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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불행을 보는 재벌집 손자

1화 이곳에 온 이유

2023.07.05 조회 67,090 추천 728


 1화
 
 (이곳에 온 이유)
 
 
 어둠을 헤치고 각진 모양의 차 한 대가 느릿느릿한 속도로 텅 빈 도로를 달렸다.
 
 안전을 넘어 소심함이 느껴지는 모습은 운전자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헉!”
 
 그때. 갑자기 조수석에서 들린 신음에 운전대가 크게 움직였다.
 그리고 차도 운전대를 따라 크게 좌우로 흔들렸다.
 
 주변에 다른 차가 있었다면 사고가 났을지 모를 정도의 움직임을 보였던 차는 비상깜빡이를 켠 채 길가에 멈춰 섰다.
 
 “석호야. 괜찮니?”
 
 운전대를 잡고 있던 김석호의 아버지가 급히 조수석을 돌아보자 이제 15살 정도 됐을 남자아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김석호는 자기가 꿈을 꿨음을 깨닫고 식은땀을 닦아내며 대답했다.
 
 “아··· 괜찮아요. 깜빡 잠이 들었었나 봐요.”
 “아니다. 그럴 수 있지. 무슨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니?”
 “그냥··· 예전 꿈을 꿨어요.”
 
 김석호는 아버지이자 태양건설의 상무인 김우재의 안타까워하는 시선에 꿈을 꿨다며 얼버무렸다.
 
 김우재는 그런 김석호의 말에 더욱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가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걱정까지 하다 보니 악몽을 꿨나 보구나. 몇 시간만 꾹 참자···. 아빠도 그럴 테니까.”
 
 그렇게 차가 다시 출발하자 김석호는 운전하는 아버지인 김우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창밖을 바라보다 생각에 잠겼다.
 
 김석호는 분명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55살의 나이에 길거리에서 노숙하다가 죽었던 것이 김석호의 머리에 생생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다시 눈을 떴을 땐 운동을 하다 다쳐 사흘 동안 의식을 잃었던 15살의 김석호로 돌아와 있었다.
 
 그때가 벌써 석 달 전으로 김석호는 다시 돌아온 그날부터 다시 한번 15살의 나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15살이라니···’
 
 김석호는 창밖을 바라보고 석 달 동안의 시간을 되짚어 봤다.
 석 달 동안 김석호는 이건 꿈이 아니며, 현실이었고, 과거의 자기 맞는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신이 나에게 내린 축복인가?’
 
 재벌가에서 태어난 김석호는 전형적인 재벌 3세였다.
 그러나 운전을 하고 있는 아버지인 김우재가 변변치 못한 계열사를 상속받은 뒤 그것조차 형제들에게 뺏긴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철저하게 버려진 뒤 55살에 삶을 마감했을 땐 길거리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채 쓸쓸히 홀로 숨을 거둬야만 했던 노숙자에 불과했다.
 
 재벌가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것을 뺏긴 인생.
 55살에 죽은 김석호의 인생을 짤막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그렇게 지옥 같았던 시절을 경험한 김석호는 다신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바꾸어 승자의 위치에서 지난 시절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신이 내린 축복이든, 악마가 준 축복이든 상관없어. 나는 똑같은 삶을 살지 않을 거야.’
 
 김석호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한 첫 단추를 곧 큰아버지 제사가 펼쳐질 청운동 할아버지 댁에서 꿰기로 마음먹었다.
 
 ***
 
 김우재와 김석호가 탄 차가 커다란 철문 앞으로 다가가자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철문이 기다렸다는 듯이 열렸다.
 김석호는 철문을 통해 저택 안으로 들어가면서 잠시 철문을 바라봤다.
 
 과거의 아버지인 김우재가 죽고 김석호는 저 문을 넘기 위해 몇 번이나 이곳을 찾았었다.
 그러나 돌아가라는 말만 들려올 뿐 김석호에게 문을 넘는 것을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쉽게 문이 열린 철문을 바라보자니 김석호는 자신이 15살의 나이로 돌아왔음을 새삼 깨달았다.
 
 “어서 오세요. 우재 도련님.”
 
 김석호는 들려오는 말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나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50은 넘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저택에 들어온 김우재를 향해 인사하고 있었다.
 
 “홍 기사님. 이야기 들었습니다.”
 
 김우재는 상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아드님이 사고를 당했다고요? 많이 다친 겁니까?”
 “도련님께서도 들으셨군요.”
 
 홍 기사는 김우재의 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이내 어두운 표정을 지우고 애써 태연한 척 김우재를 향해 말했다.
 
 “그놈의 자식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그만··· 아휴.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참에 오토바이가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았다면 다친 것도 나쁘지 않죠.”
 “그래도 다 나으면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다쳐서 제일 속상한 건 본인일 테니까요.”
 
 김우재의 말에 홍 기사는 김우재의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왼손으로 김우재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제 아들이 아니라 우재 도련님이 더 걱정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여려서야···”
 
 잠시 말끝을 흐린 홍 기사는 마당 너머에 환하게 불이 켜진 집을 향해 김우재를 살짝 밀었다.
 
 “어서 들어가세요. 회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다른 도련님들도 모두 우재 도련님만 기다리고 계세요.”
 “네. 그럼 홍 기사님. 다음에 마저 이야기해요.”
 “알겠으니 어서 들어가세요. 이러다 불호령이 떨어질지도 몰라요.”
 
