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번째 여자
2021년 신축년(辛丑年) 현재 전 세계에는 약 15억 명의 환생자가 살아가고 있다.
환생자는 크게 2종류가 있다.
순리환생자와 역리환생자다.
순리환생은 순리에 따른 자연적인 환생이고, 역리환생은 그 반대로 순리를 역행하여 강제로 한 환생이다.
환생자의 대부분은 순리환생자이고 소수의 역리환생자들은 어떤 목적을 지니고 환생되었기 때문에 환생잡이의 사냥감이 되는 운명이다.
순리환생자는 6종류가 있다.
제1환생자는 전생의 기억이 전혀 없다.
제2환생자는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
제3환생자는 여러 번 10번 이하 환생을 했다.
제4환생자는 수십 번 환생하고 약간의 신통력을 지녔다.
제5환생자는 환생잡이 즉, 헌터이며 초자연적 존재다.
제6환생자는 환생잡이 왕 즉, 천존이며 신계(神界)에 올랐다.
세상의 환생자 절대다수 99%는 제1환생자들이다.
제2환생자는 천 명 중에서 1명에 불과하다.
제3환생자는 만 명 중에서 1명뿐이다.
제4환생자는 천여 명 안팎이다.
제5환생자는 세계 중요국가에 한 명씩 44명이 존재한다.
제6환생자는 천상천하를 통틀어 한 명뿐이다.
***
1920년 초봄 어느 날 전 세계의 모든 환생잡이들이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로 인해 하루에 수백 명씩 생기는 역리환생자들을 잡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환생잡이들의 왕인 천존이 잠적하자 천존의 부하 44명의 환생잡이들이 사라진 것이다.
환생잡이들이 파업했다.
***
쿵!
“우웃!”
곤하게 자고 있던 현우는 단단한 곳에 묵직하게 등부터 떨어지는 충격에 눈이 번쩍 떠졌다.
‘윽··· 뭐야?’
현우는 누운 자세로 급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직 어두컴컴한 하늘과 별들이 보였다.
등이 아픈 건 모르겠지만 조금 선선했다.
현우는 잠이 확 깨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여긴 또 어딘가?’
뿌아아아앙!
“엇?”
그때 갑자기 고막을 터뜨리는 듯한 굉음이 들려 와 현우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콰다다다다-!
그다음에는 엉덩이 아래에서 요란한 소리가 터지며 현우의 몸이 마구 떨렸다.
“으앗! 도대체 무슨 일이야?”
어이없게도 그는 달리고 있는 기차 지붕에 떨어진 것이다.
저 앞쪽에 기차의 첫 칸이 보였다.
지붕의 배출구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서 어두운 하늘로 흩어지고 있다.
디젤 기관차인 모양이다.
KTX와 SRT가 대한민국 곳곳을 쌩쌩 달리는 판국에 디젤 기관차가 굴러다니는 곳은 강원도나 경상북도의 산골뿐이다.
뿌아아아앙!
또다시 귀 떨어지는 기차의 경적이 울렸다.
쿠다다다당!
이번에는 기차가 긴 철교를 우당탕거리며 지나고 있어서 굉음이 나는 것이다.
아마 기차가 철교를 지날 때는 요란한 경적을 울리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이런 괴상망측한 일이 이달 들어서 벌써 3번째나 현우에게 일어나고 있다.
현우가 자기한테 일어난 일을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다들 꿈을 꾸었다든가 헛소리라면서 웃는다.
하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은 제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울 원룸 집에서 잘 자고 있었는데 눈을 뜨니까 특급 호텔 방이나 비행기 일등석, 아니면 지금처럼 달리는 기차 지붕 위에 떨어졌다는 말을 대체 누가 믿겠느냐는 말이다.
덜컹! 덜커덩!
현우는 시속 60km 속도로 달리는 기차 위인데도 벌떡 일어나 두 발로 우뚝 섰는데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올해 들어 1월부터 4월까지 한 달에 한 번씩 네 번.
그리고 이번 5월 들어 두 번이나 경험한 바에 의하면, 지금처럼 자다가 호출된 상황에서의 현우는 굉장한 초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현우는 조금은 불안해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과연 이번에는 무슨 일이냐?’
그런데 기차가 달리고 있는 주변에는 숲과 강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여섯 번을 돌이켜 봤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분명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편히 자고 있는 현우를 이곳으로 불렀을 것이다.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어떤 존재가 말이다.
