌터들이나 잡는 최상급 몬스터인데, 저 녀석은...
"작네?"
아무리 잘 쳐줘봤자 내 무릎보다 키가 작다.
몸이 길쭉한데도 체적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
뒤늦게 나를 발견한 흑룡이 빠르게 몸을 돌렸으나, 나는 반사적으로 녀석을 붙잡아버렸다.
놈의 길쭉한 모가지가 아주 손쉽게 손에 들어온다.
"끼에에엑!"
"우왓!"
꽈악!
놀라서 손을 꽉 움켜쥐자 녀석이 몸을 크게 비틀다가 축 늘어졌다.
용의 시체를 든 채 멍하니 서 있는 내게 미친 듯한 환호성이 쏟아졌다.
대부분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언어이지만 드문드문 이해가 되는 게 섞여있다..
"겨, 경배하라! 외눈의 외신 로완께서 악룡을 물리치셨다!"
"위대한 아버지! 당신의 이름을 목이 닳도록 외치겠습니다!"
"됐으니까 얼른 돌려보내줘. 엇..."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자마자, 내 몸이 급격히 희미해졌다.
나는 흑룡의 시체와 함께 순식간에 침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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