 김석호는 홍 기사가 자리를 뜨자 김우재에게 질문을 던졌다.
 
 “홍 기사님 아드님이 아프데요?”
 
 김우재는 나란히 걸으며 물어오는 아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얼마 전에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너도 오토바이 같은 거 탈 생각하지 말아라. 가뜩이나 너는··· 지금 몸도 다 낫지 않았으니 더욱 조심해야 해.”
 
 김우재가 김석호를 돌아보고 안쓰러운 표정을 짓자 김석호는 그런 김우재의 표정에 밝게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아무렇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조금 전 식은땀을 흘리던 것을 보니 혹시 모를 후유증이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내일이라도 같이 병원에 가보자꾸나.”
 
 괜찮다는 김석호의 말에도 김우재는 안심이 안 되는 듯했다.
 김석호는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고 싶은 듯한 김우재의 등을 살짝 밀며 말했다.
 
 “알겠으니 어서 가기나 하세요. 벌써 12시가 넘었어요.”
 
 12시가 넘었다는 말에 김우재는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김석호는 김우재가 움직이자 고개를 돌려 멀어져 가는 홍 기사의 뒷모습을 돌아봤다.
 
 ‘저렇게까지 색깔이 짙게 보이면 얼마 안 걸린다는 소리인데···’
 
 홍 기사의 등 뒤로 보이는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색 기운을 보며 김석호는 혼자 생각했다.
 
 다시 돌아온 김석호의 눈에는 언제부턴가 이상한 것이 한 가지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색 기운.
 
 사람과 물건을 가리지 않고 검은색 기운 같은 것이 김석호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평소였다면 눈에 보이는 이상한 것에 신경을 곤두세웠을지도 몰랐다.
 병원을 찾아 다니며 자기 눈에 보이는 이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김석호는 그럴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과거로 돌아온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뀐 상황을 이해했을 땐, 더는 눈에 보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검은 기운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을 통해 사람과 사물에 보이는 검은색 기운이 불행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닥칠 운명과 같은 것일 테고, 사물이라면 그것이 품고 있는 안 좋은 기운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홍 기사 아들이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김석호였다.
 
 ‘저 정도면 사흘쯤 되려나?’
 
 사람과 사물 모두 검은색 기운을 뿜어냈지만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물과 달리 사람에게는 각기 보이는 기운의 짙기가 달랐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짙기의 다름은 그 사람에게 닥칠 불행의 시간을 말해준다는 것을 지난 석 달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사흘 정도 뒤면 홍 기사에게는 정확히는 그 아들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질 테고 그렇게 닥칠 불행을 저 검은색 기운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김석호는 홍 기사에게 닥칠 불행에 안쓰러운 마음을 가졌지만 오래 간직하지는 않았다.
 다시 돌아온 그에게 남의 불행을 신경 써줄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들어가자.”
 
 그렇게 문 앞에 도착한 김우재는 김석호를 향해 말하고는 문을 직접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집안에서는 벼락같은 소리가 들렸다.
 
 “너는 이제서야 오는 거냐? 빨리 좀 다녀라.”
 
 김우재는 들려온 소리에 움찔했다.
 
 그러나 김석호는 김우재와 달리 들려온 소리에 옛 기억이 떠오르면서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울분을 힘껏 억눌렀다.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자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 또한 길바닥에서 인생을 마감하게 만든 존재들이 김우재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빨리 와. 너 때문에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기다려서야 되겠냐?”
 “오빠는 이런 날도 늦어야겠어요?”
 “형님. 큰형님 제삿날입니다. 미리 와서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까?”
 “차라리 오지 말지 그랬냐? 아니면 뭐하나 주워 먹을 게 있나 싶어서 온 거냐?”
 
 김우재는 온갖 비난과 비아냥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숙인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그런 김우재를 2층에서 바라보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소리를 질렀다.
 
 “다섯째가 왔으니 시작해라.”
 
 김석호는 소리가 들린 곳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태양그룹을 지금의 자리로 올린 김대환 회장이 못마땅한 얼굴을 한 채로 서 있었다.
 
 김석호는 김대환 회장을 비롯하여 김우재의 형제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자 자신이 과거로 되돌아온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침착하게 분노를 가라앉힌 김석호는 인생의 새로운 첫걸음이 될 순간을 위해 집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댓글(41)

gr*****    
재밌네요 잘 읽고 갑니다. 선호작 추천 꾸욱!!^^
2023.07.11 17:15
허전함    
한달만에 신작 시작하셨네요 잘되시길 바래요
2023.07.15 10:36
산속다람쥐    
잘보고갑니다
2023.07.20 19:12
악지유    
다시 돌아온 김석호의 눈에는... 과거로 회귀한 감석호의 눈에는... 후자가 더 이해하기 편한듯. 그리고 15세의 아들이 있는 성인인데 도련님 이라는 호칭은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2023.07.24 05:57
세비허    
재밌게 읽고 갑니다
2023.07.30 09:10
OLDBOY    
잘 보고 있습니다.
2023.08.01 20:36
한량무한    
김우재가 아버지는 맞는 거죠? 3인칭 시점의 글인가?
2023.08.01 20:42
안마셔도개    
국밥집 첫째아들 드라마 도압부 같네요
2023.08.02 05:49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3.08.02 22:05
소소윤    
아프데요? -> 아프대요?
2023.08.0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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