문득 오른쪽을 보던 현우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달리는 기차 오른쪽 300m쯤에는 끝없이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수평선 너머에서 시뻘건 태양이 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바다라고?’
여태껏 여섯 번이나 여기저기 불려 다녔지만, 바다에 오긴 처음이다.
그때 현우의 머리 위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졌다.
“아아악-!”
“······?”
현우는 움찔 놀라서 급히 위를 쳐다보았다.
“꺄아아-!”
조금 밝아진 하늘 높은 곳에서 한 여자가 붉은 치마를 나부끼며 현우를 향해 곧장 떨어지고 있었다.
“뭐, 뭐야 저건? 어떻게 하지?”
현우는 위를 쳐다보면서 당황했다.
여자가 그를 향해 똑바로 추락하고 있기 때문에 피하든가 받든가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평소의 졸장부 현우라면 무조건 피한다. 피하지 않으면 깔려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여섯 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이런 상황에서 현우는 무시무시한 초능력이 생겼을 것이니까 두 팔로 여자를 솜뭉치처럼 가볍게 받을 수가 있다.
말하자면 이런 경우에만 슈퍼맨이고, 저 여자를 구하라고 그를 이곳으로 부른 것이다.
“제기랄!”
현우는 투덜거리면서 두 팔을 내밀어 거리 조절을 했다.
그러나 움직이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이 여자는 그가 서 있는 곳으로 정확하게 추락하고 있다.
파라라락!
여자가 총알처럼 빠르게 추락하며 치마가 펄럭이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현우의 심장이 콩알처럼 오그라들었다.
하필 그 순간 내가 저 여자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터억!
“꺄악!”
현우는 두 팔로 여자를 가뿐하게 안았고, 충격 때문에 여자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여자라고 해도 성인 어른이면 무거울 텐데 새털처럼 가볍다.
이런 상황 때마다 생기는 현우의 초능력 덕분이다.
현우는 여자를 받고서도 흔들림 없이 우뚝 서 있다.
현우는 여자를 살펴보려고 하다가 머리 위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그가 급히 위를 쳐다보자 하늘에서 정장을 입은 3명의 남자가 다이빙 자세로 현우를 향해 빠르게 하강하고 있다.
그런데 남자들이 아래로 쭉 뻗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검은색의 권총이다.
‘총인가?’
평소의 현우는 퇴근해서 집에 귀가하다가 컴컴한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길고양이하고 마주치기만 해도 겁먹어서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새가슴이다.
그러나 지난 여섯 번의 판타지 같은 경험은 그의 간덩이를 잔뜩 키워놓았다.
그 여섯 번의 경험이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다는 교훈을 주었다.
‘튀자!’
이럴 땐 삼십육계 도망이 최고다.
부딪쳐서 싸우면 이길 자신이 있지만, 싸우고 자시고 시간을 끄는 것은 하수들이 하는 짓이다.
꿩 잡는 게 매다. 이 여자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안고 도망쳐서 살리면 그만이다.
타앗!
그는 여자를 안은 채 기차 앞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는데 기차보다 더 빠르다.
지난 여섯 번의 경험상 일단 그가 달리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쫓아온다. 그 정도로 빠르다.
또한 그는 총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피하거나 막을 수 있으며, 만약 싸우려고 들면 적수가 없다.
초능력의 극한을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어쨌든 세상에서는 그런 걸 ‘무적’ 혹은 ‘절대’라고 부를 것이다.
최소한 지금까지 여섯 번은 무적이었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그 여섯 번의 경험을 맹목적으로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허망한 꿈 같은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정말 현실처럼 생생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현우는 달리면서 힐끗 위를 쳐다보았다.
3명이 방향을 꺾어서 현우가 달리고 있는 기차 앞쪽을 향해 송골매처럼 빠르게 내리꽂혔다.
현우는 속도를 더 높여서 달렸다. 그런데도 숨이 차거나 힘들지 않고 그저 편안하다.
쌔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다. 그들보다 더 빨리 도망치면 싸울 일이 없다.
타타타탕!
뒤쪽 허공에서 연달아 총소리가 콩 볶듯이 터졌지만 현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총알에 맞지 않을 것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총알이 그의 몸에 닿기 전에 퉁겨지기 때문이다.
3명의 남자는 현우 앞에 내려서려고 했으나 현우가 워낙 빠른 탓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뒤쪽에 내려섰다.
그들은 기차 지붕에 내려서자마자 전력으로 추격하면서 권총을 쏴댔다.
타타타타탕!
기차 첫째 칸 지붕에 도달한 현우는 전방 허공에 가로로 뻗어 있는 다리를 향해 솟구쳤다.
슉!
그것으로 추격자 3명을 간단하게 따돌렸다.
3명의 남자는 현우가 갑자기 다리로 뛰어오를 줄은 몰랐기에 적잖이 당황해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기차가 다리 아래를 통과해 버렸다.
3명의 남자도 달리는 기차에서 다리로 뛰어오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도약할 준비가 필요하다.
더구나 이미 기차가 다리 아래를 지나쳐 버린 경우에는 절대 뒤쪽의 다리 위로 솟구치지 못한다.
기차 지붕의 3명의 남자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다리를 착잡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다리를 수직으로 통과하여 위로 10m쯤 더 솟구쳤다가 하강하던 현우는 깜짝 놀랐다.
빠아앙!
다리 위는 2차선 도로인데 마침 트럭 한 대가 달려오다가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현우를 발견하고 급히 경적을 울리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현우는 무섭게 달려오고 있는 트럭을 쳐다보면서도 그저 덤덤한 표정이다.
빠아아앙!
끼아아악!
트럭은 아스팔트에 구불구불 구렁이 같은 스키드마크를 20m나 만들며 중앙선을 반이나 넘고서야 간신히 정지했다.
핸들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트럭 기사는 고개를 들고 앞창을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없다.
또한 앞창이 깨지지 않았으며 피가 튀지도 않았다.
“으으으······.”
트럭 기사는 헛것을 본 것 같아서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으으··· 뭐야? 귀신이었나?”
트럭을 피한 현우는 여자를 안고 2차선 인도를 걸어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어디쯤인가?’
트럭에서 내린 기사가 두리번거리다가 길 건너에서 걸어가고 있는 현우를 발견하고 멍한 얼굴이 됐다.
“우왁! 어··· 어떻게 된 거야······?”
***
현우는 시골 지방도로의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걸음을 멈추고 표지판을 쳐다보았다.
“강구항?”
표지판의 왼쪽 화살표에는 ‘달산면’, 오른쪽은 강구항, 그리고 가운데는 ‘화전리’라고 적혔다.
그러니까 현우가 있는 이곳이 화전리라는 뜻이다.
그러자 현우의 머릿속에서 구글맵보다 더 정확한 지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것 역시 이런 상황에만 나타나는 초능력의 하나다.
“그럼 여기가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화전리라는 건가?”
현우는 일단 여자를 정류장 긴 나무 의자에 눕혔다.
“아······.”
때마침 여자가 눕히자마자 깨어났다.
여자는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아앗!”
3명의 남자에게 쫓기던 마지막 기억 때문에 놀란 모양이다.
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우뚝 서서 여자를 응시했다.
22~23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는 얼굴이 계란형에 창백할 정도로 흰 살결과 커다란 눈을 가졌다.
백합을 닮은 여자에게선 고귀한 중세유럽 귀족의 기품이 물씬 풍겼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인이고 단지 기품이 그렇다는 것이다.
현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 낯이 익은데······.’
여자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누구죠?”
“아가씨를 구한 사람입니다.”
“아······.”
그녀의 눈에 두려움이 어렸다.
“아··· 아까 그 사람들은······.”
“집이 어딥니까?”
현우는 여자와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 여자를 구해 주는 것이 이번 임무라면 얼른 끝내 버리고 싶다.
그래야지만 빨리 집에 갔다가 직장에 출근할 수가 있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쫓겨나고 싶지는 않다.
누가 무엇 때문에 현우를 이런 일에 끌어들였는지 모르지만, 기껏 구한 여자를 경상북도 낯선 시골에 모른 척 버려두고 갈 수는 없다.
“서울이에요.”
여자는 여기가 어딘지 알아보려는 듯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대답했다.
“일단 갑시다.”
“어디로요?”
“서울입니다.”
여자가 해말간 얼굴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나한테 궁금한 게 없나요?”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현우는 여자에 대해서 조금도 궁금하지 않을뿐더러 여자와 엮이는 것도 싫었다.
왜냐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구해준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현우가 자신에 대해서 말해주었더니 그 이후에 그들이 직장과 집까지 찾아와서 무척이나 귀찮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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